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과 혁명 그리고 퀘스트 - 하드SF 단편선
위래 외 지음 / 구픽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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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사상은 한 끗 차이다. 아니다. 그 둘은 한 몸이다. 아니다. 그 둘은 뒤섞여 있다. 아니다. 평행선이다. 아니다. 감히 말해질 수 없는 것과 결코 드러나서는 안 될 것이다. 아니다. 전부 아니다. 세계를 부수고 뒤집어 엎어야만 간신히 알아챌 수 있는 것이다. 이 또한 아니다. 아니라고 말해진다.

알지 못하는 것은 말해질 수 없는가? 모른다는 사실마저 알지 못한다면 그것은 아는 것인가 모르는 것인가?

이른바 "하드 SF"와 "소프트 SF"를 구분하려는 시도는 숱하게 이어져왔다. "SF 장르의 팬"을 자처하는 이로서 감히 확신하건대, 그것은 모조리 실패, 또다시 실패, 어김없는 실패였다. 그 누구도 차지한 적 없는 왕좌, 자리하기 무섭게 냅다 밀쳐지고 밀려나는, 영겁의 난장판이라고 봐도 좋을만큼.

p.66 "감각수용체가 남아 있는 이상, 류진의 몸은 여전히 나를 사랑하고, 따라서 키메라 당신도 나를 사랑하게 되는 거야. 류진의 기억과 의식이 사라져도 혹여나 류진이 다른 무엇이라 하더라도 류진의 몸이 사랑하는 것이 나라는 건 바뀌지 않는 거야."


이 끝 모를 논쟁은 필연히 다음과 같은 의문에 뿌리내리고 있다. "도대체 SF는 무엇이란 말이냐". 이 또한 말 꺼내기 무섭게 전자 못지않은 설전에 맞닥뜨리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답하기를 포기한다. 그러므로 단 하나의 답을 내놓는다.

틀을 만들어내려는 우리의 시도는 모조리 실패했다고, 적어도 이 문제에서는, 한 손으로 벽을 짚고 따라가면 반드시 끝을 알 수 있다는 미로의 해법은 먹히지 않는다고. 이유는 단순하다. 세계는 출구와 입구가 정해진 미로가 아니기 때문이다.

p.243 그렇다면 이번은 과연 몇 번째일까. 역사는 변할 수 있을까. 우리는 언제까지고 똑같은 잘못을 반복하게 될까. 과연 더 나은 선택지가 존재할까.

p.306 네 말대로 시설에 들어갔다 치자. 그래서 시스템에 등록되면 이 아이도 너처럼 살 수 있나? (...) 하고 싶은 일하면서 독립적으로 살 수 있냐고. (...) 하지만 이 애는 시스템 바닥에서 겨우 목숨만 연명하며 살 거야. (...) 당장 죽지 않게 해 주는 거, 물론 고마운 일이지. 근데 그거면 되나? 사람이라는 게 정말 그거면 되는 거냐고. 먹고 싸고 자고…


작가가 그려내는, 그들과 독자가 살아가는 세계는 입구로 밀어넣어져 출구를 향하도록 생겨먹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밑도 끝도 모르는 채 덜렁 던져져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이 넓은 우주에, 초라한 행성에. 인간은 이곳에서 태어나고 죽기 때문이다.

여섯 편의 이야기, 주인공들은 저마다의 이유로 한계에 직면한다. 절멸에, 인간성에, 굴종에, 우연한 호기심에, 밀려나고 좁아지는 세계에. 그것은 각기의 이유로 현재와 다르지 않다. 줄곧 말해왔듯, 상상은 현실에 뿌리를 두기 때문에, 상상만큼 현실적인 것이 없기 때문에.

p.154 "의심의 여지가 없는 신앙은 영혼 없는 인형에 불과합니다. 그것이야말로 신성을 모독하는 일 아니겠습니까."

p.206 아니다. 과학은 신학이 결코 아니었고 그리 될 수도 없었으며 하물며 신이 되고자 하는 학문도 더더욱 아니었다. 그러나 인류는 이제 과학을 이용해 신이 되고자 하고 있었다. 악을 규정하고, 처단하는 심판자가.


그들은 좌절한다. 고민하고 부서지고 파괴된다. 수없이, 몇번이고, 난관에 빠지며. 이것은 영웅의 이야기가 아니다. 그들은 필연히 실패한다. 깨진 것은 부서질 수 있는 것. 울부짖는 인간은 일어서는 인간이다. 의심하는 인간, 유한한 존재. 그것을 인정하는 데에서 사랑은 혁명이 되고, 넘을 수 없는 벽에는 부서질 곳이 생긴다.

