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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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께 처음 읽었던 이야기를 봄을 앞둔 추위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읽는다.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겨울의 끝자락, 이번만 지나면, 약속처럼 떨치는 위세에 묻는다. 삶의 의미가 뜯겨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을 떠나보낸 자리에, 찰나에 끝나버리지 않는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구하고 천진한 계절에서 모든 것이 지나치게 생생한 풍경을 지나, 침묵 속에 다시 덮는 순간. 사람 키만큼 온다는 눈에 파묻히고 싶어졌다. 무작정 걷고 싶었다. 숲에 들어가 나오지 않은, 옛날 일이 되고 싶었다. 문득 돌아본 길에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기를 바라다가, 쓸려가다 만 흔적을 도로 밟아 새기고 싶었다.

p.14 어쩌면 자신, 바움가트너가 냄비에 손을 덴 바로 그 순간 플로렌스 씨도 손가락이 잘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찾아온다. 불행의 원인은 각자 자기 자신이고, 한 사람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불행보다 훨씬 크다 해도, 그래도, 각각의 경우-

p.36 그날 오후 신들은 아직 젊은 자아가 왕성한 힘을 내뿜고 있던 아내를 그에게서 탈취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그의 팔다리가 몸에서 뜯겨 나갔다. 네 개 전부, 팔 둘과 다리 두 개가 모두 동시에. (...) 그는 이제 인간 그루터기,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었던 반쪽을 잃어버리고 반쪽만 남은 사람인데, 그래, 사라진 팔다리는 아직 그대로이고, 아직 아프다. 너무 아파서 가끔 몸에 당장이라도 불이 붙어 그 자리에서 그를 완전히 태워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전의 기록을 읽어보았다. "삶은 통증이었다. 환상임에도 더욱 생생하고 고통스럽게 달라붙는 환지통과 같은 그리움. 이대로 안고 살겠거니, 얼마쯤 고여있는 마음을 출렁이며 꼭 하루씩을 느리게 이어가는 삶. 그에게 과거가, 아니, 여전히 현재인 기억이 숨막히게 피어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해진다".

그 아래 작게, 언제고 떼버릴 요량으로 얹어둔 메모에는 이렇게 썼더랜다. 어떤 상실은 도난-당함이다, 뜯겨나감이다. 그 바로 다음 줄에는, 환상통은 마취 없는 절단에 발병한다, 라고. 옳은지 아닌지는 몰라도. 으레 환지통으로 불리는 그것은 phantom이다. 유령처럼. 닿을 수도 헤집을 수도 없는 것.

p.77 애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더니 그가 전화기를 든 이후 처음으로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한 말들 알아듣겠어? 바움가트너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애나의 숨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전화선이 죽어버린다.

p.228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지 마라, 도로에 어수선하게 깔린 파인 곳이나 떨어진 물체를 피해 방향을 틀어라, 어떤 경우에도 다른 차와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충동적인 모험은 절대 하지 마라. 충돌은 사실 치명적일 수 있고, 일단 죽으면 영영 죽은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사이 바움가트너, 이 외로운 남자의 날들을 고립과 고사 언저리에 매어두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이런 삶도 있다고, 볼 장 다 보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바닥났다 해도 다음 장이란 게 남아 있다고, '가만한' 위안을 남겨두고 싶어졌다. 지나간 자리에, 오래도록 머무른 흔적에.

그러니까, 여전히 두서없는 마음에 물음표가 되다 만 호선 비슷한 것을 슬쩍 두어도 좋겠다면, 묻고 싶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게 끝없는 해변을 걷는 일과 같다면,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이란 간간이 밀려드는 그리움에 발을 적시면서도 나아갈 수 있는, 그냥 그렇게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p.245 그렇게 해서, 우리의 주인공은 이마의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채로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도움을 찾아 길을 떠나고, 첫 번째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릴 때 S. T. 바움가트너 모험담의 마지막 장이 시작된다.

