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의식의 뇌과학 -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설명하는 뇌의 숨겨진 작동 원리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조성숙 옮김, 박문호 감수 / 다산초당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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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가 나인가? 나는 뇌인가? 개인의 정체성, 내가 나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멀쩡한 두 사람을 잡아다 뇌만 바꿔친다면 뇌와 몸, '내부로부터 지각하는 나'와 '외부에 의해 관찰되는 나', '머리로 아는 나'와 '몸이 기억하는 나'. 이 중 누가 '진짜 나'일까. 우리 개인은 단일하고 영속적인 자아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며 살아가는가?

일명 '외계인 뇌 실험'으로 알려진 이 답 없는 물음은 철학과 뇌과학 양 분야에서 잘 알려진 흥미로운 주제다.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드는가? 감각되는 세계는 정말 있는 그대로 지각되고, 받아들여지는가? 있는데도 알아차려지지 않는 것, 없음에도 있다고 믿어지는 것, 혹은 있는 그대로 지각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지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뇌가 만들어낸 믿음에 불과하기 때문이 아닐까?

p.122 우리는 뇌가 가진 두 개의 평행 시스템을 이용해 행동을 통제한다. 이 두 시스템은 기억 형태에 따라 강점도 다르고 접근법도 다르다. (...) 뇌는 나름의 논리를 이용해 자동 처리가 가능한 작업은 알아서 자동으로 처리한다. 그 덕분에 우리가 선택한 다른 일에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p.376 인간의 정체성은 뇌의 어느 특정 영역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는 뇌의 여러 영역과 프로세스가 협력한 결과 나타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는 크게 두 개의 시스템으로 나뉜다. 하나는 이미 잘 아는 의식계이고, 다른 하나는 신비에 싸인 프로그래밍을 통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무의식계다.


느낀다. 이해한다. 믿는다. 기억하고 예측한다. 이 믿음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정신질환의 증상들이다. 부재하는 소리를 듣는다. 내 안에 또다른 내가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공존한다. 논리와 비존재를 넘나들며 서사를 만들어낸다.

뇌는 그저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살덩어리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때로는 감각과 경험을 뒤틀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그저 뇌가 조종하는 몸이 아니다. 그런 동시에 뇌가 조직하는 세계 없이는 자아도 존재할 수 없다.

p.207 무의식계는 우리의 인생을 담은 여러 스냅사진 사이에서 연관성을 만들어내고 각 순간마다 우리의 감정을 관찰해 무엇을 강조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스냅사진들을 배열하고 정리해 통일되고 간명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가 의식하는 인생이 된다.

p.241 뇌의 무의식계는 매일같이 정보의 실타래를 무수히 모은 다음 체계적이고 개인화된 이야기로 엮는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경험한다. 그러나 뇌에서 신호의 소통이 엇갈리는 순간 우리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즉, 몸은 뇌에, 뇌는 몸에 영향을 미친다. 감각과 해석, 의식과 무의식은 새의 양 날개처럼 세계를 구성하고 지탱한다. 이 정교하고도 모호한 신비가 우리로 하여금 끝없는 탐구에 도전하게 하며, 그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뇌의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존재를, 의식 바깥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여는 것과도 같다.

사회화되고 학습된 의식계 너머로 엿보이는 논리와 부정합의 세계. 3킬로 남짓의 세포 덩어리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은 우리 인간을 어디까지 뻗어나가게 할까. 부디 이 책을 만나는 독자가 이해를 넘어서는 이해, 의식 너머의 가능성을 향하는 끝없는 여정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p.377 정체성도 의식계와 무의식계의 공조에 의존한다. 의식계는 자아의식을 경험하게 해준다. 고통과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행동할 의지를 갖게 해주며 의지대로 정신과 신체를 제어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의식계 덕분에 뇌가 만드는 이야기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p.378 뇌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온전히 유지해 주기에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통찰할 수 있다. 뇌의 도움으로 자신의 의도를 이해하고, 곰곰이 추론하고, 결정을 심사숙고하고, 목표와 욕구에 딱 들어맞는 행동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정체성을 파악할 때 자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고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도서제공: 다산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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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탕 전쟁 - 제국주의, 노예무역, 디아스포라로 쓰여진 설탕 잔혹사
최광용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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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 맛은 생존의 감각이다. 잘 익은 과일과 채소의 그 맛은 동물로서의 인간에게 의심할 바 없는 안전과 기쁨의 맛이었을 것이다. 그 집약체인 설탕이 등장해 사람에서 사람으로, 대륙과 섬을 오가며 전세계로 퍼져나감에 따라 누군가에게는 이국의 쾌락, 누군가에게는 맛의 신지평을 연 설탕. 그 달콤한 환희는 세계사 곳곳에 돌이킬 수 없는 폭력의 흔적을 남겼다.

