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상한 단어들의 지도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원의 지적 여정
데버라 워런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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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윌북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외국어, 개중에서도 라틴어에 뿌리를 둔 언어를 공부하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대체 이 근본도 모를 단어는 어디서 왔기에 맥락도 없이 알아서 이해합쇼... 라는 듯이 덜렁 나타난 건지 의아할 때 말이다.

이따금 뜻하지 않게 마주친 지인처럼 어딘지 익숙한 꼴을 보고 반짝 반가워지기도 하나 대체로 들입다 외우자니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많다.

그래서 대체 어디서 온건데! 하고 고함을 꽥 질러봤자 나도? 몰라?? 배째라 배째 투로 뻔뻔한 철자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어로 세계통일이 됐어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원한을 중얼거리고야 마는 것이다... 나만 그래요? 아니잖아.


대중의 발, Bus는 어쩌다 생긴 단어인가? "eat humble pie",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과 파이를 먹는 것에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대체 빵집에서는 무슨 요술을 부리기에 다른 곳에서는 잘만 ‘열둘’인 'dozen'이 'baker'만 붙으면 ‘열셋’으로 둔갑하는가?

denim은 또 어떤가? 명주실로 짠 serge는 영어도 아니고 독어도 아니고... 대체 어느 맥락에서 튀어나온 단어란 말인가? 미혼 여성을 뜻하는 법률 용어 spinster는 왜 난데없이 남의 직업을 실 잣는 사람으로 만드는가?

p.39 bus는 처음에 ’bus라고 썼습니다. 라틴어 omnibus를 줄여 부른 말이었거든요. 19세기 말, 영국 시골에서 밭일 대신 공장에 다니게 된 사람들이 최초로 자동차 형태의 버스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p.41 eat humble pie(잘못을 달게 인정하다)라는 표현은 언뜻 연상되는 것과는 다른 유래를 지닙니다. 농민들은 예전에 ‘umble’로 만든 파이를 먹었습니다. umble이란 사냥으로 잡은 짐승의 내장으로, 고급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 세월이 흐르면서 런던 동부를 제외한 영국 전역에서 h 소리를 내게 됐지만, umble은 영어에서 아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p.45 빵이란 워낙 중요한 생필품이어서 13세기에는 (...) 빵 한 덩이의 가겨고가 무게를 엄격히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빵집 주인들은 빵을 팔 때 혹시라도 양이 모자라 법에 걸릴까 봐 하나씩 더 얹어주곤 했는데, 그래서 'baker's dozen'이라고 하면 ‘열둘’이 아닌 ‘열셋’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p.112 denim은 ‘프랑스 비단’을 뜻하는 ‘serge de Nimes’에서 유래했습니다. Nimes은 프랑스 남부의 도시로, 로마 유적지가 많아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죠. 세르주, 즉 serge는 명주실로 짠 천의 일종으로, 어원은 ‘비단(silk)’을 뜻하는 라틴어 sericus입니다.

p,208 spinster는 ‘실 잣는 여자’라는 뜻으로, 독신 여성이 생계를 꾸리기 위해 흔히 갖는 직업이었죠. 그런데 그것이 나이와 관계 없이 ’미혼 여성을 가리키는 법률 용어가 되기에 이릅니다.


시작과 맥락을 모르니 이해할 리가 없다. 이 황당함과 막막함의 연쇄를 끊어주는 것, 흩어진 지식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 어원의 역사이다. 말은 사람이 만들고 쓴다. 사람의 역사가 곧 언어의 역사이며, 아무 맥락 없이 갑자기 나타나 이어지는 단어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금 더 알면, 모르던 것을 알게 되면 모르는 새 흘려듣던 말을 이해하고, 자잘한 농담과 문화적 배경이 있는 은유를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고전 문학이 어째서 그토록 호소력을 갖는지, 낯설기만 한 문법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된다.

누가 알겠는가. 사인, 코사인, 탄젠트를 중얼거리며 외우느라 바빴던 때에 그 어원을 알았더라면 한 문제라도 더 맞았을지... 멋지지 않은가.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종이인 암기의 나열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역사와 문화, 삶의 줄기를 짚어낸다는 것은.

p.57 탄젠트는 ‘건드리다’를 뜻하는 라틴어 tango에서 왔고, 원래 ‘접선’을 의미하죠. 마지막으로 사인은 ‘곡선, 우묵하게 들어간 곳’을 뜻하는 라틴어 sinus에서 따온 것입니다.


