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성 맛집 산책 - 식민지 시대 소설로 만나는 경성의 줄 서는 식당들
박현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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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세상에는 그런 사람들이 있다. 빨간머리 앤의 빨갛고 달콤한 산딸기주의 맛을, 유난히도 운수 좋던 날 김첨지와 인력거꾼들이 주워삼키던 노포의 안주 맛을 상상하며 입맛을 다시는 부류. 대개 먹보, 정도로 일축되는 그들의 상상은 미시사, 문화사라는 이름의 창이 되기도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어느 시대건 문학은 당대의 현실을 반영하기 마련이다. 더욱이 상대적으로 세부적인 묘사가 가능한 소설의 경우에는 의도와 관계없이 독자를 현장으로 끌어들이고 만다.


이 책은 조선이 대한제국이 되었으되 다시금 제국의 식민지 조선반도가 되어 이름조차 뺴앗겼던 때, 바로 그 때를 주목한다. 특히나 그 시대에 창작된 소설과 각종 광고 기사들을 통해 현재의 지명과 대조함으로서 서구화된 일본과 유럽식 소비 문화가 조선 민중에게 미친 영향, 조선이 확장된 일본 영토로 여겨지던 때의 부유층의 생활, 선망되던 문화를 살펴본다.

뿐만 아니라 이른바 ’소울 푸드‘로 일컬어지는 설렁탕, 피지배계층의 외식 문화, 냉면과 국밥, 백화점과 조선호텔, 마지막으로 청요리와 일본식 서민 음식인 우동 그리고 덴푸라까지. 가히 번쩍이는 시가지부터 뒷골목 시장통까지 아우른다고 할 수 있겠다.

p.304 순호는 냉면 먹을 생각에 전차에서 서둘러 내리려다 ‘패스’를 ‘냉면’이라고 잘못 말한다. (...) 원래 말하려 했던 ‘패스’는 기자증 정도 되는 것인데, 전차는 무임승차가 가능했고 열차를 탈 때는 상등칸을 이용할 수 있었다. 순호는 요금을 패스로 대신한다고 말하려다가 그만 ‘냉면’을 외쳐버린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이 단순히 미식 명소를 찾아다니는 내용이었다면 이렇게까지 무거울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새하얀 식탁보, 이름도 낯선 음식들, 정원이 딸린 일본식 가옥과 커피향이 짙게 깔린 다방, 호화로운 가격표...

그와 대조되는 식민지 조선 민중의 일상은 한 달 벌이를 몽땅 털어넣어도 식사 한 번 엄두낼 수 없고, 조선 땅에 지었으되 조선 음식은 없는 고급 식당이 늘어선 시가지 뒷골목의 파리 날리고 기름 쩐내가 나는 허름한 전포와 인력거꾼, 고된 노동에 시달리는 나이어린 여공의 빈곤에 가깝다.

p.189 화려하고 세련된 모습으로 단장한 가네보 서비스스테이션은 (...) 모던보이, 모던걸들을 유혹할 세련되고 고급스러운 옷과 소품만이 가득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그곳에 전시된 상품들은 열악한 근무 조건과 저임금에 시달리는 식민지 조선의 여직공들이 힘겹게 만들어낸 것들이었다. 아무리 고급스러운 상품이었다고 할지라도 거기에는 하루에 30~35전을 받으면서 12시간을 일해야만 했던 직공들의 땀과 눈물이 어려 있었다.


낯선 것의 설레임과 환상 뒤에는 당장 살아내야 할 현실과 식민지배의 설움이 있었다.

