몰타의 매 열린책들 세계문학 63
대실 해밋 지음, 고정아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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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도 믿을 수 없다. 누구도 진실을 말하지 않는다. 그렇다기보다 거의 모든 전개가 겉으로 드러나는 행동과 표정, 말과 동선으로 이루어져 있다. 어느 하나 속내를 드러내지 않으므로 독자는 마음 편히 이입할 수 없는 동시에 마치 현장에 함께하는 것 같은 생생함을 느끼게 된다.

정의의 편도, 처음부터 끝까지 진실만을 말하는 증인도, 전적으로 탐정의 능력을 신뢰하는 의뢰인도 없다. 무엇보다, 일단 우리의 주인공, 그 '탐정'을 믿을 수 있는지부터가... 묘사부터 신사답다든지, 명석하다든지, 유쾌하고 다정한 면모와는 거리가 멀다. 정말이지 칼만 안 들었을 뿐 날강도나 다름없는 냉정한 태도는 오히려 악당과 협잡꾼에 가깝다.

한 번을 져주는 법이 없고, 돈이면 좋고 없으면 썩 꺼지라는 식이다. 쓰다보니, 이거 탐정 맞아요? 깡패두목 아니고...? 그밖에도 누가 오른뺨을 치거든 주저 없이 왼뺨에 뒤통수까지 갈겨줄 캐릭터로 가득한 이 이야기의 핵심은 울먹이는 의뢰인으로 시작된다.

p.10 달그락거리는 소리, 희미한 종소리, 에피 페린이 타자를 치는 소리가 닫힌 문 저쪽에서 들려왔다. 가까운 어느 사무실에서 웅웅거리는 모터 소리도 둔중하게 올렸다. 스페이드의 책상에 놓인 놋쇠 재떨이에서는 피우다 만 담배 한 대가 담배꽁초들 틈에서 가늘게 연기를 올리고 있었다. 흰 담뱃재들이 노란 책상 표면과 녹색의 압지와 몇몇 서류를 위로 점점이 내려앉아 있었다.


탐정과 독자가 편을 먹고, 그래, 아무래도 이 이야기에는 팀을 이룬다거나 협력한다는 말보다는 이쪽이 더 잘 어울리는데, 진실을 찾아 좌충우돌 행진을 벌이는 정석적 추리 소설에서 벗어나도 한참 벗어나있는 이 작품이 1차대전 직후에 발표되었다는 사실이 놀랍지 않은가.

이전까지의 세계를 송두리째 뒤엎은 '그 전쟁' 직후, 사회는 정의와 인간 본성의 신뢰, 유대감을 잃어버렸다. 선량한 사람의 순진한 믿음도, 간신히 재건된 사회의 공권력도, 겉으로나마 신뢰를 이야기하는 세속적 계약 상대도 믿을 수 없다. 그 누구도 가진 패를 내보이지 않고, 모두가 진실을 숨기고 등 뒤에 칼을 감추고 있다.

하루아침에 무너지는 세계, 지겨울만큼 여전한 이권다툼 속에서 이른바 〈하드보일드〉라 불리는, 사회성원의 도덕성과 기존의 가치를 더이상 신뢰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그저 무자비하게 뚫고 나가는 캐릭터가 등장하는 소설이 쏟아져나온 것도 이상한 일이 아닐 것이다. 결국 이런 유행 또한 뼈저리게 느낀 무력감과 환멸의 반영이었을지 모른다.

p.161 「그들은 보화 속을 뒹굴었소. 선생은 모를 거요. 우리도 전혀 모르오. 그 사람들은 수십 년 동안 사라센인을 상대로 해적질을 해서 무수한 보석, 귀금속, 비단, 상아를 약탈했소. 동양 세계에 있는 부의 정수 중에서도 정수들을 말이오. 그것이 역사요, 선생. 그 사람들에게는 그 성스러운 전쟁이 — 성당 기사단도 마찬가지였지만 — 노략질에 지나지 않았다는 걸 우리는 모두 알고 있소.


깊은 밤, 불빛이 어른거리는 창 너머로 오가는 말은 그저 입에 발린 속임수인가. 그는 그녀를, 당신은 나를, 서로가 서로를 배반하는 지독히도 외로운 세계에서 그들은 무엇을 갈구하는가. 눈물도 미소도, 사랑도 증오도 믿을 수 없는 차가운 도시의 하루는 저물고...