배움은 세계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알거나 모르거나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나의 세계가 달라질 수는 있다. 그뿐인가? 기존의 세계가 아닌 전혀 낯선 세계에서도 덜 당황하고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단어는, 말은 단순히 그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그 단어가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동안 사용해온 이들의 문화, 먹고 자고 입고 웃고 사고파는 모든 시대의 풍경이 담긴다. 어원의 줄기를 따라가는 한, 우리의 여행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는 셈이다. 즐겁지 아니한가. (듀**고가 아니더라도!)

p.12 ‘어원=진화’입니다. 다시 말해, 언어는 돌연변이의 연속입니다. 진화가 그렇듯이, 이 책도 정해진 목표가 없습니다. 단어가 가는 길을 누가 알겠어요? 그리고 진화가 그렇듯이, 저도 어원 이야기를 할 때 가끔 횡설수설합니다(참고로 ‘횡설수설하다’를 뜻하는 meander는 터키의 구불구불한 강 이름에서 왔어요).

p.321 단어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무의미한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숨소리 한번 내는 것과 다를 게 없죠. 그러나 단어는 곧 역사입니다. (...)단어는 스냅사진이 아니라 천년짜리 영상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언어는 멈추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해도 다 할 수 없는 게 ‘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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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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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산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어떤 이는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고집스럽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 또다른 이는 이렇게 기억한다. 단단하고 외로워 보이는 사람. 그가 속한 곳의 관리자들은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매사에 좋게좋게, 비위 맞춰가며 유도리있게 넘어가질 못하다고 뒷말이 오갔을 터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삶이 있다. 그가 디뎌온 길은 또다시 험하고 거칠어 그 존재조차 쉽사리 알아채지 못하는 선택지가 될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고마운 줄도, 고생스러운 줄도 모를 것이다. 명성 높은 책에 이름을 남기지도, 높은 자리에 올라 선망을 자아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기억될 것이다. 기나긴 시간 어느 한켠에 머무른 다정으로, 쉽게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한 외침으로, 느리고 더디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알려준 불씨처럼. 그래, 불씨처럼.


누구나 사회생활의 모든 상황에서 행복할 수도 없고, 한번쯤은 인생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 마련이다. 직업과 노동의 가치는 단순히 돈을 벌고 삶을 영위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런 삶도 있겠으나... 사람은 돈만 있다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에게는 의미가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 하고자 하는 일의 가치.

인간성이 마모된다는 것은, 신념을 내버리고 부패에 가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삶은 대체,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차마 무엇으로 말해질 수 있는가.

온 힘을 다해 지켜내는 것,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안간힘을 쓰는 것, 연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지켜내는 것, 두려움과 치욕에 떨면서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것. 윤옥은 그것을 알고 있다. 차마 버리지 못한다. 휘청일지언정 포기하지 못한다. 이것이 존엄이 아니면, 신념이 아니면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의 삶이 온전히 떳떳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 또한 수많은 시간을 가해자이자 방관자로 살아왔다. 말해지지 않은 것은 더욱 무수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윤옥의 인간됨을 희망할 수 있다.

그가 번민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손 내밀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떄문에, 넘어지고 주저앉은 이를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 아주 나중이 되어서라도 바로잡으려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도 살고싶어요, 가 죽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죽을 때까지 살아갈 거예요, 가 되는 것. 희미하고 약한 것이 꺼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끌어안고 세상의 눈보라를 맞아내는 것을 숭고가 아니면 무엇으로 부를 수 있는가.


영광은 신에게도 권세에도 있지 않으니. 사람이 곧 영광이다. 사람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신념이다. 인간성을 포기하기를 강요당하는 자와 함께 서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와 내가 같은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 곧 존엄의 증명이다. 사랑하는 일, 기꺼이 껴안고 품고 아끼는 마음이 곧 사람됨이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변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지키고 싶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끝내 고독할 것이나... 이름 모를 새와 풀씨가 그러하듯 또다시 누군가가 찾아와 무언가를 남기고 갈 것이다. 머무른 흔적, 깨지고 부서져서는 안 되는 것, 잊혀질 수 없는 것.

나는 그것을 신념이라고 부른다. 존엄이라고 한다. 뿌리채 뽑혀 흔들릴지언정 사그러질 수 없는 것이라고.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는 언제 어느때고 끊임없이 존재할 것임을, 오직 그것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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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 아깽이에서 성묘까지 40마리 고양이의 폭풍성장기
이용한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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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이야기장수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어린 고양이가 길에서 살아남아 성묘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띠지만 봐도 눈물이 왈칵 난다. 몇 년쨰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면서도 한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을 본 적은 손에 꼽는다.

