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비커밍 어스 - 지구는 어떻게 우리가 되었을까
페리스 제이버 지음, 김승진 옮김 / 생각의힘 / 2024년 12월
평점 :
차가운 이성과 논리, 재현과 검증가능함을 절대가치로 받드는 현대과학에서 '어머니 지구', '살아있는 지구'라는 표현이 웃음거리가 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 오래된 별, 우리가 닿아본 것 중 가장 오래 존재해온 이 행성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지구는 그저 하나의 행성, 생명의 바탕에 불과한가?
그러나 어쩌면, 이 별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끊임없이 순환하고 있는 게 아닐까? 수많은 생물들과 피드백을 주고받으며, 지구는 생명이 되고 생명은 지구가 되는 과정을 이어온 게 아닐까?
p.44 대양과 대기에 사는 미생물처럼 지각 내부에 사는 미생물도 단순히 그 환경에 거주만 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을 변모시킨다. 지하의 미생물은 거대한 동굴을 파고 막대한 양의 광물과 귀금속을 집적시키며 지구의 탄소와 양분 순환을 조절한다. 어쩌면 미생물이 대륙의 형성에도 일조했을지 모른다. 미생물이 말 그대로 지상의 다른 모든 생명을 위한 ‘토대’를 놓은 것이다.
p.169 플랑크톤은 죽고 나서 오랜 세월이 지나서도 대양, 사막, 정글로 필수 영양분을 순환시키면서 계속해서 지구를 부양하고 구성하고 있다. 물에 떠다니는 세포에서 바다 아래의 돌무덤이 되기까지, 또 바람에 날리는 사막의 먼지가 되기까지, 영겁의 세월에 걸친 변모 과정에서 플랑크톤은 생명과 환경 사이의 호혜성과 지구의 영속적인 환생을 체현한다.
저자는 한때 조롱받았으나 최근에 와서 다시금 화두로 떠오르고 있는 생명과 지구의 공진화, 가이아 가설의 증거를 지구 전역에서 찾아낸다. 저 깊은 땅 속에서, 아마존 우림의 한가운데에서, 사라져가는 영구동토에서, 바다 한가운데에서. 탄소에서 박테리아, 미생물에서 해조류와 포유류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본다면, 어쩌다 딱 알맞게 생성된 지구라는 무대에 엄청난 우연의 연속으로 진화한 생물들이 배우처럼 등장해 살아가다 죽기를 반복해온 것이 아닐지 모른다. 지구상의 모든 생물은 배우인 동시에 직접 무대를, 아니, 세계 자체를 조성하고 때로는 극적으로 변화시켜온 주체일지 모른다.
여정 곳곳에서 마주한 자연은 숨막히게 아름답다. 이 거대한 순환은 그 자체로,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인간이 파괴하고 있는 것은 생명이다. 거대한 흐름이고, 순환의 여정이다. 태어나 살아가다 죽는 모든 것들은 이어져있다. 저 깊은 지하에서 끝없는 하늘과 아득하게 펼쳐진 바다와 강까지. 살아있다. 이 별과 우리는, 함께.
p.321 시스템 전체를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되는 종들의 네트워크가 선호될 것이고 시스템을 붕괴의 지점까지 훼손하는 종들의 네트워크는 단기적으로는 이득을 얻을지 몰라도 결국에는 스스로를 제거하게 될 것이다. 가장 회복력 있는 생태계, 도전과 위기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는 생태계가 가장 오래 살아남을 것이다. 또한 우리는 '지속성'이라는 현상을 지구 전체로도 확장해서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작 // 동하는 것은 지속성을 갖고자 하는 '의도'가 아니라 지속성을 향해 가는 '경향성'이다. 필연이 아니라 경향이 작동하는 것이다.
혹자는 말한다. 현재의 전지구적 멸종과 파괴는 이상한 일이 아닐지 모른다고, 다섯 번의 대멸종을 겪고도 지구는 스스로 회복되었다고, 종내에는 인간조차 멸종될, '여섯 번째 대멸종'이 도래한대도 아무튼 괜찮을 거라고.
그러나 저자의 말처럼, "우리는 지구의 거주자가 아니다. 우리 자체가 지구다".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곳을 넘어 우리 스스로를, 더 나아가 우리와 공존하고 있는, 그들 또한 지구일 수많은 생물들의 가능성을 송두리째 파괴하고 있는 셈이다.
어쩌면 지구는 다시금 회복할지 모른다. 우리가 그곳에 없을 뿐, 더이상 우리가 알던 세계가 아니게 될 뿐. 지구는 이대로 황폐화될 운명인가? 아니면 우스개처럼 '인간이 다 죽으면', 혹은 어찌저찌 알아서 회복될 것인가? 아니면 그 전에 어느 별로 다같이 이주라도 해야 하는가?
p.372 '지금 이곳에서' 일궈야 할 변화를 무시하고 인간에게 유의미한 시간 단위 안에 다른 행성을 테라포밍하겠다는 생각은 용서되지 않을 어리석음이다. 우리는 생명이 존재하지 않고 대기가 없는 암석을 새로운 지구로 만드는 데 필요한 수준의 기술적 발달과 생태적 이해에는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하지만 현재 우리에게 존재하는 하나의 살아 있는 행성, 그리고 우리가 발견한 바로는 유일한 살아 있는 행성을 보호할 역량은 분명히 가지고 있다.
이 책은 작금의 전지구적 위기를 부정하지 않는다. 대신, 생명 주체로서의 지구를, 그 일부로서의 인간이 회복시키기 위해 해야 할 일을, 멈춰야 할 일을 알고 있음에도 외면하고 있는 현실을 말한다. 지금의 위기를 외면하고 기적이나 탈출구만을 갈구하는 것은 엄청난 오만이라고.
'인류세'가 낯설지 않은 시대다. 인간의 흔적은 돌이킬 수 없는 파괴로 곳곳에 새겨지고 있다. 여기서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죽임당하고 있는 별에서 어떻게 돌아갈 자리를 찾을 것인가. 무엇을 해야할 것인가. 우리는 알고 있다. 할 수 있다.
p.32 우리 인간종을 더 큰 생명체의 일부로, 즉 지구적 심포니의 일원으로 보면, 우리가 지구에 가져야 할 책임이 명확해진다. (...) 우리가 무언가를 하지 않는다면 지구가 혼자서 스스로를 온전히 회복하는 데는 수십만 년, 수백만 년이 걸릴 것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지구는 우리가 알아 온 어느 지구와도 다른 세상이 될 것이다. 그 지구는 현대의 인간 문명도, 우리가 의존하고 있는 생태계도 지탱할 수 없는 세상일 것이다.
p.287 생명과 환경은 피드백 고리를 통해 반복적으로 서로를 변화시킨다. 생물은 행동과 부산물을 통해 주변 환경에 지속적인 변모를 일으키며 이는 자기 종의 후손 및 여타 종들의 운명에 중대한 영향을 미친다. 미생물이 구름을 만들 수 있다. 한 대륙의 숲이 다른 대륙에 비를 내릴 수 있다. 숨결이 행성을 흔들 수 있다.
*도서제공: 생각의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