인용된 소설 속 인물이 고급 요정에서 밀담을 나눌 때, 말쑥하게 빼입은 남녀가 레스토랑에 마주앉아 볼을 붉힐 때, 능숙한 솜씨로 점원에게 코스메뉴를 주문할 때, 식비를 털어 찻값만 겨우 내고 떠날 때, 독자는 소설 속 세계 한켠에서 조용히 입맛을 다시는 것으로 시작해 당시의 첨단 유행과 입이 떡 벌어지는 가격표에서 빈부격차를 읽어낼 수 있는 것이다.


p.70 미쓰코시백화점 식당에서는 각종 요리를 비롯해 과일, 음료도 판매했다. 서양요리나 일본요리뿐만 아니라 커피 맛으로도 경성에서 1, 2위를 다투었다고 한다. (...) 이곳에서 파는 음식 가운데는 서양음식, 일본음식, 심지어 중국음식까지 있었지만 조선음식은 없었다. 화려하고 고급스러운 백화점에 자리 잡은 식당이었지만, 이곳에서도 식민지라는 멍에가 작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p.367 식민지 시대 조선인들이 받았던 평균적인 급여를 살펴보면 그 가격을 더 잘 실감할 수 있을 것이다. 급여가 얼마나 되면 조선호텔 식당의 정식을 사 먹는 데 부담이 없었을까? 조선호텔 식당의 저녁을 기준으로 하면 (...)화장품 외판원이나 가게 점원이 한 달 내내 번 급여는 정식 3~4번을 먹을 수 있는 돈에 불과했다. 급여가 아니라 식비로 한정하면 그 가격을 더욱 분명히 실감할 수 있다. (…) 그렇다면 조선호텔 식당의 정식 가격은 서민들의 한 달 식비보다 더 큰 금액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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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스트 듀엣
김현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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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오래된 말이 있다.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 처음부터 지금까지 지독히도 잔인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잔인하지만, 필요한 말이라고. 처음에는 그저 애도는 그쯤 해두고 기억 밖으로 밀어내야 한다는 뜻으로, 지금에 와서는 살아서 해야 할 일이 있다고, 그러니 슬픔에만 빠져있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이따금 살아남은 자의 슬픔, 을 소리내어 말해본다. 모두가 죽은 세상에 남겨진 사람은, 설령 그 모두가 전부가 아닐지라도, 수치심을 느낀다는 생각을 한다. 살아남은 자의 슬픔, 부끄러움. 나의 삶이 아닌 ‘살아남은’ 나의 삶을 살아 버티기.

사는 일은 본질적으로 외롭다. 그러나, 차마 그만두지도 못하게 남겨진, 살아남은 자의 삶은 이루 말할 수 없이 외롭다.

p.167 계획을 세우고, 계획한 대로 실행하고, 계획을 수정하고, 보완하면서 계획에 가깝게 계획을 마무리하면서, 그날 이후로 수영은 수영의 삶이 아니라 ‘혼자‘ 살아남은 수영의 삶을 살았다.


다른 작품에서는 어땠는지 모르겠으나 적어도 이 책에서 드러나는 작가 김현의 세계는 모호하고 불분명하다. 이야기의 안팎이, 배경이, 시점이, 경계가 확실하지 않다. 발 아래 딛고 선 자리마저 물러지고 부서지고 흔들리는데...

오로지 딱 하나, 부정할 수 없는 것이 있으니, 살아있는 사람이, 여기에,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억으로 남아, 지워지지 않고 존재한다는 것이다.

p.67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 (...) 왜 하필 그런 문장이었을까. 다른 것도 아니고 어째서 무너지고 무너졌다는 말을 우리는 붙들고 있었을까. 주미는 왜 그렇게 일찍 인생은 이룩되는 것이 아니라 무너지는 것이라고 깨쳤을까.

p.84 서서히 빛을 잃어가는 존재를 그저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해도, 당신 역시 쉬이 눈 감지 말기를. 인생은 언제나 무너지기 일보 직전이니까. 상민은 낮은 목소리로 읊조렸다.


앞서 말했듯 이야기의 안팎이 불분명한 탓에 연작인지 아닌지, 에세이인지 아닌지 자꾸만 헷갈려 연신 목차를 넘겨다보며 읽었다. 그러나 마지막 책장을 넘길 떄쯤 불현듯 깨달았다. 그것에 의미가 있는가?

