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 피플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홍은주 옮김 / 비채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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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애정이 있다는 건, 혹은 그런 사람이라는 건 어떤 느낌일까. 어제까지의 세상을 도저히 믿을 수 없게 될 정도로 한순간에 뒤틀리는 경험을 한다는 건, 혹은 그런 경험이란 건 대체 무엇일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한때 잔잔한 내용의 영화만 골라 보던 때가 있었다. 그것도 텅 빈 거실에 불을 끄고 앉아, 볼륨을 한껏 낮춰 들릴 듯 말 듯 틀어놓고. 아침에서 시작해 밤으로 끝나는, 대화보다 독백이 더 많은, 조용히 울고 소리없이 비명을 지르는 이야기들.

한때는 그런 영화가 쏟아져나왔다. 함께 있어도 외로운 관계, 죽을 때까지 이해할 수 없는 타인. 일상에서도, 세계에서도 어딘지 어긋나고 겉도는 사람들. 유리된 이들. 어째서인지 일본 영화에 그런 내용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세상이 너무 빨리 변한다. 너무 빨리 식고 너무 빨리 미끄러지며 어느샌가 듣도보도 못한 것이 자라있다. 이런 세계에 살아가는 일이 공포가 아닐 수 없다.

p.15 TV 피플은 내 존재는 처음부터 무시했다. 그들은 셋 다, 그곳에 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들은 문을 열고, 텔레비전을 방으로 가지고 들어왔다. 둘이 텔레비전을 사이드보드에 올려놓고, 남은 한 명이 콘센트에 플러그를 꽂았다.


무라카미의 작품에서 휴머니즘을, 따뜻한 응원을 읽는 독자도 있겠지. 부럽다. 나는 이 작가를 무서워하므로... 정확히는, 그의 시선으로 드러나는 세상이 너무도 무기질적이라 낯설고 두려운 마음이 든다.

몸은 함께 있어도 마음은 닿지 않는다. 평온한 일상 아래에는 지울 수 없는 권태가 있다. 살갗을 맞대는 관계도 애정과 행복이 아닌 쾌락과 이질감으로 미끄러진다. 쉼없이 지껄이지 않는 혀는 굳어지고 말은 전해지지 않을 것이다. 세상은 이미 뒤틀려있다. 금가고 부서져있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가면을 쓰고 연기를 한다. 거대한 연극임을 알아채고 박수를 보내거나 뒤를 돌아보는 관객, 독자까지도 그 일부에 불과하다. 『1Q84』과 『도시와 그 불확실한 벽』에서 보았던, 모종의 경멸과 불쾌감, 낯섦.

p.66 "사람 마음은 깊은 우물 같은 것 아닐까 싶어. 바닥에 뭐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 때로 거기서 떠오르는 것의 생김새를 보고 상상하는 수밖에."


지금 여기의 세계를 벗어나는 통로는 하늘도, 평야도 아닌 지하, 벽 틈, 아래와 사이로 빠져드는 곳에만 있다는 무력감. 그 뿌리에는 무엇이 있는가. 그의 창작론이랄지 인생관이랄지, 몇 번을 읽어도 손에 잡히지 않는 깊이는 차라리 심연에 가깝다.

인상깊게 읽었던 그의 작품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현실을 아무렇지 않게 찢어 비틀고, 현실-이면의 영역과 뒤섞어놓는 전개들에는 희미하지만 확실한 위화감이 있다. 바깥 너머에도 눈 앞의 품을 파고들어 완전히 뒤집어놓은 '내면'에도 경계가 없다는 것. 끝없이 펼쳐진 막막함에 안팎을 구분할 방도가 없다는 것.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세계를 담은 상자를 마구 흔드는 존재, 의 세계를 담은 상자를 마구 흔드는 존재, 의 세계를... 이런 식으로 이어지다 불현듯 뚝, 멈추고 차원 바깥의 독자를 응시하는 이야기, 그것은 이미 일종의 독자적 생명을 갖게 되는데, 그것을 바라보는 독자가 담긴 세계를 마구 흔드는 존재의 이야기.