설탕의 원재료인 사탕수수는 무더운 땅에 자란다. 향신료가 그러했듯 설탕 또한 기르고 만드는 손과 먹는 입의 '인종'은 태생부터 다르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 인간들에 의해 탐닉과 열광의 대상이 되어 인간을 짐승 이하의 '짐승'과 문명이라는 이름의 거대한 폭력으로 양분했다. 설탕의 세계사는 필연적으로 피와 폭력의 역사이기도 한 것이다.

p.8 설탕 산업에 뒤따른 잔혹했던 노예제와 대규모 인구 이동은 오늘날 세계 인구 구성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 따라서 아프리카 노예의 역사와 설탕 산업이 초래한 인구 이동의 흐름을 살펴보는 일은 단지 설탕 산업에 대한 이해를 돕는 데 그치지 않고, 세계사의 큰 흐름과 그 속에서 형성된 현재를 보다 깊이 이해할 수 있도록 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p.86 플랜테이션이 큰 성공을 거두자 더 많은 노동력이 섬으로 유입되었는데, 유럽에서 온 백인이 3만 명을 넘었고 아프리카 노예는 수십만에 이르렀다. 이렇게, 스페인과 달리 프랑스는 생도맹그에 플랜테이션을 경영하며 아프리카 노예를 많이 수입했고, 그 결과 오늘날 아이티와 도미니카의 인구 구성에 뚜렷한 차이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눈과 입을 즐겁게 하는 식탁에 오르기 전까지, 매끈한 찻잔과 '흰 살갗'에 닿기까지의 설탕은 피와 눈물을 먹고 자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더 많은 생산, 더 큰 부. 그를 위한 노동력, 가축, 입이 있으되 말하지 못하는 기계인 노예가 곧 부의 원천이자 생산의 필수조건이 되었기 때문이다.

설탕에의 열망이 커져갈수록, 생산 규모가 불어날수록 땅과 노예에의 수요도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기계보다 싼 노예들의 노동, 호소할 곳도 도망칠 길도 없는 사람들의 손에서 자란 사탕수수는 바다와 대륙을 가로질러 낯선 땅에 닿아서야 상품이 되었다.

p.62 땅을 일구고, 수수를 심고, 김을 매고, 수확하고, 불을 지피고, 짜낸 즙을 끓여 설탕을 만들기까지, 끝도 없이 쳇바퀴 같은 노동이 반복되었다. 사탕수수밭 노예의 삶은 말 그대로 '지옥'이었다.

p.211 루이지애나는 빠르게 설탕 생산의 중심지로 자리 잡아 불과 반 세기 만에 '퀸 슈거'라 불리며 세계 설탕 공급량의 4분의 1을 담당하는 최대 설탕 생산지로 성장했다. 목화 산업도 크게 발달해 '킹 코튼'이라고도 불렸으며, 루이지애나는 미국 내에서 뉴욕에 이어 두 번째로 부유한 주가 되었다. 이렇게 농업 기반 생산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뉴올리언스는 자연스럽게 미국 노예시장의 중심이 되어 갔다.


노동집약적 산업에서 '생산지'의 이동은 곧 노동력의 대규모 이동과도 같다. 나랏님 입에나 들어가던 귀한 것이 망국의 풀뿌리 디아스포라와 닿아진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의 세계사가 한국사와 별개의 흐름이 아닌 이유로, 조선과 한국의 민중사 또한 설탕과 함께 퍼져나가고 삼켜졌다 말할 수 있겠다.