마지막까지 결과를 예측할 수 없는, 조각난 진실 속에서 독자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끔찍하게 매력적인 그들의 말과 행동에, 달콤한 미소에 싸늘한 경멸이 스치는 이야기에서 시대의 초상을 읽어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p.274 스페이드가 부드럽게 말했다. 「사랑스러운 아가씨! 운이 좋으면 20년 후에 샌퀜틴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면 그때 나한테 돌아와요.」 그녀는 그에게서 뺨을 떼고 고개를 뒤로 멀리 젖힌 채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를 보았다.
그가 창백한 얼굴로 부드럽게 말했다. 「이 가녀린 목에 교수형 밧줄이 걸리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겠습니다.」 그는 두 손으로 그녀의 목을 어루만졌다.

p.281 그는 어깨를 살짝 들썩이고 말했다. 「아. 고액의 수임료라면 적어도 저울의 반대편에 얹을 또 하나의 추는 될 수 있었겠죠」 그녀는 그에게 얼굴을 바싹 가져다 댔다. 그러고는 입을 살짝 벌린 채 입술을 내밀고 속삭였다. 「만약 당신이 나를 사랑한다면 저울의 반대편에 다른 건 아무것도 필요 없어요」 스페이드는 이를 다물고 그 사이로 말했다. 「나는 당신 때문에 얼간이가 되지는 않을 겁니다.」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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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커밍 어스 - 지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을까
페리스 제이버 지음,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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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가운 이성과 논리, 재현과 검증가능함을 절대가치로 받드는 현대과학에서 '어머니 지구', '살아있는 지구'라는 표현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오래된 별, 우리가 닿아본 것 중 가장 오래 존재해온 이 행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구는 그저 하나의 행성, 생명의 바탕에 불과한가?

그러나 어쩌면, 이 별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수많은 생물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지구는 생명이 되고 생명은 지구가 되는 과정을 이어온 게 아닐까?

p.44 대양과 대기에 사는 미생물처럼 지각 내부에 사는 미생물도 단순히 그 환경에 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변모시킨다. 지하의 미생물은 거대한 동굴을 파고 막대한 양의 광물과 귀금속을 집적시키며 지구의 탄소와 양분 순환을 조절한다. 어쩌면 미생물이 대륙의 형성에도 일조했을지 모른다. 미생물이 말 그대로 지상의 다른 모든 생명을 위한 ‘토대’를 놓은 것이다.

p.169 플랑크톤은 죽고 나서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대양, 사막, 정글로 필수 영양분을 순환시키면서 계속해서 지구를 부양하고 구성하고 있다. 물에 떠다니는 세포에서 바다 아래의 돌무덤이 되기까지, 또 바람에 날리는 사막의 먼지가 되기까지, 영겁의 세월에 걸친 변모 과정에서 플랑크톤은 생명과 환경 사이의 호혜성과 지구의 영속적인 환생을 체현한다.


저자는 한때 조롱받았으나 최근에 와서 다시금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생명과 지구의 공진화, 가이아 가설의 증거를 지구 전역에서 찾아낸다. 저 깊은 땅 속에서, 아마존 우림의 한가운데에서, 사라져가는 영구동토에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탄소에서 박테리아, 미생물에서 해조류와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본다면, 어쩌다 딱 알맞게 생성된 지구라는 무대에 엄청난 우연의 연속으로 진화한 생물들이 배우처럼 등장해 살아가다 죽기를 반복해온 것이 아닐지 모른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배우인 동시에 직접 무대를, 아니, 세계 자체를 조성하고 때로는 극적으로 변화시켜온 주체일지 모른다.