다른 시간, 다른 장소를 살아가는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일지라도 한 데 엉겨있는 것처럼 느껴진다면 결국 그들의 삶이, 나아가 우리의 삶이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사실, “요즘 사람”들의 구질구질한, 땀내 나고 쪼들리는 이야기를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다. 나의 현실, 내 또래와 주변인들이 당면한 가난과 차별, 지긋지긋하게 마주하는 어려움을 마주하는 일이 기꺼울 리가 없지 않은가.

p.103 말이 말이 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자신도 모르게 그냥 하는 말이란 없다. 그냥 하는 말이 자신의 말일 뿐.

p.114 형석은 사과할 자격을 잃어버리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자신을 만만히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고, 승우는 사과하지 못했음을 평생 기억하는 사람이야말로 누군가를 만만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그 티끌 모아 티끌 인생이 이야기를 자꾸만 찾게 되는 것은 아 그래, 알지 이거, 하며 덜컥 비틀대는 마음을 너무도 잘 알기 때문이다.

작은 이야기에도 더 작은 사람이 여전히 살아 발버둥치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사람을 내모는 세상에 여전히 사람은 사람을 살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작은 믿음을 남겨둔다. 사는 일은 본질적으로 외롭다. 그러나 그 외로움의 존재와 그것이 모두의 삶에 내재해있음을 깨달을 수 있는 가능성, 그것이 연약한 인간종을 살아남게 한다. 살아있는 것은 모두 외로우나, 모든 순간에 죽을 만큼 외롭지는 않다, 고.

p.252 -보고 싶어. 무서워, 미안해, 라는 말보다 한 글자가 더 많은 말. 그러니까 뭐가 더 있어도 있겠지 싶은 말. 철희는 한 글자가 더 많은 말의 힘을 믿었다. 믿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서. 그러면 정말 무서운 일이 벌어질 것 같아서. 그것이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말이라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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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리의 일곱 개의 달
셰한 카루나틸라카 지음, 유소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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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인플루엔셜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숨쉬는 것으로 태어나 사람으로 죽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우리는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쉴 곳을 찾지 못한 이들은 어느 곳을 떠돌다 마침내 흘러가는가.

세상에 정의가 존재하는가? 어느 밤 갑작스러운 총소리, 비명과 흐느낌만을 남기고 영영 자취를 감춰버린 이들은 이름과 몸을 박탈당하고 어디에 버려졌을까? 만일 생전의 삶 이후에 아주 조금의 기회를 얻는다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해원(解冤)은 무엇으로 성취될 수 있는가.

p.35 너는 보통 사람보다 시체를 많이 보았고 영혼이 어디로 가는지도 늘 알고 있었다. 촛불을 눌러 끌 때 불꽃이 가는 곳, 말이 입에서 나오는 순간 그 말이 가는 곳이다. (…) 그들은 아무 데도 가지 않았다. 있었다가, 그저 없어졌을 뿐이다. 각자의 초에 심지가 다할 때 우리 모두 그럴 것이다.


작가는 자신의 나라에서 벌어졌던, 청산되지 않은 역사를 배경으로 했다고 한다. 그 또한 한국의 존재를, 기적으로 불린 변화를 알고 있다고 한다. 이곳에서 빈국으로 조롱당하는 그 나라에서 얼마 전까지 한국은 가난의 상징과도 같았다고 한다.

이제는 우리가 그들을 안타까워한다. 내전과 부패, 독재로 파괴된 사회에 혀를 찬다. 그들에게는 희망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대체 그들과 우리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는가. 우리에겐 작가가 그려보이는 참상이 존재하지 않았다고, 있었다 한들 지나간 이야기라고 털어버릴 수 있는가.

작중 사건들이 오롯이 허구가 아님에 기가 막혀 차마 입을 뗄 수가 없었다. 읽는 내내 사람이 사람으로 여겨지지 않는, 쉽게 죽고 사라져도 되는 존재가 있다고 믿어지는 참상에 화가 나서 이를 악물지 않을 수 없었다.

p.279 "우리는 저 사람들보다 정부군이 더 무서워요. 정부군이 우리 마을을 불태웠어요." 이제 학교를 갓 졸업한 것 같지만 소년병으로 분류되기에는 커버린 소년이 말했다. (…) 이 전쟁은 끝나지 않을 거다. 너는 마을 사람들이 총 쏘는 광경을 지켜보면서 생각했다.


