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의 꿈
데니스 존슨 지음, 김승욱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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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에게나 사는 동안 감당해야 할 자기 몫의 슬픔과 고독이 있다˝. 그러나 좋은 글은 그것을 오롯이 홀로 감당하지 않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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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 - 경성에서 서울까지, 시간을 건너는 미술 여행
우진영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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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은 무엇이어야 하는가? 그 전에, 이렇게 묻기로 하자. 캔버스에 붙박인 작품은 어떻게 시공을 넘어 감각되는가? 여기, 지금의 서울을 걷는 사람이 있다. 그리고 언젠가의 경성과 서울을 거닐던 이가 있었다. 그림 앞의 그는 묻는다. 당신은 내게 무어라 말하고 있느냐고. 독자는 마주한다. 그와 자신의 세계가 중첩되고 엇갈리는 풍경을.

저자 우진영은 현대미술관에 몸담고 있다 한다. 현실의 폐부 깊숙한 곳, 그러니 이 한 권의 책은 쏟아지는 선과 면 사이에서 의미를 길어내고 끊임없이 대화를 시도하는 이가 묻고 답한 기록일 것이다.

p.36 죄책감의 무게와 함께. 붓 끝까지 전해지던 야망을 애써 식혀냈다. 우리의 근대는 자주 또 때로 비정했다. 귀국 후 대구에 정착하며 그는 미술 교육에 힘썼고 행정가로 오래도록 활동했다. 기량이 절정을 향하던 때였다. 그 시간이 그에게 조금 더 허락되었다면 어땠을까. 아쉬움은 누구의 몫일까.

p.88 두 화가가 그려낸 낯선 공간을 향한 애정에는 거짓이 없다. 감추어진 이야기의 공간과 넓은 여백에 나를 데려다놓으니 신기한 일이 벌어진다. 아무것도 없으니 나라는 존재가 더욱 선명해진다. 망설였던 어떤 선택에도 자신이 생긴다. 스스로를 믿고 싶어졌다. 그제야 알았다. 타자화된 두 화가의 그림 속 시선은 현실에 대한 외면이 아닌 우리에게 보내는 찬사임을, 여름이다.


아, 서울. 이 징글맞게 번화하고 쓸쓸한 도시는 언젠가 망국의 모던이었고, 전장의 한복판이었다. 이 영영 그리운 기억인 동시에 누군가에겐 차가운 잿빛 거리일 뿐이다. 근현대의 질곡 속, 그 풍경을 거니는 이들은 얼마나 다채로웠던가. 그들의 이야기는 얼마나 눈물겹고, 찬란했으며, 아프고, 당당했던가.

저자가 마주한 한 점 평면에는 헤아릴 수 없는 밤과 낮, 기억과 환상이 있다. 그림 너머의 그들은 외로웠고, 그리워했으며, 이따금 발랄하고, 사랑했다. 그를 알고 읽는다면 독자가 마주한 그림은 더이상 한 조각 창이 아닌 삶의 발자취이자 번뜩이는 이상일 것이다.

p.111 나혜석의 〈자화상〉이 당혹스러웠던 건 솔직함 때문이었다. 같은 근대 시기 남자 작가들이 그려낸 '신여성'의 모습은 이와는 다르다. 단정하고 곱다. 정태적 시각이다. 오직 만들어진 여성스러움이다. 〈자화상〉 속 굳게 다문 입이 움직인다. "세상과 맞서는 진짜 신여성이 여기 있다."

p.154 이혁이 그려낸 켜켜이 뜯겨지고 무참히 헐벗은 공간이 다르게 보인다. 더 이상 초현실적인 이세계가 아니다. (...) 다만 간절한 마음으로 행려하리라. 바라마지 않는 어떤 초현실의 먼 곳과 내가 발을 딛고 있는 이 곳을 끊임없이 이어가며. 〈행려도〉 속 개가 움직인다. 어둠을 뚫고. 살아가리라.