p.160 어제와 그제가 뒤바뀌어도 신기할 게 없다. 때로 무슨 인생이 이럴까 싶다. 그래서 허무하냐 하면 그렇지도 않다. 나는 그저 놀랄 뿐이다. 어제도 그제도 구별되지 않는 사실에. 그런 인생 속에 내가 들어와 삼켜져버렸다는 사실에. 내가 낸 발자국이, 확인할 겨를도 없이 순식간에 바람에 쓸려 지워지고 말았다는 사실에.


일종의 악몽이다. 비명조차 회수할 수 없는 고독이다. 부딪혀 돌아올 길이 없으니 아무것도 들을 수 없다. 모두가 마구 흔들리는 상자 안의 세계는 또다시 마구 흔들리는 상자 안에 들어있는 셈이다. 끝나지 않는다. 시작이 없으므로.

안다. 이것은 무라카미의 세계를 바라보는 나의 시선이다. 그러므로 나는 그의 작품을 통해 드러나는 '나'의 세계에서 내내 두려워하는 이방인이다. 그의 세계에 던져질 때마다 나는 적극적으로 낯설고 헤매는 이가 된다. 돌이 되고 안개가 된다. 침묵이 된다.

불평을 가장한 두려움의 고백은 이쯤 해두도록 하자. 작가는 말한다. 이 이야기들에는 "어딘가로 향해 나아가기 시작하는 온기의 예감이 담겨있"다고. 재차 믿어보기로 한다. 캄캄하게 무너져내리는 고독, 외롭고 차가운 세계에서도 여전히 어딘가로 향하는 길이 있음을. 그가 그려내는 세계에는 줄곧 출구 아닌 '뚫고 나가는' 길이 있음을.

p.204 만일 죽음이 이런 것이었다면 나는 대체 어떻게 하면 좋을까. 죽음이란 것이 영원히 각성한 채 이렇게 꼼짝 않고 어둠을 바라보는 것이라면?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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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묘한 골동품 서점
올리버 다크셔 지음, 박은영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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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는 일에 이골이 난 사람들이 있다. 착각은 곤란하다. 책을 다루거나 읽는 일이 아니다. '좋아하는' 데 익숙하고 굳은살이 배길 지경이라는 뜻이다. 그렇다고 해서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좋아하느냐고 묻는다면 아 글쎄요... 그것 참 어려운 질문이네...

이 휘황찬란한 디지털 미디어 시대에 구석에 처박혀 책을 읽는 사람, 그것도 종이책을, 한 술 더 떠서 오래된 책을 굳이 찾는 사람은 괴짜가 아닐 수 없다. 모든 것이 숨가쁘게 내달리는 세상에 정지해있는 인간, 짜릿한 자극이 아닌 손끝으로 전해지는 감촉을 사랑하는 사람은, 솔직히 좀... 이상한 인간이 아닌가. (맞아요. 내 얘기니까 조용히 해...)

옷 좋아하는 사람이 옷가게를, 맛있는 것 좋아하는 사람이 음식점을 찾듯 책이 '필요한' 사람은 서점을 찾는다. 개중 지금 여기에 놓여있지 않은, 시간의 흐름 어딘가 먼지를 뒤집어쓴 책을 찾는 사람은 책만큼이나 오래된 서점을 찾는다.

그러나 아쉽게도, 참으로 아쉽게도, 한국에는 고서점이라고 할 만한 곳이 극히 드물다. 보통의 '서점'이 아닌 소수의 연구자들이나 꼭 그 책을 찾아야겠다고 전국팔도를 뒤지고 다니는 별종들에게나 알음알음 전해질 뿐이다.


