캐노피에 매달린 말들 - 톨게이트 투쟁 그 후, 불안정노동의 실제
기선 외 지음, 치명타 그림, 전주희 해제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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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혹 시장은 공정하며 인간은 이성적이고, 딱 문제없이 돌아가는 세상이라 믿는가? 비록 “조금 부족한” 점이 있을지언정 노사관계는 이만하면 괜찮다고 생각하는가? 기업에게는 무한한 이유를 추구할 자격이 있으며 노동계약은 완전히 자유로운 두 주체의 자발적이고 합리적인 계약이라고 믿는가?

사람의 능력에는 차등이 있으니 마땅히 그 대우에도 차등이 있어야 한다고 믿는가? 이를테면, 당연히 노력하고 고생한, 젊고 힘세고 고학력이며 “정상”인 내가. 저 못 배우고 나이 들고 장애가 있는 사람들보다 더 좋은 대우를 받아야 한다고, 그들은 “떼를 써서” 부당하게 좋은 대우를 요구한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보세요. 나가. 너같은 물건이랑 같이 쓸 사회 없어. 당신이 당연하게 밀어내고 지워낸 이들에게 떠받들려 유지되는 “정상적인” 세상 같은 건 지금까지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테니 지구 밖으로 썩 나가.


협잡.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말이 없다. 계약해지? 효율적인 인력 관리? 경영의 일환? 다 헛소리다. 사측의 행보에는 협잡, 비리, 공갈협박, 폭력, 무엇 하나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는 일이 없었다. 그런데도 내가 옳네 싫으면 소송을 하네 어쩌네 뻔뻔하게 윽박질렀다.

왜? 그래도 된다고 생각했으니까. 법이, 사회가 힘 있고 돈 있는 자의 편이라고 생각하니까. 우대도 필요없고 공정하게 대우하라 온 몸으로 외치는 이들에게 눈쌀이나 찌푸리고 “좋은 말”로 “점잖게”, “고용주 사정도 생각하라”는 이들이 거리에 차고 넘칠 줄 아니까.

여성, 장애인, 탈북민, 대학졸업자가 아닌, 아줌마, 육체노동자니까. 천여 명의 밥줄, 단숨에 틀어막아도 아무도 신경쓰지 않을테니까. 누구도 그들과 함께하지 않을테니까. 그들쯤이야 대꾸 한 번 못 하고 고분고분 기어들어왔다 쉽사리 사라질테니까.


전부 틀렸다. 단 하나도 맞지 않았다. 권력 앞에, 돈 앞에 정의 따위는 힘이 없다고 생각했겠지만, 그렇지 않았다. 사측에, 가해자에게는 없고 투쟁을 결심한 이들에게는 있었던 것, 그것이 정의고 신념이다.

부당함에 침묵하면 나도, 내 다음도, 내 옆의 이들도 소리없이 무너질 것이라는, 그런 믿음. 이것이 옳기에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지.
p.68 다른 일보다 그 두 경험이 제일 힘들었던 것 같아요. 내가 뭘 해주지를 못할 때. 갈 수조차 없고 무얼 어떻게 해줄 수가 없을 때. (…) 정말 투쟁이 힘든 게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는 사람이구나. 내가 하찮은 사람이구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들게 하니까.

p.244 사업장에서는 함께 일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기 위한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으면서, 다른 조건을 가진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것의 부담은 노동자들에게 전가된다. 그리고 이들을 구분 짓고 서로를 배척하도록 만들어서 동료가 되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이것이 영웅담에 불과하면, 모든 사람이 ”사이좋게“ 지냈다는 행복한 이야기면 얼마나 좋겠느냐만은... 누차 말해왔듯 이 또한 사람의 일이다.

사람의 현실은 때 되면 배가 고프고 화장실에 가야하며, 다치면 아프고 더운 날엔 땀이 비오듯 쏟아진다. 쏜살같이 달리는 쇳덩이에 목숨이 위험하고 쉽게 부서지고 죽는다. 그것이 사람이다. 악을 쓰고 드러누우며 구질구질하다. 당연하지 않은가.

