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인간은 동물이다
마르쿠스 가브리엘 지음, 전대호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2월
평점 :
인간은 동물인가? 단순히 따지자면 그러하다. 조금 다르게 묻기로 하자. 인간은 단지 동물인가? 혹은 그저 동물에 불과한가? 또는, 다른 동물과 그저 마찬가지로 동물일 뿐인가? 여기서부터는 답이 갈리리라. 작금의 인간에 대한 정의는 절대 동물일 리 없는 '만물의 영장'과 인간중심주의 탈피의 일환으로 '그저 동물' 사이를 정신없이 오간다.
저자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이지만 〈자연에 들어맞지 않는 존재〉이다. 인간은 동물이지만 단지 동물에 그치지만은 않는다. 인간이 '다른 동물과 마찬가지로 동물은 아닌 동물'이라는 선언, 혹은 인간-동물의 정의는 어떤 의의를 갖는가. 인간은 어째서 '동물적 본능 이외의 삶'을 추구하는가? 어째서 생리적 욕구 이상의 다채로움, 특별함, 고유성 따위를 꿈꾸는가.
p.28 인류가 이 세기에 반드시 이뤄 내야 할 생태학적 전환을 위해서는 사회적 변화와 규범적 설계가 필요하고 따라서 윤리학이 필요하다. 자연과학과 기술과학이 경제학과 더불어 근본적인 정치적 문제들을 해결하고 우리가 누구이고 누구이고자 하는가에 관한 진정한 규범적 결정의 부담으로부터 우리를 해방할 것이라는 그릇된 근대적 호언장담을 더는 신뢰할 수 없다.
p.46 인간은 자기를 정의함으로써 다른 동물들과 자기를 구별한다. 인간은 자기를 동물 플러스 무언가로 이해한다. (...) 진짜 문제는 우리가 우리 자신 안에서 동물임의 핵심을, 동물성의 개념을 확실히 발견한다는 점이다. 이 정의에 따르면, 우리는 그 동물성을 다른 동물들과 공유하지만 그럼에도 특별한 무언가를 통해 다른 동물들과 구별되어야 한다.
인간은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동물이다. 동시에 생물적 시간을 벗어나 자기와 타자, 과거와 미래에까지 무한히 확장하는 가능성에 대한 사고,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의 사고하는 자기-존재에 대한 사고가 가능한 동물이다. 몹시 거칠게 요약해, 인간은 동물이나 인간이 바라보는 '동물'과는 다르다. 인간의 사유능력은 선악의 판단과 자율적 창조 뿐만 아니라 자신과 타자의 경계를 넘는 상상적 공감을 가능케 한다.
이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타자를 자신에 동치해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도덕적 사유의 가능성이라 이해하고자 한다. 더하여, 인간의 동물성은 곧 물질성이라 말할 수 있다. 유한한 시간과 파괴되는 몸에서 벗어날 수 없음, 그리고 절대로, 타자를, 스스로조차도, 완전히 이해하고 통제할 수 없다는 절대적인 제약.
p.252 자유민주주의 체제가 옹호하는 삶꼴의 다원성을 삶의 의미를 탐구하려는 인간적 욕구와 맞세우지 않으려면, 근대적 설명의 방향을 다시 뒤집어 인류의 지혜와의 접속을 꾀할 필요가 있다. (...) 의미는 근원적이고, 무의미는 의미 박탈 및 상실의 경험이다.
p.374 우리는 우리 자신도 완전히 꿰뚫어 볼 수 없으며 따라서 우리 자신의 타자이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다수의 사람 사이의 관계를 규제하는 윤리학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우리 자신을 상대하는 방식에 관한 윤리학도 있다. 우리는 인간성을 공유한 타인들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에게도 책임이 있다.
종장에 선 독자는 필연히 물음에 도달한다. 인간은 동물적 존재다. 동시에 인간 아닌 동물이 갖지 못한 이 특성을 갖고 살아가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또한, 자기자신을 넘어서는 가능성에 대한 책임은 어떻게 말해질 수 있는가? 이에 저자는 '무지의 윤리학'을 제시한다.
전지전능의 단꿈이 아닌 우리는 우리 자신과 세계에 대해 전부 알 수도, 알아낸 범위 내의 '것들'을 완벽히 통제할 수도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는 담백한 사실이자 도덕률. 세계는 논리적 환원주의로 수렴되지 않는다. 생물-기계 이상, 삶의 의미를 찾는 우리 존재는 자연의 일부이자 '설계'에 순응하는 현상 이상이다. 인간은 그의 말처럼 "동물이라는 물리적 형식 위에서 스스로를 정의하고 반성하는 자기 이해 능력"과 그 책임을 지닌 존재이다.
다시 묻기로 하자. 우리는 동물인가? 그렇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동물인가? 그렇지 않을 것이다. 적어도 우리는 스스로가 '동물됨'에 온전히 제약받지 않는 그 이상의 가능성을 쥐고 있다. 그 다음은? 무지의 경계선 너머로 또다시 묻고 찾아나갈 일이다. 무지와 미지 사이 어딘가에서.
p.424 무지의 윤리학의 출발점은 인식적 겸손, 곧 자연에 관한 우리의 앎 주장과 우리의 구체적 가치관 및 윤리적 판단은 오류를 범하기 쉽고 수정될 필요가 있음을 알기다. 이 같은 인식적 겸손의 기반은 우리에게 항상 낯선 놈으로 머무르는 타자에 대한 존중이다.
*도서제공: 열린책들
#열린책들 #인간은동물이다 #마르쿠스가브리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