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오키타 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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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도 마법도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한 어느 세상,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 빼고는 뭐든지 가능한 마녀와 마법사. 그들은 평범한 이들과 섞이는 듯, 그러나 한 곳에 머무는 법이 없이 떠돌며 살아간다. 어느 날인가부터 소문이 들려온다. 종달새 마을에는 마녀가 살고 있다. 마음 속 가장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마녀가.

언덕 중턱에 위치한 작은 마법상점에 가면, 찾아온 이가 누구든, 얼마나 큰 대가를 내밀든, 그것이 마녀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무엇이든 이루어준다고 한다. 무엇이든. 누구든. 그곳을 찾는 이들은 제각기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기적같은 힘을,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그 소원을, 마법으로 해결해주기를.

p.155 마법은 어떤 기적이든 행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마법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한 번 더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 마법으로 그 구멍을 메울 수만 있다면, 하루코는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 앞으로도 소설가로 살아갈 수 있다.

p.216 유카를 잃고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도키오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일 년 사이에 요시히코의 상처가 아문 것 같지 않았다. 형이 슬퍼하지 않는 이유는 그 감정을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다. 요시히코는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상처가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아픔을 무시할 뿐이다.


전능한 힘에 비해 그들은 좀처럼 마법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종달새 언덕의 마녀'만 해도 어느 나라의 대통령인지도 그렇게 애원했다는데 눈도 깜빡하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단다. 또 누군가는 그저 재밌겠다는 이유만으로 흔쾌히 마법을 부렸다는데...

이야기는 그 작은 마을에 마녀가 찾아오고도 한참이 지난 어느 날로 시작된다.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대. 그렇다면, 나도, 어쩌면... 저마다 미련과 슬픔, 외로움, 자괴감과 상실을 끌어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과연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p.116 "언젠가 쿠로와 만나면 부디 친구가 되어주렴. 왠지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어쩌면 이미 친구일지도 모르겠구나." (...) 친구가 되어달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만약 기회가 있다면 그 아이와 실컷 놀아달라고. 뛰어다니기를 좋아하는 활발 한 아이니까 공원에서 뛰놀고, 나비를 쫓아다니고, 놀다 지치면 햇살 드는 곳에서 같이 낮잠을 자달라고.

p.169 무얼 쓴다고 한들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 가치 없는 소설을 만들어내는 자신도 아무 가치 없다. 언제나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들이 무너져내리고 사라져갔다. 공백이 되어버린 자리에 새로운 이야기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설가이길 원했다. 하루코에게는 소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발버둥질하다가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지만, 자신이 더는 소설가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인정할 수 없었다.


마녀가 감각하는 시간에 비하면 평범한 인간의 그것은 찰나와도 같다. 그들의 힘에 비하면 인간은 그저 무력하고 아둔한, 하루하루와 눈앞의 일에 벅차 허덕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인간을, 마녀는 지켜본다. 그리고 말한다. 정말 그렇게 되길 원하느냐고. 네 진정한 소원은 그게 아닐 거라고. 마치, 인간이 인간인 채로, 유한하고 무력한 그 자체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처럼.

작가가 굳이 사람 바깥의 세계를 끌어온 이유는, 오랜 시간 수많은 이들이 이처럼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존재를 그려온 이유는 어쩌면 바로 이것일지 모른다. 나약하고 무력한, 찰나의 존재인 탓에, 수많은 그리움과 좌절과, 목숨만큼 소중한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왔기 때문에.

p.67 메이, 사실 넌 지금도 흉터 따위 전혀 상관없지 않아?" 메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이가 고개를 끄덕이듯 눈을 깜빡였다. "네가 정말로 없애고 싶은 건 흉터가 아니라 유토 마음속에 있는 짐일 거야."

p.121 쿠로는 미노루와의 나날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어째서 옆에 있어주는 것일까. "언어는 확실히 중요하지. 하지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인 건 아니야."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이 스이가 말했다. 미노루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러니 마법은 그저 찰나의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 등 뒤에, 긴 시간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홀로 남겨진 사람이 때때로 눈물짓고 어떤 날엔 무너지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짧은 생의 유한한 기회 속에서도 내일이, 누군가가 있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결국 현실이다. 마음이다. 긴 이야기의 끝에 남겨진 이에게, '그' 또한 그러했듯이.

