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축 소멸 사회 - 압축 성장 대한민국은 왜 복합 위기의 길로 들어섰나
이관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2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소멸 위기 사회, 저출생, 혐오 범죄, 빈부격차, 주택난, 대규모 사기, 청년 실업, 자살률 최고치 갱신... 어지간한 디스토피아 세계관도 이렇게까지 총체적 난국에 처하지는 않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의 이름은 대한민국. 끔찍이도 안타까운 내 나라.

어지간한 사람 치고 현재 한국 사회가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이대로 가다간 정말 다 죽게 생겼다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 대격변을 각오하지 않고는 소멸 위기를 피할 수 없다는 것을 부정하는 사람을 찾기가 드물 것이다. 현재 한국의 지위는 어떠한가?

p.14 '압축 성장'에 성공했기 때문에 '압축 소멸'을 맞이한 것입니다. 우리는 전 세계 어떤 나라도 해내지 못한 극적인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 지금의 위기는 그 성공 때문에 일어난 일입니다. 지역이든 산업이든 교육이든 집중과 선택을 통해 효율성을 높여서 성공했는데, 그 효율성의 극단에서 우리는 갑자기 소멸의 위기를 맞은 것입니다.

p.151 이런 일들은 '민주주의'가 강제하는 것이 아니라, 민주주의라는 제도 안에서 '정치'가 스스로 풀어가는 것입니다. 민주적 선거의 결과를 놓고 정치적 역량이 발휘되는 시기가 바로 이때입니다. 정당과 정치인들 스스로가 결정하고 만들어 나가야 하는 범주의 일들입니다. 그러나 대통령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지금은 국민은 물론이고 언론도 어떤 변화를 기대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정치'적 발상 자체가 소멸해 버렸기 때문입니다.


천박함이 생존논리가 된, 되는대로 뜯어먹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지옥. 차별과 고립을 자처하면서도 과거의 영광을 놓지 못하는 어리석은 나라. 한강의 기적과 신흥 강국의 위상, 온갖 군데에 붙여 팔던 K-열풍의 단꿈에 잠겨 침몰하는 내 나라. 독재를 단결로, 억압을 평화로 착각해 있지도 않았던 '그리운 시절'을 돌려내라는 우리 사회. 부정할 수 있는가?

현재 한국 사회의 문제는 단순하지 않다. 모든 문제가 한 데 뒤엉켜있다. 한때는 발전과 부의 동력이었던 것이 소멸과 파괴를 재촉한다. 성장에 목 맨 나머지 제대로 된 정치체계를 구축하고 민주주의의 토대를 다지는 일은 등한시한 탓이다. 평등하고 공론장 구축에는 실패했고, 이름만 남은 공정과 자유가 모든 가치를 대변하는 꼴이다.

p.113 세대•성별 간에 결혼과 출산, 일과 가정에 대한 생각의 차이가 지난 10년 동안 전혀 좁혀지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모두가 여성이 일하기를 원하고 육아 때문에 그것이 힘들다는 점도 알고 있습니다. (...) 필요한 것은 여성이 출산 뒤에도 일할 수 있는 사회 인식의 변화와 이를 이끌어 낼 제도적 장치입니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말로만 저출산이 문제라고 하고 이런 부분을 고치려는 노력은 별로 하지 않았습니다.

p.198 자유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 정부에서 보여 주는 '자유'의 가치는 자유주의라고 말하기에도 많이 부족한 수준입니다. 취임식에서 언급한 사회적 자유, 공정으로서의 자유는 온데간데 없고, 1950년대 냉전 시기의 반공 자유주의만 남았습니다.


저자는 우리 사회가 '압축 성장' 시기를 지나 '압축 소멸'로 향하고 있으며, 나아가 '정치' 자체가 소멸할 위기에 놓였다고 지적한다. 정치권은 돈과 힘의 논리에 굴복하여 대의민주제의 기본 전제가 부정되고 있다. 정치주체로서의 시민은 소멸되고 팬덤과 주권에 등 돌린 자들만 남아 결국 '정치'의 개념 자체가 소멸되고 있는 상황이다.

모든 논의를 제치고 빠르게 덩치를 불린 만큼 소멸도 급속할 것이다. 사회를 지탱하는 토대와 기반이 무너지고 정치가, 사회가, 나아가 국가 자체가 소멸할 위기에 놓였다. 근본적 원인에 대한 고민과 대안은 커녕 당면한 과제를 해결할 능력조차 없어 보이는 우리 사회에는 냉소 외의 길이 없는가?

p.136 팬들은 특정한 정치인에 자기의 정치적 비전을 무조건적으로 투영하고 무리를 지어 그를 추종합니다. 성찰적 거리를 둘 여유가 없고, 옳고 그름보다는 이기고 지는 것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시민들은 다릅니다. 자신이 지향하는 정치적 가치나 생각이 다른 사람들과도 얼마든지 대화하고 설득과 타협, 조정과 배려를 통해 공동체의 방향을 함께 결정하려고 합니다. 상대를 적이 아니라 적수로 여기면서, 그들을 배제하기보다는 민주주의라는 게임의 룰을 지키며 선의의 경쟁을 하려는 것이 시민입니다.

p.234 지금 대한민국의 정치와 사회가 타락한 이유는 시민의 주권을 양도받은 세력들이 정치적 책임과 역사적 소명을 방기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 사람은 결국 시민들입니다. (...) 무한 경쟁의 세계에서 비참한 삶을 살아가고 그래서 다음 세대에게 희망 없는 사회를 물려줄지, 아니면 행복을 꿈꾸며 살 수 있는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어 나갈지를 시민 스스로 결정해야 합니다.


결국 해결은 근원적 대책에 있다. 우리 사회의 문제는 우리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치는, 권력은 그 자체로 형체를 갖지 않기에, 스스로 복원될 수 없다면 주권자가 움직여야 한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으며,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이제는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것이 결국 희망이요 가능성이기 때문이다.

외면할 여유가 없다. 무관심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주권자가 움직여야 한다는 말을 되새긴다. 이 사회의 끝이 절망이 아니기를, 다음 세대와 '우리'에게 내일이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한국이라는 나라가 먼저 성장과 소멸을 압축적으로 겪었다. (...) 그들은 해답을 찾았다. 세계는 그들의 방식으로 조금 더 인류의 생존을 지속시킬 수 있었다(250)".

p.16 정치가 소멸한 사회는 공동체의 소멸을 막을 수 없습니다. (...) '사회의 소멸에 정치의 소멸이 선행한다. 우리 사회가 소멸을 막지 못한다면 그것은 정치가 먼저 소멸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큰 위기가 와도 정치가 살아 있다면 희망이 있다. 모든 것이 좋아 보여도 정치가 없다면 언제든 위험에 처할 수 있다.'

p.236 극단적 권력 투쟁이 아닌 문제 해결을 위해 합리적 진보와 건전한 보수가 경쟁•협력하는 정치, 포퓰리즘과 팬덤을 넘어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정치, 갈등을 드러내고 조정하고 화해시키는 정치, 미래에 대한 비전을 놓고 숙고하는 정치가 필요합니다. 그것만이 소멸을 막는 유일한 방법일 것입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