여정 곳곳에서 마주한 자연은 숨막히게 아름답다. 이 거대한 순환은 그 자체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인간이 파괴하고 있는 것은 생명이다. 거대한 흐름이고, 순환의 여정이다. 태어나 살아가다 죽는 모든 것들은 이어져있다. 저 깊은 지하에서 끝없는 하늘과 아득하게 펼쳐진 바다와 강까지. 살아있다. 이 별과 우리는, 함께.

p.321 시스템 전체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종들의 네트워크가 선호될 것이고 시스템을 붕괴의 지점까지 훼손하는 종들의 네트워크는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얻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스스로를 제거하게 될 것이다. 가장 회복력 있는 생태계, 도전과 위기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생태계가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지속성'이라는 현상을 지구 전체로도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작 // 동하는 것은 지속성을 갖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지속성을 향해 가는 '경향성'이다. 필연이 아니라 경향이 작동하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현재의 전지구적 멸종과 파괴는 이상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고,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고도 지구는 스스로 회복되었다고, 종내에는 인간조차 멸종될, '여섯 번째 대멸종'이 도래한대도 아무튼 괜찮을 거라고.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지구의 거주자가 아니다. 우리 자체가 지구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을 넘어 우리 스스로를, 더 나아가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 그들 또한 지구일 수많은 생물들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지구는 다시금 회복할지 모른다. 우리가 그곳에 없을 뿐, 더이상 우리가 알던 세계가 아니게 될 뿐. 지구는 이대로 황폐화될 운명인가? 아니면 우스개처럼 '인간이 다 죽으면', 혹은 어찌저찌 알아서 회복될 것인가? 아니면 그 전에 어느 별로 다같이 이주라도 해야 하는가?

p.372 '지금 이곳에서' 일궈야 할 변화를 무시하고 인간에게 유의미한 시간 단위 안에 다른 행성을 테라포밍하겠다는 생각은 용서되지 않을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고 대기가 없는 암석을 새로운 지구로 만드는 데 필요한 수준의 기술적 발달과 생태적 이해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존재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행성, 그리고 우리가 발견한 바로는 유일한 살아 있는 행성을 보호할 역량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작금의 전지구적 위기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생명 주체로서의 지구를, 그 일부로서의 인간이 회복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멈춰야 할 일을 알고 있음에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말한다. 지금의 위기를 외면하고 기적이나 탈출구만을 갈구하는 것은 엄청난 오만이라고.

'인류세'가 낯설지 않은 시대다. 인간의 흔적은 돌이킬 수 없는 파괴로 곳곳에 새겨지고 있다.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죽임당하고 있는 별에서 어떻게 돌아갈 자리를 찾을 것인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 할 수 있다.

p.32 우리 인간종을 더 큰 생명체의 일부로, 즉 지구적 심포니의 일원으로 보면, 우리가 지구에 가져야 할 책임이 명확해진다. (...)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지구가 혼자서 스스로를 온전히 회복하는 데는 수십만 년, 수백만 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구는 우리가 알아 온 어느 지구와도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그 지구는 현대의 인간 문명도,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생태계도 지탱할 수 없는 세상일 것이다.

p.287 생명과 환경은 피드백 고리를 통해 반복적으로 서로를 변화시킨다. 생물은 행동과 부산물을 통해 주변 환경에 지속적인 변모를 일으키며 이는 자기 종의 후손 및 여타 종들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생물이 구름을 만들 수 있다. 한 대륙의 숲이 다른 대륙에 비를 내릴 수 있다. 숨결이 행성을 흔들 수 있다.


*도서제공: 생각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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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 동남아 - 24가지 요리로 배우는 동남아시아의 역사와 문화
현시내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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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ou are what you eat". 꽤나 오만하게 들리는 말이다. 내가 먹는 것이 나를 말해준다니. 당장 어제 저녁 메뉴를 묻는대도 뭐였더라, 가물가물한 현대인에게는 퍽 난감하고 와닿지 않는 말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 말은, 널리 퍼진 말들이 으레 그러하듯, 부정하기 어렵다. 음식은 그것을 먹는 사람을 말해준다. 그저 이름이 아닌, 그 음식의 맥락으로.

우리 사회에는 동남아시아 각국의 이름보다 배달 메뉴로까지 정착한 동남아시아의 각종 음식에 익숙한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그말은, 우리가 그들의 역사와 맥락보다는 그저 어림짐작과 메뉴 이름으로만 생각하는 데 익숙하다는 뜻이기도 하다.

p.8 한자 문명권으로 묶인 한국, 중국, 일본 등과 달리 동남아시아는 역사도, 민족도, 언어도, 문화도, 풍습도 엄청나게 다양하다. 15세기 말부터 이 지역에 몰려든 서구 제국주의자들은 향신료를 비롯한 희귀 작물 무역으로 큰돈을 벌었다. (...) 20세기가 되기도 전에 현 태국을 제외한 거의 전 지역이 서유럽과 미국의 지배에 놓이게 되었다. 식민지에는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문화가 유입되었다.

p.148 오늘날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는 음식 중 고립된 역사를 가진 것은 드물다. 나씨고렝만 해도 지역•국가 간 경계가 생기기 이전부터 육로로, 해상으로 자유롭게 전 세계를 누볐던 상인, 순례자, 탐험가, 그리고 여행객의 교류로 태어났다. 고향과 방문지에서 재료를 가져오고, 새로운 요리법을 배워오면서 풍부해진, 셀 수 없이 많은 교류와 경험의 산물이다.