풀 수 없는 미로에도 필승의 해법이 있으니. 단 하나, 벽을 뚫고 나가는 것뿐이다. 탈출은 가둬진 자의 숙명이요, 길이니, 절망은 필연적으로 희망의 가능성을 담지한다. 신은 주사위 놀이를 하지 않는가? 독자는 거대한 절망에 눈을 감는가? 주저하는 인간, 벽 너머를 가리키는 손. 이 책에서 나는 희망을 본다. 폐허에서 도망치지 않는.

p.254 인간에게 역사는 바꿀 수 없이 반복된다고 체감되어 왔지만 그렇게 시나브로 변화해 왔던 것이었다. 매번 시간을 되돌리며 반복을 의심하고, 그에 쌓인 죄책감을 가늠하고, 가능성을 의심하면서, 결국 돌아가는 길을 선택할지라도 그 미세한 흐름이 모여 충분한 가치를 지닌 파랑이 되도록. 그날을 고대하며.

p.333 "자아, 얘기도 좋지만 우선 배부터 채울까요? 생물학적 원리든 뭐든, 밥을 안 먹으면 사람은 확실히 죽는다고요."


*도서 제공: 구픽(GUF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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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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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건, 혹은 그런 사람이라는 건 어떤 느낌일까. 어제까지의 세상을 도저히 믿을 수 없게 될 정도로 한순간에 뒤틀리는 경험을 한다는 건, 혹은 그런 경험이란 건 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때 잔잔한 내용의 영화만 골라 보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텅 빈 거실에 불을 끄고 앉아, 볼륨을 한껏 낮춰 들릴 듯 말 듯 틀어놓고. 아침에서 시작해 밤으로 끝나는, 대화보다 독백이 더 많은, 조용히 울고 소리없이 비명을 지르는 이야기들.

한때는 그런 영화가 쏟아져나왔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관계, 죽을 때까지 이해할 수 없는 타인. 일상에서도, 세계에서도 어딘지 어긋나고 겉도는 사람들. 유리된 이들. 어째서인지 일본 영화에 그런 내용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 너무 빨리 식고 너무 빨리 미끄러지며 어느샌가 듣도보도 못한 것이 자라있다. 이런 세계에 살아가는 일이 공포가 아닐 수 없다.

p.15 TV 피플은 내 존재는 처음부터 무시했다. 그들은 셋 다, 그곳에 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문을 열고, 텔레비전을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둘이 텔레비전을 사이드보드에 올려놓고, 남은 한 명이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았다.


무라카미의 작품에서 휴머니즘을, 따뜻한 응원을 읽는 독자도 있겠지. 부럽다. 나는 이 작가를 무서워하므로... 정확히는, 그의 시선으로 드러나는 세상이 너무도 무기질적이라 낯설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몸은 함께 있어도 마음은 닿지 않는다. 평온한 일상 아래에는 지울 수 없는 권태가 있다. 살갗을 맞대는 관계도 애정과 행복이 아닌 쾌락과 이질감으로 미끄러진다. 쉼없이 지껄이지 않는 혀는 굳어지고 말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이미 뒤틀려있다. 금가고 부서져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다. 거대한 연극임을 알아채고 박수를 보내거나 뒤를 돌아보는 관객, 독자까지도 그 일부에 불과하다. 『1Q84』과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보았던, 모종의 경멸과 불쾌감, 낯섦.

p.66 "사람 마음은 깊은 우물 같은 것 아닐까 싶어. 바닥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때로 거기서 떠오르는 것의 생김새를 보고 상상하는 수밖에."


지금 여기의 세계를 벗어나는 통로는 하늘도, 평야도 아닌 지하, 벽 틈, 아래와 사이로 빠져드는 곳에만 있다는 무력감. 그 뿌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의 창작론이랄지 인생관이랄지, 몇 번을 읽어도 손에 잡히지 않는 깊이는 차라리 심연에 가깝다.

