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
가렛 매튜스 지음, 김혜숙.남진희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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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아십니까? 오만군데에 꼬리붙이로 따라붙는, 술자리 돌림노래 내지는 '나무야 미안해'가 아닌,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아십니까. 사기꾼으로 몰리거나, 그게 밥 먹여주냐며 지청구나 듣기 딱 좋은 말이다. 이 말은 곧 철학이 이상론 따위로 취급받는 데에 더 이상의 낯섦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학의 왕, 인문학의 꽃. 3일만 굶으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는데, 어째서 지금의 철학은 이다지도 배부른 이상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물질시대에 비물질과 정신 그리고 첨예한 개념 따위의 입지가 너무도 좁기 떄문일지 모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과가 굶어 죽기 딱 좋은 전공이라는 데에는 우스개의 탈을 쓴 자조로 대강 합의된 지도 한참이지 않은가.

정녕 철학은 현실과 유리되어 활자와 강단의 밀실에서 순조로이 고사하는 중인가? 급기야 철학은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가 그저 살아 숨쉬는 쓰레기통이 아니기 위해 질문할 힘을 잃고야 말았는가?


철학이 더 이상 삶의 일부가 아니게 되었는지를 묻기 위해서는 강단에 갇힌 철학이 아닌, '철학-함'이란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것은 분명 말끔한 강의실에서 교수식으로 이루어지는, 시험으로 급을 매기고 정해진 답을 요구되는 형식에 딱 맞추어 좋은 점수를 얻어내는 일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철학함'이란 무엇인가. 철학하는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많이 배우고 오래 산 자? 사고의 틀을 뛰어넘기 위해 역설적으로 사고의 한계를 단단히 둘러친 자? 기실 이른바 철학적 질문을 하는 사람들, 철학에의 관심을 드러내는 존재는 대체로 성가신 이들이다. 주변인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묻고, 의심하고, 살피려 들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일은 끊임없이 일상을 벗어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유사 이래 철학하는 자는 대체로 성가시고 별난 존재였다. '철학이 밥 먹여주냐'는 말은 유효타가 아닌 적이 없었다. 남들 다 받아들이고 사는데 사사건건 따지고 드는 태도는 덜 성숙하고, 사회화되지 못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이야말로 '철학함'에 가장 가까운 존재일 것이다.

p.33 도널드는 내가 그 질문에 답해 주거나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 문제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그 질문을 품고 답을 찾기 위해 애쓸 것이다. 생각에 푹 빠진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기존의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어린이는 철학, 즉 추상적이고 첨예한 사고를 필요로 하는 개념을 다룰 인지능력이 어렵다고 여겨져왔다. 과연 그럴까? 분명 생물적, 사회적 발달의 차원에서 아동의 자원-능력은 어른의 그것에 비해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그 간극이 곧 어린이와 철학적 대화가 불가능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인지능력의 발달 단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철학함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어린이들과 나눈 대화는 일종의 도전이자 실험과도 같아 단순한 발견에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어린이와 어른이 나누는 대화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편견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이는 것, 무한한 가능성을 주저없이 제기하는 것.

p.59 만일 어떤 아이가 무지한 것은 아닌데 좀 이상하거나 특이한 말을 하면, 어른들은 아이가 어떤 개념상의 한계나 추리 능력의 부족, 혹은 둘 다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거라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린다. (...) 아이들이 인지적 무능함 때문에 이상한 질문이나 예상하지 못한 결론을 내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말하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놓쳐 버리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순수나 창의성에의 찬양이 아니다. 앞서 말한 한계로 인해 어린이의 논리에는 '더 배운' 어른에 비해 허점과 모순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을 서슴없이 딛고 가로지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철학함의 본질이 아니던가?

한계 없는 태도에 마주한 경험의 확장, 가능성의 발견. 그것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현실 아래 퇴색된 철학적 사고의 힘일지 모른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어른들이 어린이와 철학적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현실의 더께에 가려지지 않은 빛을 발견하고 철학이 삶의 곳곳에 던지는 물음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p.8 이 책은 한 문장도 슬렁슬렁 건너뛰어 읽으면 안 됩니다. 한두 문단이라도 어림짐작으로 짚어 내려고 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린이에 대한 예상이 얼마나 빈약한 것이었는지 느끼게 됩니다. 어린이들의 철학함 속에는 그들이기 때문에 포착해내는 독창적인 논점이 있고 갇힘을 모르는 사유의 추진력과 인간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개방된 시선이 있습니다.

p.83 우리는 발달 개념을 가지고 아이들의 말을 걸러 냄으로써, 그러한 말들이 가진 철학적 탐색의 기회를 막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존재는 물론 그 아이들이 가진 진지함과 장난기 가득한 철학적 견해를 모두 막고 있는 것이다.


*도서제공: 바람의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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