오늘도, 작은 마을의 인적 드문 곳에 위치한 상점, 그곳의 문을 열면 긴 머리를 한 아름다운 '마녀'가 언제와도 같은 목소리로 맞이한다. 안녕, 나는 스이. 무슨 일로 왔어? 그러면 당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겠지. 당신이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바로 '그 마녀'인가요. 나는, 내 소원은...

p.78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많은 걸 잃어. 그중에는 더없이 소중한 것도 있지. 막을 수 없는 이별도 있어. 그러니 부디 소중히 대해줘. 잃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해."

p.255 떠나버린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옆에 있어줄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이제는 없는 사람에게 집착하니 마음에 계속 생채기가 나는 것이다. 그러니 산 사람이 어떻게든 해줘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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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할미 - 짧게 읽고 오래 남는 모두의 명화수업
할미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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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미술관을 찾았다. 만난 적 없는 작가의 그림은 역시나 평면으로 고요했고, 주말답지 않게 썰렁한 곳엔 대단히 유명한 적 없는 작가의 세계 그까짓 것 알 게 뭔지, 시큰둥한 얼굴로 서성이거나 나도 그리겠다고 속삭이는 사람이 태반인 가운데 신나게 길 헤매다 이른 더위에 넋이 나간 사람 하나만 멍하니 오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인데, 몰라 나도, 낙서같다, 그치... 속삭임이 빠져나간 조명 아래 마지막 사람이 물었다. 물론 정물처럼 자리한 안내원에 챙길 체면은 있었으니 그저 생각이 그랬다는 뜻이다. 이걸 보고 우는 사람이 있을까. 매끄러운 평면과 모호한 이미지에 마음을 빼앗겨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까.

p.56 고흐가 편지에 적었듯, 사이프러스 나무는 여태 한 번도 그림에 제대로 등장한 적 없을 정도로 아무도 그 미적 가치를 특별히 알아주지 않던 존재였어. 하지만 사실은 놀라운 아름다움을 그 안에 가지고 있었지. 살아생전 세상으로부터 끝없이 외면받던 화가 고흐는 어쩌면 사이프러스 나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게 아닐까?

p.93 "예술은 당신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보게 만드느냐의 문제요." 단순히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몸짓을 그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관객들이 그 너머에 있는 그늘진 진실을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거야.


언젠가 보았던 그림이 있다. 유명하대서, 도 아니고 별 생각 없이 갔는데 마침 전시 중이길래. 그 뒤로 전시기간이 끝날 때까지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그것 하나 이해해보자고, 아니, 그저 잊히질 않아서. 뭔진 몰라도 마음을 그 그림 앞에 두고 온 것 같아서. 마크 로스코의 유작이었다.

'그림은 말을 한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던 그 날, 미술 과목 시험 내용이나 달달 외우던 내게 처음으로 취향 비슷한 게 생겼다. 그렇게 지금까지, 유난히 문턱 높은 분야인 탓에 뭐가 좋다싫다 말하기 어려워 홀로 좋아하는 그림이 몇 있다. 너무 감성적인가, 싶은 멋쩍음을 더해.

p.78 이중섭은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든 그림을 한 장이라도 더 팔려고 뛰어다녔어. (...) 이 은종이 그림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한 가지 특징은 거의 항상 '아이들'이 등장했다는 거야. 그 당시 가족을 향한 그의 그리움이 얼마나 절절했는지가 배어나오고 있지.

p.117 바렌초프는 가난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경제적으로 변변치 않았대. 그래서 소피아라는 여자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지만 그녀의 부모가 둘의 결혼을 절대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하지. (...) 의연한 척 소피아의 결혼을 축하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녀의 결혼식에서 주례까지 맡게 되었다고 하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주례를 서야 하는 상황이라니,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을 거야.


기실 이는 나만의 수줍음이 아닐 테다. 낯설어서, 대체 뭐가 다른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다들 좋다는데 화면만 봐서는 와, 그렇구나, 말고는 할 말이 없어서. 난감하고 어려운 '감상의 요령'이 미술관을 재미없는 곳으로 못박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터놓고 말해, 뭐든 직접 가서 보고 듣는 걸 선호하는데다 안 그래도 영상매체와는 거리가 먼 성질머리라 연주 영상도 아니고 그림 이야기라니, 저자 소개가 없었더라면 뭔데 노인 행세인가 가자미눈을 뜨고도 남았을 터다.

p.233 할스는 그림을 그릴 때면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유심히 들여다 보곤 했어.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에 빠져들어 짓는 표정이나, 술꾼들이 헤실거리며 웃는 모습, 장난스런 아이의 얼굴 같은 것 말이야. 그는 억지로 근엄한 포즈를 취한 귀족들의 모습보다 이런 자연스러운 표정들 속에 진짜 삶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거든.

p.265 누군가는 인생을 정리할 나이라고 하는 76세에 그림을 시작해 평생 1,5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모지스 할머니. 지금도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단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기엔 결코 늦은 나이란 없다는 걸 자신의 인생으로 멋지게 증명해냈으니 말이야.