그러나 사람의 현실은 경제법칙과 손익계산으로 설명될 수 없다. 사람은 숫자가 아니다. 사람은 숨만 붙여놓는다고, 모멸과 착취를 돈과 함께 쥐어준다고 기쁘게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의 존엄을 저울질하는 권력에 기쁘게 순응하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은 손을 내밀 수 있다. 사람은 함께할 수 있다. 사람은 취약성이 그 자신만의 것이 아님을 알 수 있다. 할 수 있다면 마땅히 그럴 수 있다.

이것을 모른다면 당신의 삶은 당신 스스로가 지워버린 누군가에 의해 영위되고 있다. 알든 모르든, 당신의 삶은 당신 하나만의 힘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 각자의 세계는 함께 살아가는 타인의 세계인 까닭이다.

p.93 우리가 그랬어요. 혹시 서로 다르게 가고 그래도 상대방을 비난하지는 말자, 각자 사정이 다 다르지 않냐. 이해해 주자. 비난하지는 말자. 그랬어요.

p.121 노동의 가치는 경제적인 것에만 있지 않다. 이들은 지금 '제대로 된' 일을 원한다. '제대로 된' 일이란 존중받는 노동일 것이다.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산더미같고 현실은 달라지지 않은 것처럼, 오히려 더 나빠진 것처럼 보이나, 이들은 안다. 연대의 경험이, 이들이 쟁취한 것이 또다른 폭력 앞에 맞서는 힘이 된다는 것을. 언제 어디에서든, 누군가는 또다시 함께한다는 것을. 부당하게 대우받을 사람은 아무도 없음을 믿는 자는 끝까지 지지 않는다는 것을.

p.33 나중에는 내가 그랬어. 소장도 무섭지 않고, 아무도 안 무섭다고. 왜? 그 사람들은 1년 있다가 발령 나서 갈 사람들이야. 나는 여기 20년 다닐 사람이야. 나는 주인 의식 가지고 일하는 사람이야. 누가 와도 나는 당당하다 그랬어요.

p.373 그럴 때면 이야기해요. 화장실 청소 자체가 자존심 상하는 일이 아니라 입사할 때부터 해온 우리의 일이 있는데도 괴롭히려고 전혀 다른 일을 시킨다는 것, 우린 또 그걸 하고 있다는 것, 딱 거기까지다. 그리고 우리도 괴롭힘과 부당한 일에는 맞서면 된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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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지 뷰티 - 장애, 모성, 아름다움에 관한 또 한 번의 전복
클로이 쿠퍼 존스 지음, 안진이 옮김 / 한겨레출판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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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생각해보자. 당신은 당신이 어떤 사람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깜짝 놀랄만큼 무례하고 위협적인 일을 ‘장난삼아’ 당하는 일을 일상처럼 마주하는가? 당신의 무능을 확신하는 이의 도움을 거절하는 일을 거부당한 적이 있는가? 당신의 삶은 당연히 실패작이고 결함이며 누구에게 물려주어서도 안 된다는 믿음을 끊임없이 마주하는가?

어떤 속성은 말 그대로 누군가가 지닌 요소일 뿐이다. 그것은 그의 전부를 설명할 수 없다. 개인은 그 자체로서의 개인, 그 자신이라는 단어 외의 그 무엇으로도 완전히 설명될 수 없다. 때때로 그마저 실패로 돌아간다. 스스로도 자신을 완벽히 알 수 없고, 그러므로 타인 또한 그 한계를 넘을 수 없기에.

그러나 자주, 일상에 가까울 정도로, 어떤 속성은 그의 전부로 간주되기도 한다. 아니. 때때로 그것은 개인마저 속성의 범주 하에 두는 것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대체로 약점으로, 암묵적으로 결함으로 여겨지는 것들이 그러하다. 장애인은 누구든 간에 장애인, 여성은 무엇을 어떻게 하든 여성이라는 식으로.