그러나 실제 동남아시아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바다와 산, 섬과 육지로 이루어진, 지형만큼이나 복잡한 국경과 역사를 지금도 온몸으로 겪어내고 있는 탓이다. 그러므로, 많은 사람들이 동남아시아 각국에서 한국의 과거와 현재를 보듯, 그들의 역사는 한마디 혹은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기나긴 제국주의 시대를 지나 두 번의 세계대전과 동아시아 전쟁기엔 식민경제와 해상무역의 거점으로 쥐어짜였고, 전후에도 내전과 경제위기로 수탈과 분쟁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나라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는 국토와 누가 다수 민족인지 소수 민족인지를 알 수 없는 복잡한 인구 구성, 이를 반영하는 너무나도 다양한 문화적•사회적•경제적 차이"로 조용할 날 없는 땅에 살아가는 이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p.48 '다양성 속의 통일성' 이라는 문구는 (...) 다양한 민족과 문화, 종교, 사회, 경제, 정치 구성이 장애물이 아닌 인도네시아라는 통일 국가의 발전을 촉진하는 긍정적인 요소가 되기를 염원하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 인도네시아라는 하나의 민족 국가가 탄생하고 자리를 잡기까지 수십 년의 세월이 걸렸다. '가도가도'에 담긴 정신이 절실한 시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p.61 최근 들어 이싼 음식은 백화점 식당에서도 팔리고, '땀 타이' 처럼 그 맛과 풍미를 고급스럽게 바꾸어 내놓기에 완전히 서민 음식이라고는 할 수 없다. (...) 하지만 내가 쁠라 라가 들어간 라오스식 쏨땀과 숩 너마이를 좋아한다고 말하면 방콕 친구들은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를 짓는다. 그들의 표정에서 이싼이 겪은 수백 년 핍박과 처절한 가난의 역사가 읽힌다. 이싼 음식의 모양과 맛은 바뀌고 있지만 그 역사는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다.


답은 식문화에 있다. 눈물은 아래로 떨어져도 밥숟가락은 위로 올라간다는 말을 떠올릴 때마다, 음식점이나 식료품점으로 이주노동자 분포를 대강 짐작할 수 있을 때마다 이를 깨닫는다. 사람은 먹어야 산다. 익숙한 음식 하나가 무엇보다 큰 위로를 준다. 언어도 옷차림도 잊을만큼의 시간이 흘러도 식문화만큼은 악착같이 살아남는다.

그런 사람의 본성이 식문화에도 고스란히 반영되어 있기 때문에, 음식의 계보를 들여다보는 것이 곧 그들의, 먹는 사람들의 역사와도 같다. 흩어지고, 살아남고, 어떻게든 모여 음식을 나누는 사람들의 역사 말이다.

p.171 치킨 라이스 한 접시에는 아는 사람도 없고, 말과 음식 등 모든 게 낯설었던 하이난 출신 이주 노동자들의 애환이 배어 있다. 그들은 쥐꼬리만 한 월급을 받으며 식비를 아끼려고 한 번 만들어서 여러 차례 배불리 먹을 음식을 만들었다. 하이난식 치킨 라이스에는 서러움과 어려움 속에서도 고향의 맛을 잊지 않으려 애썼던 이들의 삶이 오롯이 담겨 있다.

