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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렁이는 음의 밤
최지인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2월
평점 :
그런 날이 있다. 사는 일이 너무, 너 어 무 힘들어 뭘 더 해볼 생각은 커녕 당장 한 발 떼기도 힘든 날. 또, 그런 날도 있다. 막막하다, 는 감정이 밤만큼 새까맣게 부푼 덩치로 작은 방을 가득 채워버리는 날. 그런 날, 어떤 음악은 시가 되고 통증이 되어 삶을 파고든다.
저자 최지인은 말을 엮어 문장으로, 글로 만드는 사람이다. 그에게 필요한 글은 아무튼 좋아질 거고 (지금이 좋지 않다는 건 부정할 수 없으니까), 아무튼 괜찮을 거라고 (아무리 봐도 안 괜찮으니까) 무턱대고 달콤하고 보드라운 말만 늘어놓는 그런 글이 아닐 것이다.
p.43 예술이 현실을 마주할 때, 현실의 것이 예술을 뛰어넘을 때, 그래서 타협하고 말았을 때 비루함을 느끼곤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부른 노래보다 부를 노래가 더 많다고 믿는다. 언젠가 이 어둠이 익숙해질 거라고,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이는 순간이 올 거라고.
p.83 '시란 무엇인가' 질문하는 내게 한 선배는 '무엇이 시가 될 수 있을까' 물으라고 했다. 그 말이 '삶은 무엇인가'가 아니라 '무엇이 삶이 될 수 있을까' 묻는 태도 처럼 들렸다. 네게 무엇이든 삶이 될 수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런 생각을 하다가... 묻지 않을 수 없었다. 결국은 비관인가? 그 모든 노래는 상처를 핥아대는 자기 위안에 그칠 뿐인가? 시는, 노래는, 이야기는, 말은, 글은 힘이 없다. 적어도 그 자체로는. 지나가면 끝, 잊으면 그만. 그치만 외로운 사람은, 고독과 고립을 아는 사람은 그 고통을 알기에 타인의 그것을 방관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 잔인한 세상을 뒤엎을 힘은 없지만, 누군가를 홀로 남겨두지 않을 수는 있지 않을까. 어두운 곳을, 폐허를 홀로 헤매게 두지는 않을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음악을, 이야기를, 말을 '듣는다'. 듣기란 본질적으로 도래하지 않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행위인 것이다. 응답에 선행되는 무조건적 수용, 기다림. 그것이 듣는 마음이리라.
p.30 우리가 함께 노래할 때, 나를 발견하고 너를 발견하고 우리를 발견한다. 우리에게 다른 삶의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을 예감하게 된다. 빛이 어둠을 밝힐 수 있다고 믿으면 자기 약점까지 고백해야 한다는 말이 있다. 미래를 제대로 보기 위해서는 과거를 다시 엮어야 한다.
p.111 때때로 이 모든 것 앞에서 글쓰기는 부질없는 일처럼 느껴진다. 세계가 계속해서 무너지고, 사람들이 계속해서 죽어가고, 폐허가 된 도시 한가운데에서 어린이가 울고 있다. "우리는 잘못한 게 없어요." 내가 거리를 헤매고 있을 때 누군가 내 이름을 불러주면 좋겠다.
긴 밤, 어떤 울음은 소리조차 되지 못하고 사라진다. 그 마음이 무엇인지 누구도 온전히 알 수는 없다. 다만 '듣기'는 말이 멈춘 자리에서 시작된다는 것, 응답은 침묵 곁에 싹튼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흐르는 음악에서 지나간 순간을, 도래하지 않은 가능성을 마주하는 일은 어쩌면, 작은 공백을 심는 마음을 닮지 않았는가.
출렁이는 밤마다 저자를 지탱한 음악은 단지 멜로디에 더해진 말이 아닌. 말 바깥의 말, 곁을 지키는 존재였으리라. 일렁이는 음의 밤, 가만히 따라해본다. "사라지지 않으려고요". 그렇게 두지 않으려고요. '그것'만큼은 사라지게 두지 않으려고요.
p.9 음악은 시간의 예술이다. 소리는 탄생하고 소멸하며 흐름이 된다. 태어나는 것은 죽는 것이고, 죽는 것은 태어나는 것이다. 음악을 듣는 동안 우리는 지나간 시간과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을 동시에 경험한다. (...) 존재하는 것은 결코 혼자 존재할 수 없듯, 한 사람의 이야기는 항상 다른 사람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의 삶을 통해 비로소 자신을 이해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p.131 모든 이야기는 부재의 그림자다. 그 그림자들이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걸까. 앞을 내다보는 게 부질없이 느껴질 때면 바다에 가 파도를 바라본다. 밀려오는 물결을 가만히 지켜본다. 어떤 미래가 닥쳐올지 알 수 없다. 단지 삶은 미지에서 미지로 가는 여정일 것이다. 새로운 시간이 오고 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