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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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산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어떤 이는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고집스럽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 또다른 이는 이렇게 기억한다. 단단하고 외로워 보이는 사람. 그가 속한 곳의 관리자들은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매사에 좋게좋게, 비위 맞춰가며 유도리있게 넘어가질 못하다고 뒷말이 오갔을 터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삶이 있다. 그가 디뎌온 길은 또다시 험하고 거칠어 그 존재조차 쉽사리 알아채지 못하는 선택지가 될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고마운 줄도, 고생스러운 줄도 모를 것이다. 명성 높은 책에 이름을 남기지도, 높은 자리에 올라 선망을 자아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기억될 것이다. 기나긴 시간 어느 한켠에 머무른 다정으로, 쉽게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한 외침으로, 느리고 더디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알려준 불씨처럼. 그래, 불씨처럼.


누구나 사회생활의 모든 상황에서 행복할 수도 없고, 한번쯤은 인생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 마련이다. 직업과 노동의 가치는 단순히 돈을 벌고 삶을 영위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런 삶도 있겠으나... 사람은 돈만 있다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에게는 의미가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 하고자 하는 일의 가치.

인간성이 마모된다는 것은, 신념을 내버리고 부패에 가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삶은 대체,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차마 무엇으로 말해질 수 있는가.

온 힘을 다해 지켜내는 것,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안간힘을 쓰는 것, 연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지켜내는 것, 두려움과 치욕에 떨면서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것. 윤옥은 그것을 알고 있다. 차마 버리지 못한다. 휘청일지언정 포기하지 못한다. 이것이 존엄이 아니면, 신념이 아니면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의 삶이 온전히 떳떳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 또한 수많은 시간을 가해자이자 방관자로 살아왔다. 말해지지 않은 것은 더욱 무수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윤옥의 인간됨을 희망할 수 있다.

그가 번민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손 내밀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떄문에, 넘어지고 주저앉은 이를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 아주 나중이 되어서라도 바로잡으려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도 살고싶어요, 가 죽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죽을 때까지 살아갈 거예요, 가 되는 것. 희미하고 약한 것이 꺼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끌어안고 세상의 눈보라를 맞아내는 것을 숭고가 아니면 무엇으로 부를 수 있는가.


영광은 신에게도 권세에도 있지 않으니. 사람이 곧 영광이다. 사람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신념이다. 인간성을 포기하기를 강요당하는 자와 함께 서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와 내가 같은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 곧 존엄의 증명이다. 사랑하는 일, 기꺼이 껴안고 품고 아끼는 마음이 곧 사람됨이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변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지키고 싶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끝내 고독할 것이나... 이름 모를 새와 풀씨가 그러하듯 또다시 누군가가 찾아와 무언가를 남기고 갈 것이다. 머무른 흔적, 깨지고 부서져서는 안 되는 것, 잊혀질 수 없는 것.

나는 그것을 신념이라고 부른다. 존엄이라고 한다. 뿌리채 뽑혀 흔들릴지언정 사그러질 수 없는 것이라고.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는 언제 어느때고 끊임없이 존재할 것임을, 오직 그것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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