-
-
그대의 인생에 봄꽃 하나 심겠습니다 - 양장, 꽃처럼 향기롭게 살기 위한 인생 필사 100
오평선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3월
평점 :
일났다. 후기를 이렇게 시작해서 좋을 일이 아닌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났다. 모름지기 독서 후기란 책 얘기 많이에 내 얘기 조금을 곁들여 그 내용을 정리하는 것이 제1목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 근자라고 하기엔 너무 길었던 4개월의 안간힘이 이제서야 큰 산 하나 넘어 전진한 만큼, 그동안의 기억과 감정에 푹 절여진 마음이 도무지 타협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는 문제에 봉착하고야 만 것이다...
그런 이유로, 또, 장르가 장르라는 핑계에 힘입어, 이 글은 책 얘기 조금, 내 얘기 많이, 아주 많이, 왕창 많이... 로 이어질 예정이라는 선조치 후민망이 될 예정이다. 내 후기를 가장 많이 읽는 사람인 미래의 나와 어쩌면 이 기록을 읽을 누군가에게도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나도 이러고 싶지 않았어요. 이 망할 사회가 나를 이렇게...
흔히들 생사의 고비를 넘는 경험이 삶의 분기점이 된다고들 한다. 저자도 그랬기 때문일까. 순식간에 죽음 바로 앞까지 내몰렸다 돌아온 경험이 그에게 새로운 삶을 주었다 한다. 오늘 최선을 다할 것, 누릴 것을 미루지 않을 것. 이 두 가지 대원칙과 함께.
개인사적 불행이 아니라, 몸담은 시대가 통째로 흔들리는 것을 시국이라 한다. 재난이다. 꼭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갈라져야만 천재지변인 것은 아니다. 세계가 파괴되는 것, 당장 내일을 담보할 수 없이 망가지는 사회를 목도하는 것또한 천재지변이다. 이 혼란한 시국에 마음을 챙기는 일, 지금 여기의 행복을 놓치지 않는 것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p.5 만약 내일 아침에 눈을 뜨지 못한다고 해도 아쉽지 않게, 슬프지 않게 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행복을 가까이에서 찾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행복은 언제나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가까이에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참어른도 동지도 찾기 어려운 시대, 각자도생의 재난에 내던져진 시대를 살아내고 있다. 기약없는 희망에, 끊임없이 맞닥뜨리는 절망에 지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가고 불가능이 진리가 된 사회에 우리는 놓여있다. 당장의 승리가 수없이 쌓여버린 슬픔을 덮지 못한다.
누군가는 보신에, 누군가는 현실이라는 명분 뒤에 숨는 비겁함에, 또다른 누군가는 더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절망에 굴복해 주저앉는다. 무너진다. 등을 돌린다. 혹은, 신념이라는 이름으로 불의의 길을 택한다. 그렇게 폐허가 된 세계에서 절망은 가깝고 희망은 요원했다. 지금도, 여전히.
p.158 그것이 불가능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방해해선 안 된다.
그러나,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할 수 없는 이유는, 차마 그럴 수 없는 이유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깨질 수 없는 것, 부서지지 않는 것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는 이렇게 쓰이는 말이다. 그러니 내게 저자가 말하는 "뿌리와 근본"은 이런 의미다.
평화를 비는 마음으로 차곡차곡 모았을 글들을, 이렇게나 다른 길에선 지금, 조금이나마 이해한다. 결코 평화로울 수 없는 세상에서, 간절히 바라고 또 움켜쥐려는 마음까지도. 이 혼돈과 무참의 시대에 어째서인지 여전히 살아남은 사람들과 함께.
광장은 닫히지 않았다. 누군가는 여전히 광장에, 거리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존재한다. 평화와 일상을 포기한 채로. 그런 이유로 뒤늦은 물음을 꺼내든다. 풍성했던 줄기와 잎은 다 죽었지만 여전히 남아있는 뿌리는 어떻게 살아남아야 할까. 기적처럼 찾아온 봄꽃 소식에 다시금 묻는다. 서로의 삶에 꽃 하나 심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p.36 죽은 듯했지만 다시 살아날 수 있는 이유는 풍성했던 줄기와 잎은 다 죽었지만 뿌리는 견뎌냈기 때문이다. 뿌리와 근본이 살아 있으면 얼마든지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도서제공: 더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