인상깊게 읽었던 그의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찢어 비틀고, 현실-이면의 영역과 뒤섞어놓는 전개들에는 희미하지만 확실한 위화감이 있다. 바깥 너머에도 눈 앞의 품을 파고들어 완전히 뒤집어놓은 '내면'에도 경계가 없다는 것. 끝없이 펼쳐진 막막함에 안팎을 구분할 방도가 없다는 것.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세계를 담은 상자를 마구 흔드는 존재, 의 세계를 담은 상자를 마구 흔드는 존재, 의 세계를... 이런 식으로 이어지다 불현듯 뚝, 멈추고 차원 바깥의 독자를 응시하는 이야기, 그것은 이미 일종의 독자적 생명을 갖게 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가 담긴 세계를 마구 흔드는 존재의 이야기.

p.160 어제와 그제가 뒤바뀌어도 신기할 게 없다. 때로 무슨 인생이 이럴까 싶다. 그래서 허무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나는 그저 놀랄 뿐이다. 어제도 그제도 구별되지 않는 사실에. 그런 인생 속에 내가 들어와 삼켜져버렸다는 사실에. 내가 낸 발자국이, 확인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바람에 쓸려 지워지고 말았다는 사실에.


일종의 악몽이다. 비명조차 회수할 수 없는 고독이다. 부딪혀 돌아올 길이 없으니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모두가 마구 흔들리는 상자 안의 세계는 또다시 마구 흔들리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셈이다. 끝나지 않는다. 시작이 없으므로.

안다. 이것은 무라카미의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나'의 세계에서 내내 두려워하는 이방인이다. 그의 세계에 던져질 때마다 나는 적극적으로 낯설고 헤매는 이가 된다. 돌이 되고 안개가 된다. 침묵이 된다.

불평을 가장한 두려움의 고백은 이쯤 해두도록 하자. 작가는 말한다. 이 이야기들에는 "어딘가로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는 온기의 예감이 담겨있"다고. 재차 믿어보기로 한다. 캄캄하게 무너져내리는 고독, 외롭고 차가운 세계에서도 여전히 어딘가로 향하는 길이 있음을. 그가 그려내는 세계에는 줄곧 출구 아닌 '뚫고 나가는' 길이 있음을.

p.204 만일 죽음이 이런 것이었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죽음이란 것이 영원히 각성한 채 이렇게 꼼짝 않고 어둠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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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골동품 서점
올리버 다크셔 지음, 박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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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있다. 착각은 곤란하다. 책을 다루거나 읽는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데 익숙하고 굳은살이 배길 지경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아 글쎄요... 그것 참 어려운 질문이네...

이 휘황찬란한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구석에 처박혀 책을 읽는 사람, 그것도 종이책을, 한 술 더 떠서 오래된 책을 굳이 찾는 사람은 괴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숨가쁘게 내달리는 세상에 정지해있는 인간, 짜릿한 자극이 아닌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촉을 사랑하는 사람은, 솔직히 좀... 이상한 인간이 아닌가. (맞아요. 내 얘기니까 조용히 해...)

옷 좋아하는 사람이 옷가게를, 맛있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음식점을 찾듯 책이 '필요한' 사람은 서점을 찾는다. 개중 지금 여기에 놓여있지 않은, 시간의 흐름 어딘가 먼지를 뒤집어쓴 책을 찾는 사람은 책만큼이나 오래된 서점을 찾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참으로 아쉽게도, 한국에는 고서점이라고 할 만한 곳이 극히 드물다. 보통의 '서점'이 아닌 소수의 연구자들이나 꼭 그 책을 찾아야겠다고 전국팔도를 뒤지고 다니는 별종들에게나 알음알음 전해질 뿐이다.


하기사 매일같이 새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다 스캐너 갖추는 건 일도 아닌 세상이다. 전자책은 또 어떻고. 굳이 애써 오래된 책, 고리짝 책을 찾을 사람은 극히 드물다. 창고에서 갓 꺼낸 새 책을 집앞까지 배달해주는 세상에 낡고 바랜 책이야 무슨, 먼지보다 조금 나은 신세 아닌가.

우리 사회에는 오래된 가게가 드물다. 노포, 고서점... 품 많이 들고 일상과는 거리를 두는 것들에 유독 박한 사회가 아닌가. 그러나, 찾는 사람이 있다면 장소도 있는 법. 책도 그렇다.