그렇게 불순한 마음으로 읽다보니 결국 좋아하는 것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다 같구나, 싶더라. 너무 좋아서,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었다고, 당신에게도 그 찬란하고 다정하고 고마운 순간이 깃들길 바란다고, 혹은, 이 비참과 설움을 알아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마음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할머니'라는 말에 괜시리 눈물이 핑 돌고 기대고픈 마음이 드는 모든 이들에게 미술이 어렵지 않았으면, 화가가 내보이는 세계에 오롯이 몸과 마음을 맡기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면 좋겠다. 그렇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 시공과 캔버스를 넘어 어느 순간의 화가에게 그림이 그랬듯이, 그림 너머의 이야기까지 알아주기를 바라는 누군가가 그러했듯이.

p.82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에 그린 〈피 묻은 소〉와 〈덤벼드는 소〉를 보면, 소가 광기에 서려 피를 흘리고 있거나 이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축 처진 모습이야. 생전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을 두 번 다시 품에 안지 못한 그는 병든 몸으로 붓을 들었고 그 마음은 고스란히 그림 속 소에게로 옮겨졌지.

p.139 독일 장교 한 명이 피카소의 작업실을 찾아와 게르니카 그림을 한참 유심히 보더니 물었대. "이 그림을 당신이 그렸소?" 그러자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지. "아니, 이 그림은 당신들이 그린 것이오." 전쟁을 일으키고 무수한 생명을 죽인 건 바로 너희들이라는 걸, 그래서 이 끔찍한 그림의 진짜 작가는 너희라는 걸, 피카소는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꼬집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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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2 래빗홀 YA
추정경 지음 / 래빗홀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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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집사의 탄생을 향한 운명의 톱니바퀴는 멈추지 않았다. 어떤 고양이는 목숨을 빼앗기고, 어떤 자는 욕망으로 타오르고 있으며, 어떤 집사는 한 치 앞을 모르는 채 여전히 한 발씩 나아가고 있다. 휘말린 이상 빠져나갈 방도는 없다. 작가는 주인공들과 독자를 어디로 데려가려는 것일까?

이번 권에서는 한층 커진 스케일로, 고대 신성과 신화가 더해졌다. 지난 이야기에서 흩뿌려진 조각들은 서서히 형체를 갖춰간다. 거듭하는 생이 그러하듯이, 커다란 슬픔이 이해되는 과정이 그러하듯이. 그만큼 위협도 거세졌다. 제각기 상처받은 두 사람과 고양이들을 위협하는 음습한 힘이 시시각각 조여오는 것이 느껴진다. 과연 그들은 고양이 결사단에 힘입어 무사히 '천 년 집사'가 될 수 있을까?

p.34 "나 자네 좀 휘감아 올라감세." 칡은 자기가 감고 올라갈 울타리에게 그리 정겨운 부탁의 말을 전했다. 인간에게 징글징글한 칡이 자연에서는 어찌 공생하며 질긴 목숨을 이어 왔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함께 공존하는 것, 또한 존재를 부탁하는 것

p.103 사람들은 그런 치기를 전문 용어로 '한때'라고 불렀다. 그들 역시 한때가 있었고 '한때' 자기 일에 열의를 불태우던 시절이 있 었다. 그러나 부족한 시스템의 구멍을 사람의 노동력으로 끼워 맞추는 데 버틸 장사는 없었기에 늘 젊은 한때가 오고 그 한때를 다한 이들은 떠났다.