p.177 프랑스 식민 통치로 베트남 경제는 피폐해지고 메콩강 삼각주처럼 비옥한 땅에서 난 쌀은 해외로 팔려 나갔다. 특히 흉년이 오거나 가뭄, 홍수 등으로 농사로 망치면 안 그래도 가난한 농민들은 먹을 게 없었다. 그들이 부서진 쌀을 먹기 시작한 이유는 바로 식민 통치자들의 수탈과 계속된 기근이 가져온 굶주림이었다. 풍년일 때는 논밭에서 고생하는 소에게 먹이로 주던 쌀을 농민들이 쪄서 먹기 시작한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우리에게 동남아시아는 여전히 잘 모르는, 어렴풋한 한 덩어리처럼 느껴지는 곳이다. 그러나 저자가 말하듯, 우리는, 먹는 사람으로서 그들을 이해할 수 있다. 음식과 그에 얽힌 이야기를 통해 생생하게 살아 숨쉬는 시간을 감각할 수 있다. 알면, 보인다. 가까이, 자세히 보면 다르게 보이고, 한 걸음 다가설 수 있다.

저자의 말처럼, "삶이 음식을 만든다. 사람이 있어야 음식 문화도 존재하고 서로의 음식을 나눌 기회가 생긴다". 이 책을 읽고 난 독자가, 입맛을 다시며 우리 주변의 동남아시아에 흥미가 아닌 관심을 가지면 좋겠다. "더 가깝고, 알고 싶고, 친숙하게 느끼는 세계"로.

p.150 볶음밥 한 접시에는 다양한 사회•경제•문화적 배경이 녹아 있다. 시시때때로 맛과 형태를 달리했다는 뜻이다. 지금도 어떤 재료를 넣는지, 어떠한 방법으로 볶아내는지에 따라 그 종류와 이름이 달라진다. (...) 무엇이 '진짜 나씨고렝'일까? 어쩌면 우리는 이러한 질문 자체에 질문을 던져야 하지 않을까.

p.226 한 나라, 혹은 한 공동체의 음식은 그들이 속한 사회, 경제, 정치, 문화, 환경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다. 음식 문화는 해당 공동체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아주 중요한 상징이다. 그렇기에 음식과 사람, 그들이 속한 환경을 이해하는 것은 어떤 음식의 기원과 종주국을 가려내는 일보다 중요하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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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
이관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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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멸 위기 사회, 저출생, 혐오 범죄, 빈부격차, 주택난, 대규모 사기, 청년 실업, 자살률 최고치 갱신... 어지간한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이렇게까지 총체적 난국에 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이름은 대한민국. 끔찍이도 안타까운 내 나라.

어지간한 사람 치고 현재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이대로 가다간 정말 다 죽게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대격변을 각오하지 않고는 소멸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을 찾기가 드물 것이다. 현재 한국의 지위는 어떠한가?

p.14 '압축 성장'에 성공했기 때문에 '압축 소멸'을 맞이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 어떤 나라도 해내지 못한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 지금의 위기는 그 성공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역이든 산업이든 교육이든 집중과 선택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서 성공했는데, 그 효율성의 극단에서 우리는 갑자기 소멸의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p.151 이런 일들은 '민주주의'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제도 안에서 '정치'가 스스로 풀어가는 것입니다.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놓고 정치적 역량이 발휘되는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정당과 정치인들 스스로가 결정하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 범주의 일들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국민은 물론이고 언론도 어떤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 발상 자체가 소멸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천박함이 생존논리가 된, 되는대로 뜯어먹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지옥. 차별과 고립을 자처하면서도 과거의 영광을 놓지 못하는 어리석은 나라. 한강의 기적과 신흥 강국의 위상, 온갖 군데에 붙여 팔던 K-열풍의 단꿈에 잠겨 침몰하는 내 나라. 독재를 단결로, 억압을 평화로 착각해 있지도 않았던 '그리운 시절'을 돌려내라는 우리 사회. 부정할 수 있는가?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모든 문제가 한 데 뒤엉켜있다. 한때는 발전과 부의 동력이었던 것이 소멸과 파괴를 재촉한다. 성장에 목 맨 나머지 제대로 된 정치체계를 구축하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지는 일은 등한시한 탓이다. 평등하고 공론장 구축에는 실패했고, 이름만 남은 공정과 자유가 모든 가치를 대변하는 꼴이다.