희귀서적 취급, 고서점인지 골동품점인지 애매한 곳, 장난 아니게 희한한 손님들이 줄지어 오는 곳, 하지만 지지 않죠? 직원들도 만만찮게 고집 세고 해괴한 곳, 영국식 위트와 아이고 저런... 이 공존하는 곳, 소서런처럼.

p.146 책 판매인이라는 직업은 시시때때로 저주에 걸린 책과 만나는 일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유감스러운 것은 누구를 붙들고 이런 이야기를 해도 신빙성을 지지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회계 부서 또는 이사회의 연례 리뷰에서 설명하기도 대단히 어렵다. 재고 품목 중에서 일부를 실제로 판매할 수 없는데, 그 이유가 책을 사는 고객을 계속해서 죽여버리기 때문이라고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읽는 내내 궁금했더랜다. 어째서 모든 서점원의 기록에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않게 희한한 인간들이 매일같이 들이닥치는가? 팔겠다는 사람과 사겠다는 사람 중 한 쪽은 멀쩡할 법도 한데 대체 뭐가 문제인가?

서점은 결국 책을 파는 곳이다. 책을 '상품'으로 간주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있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여전히 책은 낭만을 담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과 수집하는 사람, 그들을 만나는 서점원들 또한 어떤 식으로든 책에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믿는다. (거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고 하면 너무 잔인한 말인가?)

p.18 이윽고 문이 닫혔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 끊임없이 들리는 거리의 소음에서 달아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가 서점이다.

p.201 충분히 오랫동안 '눈에 잘 띄는 곳'에 숨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서점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찬장 문 뒤쪽이라든지 책장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한때 누군가에게 중요한 물건이었다가 이제는 존재가 희미해진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야말로 오래된 서점이 지닌 매력의 본질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하나 골동품 아닌 존재가 없다는 것.


좋든 싫든 간에, 사람과 책이 있는 곳은 필연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맞닿는 곳이다. 잊혀진 것과 잊혀질 것들 사이에, 느리고 고요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머물고 싶은 이들이 서점을 찾는다. 그런 나날을 궁금해하는 이가 서점원의 기록을 들여다보는 기쁨을 누린다.

나, 오늘도 서점에 가리라. 온갖 해괴한 손님과 희한한 직원이 있는 곳, 소서런 같은, 헌책방으로, 오래된 책이 있는 곳으로, 종이와 활자가 곤히 잠든(혹은 도사린) 곳, 서점으로.

p.180 시간의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책이 결국 필멸하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 책을 금고에 넣어 단단히 잠그고 아무도 그 책을 감상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 책은 조금씩 먼지가 되어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 책을 불 가까이 두지 말 것, 책을 물웅덩이에 던지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책의 즐거움을 누리는 걸 잊지 않을 것.

p.296 우리는 모두 누구에게 책을 팔지를 선택하는 자신만의 선이 있으며, 그럴 때 우리가 하는 선택이 우리가 속한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희귀 서적 거래는 별개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수천 가닥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으며, 불온한 책이 온당한 곳으로 가는지 신경 써서 확인할 때마다, 혹은 혐오주의자를 서점에서 배제할 때마다 옳은 방향으로 한 발씩 내딛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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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밤
안드레 애치먼 지음, 백지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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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뭘까. 사랑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구질구질하게 만드나. 사랑의 순간은 끊임없이 묘사되어왔다.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꿈결같이, 때로는 절절하고 또 고요하게.

운명같은 사랑을 믿나요, 누가 내게 묻는다면, 코웃음을 치고 단칼에 부정하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마법같은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단 한 사람에게 쏟아지고,
태초부터의 모든 순간은 그 사람을 위해 이어져왔다고,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임을 예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그렇게 믿는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한겨울 크리스마스 파티, 모두가 반가움에 소리 높여 인사를 주고받는 가운데, 아무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숨어든 곳에서 운명을 마주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나또한 이 한 마디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고. "나 클라라예요".

p.15 우리의 목소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서 밝혀지고, 다른 사람의 손으로부터 움켜쥐어지고, 도저히 낯선 사람일 리 없지만 그녀가 낯선 사람밖에는 무엇도 아니기에, 오늘 밤 나는 네 삶과 삶의 방식에 네가 쓰는 얼굴이야. 오늘 밤 나는 너를 돌아보는 세상을 향한 너의 눈이야, 나 클라라예요 하고 말하는 시선으로 우리의 눈길을 붙드는 사람 때문에 끝내 실재가 되고 빛나게 된 우리의 삶.


대단히 오랜 시간도, 서로의 지난 삶을 귀띔해줄 접점도, 동화같은 순간도 타오르는 쾌락도 없는 일주일의 시간에 어째서 이렇게나 초조해지고 애달파지는 걸까. 그렇게 읽히기를 바랐기 때문일까. 우리의 세상에는 사랑받는, 마법같은 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까.

