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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에 간 할미 - 짧게 읽고 오래 남는 모두의 명화수업
할미 지음 / 더퀘스트 / 2025년 6월
평점 :
이 책을 읽고 오랜만에 미술관을 찾았다. 만난 적 없는 작가의 그림은 역시나 평면으로 고요했고, 주말답지 않게 썰렁한 곳엔 대단히 유명한 적 없는 작가의 세계 그까짓 것 알 게 뭔지, 시큰둥한 얼굴로 서성이거나 나도 그리겠다고 속삭이는 사람이 태반인 가운데 신나게 길 헤매다 이른 더위에 넋이 나간 사람 하나만 멍하니 오가고 있었다.
그래서 이게 무슨 뜻인데, 몰라 나도, 낙서같다, 그치... 속삭임이 빠져나간 조명 아래 마지막 사람이 물었다. 물론 정물처럼 자리한 안내원에 챙길 체면은 있었으니 그저 생각이 그랬다는 뜻이다. 이걸 보고 우는 사람이 있을까. 매끄러운 평면과 모호한 이미지에 마음을 빼앗겨 자리를 떠나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까.
p.56 고흐가 편지에 적었듯, 사이프러스 나무는 여태 한 번도 그림에 제대로 등장한 적 없을 정도로 아무도 그 미적 가치를 특별히 알아주지 않던 존재였어. 하지만 사실은 놀라운 아름다움을 그 안에 가지고 있었지. 살아생전 세상으로부터 끝없이 외면받던 화가 고흐는 어쩌면 사이프러스 나무에서 자신의 모습을 보았던 게 아닐까?
p.93 "예술은 당신이 무엇을 보느냐가 아니라,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무엇을 보게 만드느냐의 문제요." 단순히 발레리나의 아름다운 몸짓을 그리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관객들이 그 너머에 있는 그늘진 진실을 볼 수 있게 하고 싶었던 거야.
언젠가 보았던 그림이 있다. 유명하대서, 도 아니고 별 생각 없이 갔는데 마침 전시 중이길래. 그 뒤로 전시기간이 끝날 때까지 문턱이 닳도록 들락거렸다. 그것 하나 이해해보자고, 아니, 그저 잊히질 않아서. 뭔진 몰라도 마음을 그 그림 앞에 두고 온 것 같아서. 마크 로스코의 유작이었다.
'그림은 말을 한다'는 걸 처음으로 느꼈던 그 날, 미술 과목 시험 내용이나 달달 외우던 내게 처음으로 취향 비슷한 게 생겼다. 그렇게 지금까지, 유난히 문턱 높은 분야인 탓에 뭐가 좋다싫다 말하기 어려워 홀로 좋아하는 그림이 몇 있다. 너무 감성적인가, 싶은 멋쩍음을 더해.
p.78 이중섭은 가족을 다시 만나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어. 떠돌이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든 그림을 한 장이라도 더 팔려고 뛰어다녔어. (...) 이 은종이 그림들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한 가지 특징은 거의 항상 '아이들'이 등장했다는 거야. 그 당시 가족을 향한 그의 그리움이 얼마나 절절했는지가 배어나오고 있지.
p.117 바렌초프는 가난한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서 경제적으로 변변치 않았대. 그래서 소피아라는 여자를 온 마음을 다해 사랑했지만 그녀의 부모가 둘의 결혼을 절대 허락해주지 않았다고 하지. (...) 의연한 척 소피아의 결혼을 축하하는 것도 모자라서 그녀의 결혼식에서 주례까지 맡게 되었다고 하지.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의 주례를 서야 하는 상황이라니, 정말 참담한 심정이었을 거야.
기실 이는 나만의 수줍음이 아닐 테다. 낯설어서, 대체 뭐가 다른 건지 알 수가 없어서, 다들 좋다는데 화면만 봐서는 와, 그렇구나, 말고는 할 말이 없어서. 난감하고 어려운 '감상의 요령'이 미술관을 재미없는 곳으로 못박는 데 일조하지 않았을까.
터놓고 말해, 뭐든 직접 가서 보고 듣는 걸 선호하는데다 안 그래도 영상매체와는 거리가 먼 성질머리라 연주 영상도 아니고 그림 이야기라니, 저자 소개가 없었더라면 뭔데 노인 행세인가 가자미눈을 뜨고도 남았을 터다.
p.233 할스는 그림을 그릴 때면 주변의 평범한 사람들을 유심히 들여다 보곤 했어. 거리의 악사들이 연주에 빠져들어 짓는 표정이나, 술꾼들이 헤실거리며 웃는 모습, 장난스런 아이의 얼굴 같은 것 말이야. 그는 억지로 근엄한 포즈를 취한 귀족들의 모습보다 이런 자연스러운 표정들 속에 진짜 삶이 담겨 있다고 생각했거든.
p.265 누군가는 인생을 정리할 나이라고 하는 76세에 그림을 시작해 평생 1,500점이 넘는 작품을 남긴 모지스 할머니. 지금도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용기를 주고 있단다. 좋아하는 일을 시작하기엔 결코 늦은 나이란 없다는 걸 자신의 인생으로 멋지게 증명해냈으니 말이야.
그렇게 불순한 마음으로 읽다보니 결국 좋아하는 것을 전하고자 하는 마음은 다 같구나, 싶더라. 너무 좋아서, 위로가 되는 순간이 있었다고, 당신에게도 그 찬란하고 다정하고 고마운 순간이 깃들길 바란다고, 혹은, 이 비참과 설움을 알아달라고, 그렇게 말하는 마음은 어디서나 마찬가지다.
그러니, '할머니'라는 말에 괜시리 눈물이 핑 돌고 기대고픈 마음이 드는 모든 이들에게 미술이 어렵지 않았으면, 화가가 내보이는 세계에 오롯이 몸과 마음을 맡기는 일이 자연스러워지면 좋겠다. 그렇게 위로가 되면 좋겠다. 시공과 캔버스를 넘어 어느 순간의 화가에게 그림이 그랬듯이, 그림 너머의 이야기까지 알아주기를 바라는 누군가가 그러했듯이.
p.82 그가 사망하기 1년 전에 그린 〈피 묻은 소〉와 〈덤벼드는 소〉를 보면, 소가 광기에 서려 피를 흘리고 있거나 이전의 기세는 온데간데없이 축 처진 모습이야. 생전 그토록 그리워하던 가족을 두 번 다시 품에 안지 못한 그는 병든 몸으로 붓을 들었고 그 마음은 고스란히 그림 속 소에게로 옮겨졌지.
p.139 독일 장교 한 명이 피카소의 작업실을 찾아와 게르니카 그림을 한참 유심히 보더니 물었대. "이 그림을 당신이 그렸소?" 그러자 피카소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하지. "아니, 이 그림은 당신들이 그린 것이오." 전쟁을 일으키고 무수한 생명을 죽인 건 바로 너희들이라는 걸, 그래서 이 끔찍한 그림의 진짜 작가는 너희라는 걸, 피카소는 담담하면서도 날카롭게 꼬집었던 거야.
*도서제공: 더퀘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