문득 정신이 들었는데, 내가 죽었단다. 그건 알겠는데 당신은 누구...인지도 알겠는데, 그래서 여긴 어디인가요. 나는 어떻게 되나요. 이야기는 그렇게 시작된다. 밑도끝도 없이, 당황스럽게, 내던져진 것처럼 무력하고 혼란스럽게.

분노와 절망 앞에 (살아있는 사람이었으나 이제는 유령이 된) 사람들은 제각기 다른 반응을 보인다. 체념하고 등을 돌리기도, 원한에 잡아먹히기도, 정의와 복수라는 이름으로 또다른 학살을 정당화하기도 한다. 그 앞에서 주인공은 이야기의 시작처럼 혼란스럽고 무력할 따름이다.

점점 드러나는 죽음의 진상, 주인공 말리 알메이다의 삶, 그의 깊숙하고 진실된 면모를 따라가는 여정에서 독자는 기쁨보다 막막함을, 두려움을 느끼게 될 것이다. 악은 건재하다. 권력을 등에 업어 힘이 세다. 살아있는 이들은, 나처럼 죽어 잊혀지게 될 이들은, 미처 끝맺지 못한 일들은 어떻게 되는 걸까.

p.331 한때 가슴이 있던 자리에서 찌르는 듯한 아픔이 밀려오고, 눈에 보이지 않는 팔이 쑤신다. '10점 만점'이라는 제목의 봉투 안에 든 모든 사진이 떠오른다. 남이 훔칠 가치는 가장 적으나 그 어떤 사진보다 더 보호해야 할 사진, 네게 그 사진들은 그런 것이다.


이따금 말한다. 난세의 영웅이 기껍지 않다고. 모든 것을 짊어진 한 인간과 무너져내리는 세계에 가득한 고통은 아름답지도, 행복하게 끝나지도 않는다고.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차마 저버리지 못하는 마음, 울며불며 돌아서는 나약함, 오직 그 가능성만을 믿을 수 있을 뿐이라고.

수많은 영화나 활극에서와는 다르게 그는 무결하지도, 상냥하고 건실하지도 않다. 오히려 어디서나 흔히 찾아볼 수 있는 구질구질하고 조금은 치사하기까지 하다. 그러나 그는 누구보다도 정의로웠다. 자신이 목도한 것을 외면하지 않았다, 쉬이 사라질 목소리를 결코 잊지 않았다.

골치아프고 제멋대로에 가볍기 짝이 없었던 난봉꾼, 타고난 승부사, 뻔한 패배에도 좌절하지 않고 자기 자신마저 판돈으로 내거는 이, 사랑하기를 멈추지 않은 사람. 끔찍하고 서러운, 진창 한가운데 더렵혀지고 찌들어있는, 누구보다도 인간이었던 말리. 그가 존재했음을 이다지도 찬란하게 보여줄 일인지.

p.366 게다가 퓰리처 상은 미국인에게만 수여한다. 인도네시아 대학살을 후원한 CIA의 모국, 몰디브 남쪽에 해군기지를 가지고 있는 국가, 이 낙원이라는 땅의 소위 궁전이라는 곳에 심문관 훈련 조교를 보내 주는 국가의 국민에게만.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이전처럼 묻혀 잊혀지는 것처럼 보이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고, 더는 숨길 수 없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말하는 이야기의 마지막에서 독자는 다시금 주인공을 마주하게 된다.

어깨를 으쓱이며 천연덕스럽게 웃는 그, 익명의 원혼들에게 비로소 약속할 수 있게 된다. 산 사람이 살아서 해야할 일을 하겠다고. 잊지 않겠다고.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않겠노라고.