존재의 경계, 무엇으로도 넘을 수 없는 한계로 인해 우리는 타자를, 그의 세계를 갈망하고 하나가 될 수 없음에 좌절하게 된다. 영원히 알 수 없는 진심, 영원한 미지의 영역.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약자다. 어떤 사랑은 세계의 중심을 내어주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p.169 왜 나는 오늘 밤 이렇게 행복할까요? 나는 묻고 싶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와 사랑에 빠지고 있고 우리는 그게 벌어지는 걸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 둘이 함께. 슬로, 슬로모션으로. 누가 알겠어요? 당신은 묻는다. 내가 알죠.

p.307 나는 어쩌면 우리를 한데 모아준 것은 어떤 갈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똑같이 은신하고 싶어서 절박한 사람, 매우 적은 것을 바라고 상대가 절대로 바라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상당한 것을 내어줄 수도 있는 사람과 함께 은신하고 싶은 갈망.


기어코 빈 손을 내보이게 하는 것, 초라해지는 것, 키득거리는 웃음을, 잔인한 조롱을, 둘만의 속삭임을, 이해할 수 없는 벽과 속절없이 사랑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것, 그 모든 것이 두려움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여전히 너무도 사랑하는) 작가 맥스 포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고. 그러니 사랑에 대해 숙고하는 것은 죽음에 대해 숙고하는 것과 같다고. 살과 피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싶기에, 사랑은 곧 두려움이기도 하다고.

p.436 "왜 내가 당신을 믿지 않는데요? 말해줘요." "정말로, 정말로 내가 말해주면 좋겠어요, 빈달루 씨?" "네." "왜냐면 내가 당신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걸 당신은 아니까."

p.540 클라라. 나 거짓말하고 있었어요. 나는 실망하는 게 무섭지 않아요. 나는 내가 가질 자격이 없으면서 가지게 될 터라거나 매일 가지고자 분투하는 법을 배우기는커녕 가진들 뭘 할지 모를 터였을 것이 무서운 거예요. 그리고 맞아요. 당신이 나보다 나은 사람일까 봐 무서워. 내가 오늘 밤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내일 더 사랑하게 될까 봐 무서워. 그렇게 되면 내가 어디에 있게 되겠어요?


비단 물리적 죽음이 아닐지라도, 상실은 죽음과 맞닿아있다. 어떤 이를 삶에서 떠나보내는, 혹은 그렇게 되는 것은 그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상실의 공포, 자신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그러니 눈물로 얼룩지고 애원하게 되는 것, 그또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 한가운데서 드디어, 마침내 마주한 순간에, 다시금 아, 얼빠진 웃음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 아닐 리가 있나. 사랑받는 것, 사랑하는 것, 다시금 용기내어 손을 뻗는 것, 그 마법같은 순간. "이거 꿈만 같네요. 게다가 새해가 막 시작됐어요".

p.683 나는 그 단어를 한 번도 말하지 않지 않았는가? 눈에다가는, 밤에다가는, 공원의 동상에다가는, 내 베개에다가는 말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단어를 말할 것이다. 내가 당신을 놓쳐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클라라,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놓쳐버렸기 때문에, 내가 당신과 영원을 보았기 때문에, 사랑과 상실 역시도 틀림없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p.766 우리는 다같이 성 요한 대성당으로 갈 건데, 우리랑 같이 갈래요? 그리고 내가 답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 샴페인 잔을 내게 건넨다. 나는 그 손목을, 당신의 손목, 당신의 손목, 당신의 달콤한, 축복받은, 하느님이 내린 내가 숭배하는 당신의 손목을 알아본다. "이스트 아인 트라움, 이거 꿈만 같네요." 그녀가 말한다. "거기다 새해가 막 시작됐어요."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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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길 잘했어
김원우 지음 / 래빗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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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살다 이렇게 뻔뻔한 소설은 처음 본다... 아무리 "SF는 이왕 치는 뻥, 통 크게 쳐야 제 맛"이라고 말해왔다지만 이렇게까지 냅다 던져놓고 왜요? 불만있어요? 사측이세요? 하는 건 처음 봤다는 말이다.