한두살이나 되어 겨우 고양이 꼴 좀 갖췄다 싶은 정도면 또 모를까. 십여 년을 너끈히 사는 동물인데도 반 남짓 간신히 살아내는 경우만 해도 또다시 손에 꼽는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각 장 첫머리마다 이름 붙여진 사진들을 보며 얘는 누굴 닮았고 쟤는 이름 한 번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고 하나하나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한 마리씩 풀어놓는 이야기를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고양이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다는 것을. 고양이에게도 좋고 싫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들 또한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p.222 고양이 숲이 있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 고양이 숲이 있다. 오직 고양이만 이 숲의 주인이다. (…) 그러나 당신은 모르는 게 좋다.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고양이 숲은 고양이 숲으로 남을 테니까.


난데없이 나타난 어린 녀석들을 제 새끼처럼 품어 기르기도 하고, 애진작에 영역 찾아 떠났어야 할 놈이 제 남매와 그 아이들을 지켜주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생판 남을 엄마처럼 따르는 아기들에게 수컷이라 나올 리도 없는 빈 젖을 물려주기까지 한다.

배 곯고 편히 자기만 해도 낮에는 꽃구경이며 자기들끼리의 놀이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 눈이 오는 날에 웅크려 쉬거나 눈밭을 달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한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 반가워 뒹구는가 하면 멀찍이 앉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한다.

저희들끼리도 친한 고양이와 익숙한 사람이 다르다. 고양이도 그렇다. 고양이에게도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다. 그들 또한 살아있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p.302 언제 어디서나 명랑하고 쾌활한 고양이. 하지만 녀석은 자라면서 특유의 껄렁함과 장난기를 잃고, 자신감마저 잃어버렸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이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야박한 곳인지 녀석은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이야기 첫머리마다 반복되는, 사진 아래 한 마디. “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한 마리씩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신기할만큼 고대로 자랐구나 싶은 녀석도 있고, 그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영판 다른 고양이가 되었는가 황당한 아이도 있다.

그저 애틋하고 내가 기억하는 아이들이 그리워 울었다. 정 붙어 사람 무서운 줄 모르다 해코지라도 당할까 이름 한 번 불러주지 못한 아이들이, 어딘가에 살아만 있으라고, 건강하기만 하라고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마다 생몰년으로 추정되는 연도가 적혀있는데, 사람이 돌보고 살핀 아이들에 비해 겨우 밥이나 챙길 수 있었던 아이들의 수명이 눈에 띄게 짧다. 살기만도 힘든 삶, 사람이 부러 끊어놓는 목숨이 허다하다. 이제는 그 핑계며 수법에도 이골이 났다. 잔인하다. 지독하게 잔인하다. 산 목숨 끊어놓는 일이 너무도 쉬워 소름이 끼친다.

p.311 사실 무수한 고양이들이 질병과 배고픔의 고비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해 별이 되곤 한다. 모든 성장한 길냥이는 무사히 성묘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겨울이 온다. 이 계절이 지나면 또 아는 얼굴이 몇은 사라지고 꽃이 피고 땅이 녹으면 모르는 얼굴이며 갓 태어난 녀석들이 차례로 찾아올 것이다. 또다시 자라 어른이 되어주기만 한다면, 태어난 세상에 환영받지는 않아도 저희끼리 즐겁기라도 한다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된다. 살아준다는데, 살릴 수 있다는데, 그 앞에서 숨막히는 더위와 살을 에는 바람 따위는 고생도 아니다. 그렇게 오늘도 밥이며 물을 싸안고 나갈 것이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삶을 살아. 인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할게. 그런 마음으로 매번 같은 인사를 남긴다. 또 보자 우리. 오래 보자. 내일도 다음 주에도 내년에도 계속 보자. 부디 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걸 볼 수 있기를. 그저 그뿐이다.

p.206 아무것도 아닌 삶은 없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관심 밖에서 소외된 묘생을 사는 고양이도 고양이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고양이도 고양이로서 온 힘을 다해 산다.

#이아이는자라서이렇게됩니다 #이용한 #이야기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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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봄
조선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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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시작부터 환장이다. 한 집에 사람이 넷, 정치성향도 넷. 다당제 국가에서 그럴 수도 있겠거니 싶으면 좋으련만, 문제는 애석하게도 배경이 한국인지라 대체로 타협 불가능한 대립 관계에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러나 정치인은 서로 죽이네 살리네 악을 써도 매일같이 부대끼는 가족은 그러기도 어려운 현실이라, 사랑하는 내 가족의 강경 지지 발언 내지는 허위사실 유포에 울화통이 터지는 게 현실이다. 민주주의가 별거냐. 하루가 멀다하고 “너 이자식 당장 나가!” “노망이 났어 아주!” 같은 싸움판만 벌어지지 않아도 반은 성공이다.