그리하여 이 조각난 기억과 간접진술로 가득한 이야기의 의미를 마주한다. 무명의, 사라진, 알지 못하는, 불완전한 이들을 향한 애도, 살아 남겨진 이들이 감당해야 할 상실의 고통에 대한 위로이다. 그들이 이곳에 존재했으며 우리는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는 최후이자 최초의 선언.

p.507 우리는 모두 자신의 삶을 바칠 쓸데없는 명분을 찾아내야 한다. 그것조차 없다면 왜 굳이 숨을 쉬는가? 돌아보면, 일단 자기 자신의 얼굴을 보고 눈의 색깔을 알아보고 공기를 맛보고 (…) 우리가 삶에 대해 할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말이 그것이기 때문이다. 삶은 결코 아무것도 아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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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테랑의 몸 - 일의 흔적까지 자신이 된 이들에 대하여
희정 글, 최형락 사진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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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타인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일은 즐겁다. 때로는 몸을, 때로는 말과 행동을 통해 그가 거쳐온 시간의 흔적을 더듬어보는 일은 즐겁지 않을 수가 없다. 몸에는 흔적이 남는다. 어떤 동작을, 태도를, 말로 표현되지 않는 무언가를 요구하는 일들은 강줄기에 물길이 남듯 몸에도 흔적을 남긴다.

그러니 노동이 남긴 삶의 궤적, 태도와 몸가짐이 되는 그것을 가만히 따라가는 일은 늘 생경한 세계를 마주하는 것과 같은 놀라움이 아닐 수 없다.

p.304 자기 일에 부끄러움이 없는 사람이 베테랑이라면, 우리는 우리가 무엇이건 베테랑에 도달하기 쉽지 않다. 우리가 쓰는 사물(도구)과의 관계 맺음으로 시작해서 타인은 물론, 살아가는 터전까지. 우리는 노동을 매개로 이 모든 것과 관계를 맺고 있기에, 그 관계들 사이에서 자유롭기가 어렵다. 자유롭지 않으니 부끄러움은 늘 공동의 것이다. 자주 부끄럽다. 부끄럽지 않기 위해 쓴다. 그린다. 일한다. 노동한다. 무엇이건 시도한다.


한 분야에 뿌리내리고 살아온 이들의 지혜가 있다. 학술적 지식과는 다르다. 몸으로 배워낸, 시간과 노동으로 터득한 단단한 삶의 태도가 있다. 내게는 이 책을 읽는 경험이 12인의 베테랑들이 그들의 삶에서 긴 시간 공들여 빚어낸 지혜를 경청하는 것과도 같았다.

새하얀 셔츠를 빼입고 우러름을 받는 일이 아닐지라도, 번듯한 사무실이 아니라 땀흘리는 현장에서 하루를 보낸다고 할지라도 귀하지 않은 직업이 없다고, 그것을 온몸으로 증명해내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절로 고개가 숙여진다. 나의 오늘에 최선을 다하고 싶어진다.

p.326 좋은 터가 되기 위해 자신의 몸을 도구로 쓰지 않는다. 타인의 시선으로 자신의 몸을 교정하려 하지 않는다. 터전이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동시에, 마냥 웃음 가득한 회고나 어떤 성공 신화 비슷한 것으로 치부할 수만은 없다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들이 어떤 대의를 위해 굳이 그 일을 선택한 것이 아니지 않던가? 그렇다면 이들을 산업영웅, 고된 일 하는 사람, 자식한테는 안 시킬 일 하는 사람 정도로 치부해 박수 몇 번에 흘려보낼 수 있던가? 그래도 되는 걸까, 정말?

그들이 자신의 시간과 노력에서 보람을 찾았다고 한들, 본인 아닌 그 누구도 삶 혹은 생계라는 거친 문제에서 떼내어 말할 수는 없다. 그것은 그들을 주체에서 객체의 자리로 떠밀어버리는 것과도 같다. 이름과 자리를 빼앗는다. 지독한 모욕이요 경멸이다.

p.212 매일 눈 맞추는 존재가 인간에게 오롯이 수단으로만 여겨질 순 없다. 무엇이든 서로 주고받는다. 노동을 구성하는 이들끼리 맺는 관계가 있다. 그 관계마저 노동을 구성한다. 그 관계의 자리에 비인간 동물도 자리하고 있다.


