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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 귀의 세계와 오른쪽 귀의 세계 - 이문영 장편소설
이문영 지음 / 위즈덤하우스 / 2024년 1월
평점 :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언젠가 “봐서는 안 될 것을 본다”는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시시한 괴담이었을 수도, 차라리 모르는 게 속 편할 일이라는 뜻이었을 수도 있다. 한동안 그 말이 입에 맴돌았다. 그러던 어느날, 이유는 기억나지 않지만, 이명이 시작되었을 때, 처음에는 잠결의 입면환각인 줄로만 알았고, 다음엔 단순한 외부 소음이라고 생각했다.
그것도 아니라는 걸 깨달은 다음에는 나도 모르는 새에 듣지 말아야 할 것을 들어버린 결과인지, 아니면 이게 들어서는 안 될 소리인지 한동안 시덥잖은 생각을 했더란다. 증상이 사라진 후 자연스레 잊고 살았으나, 때때로 듣지 말아야 할 말이 있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
이명, 귀울음이라는 뜻이다. 몸 밖의 소리가 없는데도 무언가를 들었다고 생각한다. 결과적으로 들은 것과 다르게 느끼지 않으니 소음을 피하기 위해 이리저리 도망쳐봐도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그것은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소리의 원인이 바깥이 아닌 안에 있는 탓이다. 고통스러워하는 자기가 곧 소리길인 탓이다.
p.146 서로의 고통을 들으려 하지 않는 것이 추락이었고, 타인의 삶을 상상하길 멈춘 사람이 괴물이 됐다. 괴물은 내 안에 있고, 당신 안에, 우리 안에 있는 동시에 우리 밖에도 있었다. 지독한 적막으로 고막이 터져버릴 것 같을 때 짐승의 심장 박동을 들은 것도 같았다.
다시 돌아와 생각해보자. 우리 사회에 듣지 말아야 할 소리가 있는가? 그러니까, 해서는 안 될 말이 전해지는 경우뿐만 아니라 들어야 할 소리를 듣지 않아야 내가 무사할 수 있기에 그 존재를 알지 않으려 애써야 하는 소리 같은 것들. 슬프게도, 많다. 너무 많다.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아마도 과학보다는 사견에 가까웠겠지만, 사람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소리는 울음소리와 비명소리라고, 생존수단인 아기의 울음은 그 두 영역에 걸쳐있어 유난히 잘 들리는 걸지도 모른다고.
p.20 날씨나 피로 때문이 아니라 묽거나 묽어질 것들의 몸에 새겨진 시끄러운 표식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가만히 묽어지면 억울하니까. 조용하면 보려 하지 않고 요란하지 않으면 없는 줄 아니까.
p.120 질문하는 직업을 가진 자가 질문해야 할 상대를 찾지 못하고 있을 때 답을 기다리다 지친 사람들이 스스로 국가를 향해 질문하고 있었다. 눈 마주치는 사람들마다 ‘너는 왜 여기서 묻고 있냐’고 묻는 듯했다. 질문할 권리와, 질문할 책임과, 질문하는 폭력 사이에서 나는 그동안 내가 뿌린 질문들이 어디쯤 굴러다니고 있을지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이렇게 생각하면 앞선 의문을 조금 다르게 읽을 수 있겠다. 듣지 말아야 할 소리가 아니라 들려야 하는 소리가 크게 울리지 못해서, 길을 찾지 못해 곪아터지는 말이 속으로 울리는 게 아니겠냐고. 그렇다면 이명은 누구의 울음일까. 누가 누구에게 전하는 비명일까.
유난히 희미한 사람들이 있지 않은가. 사회 구성원 모두가 사람이라는 데에는 동의하지만 어떤 사람의 무게는 한없이 가볍고 존재는 희미하며 그의 소리는 작디작다. 마치 한 사람 분을 차지할 주제도 못 된다고 누가 선언이라도 하는 것처럼.
그들의 존재는 주로 셋방에, 재개발단지에, 여름에는 덥고 겨울에는 추운 곳에, 고분고분하기를 요구받는 곳에, 살려달라는 외침에 수갑과 욕설과 중장비소리와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물이 밀려드는 곳에 자리한다.
p.225 평형을 잃은 내가 게워 올린 바닥, 평형 잡는 물조차 채우지 않고 출항한 배가 침몰하며 노출한 바닥, 평형을 잃은 배가 가라앉자 평형이었던 적 없는 국가가 창피한 줄도 모르고 드러내는 바닥, 배는 인양됐지만 뜰채로도 건져지지 않는 찌꺼기들이 여전히 그 바닥에 수북했다.
출발한 것은 모두 어딘가에 도달한다. 울음도, 분노도, 책임도 마찬가지이다. 그 당연한 것을 인정하지 못하니 갈 곳을 잃은 마음과 존재가 맴돌고 부딪다 결국 곪아버린다.
Listen carefully. 사람이 말을 할 때에는 집중해서 들어야 하고, 해야 할 일에는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그 간단한 것을 인정하지 않는 세상에서 작아지고 묽어지는 존재들의 목소리는 길을 잃고 갇혀버린다. 그러나 영영 사라지지 않는다. 다시금, 일단 출발한 것은 어디엔가는 도달하기 마련이다.
그러니, 주워 담긴 이미 늦었어요. 처음부터 다시 이야기할 테니 잘 들어요.
p.316 인간이 살아가는 이야기는 논픽션과 픽션 사이에 걸쳐 있었다. 차라리 소설이길 바라는 이야기는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일 때가 많았고, 현실은 정말 현실일까 믿기지 않을 만큼 소설 같을 때가 많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