하기사 매일같이 새 책이 쏟아져 나오는데다 스캐너 갖추는 건 일도 아닌 세상이다. 전자책은 또 어떻고. 굳이 애써 오래된 책, 고리짝 책을 찾을 사람은 극히 드물다. 창고에서 갓 꺼낸 새 책을 집앞까지 배달해주는 세상에 낡고 바랜 책이야 무슨, 먼지보다 조금 나은 신세 아닌가.

우리 사회에는 오래된 가게가 드물다. 노포, 고서점... 품 많이 들고 일상과는 거리를 두는 것들에 유독 박한 사회가 아닌가. 그러나, 찾는 사람이 있다면 장소도 있는 법. 책도 그렇다.

희귀서적 취급, 고서점인지 골동품점인지 애매한 곳, 장난 아니게 희한한 손님들이 줄지어 오는 곳, 하지만 지지 않죠? 직원들도 만만찮게 고집 세고 해괴한 곳, 영국식 위트와 아이고 저런... 이 공존하는 곳, 소서런처럼.

p.146 책 판매인이라는 직업은 시시때때로 저주에 걸린 책과 만나는 일에 익숙해질 수밖에 없다. 유감스러운 것은 누구를 붙들고 이런 이야기를 해도 신빙성을 지지받을 수 없다는 점이다. 회계 부서 또는 이사회의 연례 리뷰에서 설명하기도 대단히 어렵다. 재고 품목 중에서 일부를 실제로 판매할 수 없는데, 그 이유가 책을 사는 고객을 계속해서 죽여버리기 때문이라고 어떻게 설명하겠는가?


읽는 내내 궁금했더랜다. 어째서 모든 서점원의 기록에는 어디 내놔도 빠지지않게 희한한 인간들이 매일같이 들이닥치는가? 팔겠다는 사람과 사겠다는 사람 중 한 쪽은 멀쩡할 법도 한데 대체 뭐가 문제인가?

서점은 결국 책을 파는 곳이다. 책을 '상품'으로 간주해 사는 사람과 파는 사람이 있다. 그것으로 충분한가? 여전히 책은 낭만을 담고 있다. 책을 읽는 사람과 수집하는 사람, 그들을 만나는 서점원들 또한 어떤 식으로든 책에 단순한 물건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믿는다. (거기서 모든 문제가 시작된다... 고 하면 너무 잔인한 말인가?)

p.18 이윽고 문이 닫혔다. 사방이 고요해졌다. (...) 끊임없이 들리는 거리의 소음에서 달아날 수 있는 곳은 거의 없다. 그나마 몇 안 되는 장소 중 하나가 서점이다.

p.201 충분히 오랫동안 '눈에 잘 띄는 곳'에 숨어 있으면 그게 무엇이든 서점의 일부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찬장 문 뒤쪽이라든지 책장 꼭대기에는 어김없이 한때 누군가에게 중요한 물건이었다가 이제는 존재가 희미해진 물건들이 있기 마련이다. 어쩌면 이야말로 오래된 서점이 지닌 매력의 본질 중 하나일지도 모르겠다. 어느 하나 골동품 아닌 존재가 없다는 것.


좋든 싫든 간에, 사람과 책이 있는 곳은 필연적으로 사람과 사람이 맞닿는 곳이다. 잊혀진 것과 잊혀질 것들 사이에, 느리고 고요하게 흘러가는 시간에 머물고 싶은 이들이 서점을 찾는다. 그런 나날을 궁금해하는 이가 서점원의 기록을 들여다보는 기쁨을 누린다.