여기서 만나는 12인의 노동자들, 그들의 일은 사회의 정점이나 주인공의 자리에서는 조금쯤 비켜서있다. 그러나 그들은 분명 사회를 이루는 축이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여전히 존재해왔다. 자신의 일터에서, 노동에서, 삶에서 중요하지 않았던 적이 없다.

위험하고, 고되고, 존중받지 못하는 줄을 모두가 안다. 노동의 강도에 걸맞은 임금과 환경이 보장되지 않음을 누구나 안다. 그러면서도 그들의 일이 우리 사회가 잊어서는 안 될 그 자체로서의 역사이자 없어서는 안 될 일임을 모르지 않는다.

p.179 세상은 성실을 능력으로 치환한 사람에게 박수를 보내지만, 이때의 성실이란 몸에 손상을 입지 않은 사람들 사이에서의 기준이고, 능력을 둘러싼 서사는 '정상 몸'에서 시작해 '정상화 된 몸'으로 끝난다.

p.364 활판인쇄 기계 수집가인 김진섭은 (…) 팔려 간 활판인쇄기를 멸종동물에 비유했다. 인쇄소 기술공들도 신기술이라는 문명에 밀려 사라졌다. (…) 멸종동물을 유독 더 보호하지 않는 나라가 있다.


그러나 보호하지 않는다. 여전히 목숨값이 소모되는 장비값보다 싸다. 노동자의 안전은 여전히 뒷전이다. 몸을 몸으로, 사람을 사람으로 존중하지 않는다. 일터 안팎에서 가볍게 지워지는 이들이 있다. 살아있는 것에게는 무시될 수 없는 존엄이 있음을 너무도 쉽게 잊는다.

p.101 달까지 우주선을 보내는 시대에 왜 고작 땅에서 수십 미터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떨어져 죽는 일이 이토록 흔한지. 기술은 왜 특정한 곳에만 쓰이는지. 왜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는 일에 진심인 베테랑이 이를 악물고 지켜야 하는지.

p.260 '농인도 나이가 듭니다. 시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하고요.' 화면 구석 작은 동그라미, 이것이 이 사회가 농인들에게 내준 자리일 것이다. 이해도 공존도 없는 자리. 그러는 사이 나이가 들고 시력이 흐려진 농인들은 점차 자신의 언어마저 잃게 된다.


이 책은 베테랑, 온몸으로 겪어낸 노동이 만들어낸 몸, 그에 새겨진 시간의 발자취를 따라가는 일이다. 가히 장인이라 부르기에 손색없으나 누구도 그렇게 부르지 않는 이들에게 귀 기울이는 작업의 기록이다. 무시될 수 없는 것이 무시되는 현실의 뼈아픈 고발이다. 여기에도 사람이 있다, 고.

“저 자세를 안다. 오랜 시간 한자리에서 일한 사람만의 태가 있다.”

p.157 참 쉽게 사라진다. 무수한 생이 단숨에 사라지는 일은 가슴을 부여잡고도 삶을 휘청이게 한다. 그리고 야금야금, 일 하다가 너무 많은 이들이 병들고 목숨을 잃는다. 태어나는 일도, 살아가는 일도, 사라지는 일도, 그리고 애도하는 일도 존중 속에 이뤄지길 바랄 뿐이다. 한 생명이 태어나 처음 닿은 손길이 누군가의 진정한 노동이라면, 존중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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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레시피 - 논리와 감성을 버무린 칼럼 쓰기의 모든 것
최진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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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인 후기입니다.

칼럼이란 “신문이나 잡지 등에 실려 주로 시사, 사회, 풍속 따위에 관하여 짧게 평한 글” 이다. 다루는 주제가 비슷할지라도 사건사고를 다루는 정식 기사나 정치사회적 사안에 대한 언론사의 입장을 밝히는 사설과는 다소 궤를 달리하는 글이다. 앞선 정의에서 알 수 있듯, 비교적 짧은 글인 것도 한 몫 할테다.

어쩐지 글은 말보다 어려운 느낌이 든다. 말은 생각대로 하면 되지만 글은 시간을 두고 다듬어 써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든다. 게다가 일기 정도가 아니라 세상 일에 대해 논하자니 어쩐지 민망하고 별다른 경험도 없는 사람도 칼럼을 쓸 수 있나, 싶은 고민도 든다.