그러니 아프리카 대륙과 유럽의 역사가 그러했듯, 재외 한인의 역사 또한 이주노동자의 역사다. '우리의 아픈 역사'에서 현재의 인종차별과 한국 사회의 이주노동자 혐오를 읽어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 모른다.

p.232 조선인은 하와이 전역의 약 40개 설탕 농장에 분산 배치되었으며, 인원은 농장마다 적게는 30여 명, 많게는 200~300명에 달했다. 하루 10시간 노동에 점심시간 30분 정도가 휴식으로 주어졌고, 허리를 펴거나 담배를 피우는 일이 금지되었다. 하와이 원주민 언어로 '루나'라고 불렸던 농장 감독관은 소나 말을 다루듯 채찍으로 조선인 노동자들을 통제했으며, 이름 대신 번호로 불릴 정도로 인권은 철저히 무시되었다.

p.233 하와이 이주민 중 많은 수는 그대로 하와이에 남아 정착했다. 하지만 일부는 열악했던 사탕수수 농장의 노동 환경을 견디지 못하고 다른 길을 모색하며 미국 본토나 멕시코, 쿠바 등으로 이주했다. 이들이 바로 오늘날 약 260만 명 규모를 이루고 있는 미주 재외 한인의 출발점이다.


결국 설탕의 세계사는 제국주의 시대의 국경, 국제무역의 변천사와 20세기 이후의 독립투쟁은 모두 이어져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의 제목이 단순히 설탕의 역사 내지는 흐름 따위가 아니라 '설탕 전쟁'인 것은 그 역사가 단순한 '신세계 발견'이 아닌 개인의 몸, 국경, 인종과 패권이라는 추상적 가치에 대한 말 그대로의 전쟁이었기 때문이리라 짐작한다.

오늘날의 많은 이들은 달콤함에 파묻힌 일상을 누리고 있다. 음료부터 간식과 식사, 각종 산업에까지 설탕의 그림자가 닿는 곳이 적지 않다. 마치 가게에서, 기계에서 솟아나는 듯한 '생존의 맛'에 누군가의 생존이, 피 흘리는 인간의 역사가 있음을 되새겨보는 건 어떨까. 달콤함 아래 숨겨진 기억을 발견하게 될지 모르니.

p.173 정부군과 경찰을 몰아내는 데 성공한 카를로스 세력은 빠르게 확산되어 참여 인원이 단숨에 1만 2000명으로 불어났다. 분위기를 탄 세스페데스는 도미니카 공화국에서 전투 경험이 있던 막시모 고메즈 장군을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농민들을 무장시켜 본격적인 전쟁에 돌입했다. 쿠바 독립 전쟁의 시작이었다.

p.247 하와이는 이제 소수 재벌의 손아귀에 놓인 섬도, 설탕 산업의 그림자에 머물러 있는 곳도 아니다. 매년 약 900만 명의 관광객이 찾는 세계적인 휴양지이자,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공존하는 다채로운 섬이다. 여전히 섬 곳곳에서 과거 성행했던 설탕 산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만, 오늘날 하와이의 진면목은 풍부한 자연과 다채로운 문화, 그리고 따뜻한 환대에서 찾을 수 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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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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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야기의 형태로 전승되는가. 괴담은 봉인된 상자와도 같아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사람을 타고 이어진다. 이 안에는 몹시 두려운 것이 들어있으니 열지도, 궁금해햐지도 말라는 경고와 함께.

그러나 타국의 오래된 신화처럼,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은 인간사 전반의 오래된 화근이다. 그말인즉슨 두려움은 호기심을, 금기는 범계로 말미암은 재앙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금기 없이 형성되는 괴담은 없다. 두려운 것과 안전한 현실을 가르는 경계를 넘는 자는 필연히 등장하기 마련이고, 이는 괴담의 먹잇감이 되어 명맥을 잇는다.