p.254 (김연수 에세이) 인생의 후회는 대개 이런 식이다. 〈그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소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내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선택과 행동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를 들어 한밤에 잘못 걸려 온 전화를 받고는 자신이 그 사람이 맞다고 말한다면? 그때도 인생은 바뀔 테지만, 번개를 맞는 일과는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내가 겪지 않은 일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한 일에 의해서 인생은 바뀌는 것이니까.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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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움가트너 (애나 일러스트 리커버)
폴 오스터 지음, 정영목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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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봄께 처음 읽었던 이야기를 봄을 앞둔 추위의 한가운데에서 다시 읽는다. 마지막 몸부림을 치는 겨울의 끝자락, 이번만 지나면, 약속처럼 떨치는 위세에 묻는다. 삶의 의미가 뜯겨나간 자리에는 무엇이 남는가? 영원할 것 같았던 사랑을 떠나보낸 자리에, 찰나에 끝나버리지 않는 남은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무구하고 천진한 계절에서 모든 것이 지나치게 생생한 풍경을 지나, 침묵 속에 다시 덮는 순간. 사람 키만큼 온다는 눈에 파묻히고 싶어졌다. 무작정 걷고 싶었다. 숲에 들어가 나오지 않은, 옛날 일이 되고 싶었다. 문득 돌아본 길에 아무 흔적도 남아있지 않기를 바라다가, 쓸려가다 만 흔적을 도로 밟아 새기고 싶었다.

p.14 어쩌면 자신, 바움가트너가 냄비에 손을 덴 바로 그 순간 플로렌스 씨도 손가락이 잘렸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불쑥 찾아온다. 불행의 원인은 각자 자기 자신이고, 한 사람의 불행이 다른 사람의 불행보다 훨씬 크다 해도, 그래도, 각각의 경우-

p.36 그날 오후 신들은 아직 젊은 자아가 왕성한 힘을 내뿜고 있던 아내를 그에게서 탈취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그냥 그렇게, 그의 팔다리가 몸에서 뜯겨 나갔다. 네 개 전부, 팔 둘과 다리 두 개가 모두 동시에. (...) 그는 이제 인간 그루터기, 자신을 온전하게 만들어 주었던 반쪽을 잃어버리고 반쪽만 남은 사람인데, 그래, 사라진 팔다리는 아직 그대로이고, 아직 아프다. 너무 아파서 가끔 몸에 당장이라도 불이 붙어 그 자리에서 그를 완전히 태워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전의 기록을 읽어보았다. "삶은 통증이었다. 환상임에도 더욱 생생하고 고통스럽게 달라붙는 환지통과 같은 그리움. 이대로 안고 살겠거니, 얼마쯤 고여있는 마음을 출렁이며 꼭 하루씩을 느리게 이어가는 삶. 그에게 과거가, 아니, 여전히 현재인 기억이 숨막히게 피어나는 순간, 새로운 이야기들이 더해진다".

그 아래 작게, 언제고 떼버릴 요량으로 얹어둔 메모에는 이렇게 썼더랜다. 어떤 상실은 도난-당함이다, 뜯겨나감이다. 그 바로 다음 줄에는, 환상통은 마취 없는 절단에 발병한다, 라고. 옳은지 아닌지는 몰라도. 으레 환지통으로 불리는 그것은 phantom이다. 유령처럼. 닿을 수도 헤집을 수도 없는 것.

p.77 애나는 잠시 말을 멈추고 숨을 들이쉬었다가 다시 내쉬더니 그가 전화기를 든 이후 처음으로 질문을 한다. 지금 내가 한 말들 알아듣겠어? 바움가트너가 뭐라고 대답을 하기도 전에 애나의 숨이 멈추고, 말이 멈추고, 전화선이 죽어버린다.

p.228 엉뚱한 곳으로 들어가지 마라, 도로에 어수선하게 깔린 파인 곳이나 떨어진 물체를 피해 방향을 틀어라, 어떤 경우에도 다른 차와 충돌로 이어질 수 있는 충동적인 모험은 절대 하지 마라. 충돌은 사실 치명적일 수 있고, 일단 죽으면 영영 죽은 상태로 남게 될 것이다.