언젠가, 꿈이 두렵고, 불면의 시간이 두려워 뜬 눈으로 떨며 지샌 밤이 있었다. 감은 눈에 비치는 어둠이 두려워 내도록 이를 악문 채 버텨내던 시간이 있었다. 영원할 것만 같은 밤을 지나온 날 어떤 그림을 보았다면, 돌아올 밤이 버거워 숨을 몰아쉬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어떤 말은 천국이 아니기에 위로가 된다. 피할 수 없는 고통은 방긋, 웃어버리면 그만이다. 본디 깜찍과 끔찍은 한끗차이 아닌가. 까마득한 심연 앞에 도도히 치켜드는 얼굴을 믿는다. 괴이와 악몽, 그보다 더한 현실에 맞서는 눈을 믿는다. 마침내 이어진 시와 공의 접점에서, 저자가 마주한 그림은 말한다. 이제 당신의 이야기를 해보라, 고.

p.283 〈데우스 엑스 마키나〉 속 형상들의 신체는 다부지다. 심히 구부러지고 기이하게 들어져 있을지언정 단단한 몸이다. '상상과 허구일 뿐'이라고 되뇌어본다. 캔버스 속 모티프들을 읽어내기가 두려워서였다. 중앙에 우뚝 솟은 막대는 짐승의 머리에 꽂혔다. 누구의 공격일까. 알 수 없다. 사방으로 삐죽한 뿔을 가진 이 생명체는 과연 죽음을 맞이했을까.

p.339 악마들과 고야의 그림 속 고약한 신, 잠들지 못하는 화가와 곰돌이 인형들이 있는 이 장면에 함께하고 싶다. (...) 주제는 무거워도 그의 회화가 즐겁게 느껴지는 이유를 이제 알겠다. 나에게 다정해지고 싶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악의'를 행했던 많은 순간들에게. 악마들과 함께 잠드는 우정수 회화의 주인공들처럼 오늘은 잘 자고 싶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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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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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왔다'는 말은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 최소한 스스로에게라도 그의 도래가 예견될 때, 완전한 불가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 때 비로소 '돌아옴'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 자신조차 기다리지 않는 도시로의 복귀는 무엇이라 말해질 수 있을까.

사와자키가 돌아왔다. 켜켜이 먼지 쌓인 도쿄의 탐정사무소에. 아무도 찾지 않으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몹시 추레한 행색의 남자가 그를 찾는 이가 있었다 말한다. 탐정은 생각했을까. 이번 일은 지독하게 얽힌 과거의 연속이리라고, 이 도시의 그 누구도, 어느 곳도 무구하지 않을 거라고.

p.75 사백 일 만에 탐정으로 복귀했으니 번듯한 업무를 골라야 했다. 그런데 '자살 따위와는 인연 없는 평범한 의뢰인'이란 어떤 사람일까. 사람을 두 종류로 가르기 좋아하는 녀석들이라면 '누군가를 자살에 몰아넣고도 깨닫지 못 하거나, 깨닫는다 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는 인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대개 탐정 소설이란 주인공과 독자가 정의의 한패를 먹고 사건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구조를 취하지 않던가? 작가는 이 익숙한 도식 대신 누구와도, 심지어 독자에게조차!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 캐릭터를 내세워 오래된 비극의 심연을 파헤친다.

분명 탐정이 주인공이고, 그가 맡은 수수께끼가 흐름의 주축을 맡는데도 사건 해결 자체는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닌 느낌을 준다. 오히려 그 이상의, 그가 만나는 이들과 그들 각자의 비밀, 그리고 주인공조차 속시원하게 털어놓지 않는 본심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p.225 "잔인한 직업이군요." 아키바 도모코가 내 등에 대고 말했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런 대꾸도 않고 계단을 계속 내려갔다.

p.508 제멋대로 사백 일이 넘도록 연락하지 않는 남자의 전화를 기다릴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다. 겨우 이틀 동안 연락이 없었다는 이유로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결심을 해버린 여자마저 있지 않은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떠나간 이의 말을 공백에서부터 되짚어가는 일은 필경 그' 날'의 일을 마주함이요, 진상을 파헤치고 난 자리에는 끔찍한 절망이, 이미 일어났으므로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이 남는다. '모든 일이 끝났음'에도 쓰디쓴 미소 외에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도 같다.