차가운 도시의 생을 건너 얽힌 연이 인과에 박차를 가한다. 남을 해치고 짓밟는 자가 있는가 하면, 온몸으로 누군가를 살리려는 자가 있다. 그러니 어째서, 이 고통을, 다 알면서, 라고 묻는다면. 미움은 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나치지 않기란 어려우니까. 어렸던 너의 차마 외면하지 못했던 괴로움이 작고 어린 생명에게 온기로 가닿은 순간을 기억하니까. 그러니까, 너를 도울거야. 보은과 복수는 고양이의 율법이니까.

여전히 무거운 이야기 속 도처에 가득한 생명은 경이롭고, 생생하다. 자기를 넘어서는, 타자를 향해 뻗어나가고 기꺼이 내어주기를 택하는 마음을 용기가 아니면 무어라 부를까. 점점 빠르게, 선명하게 나아가는 이야기는 독자를 어디로 이끌게 될까. 다음 여정을 기대하는 마음으로 돌아본다. 사납고 낯선 도시를 살아가는 고양이들의 존재를.

p.192 "차 한잔 나누지 못하고 긴 세월을 사는 건 저주가 될 걸세. 앉아 차를 마신다는 것은 서로의 시간을 함께한다는 것이고, 마음의 식사를 뜻하지. (...) 평생 마음의 식사를 하지 못하고 살아간다면 축복이겠는가, 저주겠는가?"

p.291 분홍이란 이름으로 그의 고양이가 되고 집사로 이어진 순간, 밀적은 그렇게나 엿듣고 싶었던 연꽃의 비밀을 알게 된 듯했다. 생이란, 결국 사는 동안 숱한 시간을 함께하는 것. 그 시간이 찬란하든 비루하든. 그리하여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 채 오직 그 기억만을 선물로 안고 떠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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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 년 집사 백 년 고양이 래빗홀 YA
추정경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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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뭘까? 고양이 정말 뭘까. 곰곰이 생각해봐도, 심지어 눈 앞에 두고 봐도 도무지 알 수가 없는 생물이다. 대체 저 동그란 머리통으로 무슨 생각을 하길래 잘 자다가도 느닷없이 튀어올라 발길질을 하고, 멀쩡히 둔 물건을 밀어 떨어트리고, 가만히 쓰다듬을 받다가도 버럭 성질을 내며, 목숨이 아홉 개는 된다면서, 어째서 그렇게 짧은 생을 미련없이 떠나버리는지. 어떻게, 그다지도, 사랑스럽고 애틋할 수 있는지.

만일 고양이의 말을 이해할 수 있다면, 고양이에게 인간이 아는 것 이상의 거대한 세계가 있다면, 우리와 그들의 관계는 어떻게 변하게 될까. 어쩌면, 그토록 간절했던 한 마디를 전할 수 있을지 모른다. 미안해, 고마워, 사랑해, 위험해, 행복해야 해. 그리고, 또 만나. 이 책의 고양이들은 보나마나 흥, 하고 아닌 척 고개를 돌리겠지만 말이다.

p.63 인간은, 인간이란 동물은 탈을 뒤집어쓰지 않고도 돌변한다. 어쩌면 그 얼굴 앞에 뒤집어쓴 기괴한 가면이 그의 본모습일 수도 있다. 티그리스가 숨결을 불어 넣어 준 다음에야 하퍼가 즐겨 피우는 마리화나 냄새와 제이슨의 오래된 향수 냄새가 그들의 가면을 벗겼다. 티그리스를 죽이고 사체를 처리하기로 약속한 뒤 먼저 받은 계약금이 달러 묶음으로 뒷주머니에 꽂혀 있는 채였다.

p.206 "어이 인간, 고양이 세계의 영역은 침범할 수 없는 우리의 성이야. 함부로 누굴 받아들이지 않아. 영역은 모든 고양이가 협의해서 결정할 일이야. 무엇보다 우리에게 중요한 뭔가를 부탁하면 넌 보은의 의무를 지게 돼. 고양이에게 복수와 보은은 최고의 율법이야."