그렇다고 사이 바움가트너, 이 외로운 남자의 날들을 고립과 고사 언저리에 매어두고 싶지는 않았다. 대신 이런 삶도 있다고, 볼 장 다 보고, 할 수 있는 건 거의 바닥났다 해도 다음 장이란 게 남아 있다고, '가만한' 위안을 남겨두고 싶어졌다. 지나간 자리에, 오래도록 머무른 흔적에.

그러니까, 여전히 두서없는 마음에 물음표가 되다 만 호선 비슷한 것을 슬쩍 두어도 좋겠다면, 묻고 싶어지고야 마는 것이다. 어쩌면, 삶이란 게 끝없는 해변을 걷는 일과 같다면, 살아가는 사람의 마음이란 간간이 밀려드는 그리움에 발을 적시면서도 나아갈 수 있는, 그냥 그렇게도 살아갈 수 있는 것이라 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렇게.

p.245 그렇게 해서, 우리의 주인공은 이마의 상처에서 계속 피가 흐르는 채로 얼굴에 바람을 맞으며 도움을 찾아 길을 떠나고, 첫 번째 집에 이르러 문을 두드릴 때 S. T. 바움가트너 모험담의 마지막 장이 시작된다.

p.254 (김연수 에세이) 인생의 후회는 대개 이런 식이다. 〈그때 그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어떻게 됐을까?〉 소설은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간다. 어떤 일이 일어나고, 내가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선택과 행동을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예를 들어 한밤에 잘못 걸려 온 전화를 받고는 자신이 그 사람이 맞다고 말한다면? 그때도 인생은 바뀔 테지만, 번개를 맞는 일과는 미묘하게 다를 것이다. 내가 겪지 않은 일에 의해서가 아니라 내가 한 일에 의해서 인생은 바뀌는 것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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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대의 책이다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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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죽은 나무로 만들어진다. 지면 위에 붙박인 활자는 수 년이고 수백 년이고 정지한 채 침묵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손에 들리기 전까지 그 안의 말을 품어안고 그저 가만히, 가만히 잠들어있다. 얼마나 크고 깊은 세계를 보여줄지, 그 경이를 알아봐줄 이를 기다리며.

이제 당신은 손을 뻗어 한 권의 책을 꺼내든다. 손바닥으로 등을 받치고 손가락으로 표지를 열어 제목을 지나 한 장, 한 장 넘긴다. 글이 시작되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내쉰 후 첫 문장을 따라간다. 오, 잿빛 종이에 바늘땀처럼 놓인 문장은 당신에게 산만한 배경소음이 아닌 완전하고도 애쓰는 관심을 요구한다.

나를 보라고, 흘러가는 '자극'이 아니라 오직 나만을 마주하고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라고. 당신은 그 상냥한 명령에 기꺼이 복종해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선다. 그래, 내가 여기 있다고, 가만히 숨을 죽이며 한 줄, 또 한 줄...

p.13 미안한 얘기지만, 그대는 나를 읽는 동안, 스스로를 어떤 다른 인물이 아니라 그대 자신으로밖에 여길 수 없을것이다. 좋은 책이란 그대 자신을 다시 만나게 해주는 거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이윽고, 어딘가의 한 줄에 도달한 당신에게 불쑥, 책이 말을 건다. 안녕? 아 잠깐만 잠깐잠깐!!! 던지지 마세요!!! 책이 말 좀 할 수도 있지!!! 괜찮아요? 많이 놀랐죠?

농담이 아니다. 나는 이 대목에서 책을 던졌습니다. 그리고, 불행하게도, 집이 아니었지... 그 순간에 비명 안 지른걸 아무래도 인생 업적에 넣어야 할 것 같다는, 아무래도 작가가 독자에게 원한을 품은 게 분명하다는 의심이 첨가된 생각을 하다 이내 궁금해졌다.

p.15 나는 그대가 동화나 옛 이야기를 읽는 기분으로 나를 읽어 주었으면 한다. 그러면 나는 그대의 눈을 더할 나위 없이 다정하게 어루만져주는 존재가 될 것이다. 나는 물론 하나의 사물일 뿐이다. 그렇다고 나를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 때로는 사물이 의식을 지닌 존재를 도와줄 수도 있다. 때로는 사물이 살아 움직일 수도 있다. 나는 그대의 책이다. 게다가 나는 살아 있다.

p.16 그대가 원한다면, 나는 어떤 대단한 것, 언제 어디에서든 그대의 생각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것, 그대를 홀로 있게 하지 않고 늘 그대 곁에 머물면서 위급할 때는 비상구를 마련해 줄 존재, 한마디로 말해, 종이로 된 친구가 될 수도 있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는 그대의 선택에 달려 있다.