기가 막히게 웃기고 찌질하고 나약한데다 쉴 새 없이 삐끗하는 게 아주… 절로 얼굴을 붉히게 하는 주인공들, 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결국에는 해야 하는 것, 포기할 수 없어 다시금 돌아서고 일어서야 하는 길을 알고 있다는 것, 수없이 다치고 깨져도 사랑했음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을 믿는다, 사람이 가진 마지막의 마지막, 그 희미한 가능성을 믿는다고 항상 말한다. 그것은 어떤 초인이나 대단한 영웅적 능력이 아니며 선명하고 흔들림없는 의지도 아니다. 오히려 후회하고 당장의 욕심과 두려움에 쉴새없이 흔들리는, 부서지기 쉬운 마음이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p.11 21세기에 태어난 저 아이들은 죽음과 텔레비전에 대한 내 말을 이해할 수 없겠지. 텔레비전이 꺼질 때 가늘고 긴 하얀빛이 반짝인다니. 저 아이들은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어지러이 점멸하는 우주배경복사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138억 년 전에 태어난 그 빛. 디지털 텔레비전에서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빛.


수없이 말해졌듯이, 세상은 더럽고 희망은 연약하다. 어떤 목숨은 너무 쉽게 사라지고 어떤 삶은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부서진다. 소란스럽고 분주한 세상에서 조용하고 소심한, 좁은 길로 흘러가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손쉬운 길은 일하다 죽는 사람의 피로, 무고한 사람을 가두는 밀실로,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의 눈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진부하고 처량맞을 정도로 연약한 희망을 놓지 못하는 것은, 게다가 때때로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가 되는 까닭은 대체 무엇인가.

p.124 "사고가 나면 길이 막히는 이유 중 하나는 사고 현장 옆을 지날 때 사람들이 속도를 늦추기 때문이잖아요. 서로의 안전을 위해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단지 구경을 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기도 하더라고요."

p.278 이 세상은 엉망이고 나아질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아. 고장난 건 핸들인데 사람들은 자꾸 바퀴만 고치려고 들어.


거대하고 무자비한 폭력, 이해할 수도 그러고 싶지도 않은 악의와 "레귤러와 노말의 세계 "에서 밀려났다는 수치심, 패배감. 그 모든 것들을 "사랑의 힘!"으로 물리칠 수는 없겠지만, 기껏해야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 하다 찌그러져선 한동안 이불이나 차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다고 울며불며 발을 구르다가도 멈칫하게 하는 것, 차마 어떻게 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돌아서게 하는 것, 조금쯤 유치하게 으쓱이도록 하는 것, 결국에는 똑같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 그 모든 것의 이름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나는. 인간의 것만이 아니더라도.

p.165 생각이 굳어지면 집착이 된다. 현실은 파도 앞의 모래성이고 생각은 수십 년에 걸쳐 건설된 대성당이다. 내부에 침범하는 것들을 신성모독이라도 당한 것처럼 거부한다. 그 단단한 벽이 무너진 이유는, 맞아. 그랬지. 등 떠밀려 시작된, 연민이나 동정에서 시작된 사랑은 잘못된 걸까. 완전하지는 않지만 거짓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p.380 두렵지 않은 것들도 생겼어. 더 이상 유령이 무섭지 않아. 나이가 든다는 건 죽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겁에 질리기에 앞서 반가운 얼굴이 아닐까 기대하게 된다는 것 같아.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지 않아. 나를 두렵게 하는 사건들을 꾸미는 인간들이 두렵지 않아. 그저 화가 날 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영웅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단한 힘을 지닌 "주인공"도 없고, 다들 눈물 콧물 아이고 두통이야 하기 바쁘기만 하다. 그러나 이것은 영웅의 이야기다. 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바닥부터 기어올라갈 것이다. 밟고 일어서기 위함이 아닌, 손을 내밀고 맞잡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느다란 심지같은 것, 끊어지고 부러질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 것, 희망, 사랑, 구닥다리 낭만, 부질없는 것. 그래. 이 작가의 글에는 낭만이 있다. 초라하고 구질구질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는 것,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로 그것으로 산다. 차마 포기할 수 없는 것들로.

p.86 "미래 씨. 우리는 실패했어요." 그리고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그래서 그 실패를끝이 아닌 하나의 과정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두통은 사라졌다. 멀리서 시작된 함성이 이내 거리를 휩쓸었고 바라는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기는 걸음들이 이어졌다.

p.254 원래 그런 건 없다. 현재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다. 내가 미래를 고를 수 있다면 모든 게 뿔뿔이 흩어져서 밤하늘에 별도 없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미래보다는 개들이 뛰어노는 미래를 고를 것이다.


*도서제공: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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