모든 생명에게는 각자의 세계가 있다. 그들 모두가 제각기 치열하고도 자유로운 삶을 이어간다. 하루하루를 채워가며 존엄하게 살아간다. 개중 고양이들에게는 전설처럼 내려오는 예언이 있다. 모든 생명의 윤회를 돕는 천 년 집사를 찾아라. 그들은 고양이의 말을 한다. 천 년 집사의 운명을 타고난, 상처받은 두 사람과 그들을 향해 시시각각 다가오는 위협. 운명은 움직이기 시작했다.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무게가 있다. 아홉 번의 삶에 쌓여가는 능력만큼의 이해와 고통. 작가는 인간의 욕심이 어그러뜨리는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며 묻는다. 이다지도 고통스러운 세상에 이토록 자유로운 존재와의 인연에 기꺼이 동참하겠느냐고. 공존의 무게를 안기며 묻는다. 외롭고 괴로운 세계에 여전히 곁을 지킨다는 것은, 대체 무엇이겠느냐고. 천 년 집사의 길에 동참할텐가.

p.64 "천 년 집사는 자신의 과업을 받아들여라. 와서 억압받는 생명을 해방시켜 눈먼 이들을 깨어나게 하라. 진실의 냄새를 쫓아라. 그 냄새는 고약하다. 위선과 위악이 진실을 가리고 있으니 그 추악한 냄새들을 쫓아라."

p.284 "나는 새끼를 낳아 길렀던 어미로서 내 존엄이 있어. 그래서 똑같은 마음으로 새끼들을 키우는 삵의 은신처를 네게 알려 줄 수는 없어." "삵을 몰아내 달라 부탁할 때는 언제고 이제 와 존엄이라니." "그때는 몸을 풀기 전이었고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잖아. 몰아내되 새끼가 젖을 뗄 때까지, 어미와 떨어지지 않게 해 달라는 거지. 안전한 이별"

*도서제공: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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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
고레에다 히로카즈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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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마법같은 순간이 있다. 그에 비채 인생은 대체로 무료하거나, 밋밋하거나, 쉽게 잊혀지고, 이따금, 아주 가끔, 몹시도 찬란하고 고통스러워 평생을 지워지지 않는 순간이 있다.

대개 두어시간 남짓, 화면의 그 얄팍한 경계로 눈을 돌리면 금세 현실에 파묻힐 그 짧을 시간을 사랑하게 되는 건, 어쩌면, 세계의 일부를 아주 가까이 들여다보고, 온몸으로 느끼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하는 것 같은, 그런 환상에 잠기게 하는 힘 탓이 아닐까.

p.84 개인적으로는 목소리로 정했다. 매력적인 허스키보이스. 병실에서 늙은 딸과 창가에 나란히 서서 안마당에 핀 꽃을 바라보는 연기를 부탁. 그녀가 움직인 순간 회의실이 병실로, 벽이 창가로 바뀌는 듯했다. 캐릭터 이름도 이자벨에서 배우의 본명인 마농으로 변경.

p.102 밤. 첫눈에 반한 파비안느의 집에서 혼자 숙박. 밤의 열차 소리, 아침의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기억. 혼자 시나리오를 들고 집 안을 이동하며 대사를 말해봤다. 그러면 말이 넓이와 거리감 면에서 이 공간에 얼마만큼 어울리는지 또는 안 어울리는지 알 수 있다. 누가 보면 섬뜩하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이건 중요한 과정이다.


그렇게 태어난 영화는 관객에게 어떻게 가닿는가. 적어도 내겐 어떤 날엔 끝나자마자 뒤도 안 돌아보고 나간 영화가 있었고, 언젠가는 개봉 첫 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출석도장을 찍어가며 상영관에 불이 꺼지는 순간부터 크레딧의 끝자락까지 자리를 지켰다. 또 언젠가는 컴컴한 거실에 웅크리고 앉아 눈 감고도 외는 내용을 줄줄 울어가며 봤고. 생각만 해도 속이 메스꺼워지는 것만 골라가며 보던 때도 있었고.

슬슬 잊을 때도 된 언젠가엔, 감은 눈이 쓰리도록 피로에 절어 사는 게 너무 버거운 날, 끈질긴 온기가 그리워 닥치는대로 찾아 보던 날들이 있었다. 스스로가 너무 불쌍해서, 꾸역꾸역 살겠다고 애쓰는 꼴이 너무 처량해서 언젠가 이 감독 영화는 거들떠 보지도 않을 날이 오기는 할까, 싶던 때가 있었다. 지금에 와서 그의 이름으로 나온 책을 읽고 있으니 신기하다 해야 할지, 역시 사람 일은 모른다고 해야 할지.

p.201 카트린+쥘리에트의 안마당 장면. 자서전 《진실》을 읽은 뒤 모녀의 첫 충돌. 쥘리에트의 노여움이 강렬. 수위를 낮춰보라고 해도 좀처럼 바뀌지 않는다. 쥘리에트는 '거짓된 내용을 썼으니 화내는 게 당연하다' 라고. 아니, 아직 아니다. 이 장면은 이틀째 아침이니 노여움은 나중을 위해 남겨놔야 한다.