앞서 말했듯 책은 정지한 채 침묵하는, 극도로 수동적인 매체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책이라는 시공을 사이에 둔 채, 독자와 세상에 얼마나 적극적으로 다가가고, 나서며, '말'을 걸 수 있을까? 책과 독서, 쓰는 자와 읽는 자는 유사 이래 주류였던 적이 없다. 가장 치열한 외톨이이자 수다스러운 은둔자들이면 모를까.

이 책은 에세이다. 작가가 독자에 직접 말을 걸고자 한다. 동시에 거대한 상상의 세계로 끌어들인다. 현실을 뚫고 관념의 세계에 잠겨들 것을 요구한다. 지금 여기에 발 묶인 이들에게 무언의 명령을 쏟아붓는다. 입을 크게 벌리고, 노래하라. 소리치듯이. 꿈을 꾸라. 헤엄쳐라. 날아오르라.

p.109 스스로가 낡았다는 사실을 체제는 알고 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누군가가 그대처럼 용기를 내어 새로운 것을 제안해 주기를 기다려 온 것이다. 사슬에 묶인 이들도 자기들끼리 모론을 벌이기 시작한다. 그들은 자기들도 그대처럼 할 수 있다고 의견을 모은다. 그들을 지원하라. 창안과 발명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남은 체제는 스스로의 특권을 자꾸자꾸 포기하게 될 것이다.

p.126 돌고래들이 그대에게 장난을 치면서 함께 놀자고 한다. 그대는 그토록 즐겁게 사는 비결이 무어냐고 묻는다. 그들은 항상 꿈을 꾸며 사는 것이 그 비결이라고 대답한다. 그들의 설명이 이어진다. 돌고래 뇌의 반쪽이 활동하는 동안 나머지 반쪽은 잠을 잔다. 그러니까 그대와 놀고 있는 이 순간에도 그들은 꿈을 꾸고 있는 셈이다.


책에는 지면을 넘어서는 세계가 담겨있다. 한 인간은 하나의 세계다. 이 책은 작가가 책과 에세이라는 형식을 걸고 독자에게 내건 도박이다. 단지 한 권의 얇은 책, 짧은 문장의 나열에 불과한 동시에 읽는 내내 물음표의 호선을 긋게 한다.

이쯤 되면 그의 작품들이 어디서 출발했는지 짐작하게 하는 사유와 그 접근 방식이 몹시 도전적이라는 평은 구태연한 사실기술에 불과할지 모른다. 그럼에도 말할 수밖에 없다. 다른 무엇도 아닌, 책이라는 물성-장벽을 뛰어넘어 독자에게 어디까지 가닿을 수 있는지, 책이 인식적 한계를 돌파하고 읽는 이에 직접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지, 부딪히고 들이받으며 재차 묻고 있다고.

당신은 읽는다. 빠져든다. 지금 이 순간, 한 권의 책이 당신에게 말을 걸고 있다. 이제 당신의 차례다. 안녕? 안녕. 당신은 이 솟아나는 물음에 무엇으로 응답하겠습니까?

p.163 대체 무슨 일이 있었지? 하고 그대가 묻는다면,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다. 한 권의 책인 내가 그대로 하여금 경이로운 일을 하게 했다고. 그러나 진정 경이로운 것은 그것을 수행한 그대, 오직 그대뿐이다. 안녕.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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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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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동물인가? 단순히 따지자면 그러하다. 조금 다르게 묻기로 하자. 인간은 단지 동물인가? 혹은 그저 동물에 불과한가? 또는, 다른 동물과 그저 마찬가지로 동물일 뿐인가? 여기서부터는 답이 갈리리라. 작금의 인간에 대한 정의는 절대 동물일 리 없는 '만물의 영장'과 인간중심주의 탈피의 일환으로 '그저 동물' 사이를 정신없이 오간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이지만 〈자연에 들어맞지 않는 존재〉이다. 인간은 동물이지만 단지 동물에 그치지만은 않는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동물은 아닌 동물'이라는 선언, 혹은 인간-동물의 정의는 어떤 의의를 갖는가. 인간은 어째서 '동물적 본능 이외의 삶'을 추구하는가? 어째서 생리적 욕구 이상의 다채로움, 특별함, 고유성 따위를 꿈꾸는가.