저자 클로이 쿠퍼 존스는 철학 교수다. 베테랑 저널리스트다. 동시에 그가 속한 가족의 일원이다. 누군가의 친구이며, 비욘세 콘서트에 열광하고, 사색과 독서를 즐긴다.

그가 여성, 장애인이라는 사실은 이 중 그 무엇으로도 완벽하게 설명되지 못한다. 동시에 장애인 여성 클로이 쿠퍼 존스의 삶은 그것들을 포함한 모든 요소와 시간의 연속이다.

그의 장애는 그의 시간이다. 장애가 없었다면 그의 삶은 전혀 다른 길로 나아갔을지 모른다. 그는 여성이다. 태어났을 때부터 그렇게 정해져 내도록 그렇게 살아왔을 것이다. 여성이 아니었다면 전혀 다른 경험을 쌓았을지 모른다.

그는 철학자이고 글을 쓰는 사람이다. 그가 아름다움과 숭고와 내면의 고독을 탐사하는 일에 관심이 없었다면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이 책을 읽을 독자는 저자의 고뇌와 삶의 흔적을 따라가며 여러 모순에 맞닥뜨릴 것이다. 그는 순수하지 않다. 그는 무한히 선량하지 않으며, ‘용기와 희망을 주는’ 모범적인 삶을 살지 않았다. 동시에 그의 내면은 눈부시고 치열하며 때로 헌신적이다. 짜릿한 상상에 즐거워하고 땀흘리며 춤을 추고 소리를 지른다.

어째서인가? 답은 간단하다. 그가 사람이기 때문이다. 그가 어머니이자 딸이고, 먹고 숨쉬고 일하며, 사랑하거나 분노하고 경멸하거나 희생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내가 그러하듯, 그 또한 평범한 사람이기 때문이다.

p.54 보통은 좋은 의도로, 나를 더 용감하게 만들어주려고 하거나 내가 불편한 상황을 잘 이겨내도록 하려는 의도로 하는 말들이다. (…) 절대로 경험하지 않을 사람에게 그런 상황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을 들으면 존재를 교묘하게 부정당하는 느낌이 든다.

p.230 하지만 나는 항상 이 몸만 가지고 있었다. 나에게는 이게 정상적인 몸이다. 나의 자아상은 '다른 사람들'의 이전과 이후를 자각하는 데서 형성됐다.


어쩌면 평생, 그의 위업에 여전히 어떤 수식어가 당연하다는 듯이 선행할지 모른다. 노력으로 이뤄낸 업적이 아닌 ‘사회적 배려’가 그의 지위를 ‘제공했다’는 편견에 시달릴지 모른다. 그의 말과 글과 문장과 사유는 당연히 ‘더 나은 누군가’이 ‘도와준’ 결과라고 폄하하는 이들이 산재할 것이다. 늘 그랬듯이.

그리하여 나는 처음과 같이 다시 묻는다. 나에게, 당신에게, 세계에게. 사람을 사람이 아닌 것으로 보게 하는 것은, 한 인간을 인간의 범주 밖으로 밀어내도록 하는 것은, 누군가의 존엄이 당연히 존재하지 않거나 효용 앞에 간단히 지워질 수 있다고 믿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무엇이 ‘우리’에게 ‘그래도 되는’ 특권과 장막을 부여하는가? 무엇이 ‘그들’을 ‘그래도 되는’ 존재로 격하시키는가? 이질성과 이존재성의 경계는 무엇인가?

p.305 그 자폐 여자아이와 쌍둥이 영재 여자아이는 수업 시간에 짝이 되는 법이 없었다. (…) 우리가 동류의식을 발견할 수 있었던 지점에서 우리는 공통적인 거부만을 발견했다. 우리는 한 덩어리로 취급되고, 동시에 자격을 박탈당했다.