나, 오늘도 서점에 가리라. 온갖 해괴한 손님과 희한한 직원이 있는 곳, 소서런 같은, 헌책방으로, 오래된 책이 있는 곳으로, 종이와 활자가 곤히 잠든(혹은 도사린) 곳, 서점으로.

p.180 시간의 흐름을 막을 방법은 없다. 책이 결국 필멸하는 것을 막을 방법도 없다. 책을 금고에 넣어 단단히 잠그고 아무도 그 책을 감상하는 데 시간을 쓰지 않는다고 해도 그 책은 조금씩 먼지가 되어갈 것이다. 우리 모두가 그런 것처럼. (...) 책을 불 가까이 두지 말 것, 책을 물웅덩이에 던지지 말 것, 그리고 무엇보다 책의 즐거움을 누리는 걸 잊지 않을 것.

p.296 우리는 모두 누구에게 책을 팔지를 선택하는 자신만의 선이 있으며, 그럴 때 우리가 하는 선택이 우리가 속한 세상의 모습을 만들어 간다. 희귀 서적 거래는 별개의 세상에 존재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 않다. 우리는 수천 가닥의 보이지 않는 끈으로 세상과 연결되어 있으며, 불온한 책이 온당한 곳으로 가는지 신경 써서 확인할 때마다, 혹은 혐오주의자를 서점에서 배제할 때마다 옳은 방향으로 한 발씩 내딛고 있다고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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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덟 밤
안드레 애치먼 지음, 백지민 옮김 / 비채 / 202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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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뭘까. 사랑이 대체 뭐길래 이렇게 사람을 구질구질하게 만드나. 사랑의 순간은 끊임없이 묘사되어왔다. 때로는 달콤하게, 때로는 꿈결같이, 때로는 절절하고 또 고요하게.

운명같은 사랑을 믿나요, 누가 내게 묻는다면, 코웃음을 치고 단칼에 부정하는 사람이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마법같은 순간, 세상의 모든 빛이 단 한 사람에게 쏟아지고,
태초부터의 모든 순간은 그 사람을 위해 이어져왔다고, 영원히 잊을 수 없을 것임을 예감하게 되는 순간이 있다고, 그렇게 믿는다. 그럴 수밖에 없으니까.

한겨울 크리스마스 파티, 모두가 반가움에 소리 높여 인사를 주고받는 가운데, 아무와도 마주치고 싶지 않아 숨어든 곳에서 운명을 마주할 확률은 얼마나 될까. 아무도 알 수 없지만, 이것만큼은 확실하다. 나또한 이 한 마디에 속절없이 빠져들었다고. "나 클라라예요".

p.15 우리의 목소리를 통해서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의 목소리를 통해서 밝혀지고, 다른 사람의 손으로부터 움켜쥐어지고, 도저히 낯선 사람일 리 없지만 그녀가 낯선 사람밖에는 무엇도 아니기에, 오늘 밤 나는 네 삶과 삶의 방식에 네가 쓰는 얼굴이야. 오늘 밤 나는 너를 돌아보는 세상을 향한 너의 눈이야, 나 클라라예요 하고 말하는 시선으로 우리의 눈길을 붙드는 사람 때문에 끝내 실재가 되고 빛나게 된 우리의 삶.


대단히 오랜 시간도, 서로의 지난 삶을 귀띔해줄 접점도, 동화같은 순간도 타오르는 쾌락도 없는 일주일의 시간에 어째서 이렇게나 초조해지고 애달파지는 걸까. 그렇게 읽히기를 바랐기 때문일까. 우리의 세상에는 사랑받는, 마법같은 순간이 필요하기 때문일까.

존재의 경계, 무엇으로도 넘을 수 없는 한계로 인해 우리는 타자를, 그의 세계를 갈망하고 하나가 될 수 없음에 좌절하게 된다. 영원히 알 수 없는 진심, 영원한 미지의 영역. 그러므로 사랑하는 사람은 언제나 약자다. 어떤 사랑은 세계의 중심을 내어주는 일이기에 더욱 그렇다.

p.169 왜 나는 오늘 밤 이렇게 행복할까요? 나는 묻고 싶었다. 왜냐하면 당신은 나와 사랑에 빠지고 있고 우리는 그게 벌어지는 걸 지켜보고 있기 때문이죠. 우리 둘이 함께. 슬로, 슬로모션으로. 누가 알겠어요? 당신은 묻는다. 내가 알죠.

p.307 나는 어쩌면 우리를 한데 모아준 것은 어떤 갈망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똑같이 은신하고 싶어서 절박한 사람, 매우 적은 것을 바라고 상대가 절대로 바라지 않았다는 전제하에 상당한 것을 내어줄 수도 있는 사람과 함께 은신하고 싶은 갈망.


