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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헌터 - 어느 인류학자의 한국전쟁 유골 추적기
고경태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2월
평점 :
읽는 내내 참담하고 역겨워 몇 번이나 눈을 질끈 감았다. 어떻게 사람이 사람한테 그래요. 어떻게 사람이 되어서 사람을 그렇게 악랄하게 해칠 수가 있어요. 어떻게 그래요. 어떻게, 대체 얼마나 지독한 마음을 먹으면 그럴 수가 있어.
지금에 와서는, 남의 일이라면, 지어내는 말도 적당히 하라고, 아무리 그래도 그런 일이 어디 가당키나 하냐고 면박이나 들을 일이 실제로 일어났다. 구석기나 고대 왕국 시절처러 퍽이나 오래 전도 아니고, 말 안 통하고 낯선 어딘가에서도 아닌, 우리가 사는 이 곳, 사람이 수시로 오가는 곳, 불과 수십 년 전에.
사람이 사람을 끌고가 무릎을 꿇리고, 때려 죽이고, 쏘아 죽이고, 태워 죽였다. 산사람을 파묻은 경우도 적잖이 있었다. 적군이었는가. 흉악무도한 괴물이었는가. 대다수가 민간인이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한 동네서 오가던 이들, 평소처럼 살던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손짓 하나로, 때로는 벼락같이 들이쳐 짐짝처럼 끌어갔다.
군인이었대도, 하다못해 최악의 흉악범이래도 이렇게는 못 할 일이었다. 그런데 그것이 군인의 이름으로, 경찰의 이름으로, 나라의 이름으로, 애국이요 자유라는 이름으로 행해졌다. 세상 어디에도 그런 애국이며 자유는 없다. 그렇게 이뤄지는 것은 살인, 도살, 그 이상의 값을 지닐 수 없었다. 그러나 오랜 시간 떳떳하게 불려왔다.
때로는 부역자, 때로는 간첩. 때마다 사람마다 제각기 상상 속의 적의 이름으로 불렸을 것이다. 어떤 곳에서는 그마저의 이름조차 갖지 못했다. 그저 손발 달린 기구와도 같았을 것이다. 죽도록 부려먹다 마침내 죽어버리면 대강 묻어버리는 짐승만도 못한 것. 사람도 존재도 아닌 그저, 것.
그러나 그 자리에서 사람이 사람을 이렇게 대하는 법은 없다고, 당신들은 대체 누구며 피도 눈물도 없느냐고, 내게도 삶이 있다고, 나는 당신과 다르지 않다고, 어떻게 무고한 사람을 이렇게 대하느냐고 따져묻고 악을 지르고 애원하는 목소리는 아무런 값도 지니지 못했을 것이다.
또 어떤 곳에서는 사람이었으나 사람이 아니었다. 자기 죄 하나 덜자고, 제 몸만 어떻게든 살아보자고 겁먹은 사람들을 산채로 바닷속에 가라앉혔다.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에 쇳덩이와 함께 가라앉기를 바랐을 것이다. 그렇게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었다.
죽은 이들의 죄는 단 하나, 믿었다는 것. 안전하게 데려다줄 의무가 있는 사람의 책임을, 국민을 보호할 국가의 책임을, 내가 탄 배가 불시에 가라앉지 않을 거라는, 그 누구도 이렇게 죽어서는 안 된다는 지극히도 당연한 상식을.
그마저도 잘못이 아니나 죽은 자는 말이 없다는 핑계로 침묵을 강요당한다. 죽은 자는 죽음으로서 영원한 유죄를 선고받았다.
누군가는 양심의 가책을 느꼈을까. 단 한 명만이라도 목숨을 가진 존재를 이런 식으로 파괴할 수는 없다는 생각을 했을까. 누군가의 손끝에는 조금의 망설임이 있었을까. 중요하지 않다. 적어도 죽은 자 앞에서는. 어쨌거나 죽인 자는 어쩌면 살았고 죽은 자는 돌이킬 바 없이 죽어버리지 않았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어떤 죽음은 산 자의 틈에 함께 있다. 죽어서도 죽지 못한 자의 죽음이 그러하다. 그들의 흔적은 무엇보다도 많은 말을 한다. 부서진 뼈로, 말라붙은 핏자국으로, 삭고 바스러진 옷가지와 닳아빠진 신발로, 손발을 옭아맨 아군의 흔적으로.
뼈를 부수고 살점에 박혔을 총탄 자국으로, 뜯어먹힌 살점으로, 잊혀진 기록 한켠의 "불령선인", "불순분자", 혹은 사망자 1. 이 책에서 재구성된 목소리들과 오래된 뼈, 죽은 이의 흔적에서 생의 시간을 찾아내는 이의 기록으로 우리는 믿음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폭력, 일어나서는 안 되는 일이 얼마나 숱하게 일어났는지를 살펴볼 것이다.
우리의 이름으로 현재에 도사리고 있는, 고함과 사탕발림으로 뭉뚱그려지는 증오로, 비참으로. 언제고 누군가의 목숨은 값어치가 없다고, 어떤 사람은 사람이 아니라고 할 날만을 기다리는 그것이 멀지 않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시금, 죽은 자는 말이 없다. 그러나 죽은 이는 산 자에게 속삭인다. 나를 보라고, 네가 밟고 선 땅과 네가 마시는 물과 공기에 피와 뼈가 있을 것이라고, 사라질 수 없다고. 죽은 자는 언젠가 살아있던 사람이었음을 기억하라고.
*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