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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 긴 잠이여
하라 료 지음, 권일영 옮김 / 비채 / 2025년 11월
평점 :
'돌아왔다'는 말은 기다림을 전제로 한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 최소한 스스로에게라도 그의 도래가 예견될 때, 완전한 불가의 영역에 속하지 않을 때 비로소 '돌아옴'을 말할 수 있다. 그렇다면, 반대로, 그 자신조차 기다리지 않는 도시로의 복귀는 무엇이라 말해질 수 있을까.
사와자키가 돌아왔다. 켜켜이 먼지 쌓인 도쿄의 탐정사무소에. 아무도 찾지 않으리라는 예상과는 다르게 몹시 추레한 행색의 남자가 그를 찾는 이가 있었다 말한다. 탐정은 생각했을까. 이번 일은 지독하게 얽힌 과거의 연속이리라고, 이 도시의 그 누구도, 어느 곳도 무구하지 않을 거라고.
p.75 사백 일 만에 탐정으로 복귀했으니 번듯한 업무를 골라야 했다. 그런데 '자살 따위와는 인연 없는 평범한 의뢰인'이란 어떤 사람일까. 사람을 두 종류로 가르기 좋아하는 녀석들이라면 '누군가를 자살에 몰아넣고도 깨닫지 못 하거나, 깨닫는다 하더라도 아무렇지도 않게 지낼 수 있는 인간'이라고 말할 것이다.
대개 탐정 소설이란 주인공과 독자가 정의의 한패를 먹고 사건의 진실을 향해 나아가는 구조를 취하지 않던가? 작가는 이 익숙한 도식 대신 누구와도, 심지어 독자에게조차!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는 캐릭터를 내세워 오래된 비극의 심연을 파헤친다.
분명 탐정이 주인공이고, 그가 맡은 수수께끼가 흐름의 주축을 맡는데도 사건 해결 자체는 이 이야기의 핵심이 아닌 느낌을 준다. 오히려 그 이상의, 그가 만나는 이들과 그들 각자의 비밀, 그리고 주인공조차 속시원하게 털어놓지 않는 본심이 더욱 무겁게 다가온다.
p.225 "잔인한 직업이군요." 아키바 도모코가 내 등에 대고 말했다. 나는 돌아보지 않았다. 걸음도 멈추지 않았다. 아무런 대꾸도 않고 계단을 계속 내려갔다.
p.508 제멋대로 사백 일이 넘도록 연락하지 않는 남자의 전화를 기다릴 의무는 누구에게도 없다. 겨우 이틀 동안 연락이 없었다는 이유로 인생에서 가장 심각한 결심을 해버린 여자마저 있지 않은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떠나간 이의 말을 공백에서부터 되짚어가는 일은 필경 그' 날'의 일을 마주함이요, 진상을 파헤치고 난 자리에는 끔찍한 절망이, 이미 일어났으므로 돌이킬 수 없는 슬픔이 남는다. '모든 일이 끝났음'에도 쓰디쓴 미소 외에는 그저 침묵할 수밖에 없는 이유와도 같다.
속죄의 기회를 놓친 채 너무도 오랜 시간이 흘렀고, 도시는 침묵과 망각의 기로에 서 있다. 그러므로, 독자여. 여전히 낫지 못해 피 흘리는 상처를 마주하라. 오래된 흉터 위로 새기고 또 패인 상처의 복판을.
그래서일까. 탐정과 함께 400여 일 만의 도쿄를 헤매는 독자의 마음은 내내 흐리고, 어둡고, 비가 내린다. 이 도시의 풍경은 촉촉한 풍요라고는 온데간데 없이, 뒷골목과 부패의 냄새를 풍긴다. 그제야 말할 수 있다. 이 더럽고 비열한 세계에 돌아온 것을 환영한다고.
p.327 "분명히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오지 못할 겁니다. 하지만 그건 죽는다는 것이 어떤 건지 아는 사람이나 할 말이죠. 당신은 죽음이 어떤 건지 모릅니다. (...) 한 가지 확실한 게 있습니다. 사람은 죽으면 살아남은 사람의 추억 속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친한 친구나 가족, 혹은 다른 누군가가 저 녀석은 자실했을 거야, 라고 멋대로 납득하고 말면 도저히 어쩔 도리가 없어지죠."
*도서제공: 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