p.28 인류가 이 세기에 반드시 이뤄 내야 할 생태학적 전환을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와 규범적 설계가 필요하고 따라서 윤리학이 필요하다. 자연과학과 기술과학이 경제학과 더불어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우리가 누구이고 누구이고자 하는가에 관한 진정한 규범적 결정의 부담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할 것이라는 그릇된 근대적 호언장담을 더는 신뢰할 수 없다.

p.46 인간은 자기를 정의함으로써 다른 동물들과 자기를 구별한다. 인간은 자기를 동물 플러스 무언가로 이해한다. (...) 진짜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서 동물임의 핵심을, 동물성의 개념을 확실히 발견한다는 점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우리는 그 동물성을 다른 동물들과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특별한 무언가를 통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인간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동물이다. 동시에 생물적 시간을 벗어나 자기와 타자, 과거와 미래에까지 무한히 확장하는 가능성에 대한 사고,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사고하는 자기-존재에 대한 사고가 가능한 동물이다. 몹시 거칠게 요약해, 인간은 동물이나 인간이 바라보는 '동물'과는 다르다. 인간의 사유능력은 선악의 판단과 자율적 창조 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자의 경계를 넘는 상상적 공감을 가능케 한다.

이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타자를 자신에 동치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도덕적 사유의 가능성이라 이해하고자 한다. 더하여, 인간의 동물성은 곧 물질성이라 말할 수 있다. 유한한 시간과 파괴되는 몸에서 벗어날 수 없음, 그리고 절대로, 타자를, 스스로조차도, 완전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제약.

p.252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옹호하는 삶꼴의 다원성을 삶의 의미를 탐구하려는 인간적 욕구와 맞세우지 않으려면, 근대적 설명의 방향을 다시 뒤집어 인류의 지혜와의 접속을 꾀할 필요가 있다. (...) 의미는 근원적이고, 무의미는 의미 박탈 및 상실의 경험이다.

p.374 우리는 우리 자신도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 자신의 타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다수의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제하는 윤리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상대하는 방식에 관한 윤리학도 있다. 우리는 인간성을 공유한 타인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종장에 선 독자는 필연히 물음에 도달한다. 인간은 동물적 존재다. 동시에 인간 아닌 동물이 갖지 못한 이 특성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또한, 자기자신을 넘어서는 가능성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말해질 수 있는가? 이에 저자는 '무지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전지전능의 단꿈이 아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해 전부 알 수도, 알아낸 범위 내의 '것들'을 완벽히 통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담백한 사실이자 도덕률. 세계는 논리적 환원주의로 수렴되지 않는다. 생물-기계 이상, 삶의 의미를 찾는 우리 존재는 자연의 일부이자 '설계'에 순응하는 현상 이상이다. 인간은 그의 말처럼 "동물이라는 물리적 형식 위에서 스스로를 정의하고 반성하는 자기 이해 능력"과 그 책임을 지닌 존재이다.

다시 묻기로 하자. 우리는 동물인가? 그렇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동물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스스로가 '동물됨'에 온전히 제약받지 않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쥐고 있다. 그 다음은? 무지의 경계선 너머로 또다시 묻고 찾아나갈 일이다. 무지와 미지 사이 어딘가에서.

p.424 무지의 윤리학의 출발점은 인식적 겸손, 곧 자연에 관한 우리의 앎 주장과 우리의 구체적 가치관 및 윤리적 판단은 오류를 범하기 쉽고 수정될 필요가 있음을 알기다. 이 같은 인식적 겸손의 기반은 우리에게 항상 낯선 놈으로 머무르는 타자에 대한 존중이다.


