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무의식의 뇌과학 - 나조차 이해할 수 없는 나를 설명하는 뇌의 숨겨진 작동 원리
엘리에저 J. 스턴버그 지음, 조성숙 옮김, 박문호 감수 / 다산초당 / 2025년 9월
평점 :
뇌가 나인가? 나는 뇌인가? 개인의 정체성, 내가 나라는 생각은 어디에서 오는가? 멀쩡한 두 사람을 잡아다 뇌만 바꿔친다면 뇌와 몸, '내부로부터 지각하는 나'와 '외부에 의해 관찰되는 나', '머리로 아는 나'와 '몸이 기억하는 나'. 이 중 누가 '진짜 나'일까. 우리 개인은 단일하고 영속적인 자아로 세상을 있는 그대로 지각하며 살아가는가?
일명 '외계인 뇌 실험'으로 알려진 이 답 없는 물음은 철학과 뇌과학 양 분야에서 잘 알려진 흥미로운 주제다. 무엇이 나를 '나'로 만드는가? 감각되는 세계는 정말 있는 그대로 지각되고, 받아들여지는가? 있는데도 알아차려지지 않는 것, 없음에도 있다고 믿어지는 것, 혹은 있는 그대로 지각되지 않는 것은 우리가 지각하고 있다는 사실이 그저 뇌가 만들어낸 믿음에 불과하기 때문이 아닐까?
p.122 우리는 뇌가 가진 두 개의 평행 시스템을 이용해 행동을 통제한다. 이 두 시스템은 기억 형태에 따라 강점도 다르고 접근법도 다르다. (...) 뇌는 나름의 논리를 이용해 자동 처리가 가능한 작업은 알아서 자동으로 처리한다. 그 덕분에 우리가 선택한 다른 일에 의식적으로 노력을 기울일 수 있다.
p.376 인간의 정체성은 뇌의 어느 특정 영역에 존재하지 않는다. 자아는 뇌의 여러 영역과 프로세스가 협력한 결과 나타난다. 그리고 그 프로세스는 크게 두 개의 시스템으로 나뉜다. 하나는 이미 잘 아는 의식계이고, 다른 하나는 신비에 싸인 프로그래밍을 통해 독자적으로 운영되는 무의식계다.
느낀다. 이해한다. 믿는다. 기억하고 예측한다. 이 믿음을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 바로 정신질환의 증상들이다. 부재하는 소리를 듣는다. 내 안에 또다른 내가 도저히 과학적으로 설명되지 않는 방식으로 공존한다. 논리와 비존재를 넘나들며 서사를 만들어낸다.
뇌는 그저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살덩어리가 아니다. 적극적으로 세상을 해석하고, 때로는 감각과 경험을 뒤틀어 완전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그저 뇌가 조종하는 몸이 아니다. 그런 동시에 뇌가 조직하는 세계 없이는 자아도 존재할 수 없다.
p.207 무의식계는 우리의 인생을 담은 여러 스냅사진 사이에서 연관성을 만들어내고 각 순간마다 우리의 감정을 관찰해 무엇을 강조할지 결정한다. 그리고 그 스냅사진들을 배열하고 정리해 통일되고 간명한, 그리고 가장 중요하게는 사적이고 내밀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우리가 의식하는 인생이 된다.
p.241 뇌의 무의식계는 매일같이 정보의 실타래를 무수히 모은 다음 체계적이고 개인화된 이야기로 엮는다. 우리는 그런 이야기를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경험한다. 그러나 뇌에서 신호의 소통이 엇갈리는 순간 우리의 이야기는 다른 방향으로 전개된다.
즉, 몸은 뇌에, 뇌는 몸에 영향을 미친다. 감각과 해석, 의식과 무의식은 새의 양 날개처럼 세계를 구성하고 지탱한다. 이 정교하고도 모호한 신비가 우리로 하여금 끝없는 탐구에 도전하게 하며, 그 모든 과정이 이루어지는 뇌의 방식을 이해한다는 것은 곧 존재를, 의식 바깥의 세계로 향하는 문을 여는 것과도 같다.
사회화되고 학습된 의식계 너머로 엿보이는 논리와 부정합의 세계. 3킬로 남짓의 세포 덩어리가 가진 무한한 가능성은 우리 인간을 어디까지 뻗어나가게 할까. 부디 이 책을 만나는 독자가 이해를 넘어서는 이해, 의식 너머의 가능성을 향하는 끝없는 여정에 한걸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p.377 정체성도 의식계와 무의식계의 공조에 의존한다. 의식계는 자아의식을 경험하게 해준다. 고통과 기쁨을 느끼게 해준다. 행동할 의지를 갖게 해주며 의지대로 정신과 신체를 제어할 수 있게 해준다. 우리는 의식계 덕분에 뇌가 만드는 이야기를 실행에 옮길 수 있다.
p.378 뇌가 개인적인 이야기를 온전히 유지해 주기에 우리는 자신의 생각을 통찰할 수 있다. 뇌의 도움으로 자신의 의도를 이해하고, 곰곰이 추론하고, 결정을 심사숙고하고, 목표와 욕구에 딱 들어맞는 행동 방식을 선택할 수 있다. 정체성을 파악할 때 자신의 본성을 더 잘 이해하고 세상으로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다.
*도서제공: 다산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