나와 같은 독자에게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것 또한 칼럼입니다, 누구나 쓸 수 있습니다, 라고.

p.17 사안의 돌기를 짚어 내고 나름의 의견을 제기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칼럼을 잘 쓸 수 있어요. 인터넷을 접속하면 하루가 멀게 이슈가 터지고 SNS에서는 갑론을박이 난무하는 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잖아요. (...) “전 경험이 일천해 칼럼처럼 목소리가 확실한 글은 쓰지 못해요.” 거짓말이에요. 마치 “나는 음식을 해 본 적이 없어서 요리를 잘 못 해요.”라는 말과 같지요.


결국 말과 글은 생각을 전달하는 방식의 차이일 뿐이라는 점에서, 이 책은 또한 우격다짐으로 화내거나 밤새 뒤척이며 이 얘길 했어야 한다고 이불을 차대지 않고도 조리있게 생각을 전달하는 말하기 방법에 대한 안내서와도 같다고 해도 좋겠다.

그러니 이것은 1차적으로는 작문, 그것도 특정 주제와 형식의 글쓰이게 관한 책이나 깊게는 사유하는 일의 중요성, 자신의 생각을 타인에게 전달하는 기술, 무엇보다도 세상을 깊고 넓게 바라보는 방법에 대한 책이라고 할 수 있겠다.

p.161 주장하는 방식도 여러 면에서 살펴보면 도움이 됩니다. 문제 해결을 구체적으로 제시할 수도 있고, 방안을 내세우지는 않지마 ㄴ개선할 점을 가리킨 후 각성을 촉구해도 괜찮아요. 또한 강하게 주장하는 대신 완곡하게 건네는 방법도 가능합니다.


이따금 주변 이들에게 서가 혹은 인상깊게 읽은 책을 보여달라 청한다. 읽는 일이 읽는 사람을 드러낸다 여기는 탓이다. 당신의 시간을 보여줘요. 그러면 우리는 서로의 세계에 가 닿을 수 있어, 라고.

읽고 쓰기를 통해 드러나는 생각으로 우리는 서로를, 나아가 세상을 보다 다채롭고 깊게 이해할 수 있지 않을까. 깊게 생각하는 사람은 쉽사리 흔들리지 않는다. 짧지만 단단하고 무거운 글, 칼럼의 진정한 가치는 그에 있지 않을까.

p.162 명료한 주장은 사안을 공론의 장으로 끌어냅니다. 이를 위해서는 근거를 갖춘 주장을 펼쳐야 합니다. 근거가 명확하면 설령 독자는 설득당하지 않더라도 적어도 주장의 과정이 타당하다고 여기게 되니까요. (...) 주장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상대의 입장에 공감하게 되니 토론이 가능합니다. 하지만 근거가 부족해 터무니없는 주장이라 간주된다면 동의는커녕 공론화될 수도 없습니다.


저자의 말, “나는 당신이 칼럼을 쓰면 좋겠습니다.” 이는 곧 당신의 생각을 들려달라는 뜻이다. 만일 세상 돌아가는 일, 뾰족하고 불편하게 걸리는 마음을 짧고 솔직하게 다듬어낸 글로 서로의 세계를 들여다 볼 수 있다면, 그리하여 보다 신중하게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반사적으로 튀어나오는 말과 편견이 아닌 숙고와 신중함으로 서로를 대할 수 있으리라 기대해본다.

저자의 말을 빌어, 당신이 글을 쓰면 좋겠습니다. 당신과 같은 높이에서, 당신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세계를 함께하고 싶습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세계를 마주한 당신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그리하여 우리는 서로의 “ ”에 닿을 수 있으니.

p.204 감정을 표현하는 방식을 우리는 고민해 봐야 합니다. 글과 내가 어느 정도 거리를 두어야 하는가, 이 문제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여과 없이 감정을 풀어놓을 때 과연 독자를 공감시킬 수 있는지 생각해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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