기어코 빈 손을 내보이게 하는 것, 초라해지는 것, 키득거리는 웃음을, 잔인한 조롱을, 둘만의 속삭임을, 이해할 수 없는 벽과 속절없이 사랑하게 되리라는 두려움을 받아들이는 것, 그 모든 것이 두려움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여전히 너무도 사랑하는) 작가 맥스 포터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모두 죽는다고. 그러니 사랑에 대해 숙고하는 것은 죽음에 대해 숙고하는 것과 같다고. 살과 피로 이루어진 존재이고 싶기에, 사랑은 곧 두려움이기도 하다고.

p.436 "왜 내가 당신을 믿지 않는데요? 말해줘요." "정말로, 정말로 내가 말해주면 좋겠어요, 빈달루 씨?" "네." "왜냐면 내가 당신을 다치게 할 수 있다는 걸 당신은 아니까."

p.540 클라라. 나 거짓말하고 있었어요. 나는 실망하는 게 무섭지 않아요. 나는 내가 가질 자격이 없으면서 가지게 될 터라거나 매일 가지고자 분투하는 법을 배우기는커녕 가진들 뭘 할지 모를 터였을 것이 무서운 거예요. 그리고 맞아요. 당신이 나보다 나은 사람일까 봐 무서워. 내가 오늘 밤 당신을 사랑하는 것보다 내일 더 사랑하게 될까 봐 무서워. 그렇게 되면 내가 어디에 있게 되겠어요?


비단 물리적 죽음이 아닐지라도, 상실은 죽음과 맞닿아있다. 어떤 이를 삶에서 떠나보내는, 혹은 그렇게 되는 것은 그의 죽음과 다르지 않다. 상실의 공포, 자신을 잃을 수 있다는 두려움. 그러니 눈물로 얼룩지고 애원하게 되는 것, 그또한 사랑이 아닐 수 없다.

그 한가운데서 드디어, 마침내 마주한 순간에, 다시금 아, 얼빠진 웃음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사랑이 아닐 리가 있나. 사랑받는 것, 사랑하는 것, 다시금 용기내어 손을 뻗는 것, 그 마법같은 순간. "이거 꿈만 같네요. 게다가 새해가 막 시작됐어요".

p.683 나는 그 단어를 한 번도 말하지 않지 않았는가? 눈에다가는, 밤에다가는, 공원의 동상에다가는, 내 베개에다가는 말했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 단어를 말할 것이다. 내가 당신을 놓쳐버렸기 때문이 아니라, 클라라,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놓쳐버렸기 때문에, 내가 당신과 영원을 보았기 때문에, 사랑과 상실 역시도 틀림없는 동반자이기 때문에.

p.766 우리는 다같이 성 요한 대성당으로 갈 건데, 우리랑 같이 갈래요? 그리고 내가 답할 겨를도 없이 누군가 샴페인 잔을 내게 건넨다. 나는 그 손목을, 당신의 손목, 당신의 손목, 당신의 달콤한, 축복받은, 하느님이 내린 내가 숭배하는 당신의 손목을 알아본다. "이스트 아인 트라움, 이거 꿈만 같네요." 그녀가 말한다. "거기다 새해가 막 시작됐어요."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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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길 잘했어
김원우 지음 / 래빗홀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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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다살다 이렇게 뻔뻔한 소설은 처음 본다... 아무리 "SF는 이왕 치는 뻥, 통 크게 쳐야 제 맛"이라고 말해왔다지만 이렇게까지 냅다 던져놓고 왜요? 불만있어요? 사측이세요? 하는 건 처음 봤다는 말이다.