이번 작품에서 도조 겐야 일행이 도달한 곳은 고립된 촌락, 단 한 번도 부유한 적 없었던 작은 마을이다. 뱃일로 근근이 먹고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영험하고도 두려운 존재, '하에다마님'이 있다. 인근 마을과의 합병 논의로 어수선한 분위기는 차치하고라도, 음산하고 폐쇄적인 축제와 마을 곳곳에 시대 차를 두고 전해내려오는 괴담을 둘러싼 마을주민들의 태도에는 어딘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주민들의 적대적인 태도는 비단 외지인에의 경계가 아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탐사의 난항도 잠시, 설상가상으로 괴담을 재현하는 듯한 살인사건까지 일어난다. 누가, 대체 왜? 동기도 방법도 알 수 없는 사건들에 경찰까지 동원되었으나 진상은 여전히 묘연하다. 기묘한 축제와 미심쩍은 전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과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괴이'일까, 그 이름 뒤의 무언가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괴담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통제 불가능한 재앙의 가능성과 위반의 대가, 그에 대한 금기가 필요하다. 이 재앙은 반드시 초현실적 존재를 상정하지만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점은 두려움은 반드시 외부로부터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단 내의 치부, 떳떳하게 마주할 수 없는 기억, 말로 표현될 수 없는 현실과 감정을 어떻게든 덧대고 가린 흔적이 괴담의 형태를 띄기도 한다는 뜻이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경험적 진리는 세월과 함께 그 형체를 달리해 곳곳에 스며들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장르로도, 소재로도 근대 사회의 폭력과도 결부되어 있다. 논리와 이성의 백일하에 낱낱이 규명되는 비현실적인 존재와, 공포라는 비이성적 감정의 실각. 그러나 인간이 과연 그런 존재인지, 이성의 힘으로 현실은 분석 가능한 대상이 되었는지, 제도는 충분한 정의를 표방하는지... 뿌리깊은 두려움의 힘은 얼마나 센지.

겐야 일행과 함께하는 이 여정의 끝에서 누구도 뒤를 돌아볼 수 없기를 바란다. 우리 인간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를 선득한 시선과 함께 오래도록 잊지 못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돌아올 때,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아래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깊은 밤 먼 곳에서 일렁이는 불빛, 깊은 숲 미로와 바위를 휘감는 파랑 너머에는....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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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
가렛 매튜스 지음, 김혜숙.남진희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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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아십니까? 오만군데에 꼬리붙이로 따라붙는, 술자리 돌림노래 내지는 '나무야 미안해'가 아닌,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아십니까. 사기꾼으로 몰리거나, 그게 밥 먹여주냐며 지청구나 듣기 딱 좋은 말이다. 이 말은 곧 철학이 이상론 따위로 취급받는 데에 더 이상의 낯섦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학의 왕, 인문학의 꽃. 3일만 굶으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는데, 어째서 지금의 철학은 이다지도 배부른 이상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물질시대에 비물질과 정신 그리고 첨예한 개념 따위의 입지가 너무도 좁기 떄문일지 모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과가 굶어 죽기 딱 좋은 전공이라는 데에는 우스개의 탈을 쓴 자조로 대강 합의된 지도 한참이지 않은가.

정녕 철학은 현실과 유리되어 활자와 강단의 밀실에서 순조로이 고사하는 중인가? 급기야 철학은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가 그저 살아 숨쉬는 쓰레기통이 아니기 위해 질문할 힘을 잃고야 말았는가?


철학이 더 이상 삶의 일부가 아니게 되었는지를 묻기 위해서는 강단에 갇힌 철학이 아닌, '철학-함'이란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것은 분명 말끔한 강의실에서 교수식으로 이루어지는, 시험으로 급을 매기고 정해진 답을 요구되는 형식에 딱 맞추어 좋은 점수를 얻어내는 일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철학함'이란 무엇인가. 철학하는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많이 배우고 오래 산 자? 사고의 틀을 뛰어넘기 위해 역설적으로 사고의 한계를 단단히 둘러친 자? 기실 이른바 철학적 질문을 하는 사람들, 철학에의 관심을 드러내는 존재는 대체로 성가신 이들이다. 주변인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묻고, 의심하고, 살피려 들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일은 끊임없이 일상을 벗어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유사 이래 철학하는 자는 대체로 성가시고 별난 존재였다. '철학이 밥 먹여주냐'는 말은 유효타가 아닌 적이 없었다. 남들 다 받아들이고 사는데 사사건건 따지고 드는 태도는 덜 성숙하고, 사회화되지 못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이야말로 '철학함'에 가장 가까운 존재일 것이다.

