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골동품 서점
올리버 다크셔 지음, 박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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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있다. 착각은 곤란하다. 책을 다루거나 읽는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데 익숙하고 굳은살이 배길 지경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아 글쎄요... 그것 참 어려운 질문이네...

이 휘황찬란한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구석에 처박혀 책을 읽는 사람, 그것도 종이책을, 한 술 더 떠서 오래된 책을 굳이 찾는 사람은 괴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숨가쁘게 내달리는 세상에 정지해있는 인간, 짜릿한 자극이 아닌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촉을 사랑하는 사람은, 솔직히 좀... 이상한 인간이 아닌가. (맞아요. 내 얘기니까 조용히 해...)

옷 좋아하는 사람이 옷가게를, 맛있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음식점을 찾듯 책이 '필요한' 사람은 서점을 찾는다. 개중 지금 여기에 놓여있지 않은, 시간의 흐름 어딘가 먼지를 뒤집어쓴 책을 찾는 사람은 책만큼이나 오래된 서점을 찾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참으로 아쉽게도, 한국에는 고서점이라고 할 만한 곳이 극히 드물다. 보통의 '서점'이 아닌 소수의 연구자들이나 꼭 그 책을 찾아야겠다고 전국팔도를 뒤지고 다니는 별종들에게나 알음알음 전해질 뿐이다.


하기사 매일같이 새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다 스캐너 갖추는 건 일도 아닌 세상이다. 전자책은 또 어떻고. 굳이 애써 오래된 책, 고리짝 책을 찾을 사람은 극히 드물다. 창고에서 갓 꺼낸 새 책을 집앞까지 배달해주는 세상에 낡고 바랜 책이야 무슨, 먼지보다 조금 나은 신세 아닌가.

우리 사회에는 오래된 가게가 드물다. 노포, 고서점... 품 많이 들고 일상과는 거리를 두는 것들에 유독 박한 사회가 아닌가. 그러나, 찾는 사람이 있다면 장소도 있는 법. 책도 그렇다.

희귀서적 취급, 고서점인지 골동품점인지 애매한 곳, 장난 아니게 희한한 손님들이 줄지어 오는 곳, 하지만 지지 않죠? 직원들도 만만찮게 고집 세고 해괴한 곳, 영국식 위트와 아이고 저런... 이 공존하는 곳, 소서런처럼.

p.146 책 판매인이라는 직업은 시시때때로 저주에 걸린 책과 만나는 일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유감스러운 것은 누구를 붙들고 이런 이야기를 해도 신빙성을 지지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회계 부서 또는 이사회의 연례 리뷰에서 설명하기도 대단히 어렵다. 재고 품목 중에서 일부를 실제로 판매할 수 없는데, 그 이유가 책을 사는 고객을 계속해서 죽여버리기 때문이라고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읽는 내내 궁금했더랜다. 어째서 모든 서점원의 기록에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않게 희한한 인간들이 매일같이 들이닥치는가? 팔겠다는 사람과 사겠다는 사람 중 한 쪽은 멀쩡할 법도 한데 대체 뭐가 문제인가?

서점은 결국 책을 파는 곳이다. 책을 '상품'으로 간주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있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여전히 책은 낭만을 담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과 수집하는 사람, 그들을 만나는 서점원들 또한 어떤 식으로든 책에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믿는다. (거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고 하면 너무 잔인한 말인가?)

p.18 이윽고 문이 닫혔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 끊임없이 들리는 거리의 소음에서 달아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가 서점이다.

p.201 충분히 오랫동안 '눈에 잘 띄는 곳'에 숨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서점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찬장 문 뒤쪽이라든지 책장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한때 누군가에게 중요한 물건이었다가 이제는 존재가 희미해진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야말로 오래된 서점이 지닌 매력의 본질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하나 골동품 아닌 존재가 없다는 것.


좋든 싫든 간에, 사람과 책이 있는 곳은 필연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맞닿는 곳이다. 잊혀진 것과 잊혀질 것들 사이에, 느리고 고요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머물고 싶은 이들이 서점을 찾는다. 그런 나날을 궁금해하는 이가 서점원의 기록을 들여다보는 기쁨을 누린다.

나, 오늘도 서점에 가리라. 온갖 해괴한 손님과 희한한 직원이 있는 곳, 소서런 같은, 헌책방으로, 오래된 책이 있는 곳으로, 종이와 활자가 곤히 잠든(혹은 도사린) 곳, 서점으로.

p.180 시간의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책이 결국 필멸하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 책을 금고에 넣어 단단히 잠그고 아무도 그 책을 감상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 책은 조금씩 먼지가 되어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 책을 불 가까이 두지 말 것, 책을 물웅덩이에 던지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책의 즐거움을 누리는 걸 잊지 않을 것.

p.296 우리는 모두 누구에게 책을 팔지를 선택하는 자신만의 선이 있으며, 그럴 때 우리가 하는 선택이 우리가 속한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희귀 서적 거래는 별개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수천 가닥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으며, 불온한 책이 온당한 곳으로 가는지 신경 써서 확인할 때마다, 혹은 혐오주의자를 서점에서 배제할 때마다 옳은 방향으로 한 발씩 내딛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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