p.113 세대•성별 간에 결혼과 출산, 일과 가정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지난 10년 동안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여성이 일하기를 원하고 육아 때문에 그것이 힘들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 필요한 것은 여성이 출산 뒤에도 일할 수 있는 사회 인식의 변화와 이를 이끌어 낼 제도적 장치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말로만 저출산이 문제라고 하고 이런 부분을 고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p.198 자유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정부에서 보여 주는 '자유'의 가치는 자유주의라고 말하기에도 많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취임식에서 언급한 사회적 자유, 공정으로서의 자유는 온데간데 없고, 1950년대 냉전 시기의 반공 자유주의만 남았습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압축 성장' 시기를 지나 '압축 소멸'로 향하고 있으며, 나아가 '정치' 자체가 소멸할 위기에 놓였다고 지적한다. 정치권은 돈과 힘의 논리에 굴복하여 대의민주제의 기본 전제가 부정되고 있다. 정치주체로서의 시민은 소멸되고 팬덤과 주권에 등 돌린 자들만 남아 결국 '정치'의 개념 자체가 소멸되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논의를 제치고 빠르게 덩치를 불린 만큼 소멸도 급속할 것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토대와 기반이 무너지고 정치가, 사회가, 나아가 국가 자체가 소멸할 위기에 놓였다. 근본적 원인에 대한 고민과 대안은 커녕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능력조차 없어 보이는 우리 사회에는 냉소 외의 길이 없는가?

p.136 팬들은 특정한 정치인에 자기의 정치적 비전을 무조건적으로 투영하고 무리를 지어 그를 추종합니다. 성찰적 거리를 둘 여유가 없고, 옳고 그름보다는 이기고 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시민들은 다릅니다.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얼마든지 대화하고 설득과 타협, 조정과 배려를 통해 공동체의 방향을 함께 결정하려고 합니다. 상대를 적이 아니라 적수로 여기면서, 그들을 배제하기보다는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룰을 지키며 선의의 경쟁을 하려는 것이 시민입니다.

p.234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가 타락한 이유는 시민의 주권을 양도받은 세력들이 정치적 책임과 역사적 소명을 방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은 결국 시민들입니다. (...) 무한 경쟁의 세계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그래서 다음 세대에게 희망 없는 사회를 물려줄지, 아니면 행복을 꿈꾸며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지를 시민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결국 해결은 근원적 대책에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권력은 그 자체로 형체를 갖지 않기에, 스스로 복원될 수 없다면 주권자가 움직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것이 결국 희망이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외면할 여유가 없다. 무관심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주권자가 움직여야 한다는 말을 되새긴다. 이 사회의 끝이 절망이 아니기를, 다음 세대와 '우리'에게 내일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먼저 성장과 소멸을 압축적으로 겪었다. (...) 그들은 해답을 찾았다. 세계는 그들의 방식으로 조금 더 인류의 생존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250)".

p.16 정치가 소멸한 사회는 공동체의 소멸을 막을 수 없습니다. (...) '사회의 소멸에 정치의 소멸이 선행한다. 우리 사회가 소멸을 막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먼저 소멸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위기가 와도 정치가 살아 있다면 희망이 있다. 모든 것이 좋아 보여도 정치가 없다면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p.236 극단적 권력 투쟁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해 합리적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경쟁•협력하는 정치, 포퓰리즘과 팬덤을 넘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정치, 갈등을 드러내고 조정하고 화해시키는 정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놓고 숙고하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그것만이 소멸을 막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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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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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유행이 있는가. 언젠가는 사랑스럽게 굴라더니 또 언젠가는 또 사납게 쟁취하는 태도가 미덕이었다가 이제는 사랑하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좋아할 것들을 엄격히 가려내세요. 무엇보다 당신을 사랑하세요. 사랑해야만 합니다. 바야흐로 인류의 어느 시대보다 사랑이 넘치고 있지 않은가. '싫음'은 부끄럽다. 모났다. 감춰져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정말 모두가 서로와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고 있을까? '좋아함'을 목놓아 외칠수록, '싫어하는 마음'을 싫어할 수가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싫어하는 마음은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마침내 그에 비친 나를, 나의 내면까지도 들여다보고서야 알아챌 수 있는 게 아닐까.

p.8 무언가 이유 없이 싫어지는 날이면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대체로 거기에 있는 건 내가 가진 진실이다. (...) 미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할수록 사람을 더 잘 견디게 된다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다. 거기에는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p.26 사람들은 자주 오롯이 혼자서 삶을 해내야 한다고 믿는다.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나는 누군가의 삶 속에서 외부의 개입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 한 사람의 자립성은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로 망가지지 않는다. 때때로 그 영향은 한 사람을 지탱하거나 그의 내부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게 도와주고, 그건 그 사람이 누군지와 무관하지 않다.