속죄의 기회를 놓친 채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흘렀고, 도시는 침묵과 망각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러므로, 독자여. 여전히 낫지 못해 피 흘리는 상처를 마주하라. 오래된 흉터 위로 새기고 또 패인 상처의 복판을.

그래서일까. 탐정과 함께 400여 일 만의 도쿄를 헤매는 독자의 마음은 내내 흐리고, 어둡고, 비가 내린다. 이 도시의 풍경은 촉촉한 풍요라고는 온데간데 없이, 뒷골목과 부패의 냄새를 풍긴다. 그제야 말할 수 있다. 이 더럽고 비열한 세계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고.

p.327 "분명히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건 죽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아는 사람이나 할 말이죠. 당신은 죽음이 어떤 건지 모릅니다. (...)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살아남은 사람의 추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친한 친구나 가족, 혹은 다른 누군가가 저 녀석은 자실했을 거야, 라고 멋대로 납득하고 말면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어지죠."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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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의 황제
오션 브엉 지음, 김지현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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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자기 안에 천국을 갖고 살아간다. 행복이란 마음 먹기에 달렸다는 케케묵은 구호가 아니다. 사람은 언제 죽는가? 현명한 그라지나가 말하길 주님이 잘했다, 하는 날? 아니다. 매일이 똑같이 희망없는 날의 연속임을 확신할 때, 기댈 곳도 기대할 것도 없다는 사실을 진심으로 받아들일 때다.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물론, 그렇게 이어지리라, 스스로에게 확언할 때, 사람은 죽는다. 마음이 죽으면 몸은 자연히 죽어버리므로. 환각에도 환상에도 그 무엇에도 의지할 수 없을 때. 소년의 이름을 묻기로 하자. 하이. 그래, 안녕. 아니, 이름이 하이라고요. 내 고향에서는 이렇게 인사해, 라바스, 너를 그렇게 부르기로 하자.

p.15 우리가 하트퍼드와 유일하게 공유하는 것은 바로 구급차인데, 그 도시에서 이곳이 충분히 가까운 덕분에 우리가 죽어갈 때나 친지도 없이 철제 들것에 실려갈 때면 구급차가 우리를 데리러 와준다. 우리는 변두리에서 살지만 중심부에서 죽는다. 우리 꿈의 영안실이 되는 강 옆, 가라앉는 둑 위에 서 있기 위해 우리는 모든 세금을 낸다.

p.118 어렸을 때 하이는 더 큰 삶을 원했다. 하지만 그가 얻은 것은 자신을 놓아주지 않는 삶이었다. 하이는 모두가 즐겨 이야기하지만 그룹 포함한 누구도 이해하지 못하는 큰 전쟁이 끝나고 14년 뒤 베트남에서 태어났다.


가난한 이민자 가정에서 자란 남자애는 평생을 가난하겠지. 장학금은 커녕 빚만 쌓인 아시아계는 평생 온갖 청구서에 파묻히겠지. 마약 중독, 학교는 중퇴, 그 날의 거짓말만 아니었다면 뭔가 달랐을까? 집도, 가족도 내 손으로 버린 것이나 마찬가지지. 그러니까. 그냥 그렇게 살다 죽겠지. 조금도 달라지지 않겠지.