기가 막히게 웃기고 찌질하고 나약한데다 쉴 새 없이 삐끗하는 게 아주… 절로 얼굴을 붉히게 하는 주인공들, 이지만. 공통점이 있다면 결국에는 해야 하는 것, 포기할 수 없어 다시금 돌아서고 일어서야 하는 길을 알고 있다는 것, 수없이 다치고 깨져도 사랑했음을 후회하지 않는다는 것.

사람을 믿는다, 사람이 가진 마지막의 마지막, 그 희미한 가능성을 믿는다고 항상 말한다. 그것은 어떤 초인이나 대단한 영웅적 능력이 아니며 선명하고 흔들림없는 의지도 아니다. 오히려 후회하고 당장의 욕심과 두려움에 쉴새없이 흔들리는, 부서지기 쉬운 마음이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부른다.

p.11 21세기에 태어난 저 아이들은 죽음과 텔레비전에 대한 내 말을 이해할 수 없겠지. 텔레비전이 꺼질 때 가늘고 긴 하얀빛이 반짝인다니. 저 아이들은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어지러이 점멸하는 우주배경복사도 본 적이 없을 것이다. 138억 년 전에 태어난 그 빛. 디지털 텔레비전에서는 절대로 보이지 않는 빛.


수없이 말해졌듯이, 세상은 더럽고 희망은 연약하다. 어떤 목숨은 너무 쉽게 사라지고 어떤 삶은 허무할 정도로 손쉽게 부서진다. 소란스럽고 분주한 세상에서 조용하고 소심한, 좁은 길로 흘러가는 이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손쉬운 길은 일하다 죽는 사람의 피로, 무고한 사람을 가두는 밀실로, 이유를 잃어버린 사람의 눈물로 그려진다. 그러나, 진부하고 처량맞을 정도로 연약한 희망을 놓지 못하는 것은, 게다가 때때로 그것만이 유일한 이유가 되는 까닭은 대체 무엇인가.

p.124 "사고가 나면 길이 막히는 이유 중 하나는 사고 현장 옆을 지날 때 사람들이 속도를 늦추기 때문이잖아요. 서로의 안전을 위해 그렇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단지 구경을 하기 위해 속도를 늦추기도 하더라고요."

p.278 이 세상은 엉망이고 나아질 기미가 도무지 보이지 않아. 고장난 건 핸들인데 사람들은 자꾸 바퀴만 고치려고 들어.


거대하고 무자비한 폭력, 이해할 수도 그러고 싶지도 않은 악의와 "레귤러와 노말의 세계 "에서 밀려났다는 수치심, 패배감. 그 모든 것들을 "사랑의 힘!"으로 물리칠 수는 없겠지만, 기껏해야 달달 떨리는 목소리로 한 마디 하다 찌그러져선 한동안 이불이나 차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싫다고 울며불며 발을 구르다가도 멈칫하게 하는 것, 차마 어떻게 할 수 없어 이를 악물고 돌아서게 하는 것, 조금쯤 유치하게 으쓱이도록 하는 것, 결국에는 똑같은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 그 모든 것의 이름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나는. 인간의 것만이 아니더라도.

p.165 생각이 굳어지면 집착이 된다. 현실은 파도 앞의 모래성이고 생각은 수십 년에 걸쳐 건설된 대성당이다. 내부에 침범하는 것들을 신성모독이라도 당한 것처럼 거부한다. 그 단단한 벽이 무너진 이유는, 맞아. 그랬지. 등 떠밀려 시작된, 연민이나 동정에서 시작된 사랑은 잘못된 걸까. 완전하지는 않지만 거짓처럼 느껴지지는 않았다.