그가 그 자신을 이루는 요소의 총합이자 그 이상이기에, 그가 그 자신을 끌어안고 살아온 사람이기에 나는 감히 그의 삶을 아름답다고 말한다. 그의 지성이 눈부시다고 말한다. 평범하기에 숭고하다고 말한다. 나의, 당신의,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마땅히 그렇듯이.

p.253 어떤 사람들은 세상의 모든 불운은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데 그 불운이 나를 선택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괜찮을 거라고 믿는다. 그런 사람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나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나를 통해 그들 자신의 삶이 얼마나 자유로운지를 깨달았다나.

p.444 우리는 완벽을 선물받지 않았고, 신성함도, 대칭도, 우아한 비례도, 나쁜 패도, 저주도 받지 않았다. 우리는 함께 보낼 한평생만을 선물받았다. 우리의 삶은 쉬운 삶도 아니고 고통 없는 삶도 아니다. 우리는 그저 현실의 삶을 받았다. 무서울 정도로 일상적이면서도 숭고한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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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상록 수업 -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공부와 그의 시대
피에르 아도 지음, 이세진 옮김 / 복복서가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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펀딩 시작부터 손꼽아 기다리던 책입니다. 이렇게 만날 수 있어 기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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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한 단어들의 지도 - 꼬리에 꼬리를 무는 어원의 지적 여정
데버라 워런 지음, 홍한결 옮김 / 윌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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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윌북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외국어, 개중에서도 라틴어에 뿌리를 둔 언어를 공부하다보면 그럴 때가 있지 않은가. 대체 이 근본도 모를 단어는 어디서 왔기에 맥락도 없이 알아서 이해합쇼... 라는 듯이 덜렁 나타난 건지 의아할 때 말이다.

이따금 뜻하지 않게 마주친 지인처럼 어딘지 익숙한 꼴을 보고 반짝 반가워지기도 하나 대체로 들입다 외우자니 억울한 마음이 들 때도 많다.

그래서 대체 어디서 온건데! 하고 고함을 꽥 질러봤자 나도? 몰라?? 배째라 배째 투로 뻔뻔한 철자를 보고 있노라면 한국어로 세계통일이 됐어야 한다고 말도 안 되는 원한을 중얼거리고야 마는 것이다... 나만 그래요? 아니잖아.


대중의 발, Bus는 어쩌다 생긴 단어인가? "eat humble pie", “잘못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과 파이를 먹는 것에 대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대체 빵집에서는 무슨 요술을 부리기에 다른 곳에서는 잘만 ‘열둘’인 'dozen'이 'baker'만 붙으면 ‘열셋’으로 둔갑하는가?

denim은 또 어떤가? 명주실로 짠 serge는 영어도 아니고 독어도 아니고... 대체 어느 맥락에서 튀어나온 단어란 말인가? 미혼 여성을 뜻하는 법률 용어 spinster는 왜 난데없이 남의 직업을 실 잣는 사람으로 만드는가?

p.39 bus는 처음에 ’bus라고 썼습니다. 라틴어 omnibus를 줄여 부른 말이었거든요. 19세기 말, 영국 시골에서 밭일 대신 공장에 다니게 된 사람들이 최초로 자동차 형태의 버스를 타고 다녔다고 합니다.

p.41 eat humble pie(잘못을 달게 인정하다)라는 표현은 언뜻 연상되는 것과는 다른 유래를 지닙니다. 농민들은 예전에 ‘umble’로 만든 파이를 먹었습니다. umble이란 사냥으로 잡은 짐승의 내장으로, 고급 음식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 세월이 흐르면서 런던 동부를 제외한 영국 전역에서 h 소리를 내게 됐지만, umble은 영어에서 아예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p.45 빵이란 워낙 중요한 생필품이어서 13세기에는 (...) 빵 한 덩이의 가겨고가 무게를 엄격히 규정하기도 했습니다. 빵집 주인들은 빵을 팔 때 혹시라도 양이 모자라 법에 걸릴까 봐 하나씩 더 얹어주곤 했는데, 그래서 'baker's dozen'이라고 하면 ‘열둘’이 아닌 ‘열셋’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p.112 denim은 ‘프랑스 비단’을 뜻하는 ‘serge de Nimes’에서 유래했습니다. Nimes은 프랑스 남부의 도시로, 로마 유적지가 많아서 관광객이 많이 찾는 곳이죠. 세르주, 즉 serge는 명주실로 짠 천의 일종으로, 어원은 ‘비단(silk)’을 뜻하는 라틴어 sericus입니다.