p.33 도널드는 내가 그 질문에 답해 주거나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 문제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그 질문을 품고 답을 찾기 위해 애쓸 것이다. 생각에 푹 빠진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기존의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어린이는 철학, 즉 추상적이고 첨예한 사고를 필요로 하는 개념을 다룰 인지능력이 어렵다고 여겨져왔다. 과연 그럴까? 분명 생물적, 사회적 발달의 차원에서 아동의 자원-능력은 어른의 그것에 비해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그 간극이 곧 어린이와 철학적 대화가 불가능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인지능력의 발달 단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철학함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어린이들과 나눈 대화는 일종의 도전이자 실험과도 같아 단순한 발견에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어린이와 어른이 나누는 대화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편견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이는 것, 무한한 가능성을 주저없이 제기하는 것.

p.59 만일 어떤 아이가 무지한 것은 아닌데 좀 이상하거나 특이한 말을 하면, 어른들은 아이가 어떤 개념상의 한계나 추리 능력의 부족, 혹은 둘 다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거라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린다. (...) 아이들이 인지적 무능함 때문에 이상한 질문이나 예상하지 못한 결론을 내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말하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놓쳐 버리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순수나 창의성에의 찬양이 아니다. 앞서 말한 한계로 인해 어린이의 논리에는 '더 배운' 어른에 비해 허점과 모순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을 서슴없이 딛고 가로지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철학함의 본질이 아니던가?

한계 없는 태도에 마주한 경험의 확장, 가능성의 발견. 그것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현실 아래 퇴색된 철학적 사고의 힘일지 모른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어른들이 어린이와 철학적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현실의 더께에 가려지지 않은 빛을 발견하고 철학이 삶의 곳곳에 던지는 물음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p.8 이 책은 한 문장도 슬렁슬렁 건너뛰어 읽으면 안 됩니다. 한두 문단이라도 어림짐작으로 짚어 내려고 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린이에 대한 예상이 얼마나 빈약한 것이었는지 느끼게 됩니다. 어린이들의 철학함 속에는 그들이기 때문에 포착해내는 독창적인 논점이 있고 갇힘을 모르는 사유의 추진력과 인간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개방된 시선이 있습니다.

p.83 우리는 발달 개념을 가지고 아이들의 말을 걸러 냄으로써, 그러한 말들이 가진 철학적 탐색의 기회를 막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존재는 물론 그 아이들이 가진 진지함과 장난기 가득한 철학적 견해를 모두 막고 있는 것이다.


*도서제공: 바람의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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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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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너무'를 너무 많이 붙이고도 모자라겠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을 만나면, 기쁨보다는 낭패감이 차오른다. 분명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만 같다는 생각에, 삶의 어느 순간에 불쑥 차올라 잠겨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에. 홍보문구며 추천사에 눈길 줄 새도 없이 빠져드는 경험은 행운일까, 벅차도록 즐거운 재앙일까.

평범 그 자체인 장의 일상은 한 문장과 함께 송두리째 뒤엎어진다. "트렁크에 넣어뒀습니다". 범인도 동기도 알 수 없는 납치사건. 수없이 떠올리고 둘었으나 여전히 불가해한 그 날을 기점으로 그의 세계는 불운의 클라인보틀처럼 비현실에 맞닿아버렸는지 모른다. 그는 여전히 몰랐다. 아니, 모르고자 했다. 이 불행이 더 큰 불행의 전초전에 불과했음을.

p.11 아무도 장의 불행을 덜어 가려고 하지 않았다. 장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전부 내 것이라고? 이렇게나 크고 많은 것이? 이 정도 불행이면 모두가 함께 나눠야 공평하지 않은가? 비록 내가 누군가의 불행을 나눠 가진 적이 없더라도 말이야. 그의 불행은 온전히 그의 것이기만 했다. 자꾸만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지? 그런 질문조차 사소해지는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p.143 어쩌면 세계가 불행해진 건 아닐까? 장은 자신의 불행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타인의 불행을 달래기 위해 은행 창구로 왔던 그 사람의 얼굴이 먼지가 잔뜩 낀 유리창처럼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다른 나라의 낯설었던 그 이름 역시 기억나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의 이전에 말뚝이 있었다. 기원도 정체도 알 수 없이, 한때는 사람이었다고만 알려진 그것은 바다 한가운데에 나타나 무리지어 존재할 뿐이었다. 어느날 이름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그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엇인가? 죽었으되 채 죽지 못한 것, 덜 죽은 것, 완전히 죽음에 이르지 못한 것들.