그래서, 뛰어내리기로 했다. 왜, 그런 거 있지. 마침표보다는 덜 확실하게, 미끄러지듯이, 스르륵, 하면 삶이 이렇게, 그저 그렇게 여전하듯이 그저 그렇게 끝날거란 느낌으로. 말줄임표처럼. 죽겠다는 사람을 죽일 기세로 펄펄 뛰는 사람을 무슨 수로 이겨요. 그냥 살아도 저 노인보다 내가 먼저 죽겠는데.

p.202 "잘 들어. 이 나라는 말이야. (…) 고의로 전쟁을 일으켜서 세운 나라야. 파충류들이 정치인이나 유명인으로 변신한 다음 그 꼭두각시 인형들을 이용해 전쟁을 벌이거든. 자기네가 흡수할 나쁜 에너지가 부족해질 일이 없게끔. 이해 안 돼? 전쟁은 그들의 작물을 자라나게 해주는 거름인 셈이야."

p.313 "우리가 아름다울지는 몰라도, 패배자이기 때문에 그런 건 소용이 없어. 우리는 키 작은 패배자야. 아름답고 키 작은 패배자들. 그리고 그건 아무에게도 어떤 도움도 되지 않아." "아름답고 키 작은 패배자들." 하이는 과거에서 자신들을 응시하는, 옹기종기 모인 얼굴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아름다움이란 게, 어떤 아름다움이든 간에, 아무도 이기지 못한다면 무슨 소용이 있나?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인과 스스로 삶을 내던지려는 소년의 희한한 우정은 이렇게 시작된다. 그저 모른 척 버릴 수 없었다. 그뿐이라 말한다. 그렇게 그들의 나날은 한 발 한 발, 보다 느리게 부서지고 뒤섞인다. 남편도 죽고 거동도 편치 않아. 기억은 낡은 가구처럼 삐걱대고 부스러지지. 그러니 나랑 살자. 당분간이야.

자식들? '걘' 잘 살고 있어. 단지... 나까지 신경쓰기엔 너무 바쁠 뿐이야. 어쩌면 내일이면 너도, 가족도, 나 자신조차도 잊을지 몰라, 그래도 오늘은 살아. 소년과 노인, 이민자와 가난한 노동자들. 그들의 삶은 살아낸다기보다는 하루하루 견뎌내는 쪽에 가깝다.

p.341 "내겐 삶이 있었어, 라바스" 그라지나가 잠시 말을 멈추고 생각에 잠겼다. "불타는 언덕에서 시작된 삶이었지. 그 삶은 언덕을 굴러떨어지더니 이렇게 됐어. (...) 펑크가 난 거지. 엉망이 돼버렸다고. 아무것도 없었어. 그냥 매일매일이 흘러갔고 가끔은 조금씩 덜컹거렸을 뿐. 그리고 그걸로 충분했어. 주님이 내게 평화를 내려주셨고 평화는 좋은 거니까."

p.416 당신 차례가 되면, 그리고 당신 차례가 되기를 원치 않는다 해도, 당신은 자녀뻘 혹은 심지어 손주뻘 되는 젊은이들이 미는 휠체어에 실려갈 것이다. 언제나 그럴 것이다. (...) 어째서 우리는 세월을, 수십 년의 총체를 목도하는 일이 우리에게 - 심지어 가족이라 해도- 엄청난 폭력을 가한다고 그토록 확신해서 그러한 몸이 보이지 않게끔 요새마저 지어 올리게 되었을까?


세상은 그들을 이렇게 부른다. 밑바닥 인생. 아니, 어쩌면 기억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들은 사람이라기보단 프랜차이즈 유니폼 너머의 어떤, 무언가 정도니까. 지나치고 나면 말을 나눈 기억조차 남지 않는. 쇠락한 도시, 뻔히 그려지는 막다른 미래. 떠날 수 없으므로 머무를 곳도 없는 이들을 동정할 것인가? 그럼에도 삶은 아름답다 말할 수 있는가?