p,208 spinster는 ‘실 잣는 여자’라는 뜻으로, 독신 여성이 생계를 꾸리기 위해 흔히 갖는 직업이었죠. 그런데 그것이 나이와 관계 없이 ’미혼 여성을 가리키는 법률 용어가 되기에 이릅니다.


시작과 맥락을 모르니 이해할 리가 없다. 이 황당함과 막막함의 연쇄를 끊어주는 것, 흩어진 지식을 하나의 큰 그림으로 그려내는 것이 어원의 역사이다. 말은 사람이 만들고 쓴다. 사람의 역사가 곧 언어의 역사이며, 아무 맥락 없이 갑자기 나타나 이어지는 단어는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조금 더 알면, 모르던 것을 알게 되면 모르는 새 흘려듣던 말을 이해하고, 자잘한 농담과 문화적 배경이 있는 은유를 이해할 수 있다. 수많은 고전 문학이 어째서 그토록 호소력을 갖는지, 낯설기만 한 문법이 어디서 왔는지 알게 된다.

누가 알겠는가. 사인, 코사인, 탄젠트를 중얼거리며 외우느라 바빴던 때에 그 어원을 알았더라면 한 문제라도 더 맞았을지... 멋지지 않은가. 검은 건 글씨요 흰 건 종이인 암기의 나열에서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는 역사와 문화, 삶의 줄기를 짚어낸다는 것은.

p.57 탄젠트는 ‘건드리다’를 뜻하는 라틴어 tango에서 왔고, 원래 ‘접선’을 의미하죠. 마지막으로 사인은 ‘곡선, 우묵하게 들어간 곳’을 뜻하는 라틴어 sinus에서 따온 것입니다.


배움은 세계의 해상도를 높이는 일이라는 말을 좋아한다. 알거나 모르거나 세상이 달라지는 건 아니지만, 나의 세계가 달라질 수는 있다. 그뿐인가? 기존의 세계가 아닌 전혀 낯선 세계에서도 덜 당황하고 더 많은 것을 알아차릴 수 있다.

단어는, 말은 단순히 그 자체에 그치지 않는다. 그 단어가 만들어지고 변화하는 동안 사용해온 이들의 문화, 먹고 자고 입고 웃고 사고파는 모든 시대의 풍경이 담긴다. 어원의 줄기를 따라가는 한, 우리의 여행은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 수 있는 셈이다. 즐겁지 아니한가. (듀**고가 아니더라도!)

p.12 ‘어원=진화’입니다. 다시 말해, 언어는 돌연변이의 연속입니다. 진화가 그렇듯이, 이 책도 정해진 목표가 없습니다. 단어가 가는 길을 누가 알겠어요? 그리고 진화가 그렇듯이, 저도 어원 이야기를 할 때 가끔 횡설수설합니다(참고로 ‘횡설수설하다’를 뜻하는 meander는 터키의 구불구불한 강 이름에서 왔어요).