누구나 한번쯤, 괜히 싫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를, 무엇을 미워하는 마음이 툭, 굴러나올 때가 있다. 금세 사라지지도 않고 성가신 소리를 내며 마음을 굴러다닌다. 언젠가는 스스로가 가장 미워 결국 앙다문 입을 하고 뚝뚝 울게 만드는 것들. 가만히 집어들어 살펴본다면 제법 많은 이름이 붙어있을지 모른다. 외로움, 그리움, 민망함, 슬픔 같은 것들.

그런 이유로 골이 패인 자리에 담겨있는 것을 들여다보노라면 차마 그 마음마저 그저 미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수많은 파편과 흠집을 보며 어디서 깨져왔는지, 어쩌다 멍이 들었는지. 그것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므로.

p.69 마르셀 프루스트는 모든 사물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문장은 꼭 그저 그럴 게 틀림없을 그 스탠드에 할머니가 있다는 것처럼 읽힌다. (...) 버려졌거나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가 있을 할머니의 스탠드를 상상한다. 우두커니 홀로 있을 스탠드를 상상하다 보면, 정말이지 나는 프루스트가 싫어진다. 망할 놈이 하필 그딴 문장을 남겨서 사람 마음을 따갑게 한다.

p.106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기실, 마음놓고 사랑하라거나 미워하라고 말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가라앉혀 들여다볼 시간을 주지 않는 탓이다. 눈 돌린 새에 엎어지고 쓸려가는 이가 수두룩한 탓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파하는 사람은, 슬퍼하는 사람은, 부끄러워하고 화를 내는 사람은 많은 경우에 부숴진 이들을 아파하고 그러모으다 사랑마저 손끝처럼 닳아버린 이다.

사랑과 행복이 간절한 세상에서 짧게 우는 사람들, 금세 일어서거나 소리마저 눌러 참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나 홀로 사는 세상이 아니라서, 어떤 마음은 영영 곁에 남아 꼭 떠나보낸 적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기에 다시 일어서거나 애써 웃어보일 수 있다. 한꺼풀 벗겨낸 '싫음' 아래에는 어쩌면, 이런 마음이 있다.

p.164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갖는 게 아니라 희생자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나눠가진다고 했다. 그 죽음에 뭐라도 했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죽음에 정말로 책임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거라고 했다. 그런 죄책감이야말로 타인의 고통에 심리적 유대감을 갖는 사람이라는 증거라는 거였다.

p.246 누군가 나를 지켜볼지 모른다고 느낄 때 불쑥 터져 나오는 것들이 있으니까. 괜찮아 보이려 애쓰다 보면 압력이 생겨나고, 그 압력은 마중물처럼 깊은 감정을 길어 올리니까. 제 머리카락을 뽑아 신을 엮고 싶을 정도의 그리움 같은 것을. 그는 그 신을 신겨주고픈 사람에게 웃는 낯을 보이려다 그만 울어버리고 만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삶에서, 조금 알고 많이 모르는 타인들을, 말끔하게 차갑게 멸균된 사랑보다는 모나고 뜨끈뜨끈한 '싫은 마음'을 너무 싫어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나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임을, 거기에는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언가를 싫어하는 마음이 드는 날이면, 서툰 사랑이 꿈틀대는 내 마음을 가만히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 서툴게 사랑하고, 쉽게 다치고 흔들리는 마음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어떨까. 이유 없이 싫어하는 마음을 그러모으면 나타나는, 희망의 형태를.

p.201 혼자 진지해온 이들은 점차 기대보다 제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거듭 인생의 쓴 맛을 보다 보면 삶의 지지분함을 처리하는 게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나는 나무를 보는 방식만으로도 지지분한 시간을 지나갈 수 있다. 그건 때로 살아간다는 것에 다름없다.

p.233 평범은 때로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한다. 누군가 서투르고 어색한 차림으로 거리에 나설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평소와 다른 오늘을 허락해주는 것. 그 승인은 그 애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 애가 기존의 자신보다 조금 더 멀리 가보도록 격려해줄 것이다. 그 애가 다시 그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더라도, 평범을 견디며 서서히 나아갈 만큼의 힘을 만들어줄 것이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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