그러나 고통뿐이라면, 어째서 이 작은 삶은, 찰나의 기억은 그다지도 아름다운가? 작가는 이 허구를 통해 지독히도 사실적인 풍경과 그려낸다. 차마 외면하지 못하고 내미는 손을, 떨리는 품과 함께 박동하는 심장을. 삶의 끄트머리로 내몰리는 이를 세상에 붙들어두는, 사랑을.

p.383 "야, 네가 기억하지 못하는 삶도 좋은 삶이라고 생각해?" 질문을 꺼내고 보니 어리석게 들렸다. "내 말은..." "응” 소니가 대답했다. "왜?" "다른 누군가가 기억할 테니까."

p.527 "사람의 안에는 공간이 아주 많네요. 저 말고 다른 사람들도 있어야 했는데 말에요. 한 명만 이러고 있어서는 안 되는 거였어요." (...) "무서워요, 엄마. (…) "다가올 일들이요. 미래가요. 너무 크게 느껴져서요." "그건 네가 어리기 때문이야, 결국에는 다 작아져. 그래도 삶을 무서워하진 마, 아들, 우리가 서로에게 좋은 일을 하다 보면 삶은 좋아져.


*도서제공: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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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드문 형사 해리 홀레 시리즈 13
요 네스뵈 지음, 남명성 옮김 / 비채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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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격 너도 죽고 나도 죽고, 이왕 죽는 거 할 수 있는 거 다 해보죠? 작가가 주인공도 모자라 독자까지 알뜰살뜰 굴리고 갈구다 볶아먹고 찜 쪄먹는 해리 홀레 시리즈가 13번째 작품으로 돌아왔다. 나름 파릇한 맛이 있던 주인공도 그새 이제 어딜 봐도 손색없는 중년이 되어 세월의 풍파를 남들 몫까지 곱절로 얻어맞은 몰골이 되어 독자와 함께하고 있다.

형사소설의 주인공이란 으레 정의감과 의욕으로 뭉친, 신념과 매력의 결정체 비슷한 것이 아니던가? 예, 아닙니다. 우리 해리 그 정도 아닌 수준을 넘어 그 근처에도 가본 적 없습니다. 있긴 했는데 그게 언제야. 독자도 가물가물하니 그냥 모른 척 하세요. 얘기가 기니까...

p.20 "사람들은 작가가 글에 쓰인 순서대로 생각했다고 여기거든. 사실 놀랄 일도 아니죠. 어쨌거나 사람들은 어떤 사건이 벌어진 건 과거의 결과라고 믿으니까요. 그 반대가 아니라."

p.50 "뭐부터 말해야 할지. 불성실, 근무 중 중대 과실, 술에 취한 채 근무한 알코올의존자, 폭력 사건 여러 건, 약물남용 등등, 처벌은 피했지만 동료 한 명 이상의 죽음에 책임이 있고요. 요컨대 양심적으로 말하자면 그가 잡아들인 범죄자 대부분보다 범죄를 더 많이 저지른 자죠. 게다가 같이 일하기에는 악몽 같은 자일 겁니다."


상처뿐인 땅, 그의 모든 것을 파괴한 오슬로를 떠나 LA에서 인간쓰레기는 좀 심했고, 일반쓰레기에 준하는 몰골로 살아가는 해리 홀레. 마시고, 또 마시며 돈이든 인생이든 둘 중 하나는 끝장날 때까지 술에 절어 살기로 한 그에게 또다시 운명같은 인연이 들이닥친다. 어떻게 된 인생이 쉬운 날이 없나. 죽지 못해 사는 것도 마음대로 안 되게.