p.321 단어란 자음과 모음으로 이루어진 무의미한 소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숨소리 한번 내는 것과 다를 게 없죠. 그러나 단어는 곧 역사입니다. (...)단어는 스냅사진이 아니라 천년짜리 영상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도 나아가고 있습니다. 언어는 멈추지 않습니다. 아무리 많이 해도 다 할 수 없는 게 ‘말’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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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야 할 세계 - 제13회 혼불문학상 수상작
문경민 지음 / 다산책방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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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다산북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어떤 이는 그를 이렇게 기억한다. 고집스럽고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사람. 또다른 이는 이렇게 기억한다. 단단하고 외로워 보이는 사람. 그가 속한 곳의 관리자들은 그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매사에 좋게좋게, 비위 맞춰가며 유도리있게 넘어가질 못하다고 뒷말이 오갔을 터이다.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삶이 있다. 그가 디뎌온 길은 또다시 험하고 거칠어 그 존재조차 쉽사리 알아채지 못하는 선택지가 될 것이다. 언제나 그랬다. 고마운 줄도, 고생스러운 줄도 모를 것이다. 명성 높은 책에 이름을 남기지도, 높은 자리에 올라 선망을 자아내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삶은 기억될 것이다. 기나긴 시간 어느 한켠에 머무른 다정으로, 쉽게 포기되어서는 안 되는 가치가 있음을 깨닫게 한 외침으로, 느리고 더디지만 끝내 사라지지 않는 것이 있음을 알려준 불씨처럼. 그래, 불씨처럼.


누구나 사회생활의 모든 상황에서 행복할 수도 없고, 한번쯤은 인생 자체에 회의를 느끼기 마련이다. 직업과 노동의 가치는 단순히 돈을 벌고 삶을 영위하는 것에 국한되지 않는다. 그런 삶도 있겠으나... 사람은 돈만 있다고 사는 존재가 아니다. 사람에게는 의미가 필요하다. 내가 하는 일의 의미, 하고자 하는 일의 가치.

인간성이 마모된다는 것은, 신념을 내버리고 부패에 가담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삶은 대체, 도대체 무엇으로 설명될 수 있는가. 차마 무엇으로 말해질 수 있는가.

온 힘을 다해 지켜내는 것, 그래서는 안 되기 때문에 안간힘을 쓰는 것, 연약할 수밖에 없는 존재를 지켜내는 것, 두려움과 치욕에 떨면서도 끝내 외면할 수 없는 것. 윤옥은 그것을 알고 있다. 차마 버리지 못한다. 휘청일지언정 포기하지 못한다. 이것이 존엄이 아니면, 신념이 아니면 무엇으로 말할 수 있겠는가.


그의 삶이 온전히 떳떳하다고는 할 수 없겠다. 그 또한 수많은 시간을 가해자이자 방관자로 살아왔다. 말해지지 않은 것은 더욱 무수할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윤옥의 인간됨을 희망할 수 있다.

그가 번민하고 슬퍼하고 두려워하면서도 끝내 손 내밀기를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이기 떄문에, 넘어지고 주저앉은 이를 외면하지 못하기 때문에, 나중에, 아주 나중이 되어서라도 바로잡으려 애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저도 살고싶어요, 가 죽어버리지 않을 거예요, 죽을 때까지 살아갈 거예요, 가 되는 것. 희미하고 약한 것이 꺼지지 않도록 온몸으로 끌어안고 세상의 눈보라를 맞아내는 것을 숭고가 아니면 무엇으로 부를 수 있는가.


영광은 신에게도 권세에도 있지 않으니. 사람이 곧 영광이다. 사람임을 포기하지 않는 것이 신념이다. 인간성을 포기하기를 강요당하는 자와 함께 서기를 포기하지 않는 것이, 그와 내가 같은 사람임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이 곧 존엄의 증명이다. 사랑하는 일, 기꺼이 껴안고 품고 아끼는 마음이 곧 사람됨이다.

세상이 바뀌고 사람이 변하더라도 누구에게나 지키고 싶은 자신만의 세계가 있다. 그 세계는 끝내 고독할 것이나... 이름 모를 새와 풀씨가 그러하듯 또다시 누군가가 찾아와 무언가를 남기고 갈 것이다. 머무른 흔적, 깨지고 부서져서는 안 되는 것, 잊혀질 수 없는 것.

나는 그것을 신념이라고 부른다. 존엄이라고 한다. 뿌리채 뽑혀 흔들릴지언정 사그러질 수 없는 것이라고. 사람이 사람이기를 포기하지 않는 이는 언제 어느때고 끊임없이 존재할 것임을, 오직 그것만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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