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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 아깽이에서 성묘까지 40마리 고양이의 폭풍성장기
이용한 지음 / 이야기장수 / 2023년 10월
평점 :
*출판사 이야기장수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대한민국에서 어린 고양이가 길에서 살아남아 성묘가 된다는 것은 얼마나 기적 같은 일인가”. 띠지만 봐도 눈물이 왈칵 난다. 몇 년쨰 길고양이 밥을 챙겨주면서도 한 아이가 어른이 되는 것을 본 적은 손에 꼽는다.
한두살이나 되어 겨우 고양이 꼴 좀 갖췄다 싶은 정도면 또 모를까. 십여 년을 너끈히 사는 동물인데도 반 남짓 간신히 살아내는 경우만 해도 또다시 손에 꼽는다.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각 장 첫머리마다 이름 붙여진 사진들을 보며 얘는 누굴 닮았고 쟤는 이름 한 번 기가 막히게 잘 지었다고 하나하나 손끝으로 쓸어보았다. 한 마리씩 풀어놓는 이야기를 가만히 따라가다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고양이에게도 각자의 삶이 있다는 것을. 고양이에게도 좋고 싫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그들 또한 살아있는 존재라는 것을.
p.222 고양이 숲이 있다. 차도 없고 사람도 없는 고양이 숲이 있다. 오직 고양이만 이 숲의 주인이다. (…) 그러나 당신은 모르는 게 좋다.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고양이 숲은 고양이 숲으로 남을 테니까.
난데없이 나타난 어린 녀석들을 제 새끼처럼 품어 기르기도 하고, 애진작에 영역 찾아 떠났어야 할 놈이 제 남매와 그 아이들을 지켜주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생판 남을 엄마처럼 따르는 아기들에게 수컷이라 나올 리도 없는 빈 젖을 물려주기까지 한다.
배 곯고 편히 자기만 해도 낮에는 꽃구경이며 자기들끼리의 놀이에 열을 올리기도 하고, 눈이 오는 날에 웅크려 쉬거나 눈밭을 달리느라 시간 가는 줄 모르기도 한다. 오랜만에 보는 사람이 반가워 뒹구는가 하면 멀찍이 앉아 가만히 바라보기도 한다.
저희들끼리도 친한 고양이와 익숙한 사람이 다르다. 고양이도 그렇다. 고양이에게도 마음이 있고 생각이 있다. 그들 또한 살아있는 것이기에 그러하다.
p.302 언제 어디서나 명랑하고 쾌활한 고양이. 하지만 녀석은 자라면서 특유의 껄렁함과 장난기를 잃고, 자신감마저 잃어버렸다. 어떤 특별한 계기가 있었다기보다 세상이 그렇게 만든 것 같다. 이 세상이 얼마나 험하고 야박한 곳인지 녀석은 너무 일찍 알아버렸다.
이야기 첫머리마다 반복되는, 사진 아래 한 마디. “이 아이는 자라서 이렇게 됩니다”. 한 마리씩 찬찬히 들여다보노라면 신기할만큼 고대로 자랐구나 싶은 녀석도 있고, 그새 무슨 일이 있었기에 영판 다른 고양이가 되었는가 황당한 아이도 있다.
그저 애틋하고 내가 기억하는 아이들이 그리워 울었다. 정 붙어 사람 무서운 줄 모르다 해코지라도 당할까 이름 한 번 불러주지 못한 아이들이, 어딘가에 살아만 있으라고, 건강하기만 하라고 바라는 마음으로.
아이들마다 생몰년으로 추정되는 연도가 적혀있는데, 사람이 돌보고 살핀 아이들에 비해 겨우 밥이나 챙길 수 있었던 아이들의 수명이 눈에 띄게 짧다. 살기만도 힘든 삶, 사람이 부러 끊어놓는 목숨이 허다하다. 이제는 그 핑계며 수법에도 이골이 났다. 잔인하다. 지독하게 잔인하다. 산 목숨 끊어놓는 일이 너무도 쉬워 소름이 끼친다.
p.311 사실 무수한 고양이들이 질병과 배고픔의 고비에서 도움의 손길을 받지 못해 별이 되곤 한다. 모든 성장한 길냥이는 무사히 성묘가 되었다는 것만으로 기적이라 할 수 있다.
겨울이 온다. 이 계절이 지나면 또 아는 얼굴이 몇은 사라지고 꽃이 피고 땅이 녹으면 모르는 얼굴이며 갓 태어난 녀석들이 차례로 찾아올 것이다. 또다시 자라 어른이 되어주기만 한다면, 태어난 세상에 환영받지는 않아도 저희끼리 즐겁기라도 한다면 좋겠다.
그것만으로도 포기하지 않을 이유가 된다. 살아준다는데, 살릴 수 있다는데, 그 앞에서 숨막히는 더위와 살을 에는 바람 따위는 고생도 아니다. 그렇게 오늘도 밥이며 물을 싸안고 나갈 것이다.
고양이는 고양이의 삶을 살아. 인간은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을 할게. 그런 마음으로 매번 같은 인사를 남긴다. 또 보자 우리. 오래 보자. 내일도 다음 주에도 내년에도 계속 보자. 부디 이 아이가 자라서 어른이 되는 걸 볼 수 있기를. 그저 그뿐이다.
p.206 아무것도 아닌 삶은 없다. 고양이도 마찬가지다. 인간의 관심 밖에서 소외된 묘생을 사는 고양이도 고양이로서 자신의 본분을 다한다. 고양이도 고양이로서 온 힘을 다해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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