거액의 빚을 지고 갱단에 쫓기는 여자, 루실에게 손을 내민 순간, 운명은 다시 그를 부른다. 돌아와요, 오슬로에. 사랑도, 기억도, 그리움도 켜켜이 쌓인 그 땅에. 절망과 고통으로 범람하는 기억에. 어째서 돌아온 걸까. 어째서 버릴 수 없는 걸까. 그는 묻는다. 대체, 왜.

p.496 "난 늘 동기를 찾았다는 걸 자네도 알 거야. 그래야만 제대로 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생각했지. 그리고 물론 언제나 동기는 있었어. 하지만 동기가 밝게 빛나는 길잡이 별이 되어주지는 못하잖아? 이 사건처럼 어쨌거나 동기가 광기의 어둠 속에 갇혀 있을 때는 말이야. 그러면 나는 이유는 포기하고 방법에 집중하는 거야."


읽는 동안 무엇을 믿어야 할지 내도록 혼란스러웠다. 사람을? 핏빛 물든 어둠에 집어삼켜진 달조차도 다시금 차오르고 저문다는 것을? 악몽의 끝이 깨어날 수 없는 잠일지 아닐지. 작가가 하고 싶은 말이었을지 모른다. 이 비참하고 처참한 세계에서 무엇이 당신을 일으켜세울지, 똑똑히 보라고. 무엇이 '그들'을 위선과 정의로 몰아가겠느냐고.

직전의 『칼』로부터 3년여의 시간이 흘렀다. 여전히 제각기 품은 수치심과 은밀한 공모가 잔잔히 깔려 이어지는 가운데, 예측할 수 없는 반전을 다루는 솜씨가 크게 늘었다. 사람이 어디까지 부서지고 무너질 수 있는지를 여실히 보여주었던 전작과 다르게 그렇게 모조리 빼앗기고 망가뜨린 사람이 어떻게 다시 한 번 일어설 수 있는지를 아주 잘 보여주지 않았나.

p.131 동물과 인간에게 도덕적 의무가 있다면 그건 그들의 본성, 부여된 역할에 따라 조화를 유지하고 섬세한 균형을 지키는 것일 터였다. 그래서 자연 속 모든 것은 언뜻 볼 때는 기괴하고 끔찍하고 잔인한 것 같아도 ─완벽하게 목적대로 기능할 때 아름다운 것이다. 죄악은 인류가 선악과를 먹었을 때 세상에 생겨났고, 인간들은 자연의 의도를 외면하는 일이 가능한 수준의 성찰을 이루었다.

p.584 물론 준비한 복수가 상상했던 것처럼 달콤하지 않으리라는 걸 모르지 않았지만 이건 아니었다. 새아버지의 씁쓸한 눈물 같은 맛은 아니어야 했다. 이런 식의 감정은 실망이라기보다 충격에 가까웠다. 그는 침대에 누운 사람이 불쌍했다. 자신의 어린 시절을 파괴하고 어머니가 스스로 목숨을 끊도록 만든 사람인데도.


신뢰는 배신을 부르며, 순수는 악의에 처절히 짓밟힌다. 과거와 현재, 미래를 모두 파괴당한 땅을, 다시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을 모르지 않는다. 그러나 여전히 생각도 전에 나서는 마음 또한 존재함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스스로를 있어야 할 곳에 밀어넣는 이가 있음을 믿는다.

어쩌면 작가가 전하고 싶었던 것 중 하나가 이 "간단한 산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믿을 수 없는 비극이 일상의 안락을 언제든 깨부술 수 있는 세상에서, 그럼에도 우리가 무언가를 의지해 살아갈 수 있다면, 사람이 파괴하는 사람을 지켜내는 것 또한 사람임을 알고 있다면. 그리하여 눈을 뗄 수 없는 미로와 추리 끝에 도달한 독자에게, 자 다음엔 어떻게 굴려볼까요.

p.657 "그것은 간단한 산수였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분이 행복한 사람으로 떠났다고 믿습니다. 스톨레는 이 세상을 조금 더 견딜 만한 곳으로 만드는 데 이바지하는 일에 가장 깊은 만족감을 느끼는 인류에 속했기 때문입니다."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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