장은 묻는다. 나의 불행이 세계의 불행과 연결된 것은 아닐까. 불행한 자들의 불행한 세계에 다가오는 말뚝의 도래는 차라리 범람에 가깝다. 그 앞에 선 사람은 이유도 모르는 채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다. 영문도 모르는 채, 속절없이. 그냥 두면 사람이 아니지. 온갖 의미를 쥐어짜낸다.

p.159 그때 누군가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장의 옆에 있는 사람도 훌쩍였다. 흥 하고 코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장도 코가 매워졌다. 눈이 간질거렸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장의 눈에도 이유를 모르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훔쳐낼 틈도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울고 있기는 유리문 밖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기요. 너무 이상해서 그런데 지금 왜 울어요?" 옆 사람이 울면서 장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나요."

p.191 죽은 사람도 여전히 사람인가? 살아 움직이지 않더라도? 어쨌든 그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온다는 건 분명했다.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혹자는 종말을, 권력의 영속을, 누군가는 단 한 번도 패배당한 적 없는, 아쉬움도 구김도 없는 얼굴을 들이미는 와중에도, 장은 알고 있다. 이것은 죽음이다. 얼굴 없는 자, 잊혀진 이름의 죽음이다. 이는 누군가 말했듯이, '도처에 널린 죽음'이다. 그들은 묻는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최진영, 『원도』)". '물음에 처해진 자'는 물음을 이어갈 의무에 놓인다. 이 죽음은 어째서 고요한가.

죽음에는 애도가 필요하다. 어떤 죽음도 아무렇지 않아서는 안 된다. 없던 것처럼 갈아치워져도 좋을 이름은 없다. 마땅한 애도가 허락되지 않으므로 완결되지 못한 죽음. 그러므로 말뚝이 도래한 사회는 제대로 죽지 못한 이들로 가득하다. 웅크린 울음은 무리지어 피할 길 없는 반향으로 들이닥친다. 빛나는 것, 묵묵히 놓인 것, 바로 언젠가의 그 때까지만 해도 살아있었을 사람.

p.171 장은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눈물이 났다.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어떻게 죽으셨어요. 입은 열리지 않았다. (...)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장에게 건네던 손이 떠올랐다. 이름.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부르튼 손등과 짧게 닳아 있던 손톱만 생생했다.

p.208 "안 되는 게 어딨어요. 그냥 하지 마요." 차 대리의 어조는 단호하면서도 이유가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질 것 같았다. 수거자가 차 대리에게 반문했다. "그럼 뭐 해요?" "마스크 벗고 같이 울어요."


그러니 감은 눈을,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을, 미완의 죽음을 목도한 이가 가장 먼저 처해지는 의무는 애도이다. 눈물 흘리는 일이다. 치워버리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제대로, 마땅히 슬퍼하는 일이다. 모르는 이의 죽음에 나의 책임이 있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작중 '그'에게의 내용증명은 부채의 고백에 다름아니다.

초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들며 쉴새없이 질주하는 이야기의 끝에서, 돌이킬 수는 없어도 되풀이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믿는다. 이미 지나간 일이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될 때, 애도와 언어는 고발과 증언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

누구도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삶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지는 빚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믿는다. 제발, 제발. 타자의 안위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믿는다. 우리 연약한 짐승이 이 잔인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은 오직 "빚을 빛으로 기억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뿐이었음을 믿는다. "바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내 앞으로" 도래한 말뚝들의 세계에서.

p.265 장은 이제까지 삶에 대해 너무 큰 거짓말을 해왔다는 걸 이쯤에서 인정하고 싶었다. 희망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지금은 기적을 믿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다는 명백한 느낌을 믿었다. (...) 두려움은 희미해졌다. 그러니 제발.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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