p.380 두렵지 않은 것들도 생겼어. 더 이상 유령이 무섭지 않아. 나이가 든다는 건 죽은 사람이 눈앞에 나타났을 때 겁에 질리기에 앞서 반가운 얼굴이 아닐까 기대하게 된다는 것 같아. 이미 잃어버린 것들을 잃게 될까 두려워하지 않아. 나를 두렵게 하는 사건들을 꾸미는 인간들이 두렵지 않아. 그저 화가 날 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영웅은 등장하지 않는다. 대단한 힘을 지닌 "주인공"도 없고, 다들 눈물 콧물 아이고 두통이야 하기 바쁘기만 하다. 그러나 이것은 영웅의 이야기다. 끝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우리는, 바닥부터 기어올라갈 것이다. 밟고 일어서기 위함이 아닌, 손을 내밀고 맞잡기 위해.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느다란 심지같은 것, 끊어지고 부러질지언정 사라지지는 않는 것, 희망, 사랑, 구닥다리 낭만, 부질없는 것. 그래. 이 작가의 글에는 낭만이 있다. 초라하고 구질구질하지만 마음 속 깊은 곳을 울리는 것,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바로 그것으로 산다. 차마 포기할 수 없는 것들로.

p.86 "미래 씨. 우리는 실패했어요." 그리고 실패를 반복할 것이다. 그래서 그 실패를끝이 아닌 하나의 과정으로 만들 것이다. 나는 전화를 끊었다. 두통은 사라졌다. 멀리서 시작된 함성이 이내 거리를 휩쓸었고 바라는 미래를 현재로 끌어당기는 걸음들이 이어졌다.

p.254 원래 그런 건 없다. 현재는 필연적인 결과가 아니다. 내가 미래를 고를 수 있다면 모든 게 뿔뿔이 흩어져서 밤하늘에 별도 없고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는 미래보다는 개들이 뛰어노는 미래를 고를 것이다.


*도서제공: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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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여자, 작희 - 교유서가 소설
고은규 지음 / 교유서가 / 2024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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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이런 말은 본 적이 있다. 어렸을 땐 누구나 화가를 꿈꾼다고, 그러나 자라서도 그리는 사람만이 화가가 된다고. 쓰는 일도 마찬가지다. 인간은 모두 청자로 태어나 독자가 된다. 이것은 감각의 문제가 아니다.

주어지는 대로 수용하던 존재가 자기만의 서사를 쌓는다. 최후의 영역, 그 어떤 존재도 침범할 수 없는 세계, 내면의 이야기가 차올라 형태를 갖추고 마침내 범람하는 것, 그것이 이야기이다. 그것을 풀어내는 이가 작가다.

이야기는 힘이 세다. 글에는 힘이 있다. 이야기하고 글을 쓰는 사람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만한 힘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정말 그런가? 침묵은 쉽다. 침묵하게 하는 것,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더 쉽다. 그러나 '쓰기'의 원천을 말살하기란 쉽지 않다. 열망은 힘이 세다. '써야만 하는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약자란 무엇인가. 쉽게 사라지고 지워지는 자다. 그렇게 여겨지는 자다. 우리는 여기서 다시 물어야 한다. 약자는 약한 자인가? 뺏길 것이 거의 남지 않은 이는 포기할 수 없는 것을 포기하기를 요구받을 때 순순히 빼앗기는가? 사람을 삶의 경계밖으로 밀어내는 일은 그렇게나 간단한가?


"그"의 도둑질은 문학혼이다. 열정이요 온갖 사연을 방패처럼 휘감아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는 인간지사다. 연민의 대상이자 사소한 오점이다. 반면 도둑맞은 "그녀"의 분노는 한갖 발버둥에 그친다. 치사스런 투정이다. 대의를 이해하지 못하는 감정적

빼앗김에 익숙한 이들은 안다. 그렇게라도 악을 쓰고 지켜내지 않으면 내 것은 이름조차도 존재하지 못할 것을. 그런 연유로 "그녀"의 이름은, 정당한 주인이자 한 사람으로서의 그의 이름은 역사에 남지 못했다. 하다못해 반역자, 반동분자로도.