p.219 안마당에서 어머니에게 자서전의 거짓말에 대해 따지는 194신 말입니다만, 여기의 노여움을 지난번 반장이 자리에 앉지 않는 말썽쟁이 학생을 나무라는 것처럼 해봐달라고 한 건, 여기서는 아직 '이성'으로 화를 내고 있기 때문인 것 같거든요, 뤼미르는. 단계를 밟아 감정적인 노여움이 심화돼 최대치에 이르는데, 여기서는 아직 버텨주세요.


이름보다 작품으로 먼저 안 감독이다. 화면만 봐도 아, 이 사람이구나, 싶은 분위기가 있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그가 기록한, 스케치가 영상이, 아이디어가 하나의 이야기가 되기까지, 설정에 불과했던 캐릭터가 관객을 사로잡고 살아 움직이는 그 자체가 되기까지의 시간을 담은 이 기록은 만들어진 곳을 떠나 드넓은 세계로 달려가버리는 존재에 대한 고백이다.

"영화가 태어나는 곳에서"라는 제목은, 어쩌면 이런 의미일 것이다. 그 자체로도 온기와 생명을 갖고 피어나기까지, 지난하고 아름다운 길과 시간들. 다시 기억으로. 어째서 고레에다의 작품이었느냐고, 굳이, 를 묻는다면, 그 안에 사람이 있어서, 라고 답하겠다. 내가 되지 못한, 편입되지 못한, 어떤 순간들이 있다고.

p.168 영화와 인생이 이번만큼 거의 운명적으로 만나는 것을 처음 봤다. 작품 자체가 타이밍을 택해 누군가를 위해 태어나는 것이라면? 이 작품을 통해 나는 감독과 함께 달려왔다고 첫머리에 썼다. (...) 빠른 속도로 아웃풋을 이어온 지난 몇 년을 거쳐 이쯤 해서 일단 호흡을 가다듬고 인풋을 축적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다시 새로운 '좋은 친구'를 사귀어 한층 터프하게 좋은 여행을 계속하기 위해서.

p.253 스태프와 캐스트가 대본에 대해 이런 의견을 내주면 정말 고맙다. 상하 관계도, 종적 관계도 아닌 평행적 관계가 작품을 중심으로 유기적으로 존재한다는 증거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를 그려낸 건 사람이라고, 아주 많은 사람이 머리를 맞대고 쌓아올린 이야기라고, 그 사실이 여실히 묻어나는 화면을 그려내는 감독이라서, 라고 답하겠다. 그런 이유로 이 책은 하나의 기록이자 그가 그려내는 세계의 일부다. 작게는 한 영화가 탄생하기까지의 조각들이고, 깊게는 "영화는 어떤-무엇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그 나름의 답이다.

그에 더해 시나리오부터 섭외, 촬영까지 어느 것하나 홀로 이루어지지 않는, 그래서 결국 가장 인간다운 작업에 대한 소고인 동시에 레퍼런스와 베테랑으로서 현장의 이야기를 담은, 일종의 가이드북으로 읽어도 좋겠다. 관객에서 창작자까지, 영화가 태어나는 곳, 당신의 세계에서 나의 마음까지 이어지는 이야기를.

p.283 쇄신이 빠르다는 것은 당연히 변화에 따라가지 못하는 사람은 도태된다는 뜻이다. 한국 사회 전반에 대해 같은 말을 할 수 있는 모양이다. 새로운 영화 기술에 따라오지 못하는 세대의 스태프는 나이 50대에 보수파라는 딱지가 붙어 현장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p.296 영화 만들기에서 사라진 필름을 교체하는 시간, 무거운 기재, 상영에서 사라진 필름을 교체하는 수고, 필름 교체를 표시하기 위해 필름에 각인되던 마크. 그것들이 영화 및 영화 만들기의 시간과 공간을 일종의 '축제'로 바꿔주었다고 생각한다. 그런 것이 한꺼번에 사라졌다. 뿐만 아니라 이제 영화관의 어둠까지 사라져가고 있다. 내게는 종이가 아니면 책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로, 영화관을 잃으면 영화는 영화가 아니게 될 것 같다.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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