지난 대선 이후, 가족 꼴이 말이 아니다. 아들은 집을 나갔고 그 발단은 아버지가 얼굴에 핸드폰을 집어던졌기 때문이며 또다시 그 발단은 아들의 밥상머리 욕설이었고 그것의 발단은 아버지와 아들의 정치색 대립이었다... 남은 건 어머니의 아군, 든든한 딸 뿐인데, 세상에, 결혼을 한다네. 커밍아웃과 국제결혼 통보를 한 방에. 죽겠어요. 피곤해 죽겠어요.


각자 서로를 이해해보려고 애는 쓴다. 대체 왜 그랬을까, 치졸함과 도덕심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어떻게든 일상을 살아나간다. 서로의 고민을 대신해줄 방도는 없으니. 달라지려고, 의미를 찾으려고 애쓴다. 그 결과는 실망스럽기도, 예상치 못한 행복이기도 하다. 삶이 대체로 그러하듯이.

읽는 내내 가슴을 졸였다. 언제 그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물어뜯다 파국을 맞이할지 알 수 없어서. 그래서 잔잔하게 흘러가는 씁쓸하다. 이 또한 신념에 따라 서로를 죽일듯이 미워하는 일이 당연시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증거 아닌가.

p.107 방금 전까지 고막을 때려대던 소음의 공중전은 잠시 멈춘 듯했다. 모든 배경이 지워지고 지상에 엘리사와 둘만 남았다. 판타지의 공간은 순간이면서 영원이다. 엘리사와 하민, 둘은 방금 앨리스의 토끼 구멍으로 빠져나온 게 분명했다. 페스티벌은 역시 페스티벌이다.

p.128 "요새 누가 오십을 노인이래? 육십도 노인 아니야. 얘가 아직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말 쉽게 하네. 너 오십 되고 나서 누가 노인이라 그래 봐. 기분 좋겠니?"


어쩐지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잔잔한 영화같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일단 모두가 지극히 합리적인 해결책을 찾으려 애쓰고 서로에 대한 애정이 제법 높은 우선순위를 차지한다는 점이.

현실을 배경으로 하는 작품이지만... 베테랑 기자이면서 ‘진보적 스탠스’를 고수하고자 노력하는 어머니, 극우정당을 지지하는 아들(특: 집나감), 화해 도모 식사자리에서 커밍아웃에 국제결혼까지 한 방에 해치우는 딸, 운동권 출신 전직 교수 아버지... 설정만 봐도 멀찍이 떨어져 앉고 싶은 이 가족이 “현실”에서 화목할 가능성이 몇이나 될까.

p.169 딱히 누구 들으란 것도 없이 제각기 통성기도하듯 소리를 질러대는 세 사람이 삼키는 폭탄주에는 서로 다른 또는 같은 성분들이 들어 있었다. 사라진 꿈, 깨진 가족, 오지 않는 기회, 안정에 대한 욕망과 안정에 대한 두려움, 동경하는 마음과 거부하는 마음, 곧 지나가 버릴 젊음.

p.250 이걸 건너갈 수 있을까. 이걸 메우는 게 가능할까. 당장은 아니라도 시간이 걸리더라도 메워질 수 있는 골인가. 갑자기 이 사회에 대해 정나미가 뚝 떨어졌다.


멋대로 전위적인 내용을 기대한 탓일 수도 있고, 전작의 인상을 깊게 간직했기에 다른 작품임을 유념하지 못한 탓일 수도 있다. 어쩌면, 정말 어쩌면, 작가의 말처럼 어쨌든간에 우리는 살아가야 하고, 선거 이후의 삶이 남아있으며, 희망을 포기할 수 없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정치 구호 뒤에는 사람이 있고, 아파하는 사람이 있고, 과거의 폭력이 여전히 힘을 잃지 않았음을 기억하는 사람이 있다. 그런가하면 나만 아니면 된다는 이도, 당장 “못배운 놈”이 “집값 떨어트리는 꼴” 보기 싫어 차악을 뽑았다는 이도 있다. 어쨌거나 한 사회에서 살아가야 하는 이들이다.