이것은 완전한 패배를 시사하는가? 지겹도록 들어온 "현실"의 재현인가? 그럴 수 있다. 그러나 이야기는 아닐 수 있음에서 시작한다. 너무도 뛰어났으므로, 그러나 순종하고 침묵하기를 거부했으므로 지워졌다. 어떤 공백은, 어떤 '부정'은 무엇보다도 선명하게 존재를 증명한다. 지워졌으므로 지워지지 않는 것이 있다.

p.125 작희가 수저를 놓은 후 트림을 하자 탕국집에서 밥을 먹던 남자들이 무슨 연유인지 '되바라진 년'이라는 소릴 했다. 남자도 대동하지 않고 그것도 여자 혼자 아무 거리낌 없이 밥을 먹는 게 그들 눈에는 속이 뒤틀릴 정도로 거슬리는 모양이었다. 작희는 남자들을 경멸하는 눈으로 노려보며 중얼거렸다. 내가 되바라진 년이면 당신들은 여자나 깔보는 치졸한 놈들이겠지.


나는 여기서 다시 묻는다. 결국에는 누가 "약한 자"였느나고. 고고한 명예로 담장을 쌓는, 제 말을 하는 여자를 집안에 처박아놓고 주먹질하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속이고 훔치지 않으면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닌, "모던 걸"을 욕하고 후려잡는 그러지 않으면 어떤 자리도 내지 못하는 "그들"은 강자였는가.

목숨을 걸고라도 해야만 하는 일이 있다. 차마 버릴 수 없는 것이 있다. 누군가에게는 부, 누군가에게는 쾌락, 누군가에게는 영예,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글. 쓰는 것.

유사 이래 글쓰기가 좋은 밥벌이 수단이었던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좋은 글이 그 자체로 인정받은 경우는 드물다. 즐거운 글쓰기,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무시로 굶어죽고 밀려나 입을 닫고 붓을 꺾었다. 그만둘 수 밖에 없었다.

p.244 "우리는 무엇을 위해 쓰려고 하는 걸까요?" 나는 남은 힘을 쥐어짜 가까스로 작희에게 물을 수 있었다. 작희는 대답 대신 슬픔을 이기지 못하는 듯 얼굴을 일그러뜨릴 뿐이었다.


그렇게 지워진 이들의 이름을 불러낼 수 있을까? 지워지고 덧씌워진 자리에서 희미한 흔적을 찾아낼 수 있을까? 본래의 것, 설명할 수 없는 것, 기가 막혀 말이 되지 못하는 것을.

이 책은, 작은 정의다.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이다. 아직 아무것도 끝나지 않았기에 이대로 끝내지 않겠다는 선언이다. "설사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 괴로워도 충분히 참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글만 쓸 수 있다면 그 어떤 고독이라 해도 친구처럼 곁에 두고 오래오래 쓸 터"인 이들의 흔적이다.

이름을 돌려주는 것. 쓰려는 여자를 쓰는 여자로 두는 것. "아무도 알아주지 않더라도" 아무도 모르게 두지 않는 것, 그럴 수 없는 것. 시간을 넘어 시선이 맞닿는다. 바람이 분다. 멀고 오래된 곳으로부터.

p.290 살기 위해 밥을 먹는 것조차 비루하게 느껴진 적이 있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 하루를 어떻게 버티나 싶은 날도 있었다. 문득 수증기처럼 증발해버리면 얼마나 좋을까 싶은 날도 있었다. 그러나 작희는 한 번도 목숨을 버리려는 시도를 한 적이 없었다. 꼭 살아야 했다. 이유는 하나였다. 쓰고 싶은 글이 있었기 때문이다.


*도서제공: 교유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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