*도서제공: 열린책들

#열린책들 #인간은동물이다 #마르쿠스가브리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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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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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날이 있다. 사는 일이 너무, 너 어 무 힘들어 뭘 더 해볼 생각은 커녕 당장 한 발 떼기도 힘든 날. 또, 그런 날도 있다. 막막하다, 는 감정이 밤만큼 새까맣게 부푼 덩치로 작은 방을 가득 채워버리는 날. 그런 날, 어떤 음악은 시가 되고 통증이 되어 삶을 파고든다.

저자 최지인은 말을 엮어 문장으로, 글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에게 필요한 글은 아무튼 좋아질 거고 (지금이 좋지 않다는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아무튼 괜찮을 거라고 (아무리 봐도 안 괜찮으니까) 무턱대고 달콤하고 보드라운 말만 늘어놓는 그런 글이 아닐 것이다.

p.43 예술이 현실을 마주할 때, 현실의 것이 예술을 뛰어넘을 때, 그래서 타협하고 말았을 때 비루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부른 노래보다 부를 노래가 더 많다고 믿는다. 언젠가 이 어둠이 익숙해질 거라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순간이 올 거라고.

p.83 '시란 무엇인가' 질문하는 내게 한 선배는 '무엇이 시가 될 수 있을까' 물으라고 했다. 그 말이 '삶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삶이 될 수 있을까' 묻는 태도 처럼 들렸다. 네게 무엇이든 삶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은 비관인가? 그 모든 노래는 상처를 핥아대는 자기 위안에 그칠 뿐인가? 시는, 노래는, 이야기는, 말은, 글은 힘이 없다. 적어도 그 자체로는. 지나가면 끝, 잊으면 그만. 그치만 외로운 사람은, 고독과 고립을 아는 사람은 그 고통을 알기에 타인의 그것을 방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잔인한 세상을 뒤엎을 힘은 없지만, 누군가를 홀로 남겨두지 않을 수는 있지 않을까. 어두운 곳을, 폐허를 홀로 헤매게 두지는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음악을, 이야기를, 말을 '듣는다'. 듣기란 본질적으로 도래하지 않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행위인 것이다. 응답에 선행되는 무조건적 수용, 기다림. 그것이 듣는 마음이리라.

p.30 우리가 함께 노래할 때, 나를 발견하고 너를 발견하고 우리를 발견한다. 우리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예감하게 된다. 빛이 어둠을 밝힐 수 있다고 믿으면 자기 약점까지 고백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미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과거를 다시 엮어야 한다.

p.111 때때로 이 모든 것 앞에서 글쓰기는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세계가 계속해서 무너지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가고, 폐허가 된 도시 한가운데에서 어린이가 울고 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요." 내가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


긴 밤, 어떤 울음은 소리조차 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누구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듣기'는 말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 응답은 침묵 곁에 싹튼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흐르는 음악에서 지나간 순간을, 도래하지 않은 가능성을 마주하는 일은 어쩌면, 작은 공백을 심는 마음을 닮지 않았는가.

출렁이는 밤마다 저자를 지탱한 음악은 단지 멜로디에 더해진 말이 아닌. 말 바깥의 말, 곁을 지키는 존재였으리라. 일렁이는 음의 밤, 가만히 따라해본다. "사라지지 않으려고요". 그렇게 두지 않으려고요. '그것'만큼은 사라지게 두지 않으려고요.

p.9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소리는 탄생하고 소멸하며 흐름이 된다. 태어나는 것은 죽는 것이고, 죽는 것은 태어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동안 우리는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동시에 경험한다. (...) 존재하는 것은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듯, 한 사람의 이야기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삶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p.131 모든 이야기는 부재의 그림자다. 그 그림자들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걸까. 앞을 내다보는 게 부질없이 느껴질 때면 바다에 가 파도를 바라본다. 밀려오는 물결을 가만히 지켜본다. 어떤 미래가 닥쳐올지 알 수 없다. 단지 삶은 미지에서 미지로 가는 여정일 것이다. 새로운 시간이 오고 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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