부디 작가가 긴긴 삶을 멀리멀리 내다보았기를, 그리고 어딘가의 독자들 또한 희망을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하기를, 그리하여 여전히 우리 모두에게 최악이 아닌 미래가 있으며, 우리는 그것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기를 바랄 뿐이다.

p.316 "사람이 어떻게 되면 등뼈가 부러질까요. 자꾸 그 생각이 나요."

p.329 "나는 사람들 상식을 믿어. 부지런히 하루하루 살면서 자기 일을 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 세상이 이상한 데로 가지는 않을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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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꼭두각시
윌리엄 트레버 지음, 김연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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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왜 사랑하는 것들은 나를 울리나... 사랑하는, 사랑을 하는, 내가 혹은 나를 사랑하는. 애정을 갖는 것, 마음을 빼앗기고 고통마저 끌어안도록 하는 그것은 어쩌면 운명에 새겨진 감정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사랑하는 것들은 운명의 꼭두각시가 된다.

사랑! 참 이상한 것이다. 대단찮은 이유에 모든 인생을 걸게 하고, 다시 없을 운명적 만남이라 생각했던 이가 한때의 착각에 불과한 허깨비가 되기도 한다. 오로지 사랑이라고 믿는 마음 하나 때문에.

사랑에는, 설령 자기 자신을 향한다 할지라도, 최소한 둘 이상이 필요하다.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것. 그러나 사랑의 종결에는 변심 혹은 존재의 소멸이랄지, 아무튼 사랑의 관계를 부수고 나가버리는 단 하나의 이탈만이 필요하다.

p.330 결정적인 순간들 이후 우리는 모두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넜다. 난도질 당한 삶들, 그림자의 피조물들. 그의 아버지의 말처럼 운명의 꼭두각시들. 우리는 유령이 되었다.


세상에는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이 있다. 대체로 세상으로부터 용서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그러나 사랑의 기억이 삶을 무너뜨린 시간에 이어져있다면, 때문에 스스로가 차마 마주할 수 없다면...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이 나를 사랑하기에 절망에 몸부림치다 끝내 도망쳐버리기를 택했다면, 차마 함께하기를 바랄 수 있는가.

1차대전 이후 파국에 치달아버린 아일랜드와 영국의 관계, 빛바랜 사진처럼 흘러간 시간 속 풍경에는 누군가가 뜨겁게 살아 숨쉬고 있었다. 심장이 뛰고 웃음짓는 이들이, 세상을 물들이는 사랑으로. 그것이 무너뜨린 세상을 오직 그것 하나로 버텨내거나 혹은 무너지지도 못해 지워버리기를 택하며.

p.193 당신은 영국인인 나를 경멸한다, 라는 생각이 몇 번이고 끈질기게 나를 강타하며 사라지길 거부했다. 영국인들이 당신 집에 불을 지르고 당신 가족을 파괴했다. 당신 어머니가 스스로에게 불러온 죽음은 그 비극의 일부였다.


당신은 나의 가장 행복했던 시간을 떠올리게 한다. 당신은 나의 유년이고 마지막으로 온전했던 기억이다. 모든 것이 비명과 잿더미로 사라진 지금, 기억은 악몽이 되고 돌아갈 곳은 폐허가 된 지금 나의 사랑은 곧 고통, 그것도 차마 마주할 수 없는 고통이다.

그러니 당신의, 나의 사랑을 부숴버리지 않고서는, 나의 세계 전부를 지워버리지 않고서는 견딜 수 없었다. 나의 사랑은 죄책과 파멸이었다고, 차마 용서조차 구하지 못한다고 속죄조차 바라지 못하는 나를 끝내 용서하지 않기를.

p.168 “당신에게 킬네이를 보여주면 좋읉 텐데.” 당신은 미소 지으며 그러고 싶지만 당신에게 너무 슬프지 않을까요, 라고 말했다. 당신과 함꼐면 슬플 일은 없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말하지 않았다.


소개와는 다르게 사랑은 재앙의 씨앗이 아니다. 그들의 삶은 사랑 때문에 무너지지 않았다. 그러나 작품의 많은 이들이 사랑을 잃어버린 고통,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하기에 포기할 수 없는 고통으로 무너져버리거나 무너지지 않기를 택했다.

먼지 쌓인 시간의 반짝이는 기억들, 차마 견딜 수 없는 고통마저 끝내 끌어안도록 하는 사람이 있다. 울게 하소서, 슬퍼하는 자에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있었으니. 무너진 땅에도 잊혀져가는 사랑이 있으니. 때로 순간의 기억은 평생을 살게 하나니.

p.262 난 당신이 나를 위해 최선을 다해 우리의 사랑을 파괴하려 애썼다는 것을 완벽하게 이해했다. 당신이 허락하지 않았지만 난 지금 나의 선택을 당신이 비난할 거라고 생각지 않았다. 우리 둘이 어디에 있든 우리의 사랑은 여전히 거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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