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라앉는 프랜시스
마쓰이에 마사시 지음, 김춘미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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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에도 물성이 있을까? 지면에 놓인 형태나 활자의 모양이 주는 느낌이 아니라, 문장 자체가 주는 소리와 냄새가 있다면 어떨까. 다시 한번 그 답을 마쓰이에의 작품에서 찾을 수 있었다. 분명 글에 불과하나 몹시도 감각적이다. 어떻게 이럴 수가 있을까. 가본 적 없는 작은 마을의 계절을 이다지도 그리워할 수 있다니.

작은 마을에서의 길지만은 않은 시간, 그 짧은 이야기는 독자로 하여금 온몸으로 감각하게 만드는 문장으로 가득하다. 부서지지 않고 쌓이는 눈, 파도처럼 일렁이는 밀밭, 따뜻하게 밀려들어오는 나무 냄새, 깨질 것처럼 쨍한 햇살... 그리고, 소리. 형체와 무게를 갖고 범람하는 소리들.

p.122 날이 얼음을 깎는 소리는 어디에도 반향하지 않고 그저 넓은 겨울 하늘에 빨려들어가 사라져버린다. 날의 메마른 소리와 자기 숨소리 외에는 모든 소리가 멀고 덧없었다. (...) 눈이 내린다. 올려다본 어슴푸레한 하늘에서 떨어져 내리는 눈은 하얗지 않고 회색으로 보인다. 자신이 내뱉는 숨소리만이 들린다.

p.167 봄에서 여름으로의 전환은 장마가 없는 홋카이도에서는 커다란 벽걸이 달력을 오른손으로 단칼에 떼어내듯이 싱겁게 이루어진다. 변하는 것은 하늘의 푸르름의 농도와 벌레 울음소리, 그리고 햇살의 강렬함이다.


무요 게이코, 듣는 사람마다 되묻게하는 흔치 않은 이름의 그는 도쿄의 안정된 삶을 뒤로하고 소문도 사정도 다 그만저만한 작은 마을, 안치아이의 우편배달인이 되었다. 희한한 이름의 낯선 여자. 얼추 자리를 잡아가는 그의 일상은 잔잔하다기보다는 잠잠하고, 숨소리처럼 고르게 흘러간다. 여느때와 같은 배달 중 가즈히코라는 파랑을 만나기 전까진.

음악이 아닌 음을 수집한다는 남자. 현실에 주저하는 게이코는 자신과 달리 숨김없는 욕망을 드러내는 그에 빠져들고, 관계가 깊어질수록 그들 사이에 암묵적으로 그인 선은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약간의 비일상을 가미한 느릿하고 미지근한 열락. 결코 영원을 증거할 수 없는.

p.23 격류에 실려온 커다란 바위나 큰 나무줄기처럼, 거기에 멈춰서서 형태를 남기는 것도 있지만 그러나 그런 것은 좀처럼 흘러오지 않는다. 그렇게 친숙하고 친했던, 못 알아볼 리도, 잊을 리도 없는 몸짓과 목소리와 냄새는 망망한 시간 앞에서 여지없이 패배한다. 기억은 희미해지고, 이윽고 잊히고 사라진다

p.100 "이 부근은 옛날옛날 아주 옛날에는, 해가 뜨거나 지는 것을 볼 수 없고 바람도 빠져나갈 수 없는 원시림에 뒤덮여 있었지요. 무성한 나무 잎사귀에 가로막혀서 석양빛은 줄기나 가지 옆구리로 조각조각 들어올 수 있었을 뿐, 땅은 하루 종일 축축한 채, 정말 어두침침한 곳이었어요."


'한창때'를 지난 연애는 풋풋한 청춘의 그것처럼 뜨겁지도, 심장이 터질듯한 순간의 연속도 아니다. 경험으로 짐작하는 '다음'과 미묘한 거리감을 품은 그것은 영화 속 장면처럼 무모하고 화려한 맹세와는 거리가 멀다. 오히려 서로가 서로의 최후이자 최고의 사랑일 수 없다는 것을, 아니, 그런 건 어디에도 없다는 걸 너무 잘 아는 조금쯤 건조하고 씁쓸한 맛에 가깝다.

한 번 불거진 균열은 좀처럼 잠재워지지 못한다. 작은 마을에서 재빠르게 오가는 소문을 무시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나는 당신에게, 당신은 나에게 모든 것을 버리고서라도 얻어야 할 확신이 아니지. 그렇다면 우리는 대체 뭘까. 여전히 이방인인 나는 다시 어딘가로 '돌아가야' 할까.

p.101 "형태가 있는 것은 언젠가 사라져버리지만, 사라진 것은 형태를 잃음으로써 언제까지고 남지요. 나한테 보이는 것은 그런 거예요. 많은 것이 흘러 여기까지 왔어요. (...) 여기는요, 그러니까 누구한테도 목적지가 아닌 셈입니다. 태곳적부터."

p.156 "동면이라는 건 말이에요. 일단 죽는 거예요. 돌아올 수도 있고, 간 채 끝나버리는 것도 아니지만, 그래도 죽은 거나 같죠. 그래서 봄에 동면에서 깨어난 곰한테는 가을 곰하고 다른 영혼이 들어가 있는 일이 있어요. 선수 교체인 거죠. 계절이 한 바퀴 돈다는 것은 그만큼 큰 사건이거든요."


모든 일에 명쾌한 답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로 끝나는 관계만 있다면 인생살이가 얼마나 편하고 또 얼마나, 얼마나... 단조로울까. 그럴 수 없기에 우연은 설렘이 되고, 열정은 고뇌가 된다. 쉬이 떨쳐지지 않는 여운은 작가가 그려내는 '어른의 연애'가 결국 알고도 내딛는 한 발짝의 결심을 피하지 않는 데서 오는지 모른다.

자연에 파묻힌 작은 마을, 그 안의 더 작은 사람들을 통해 드러나는 삶. 수천년을 이어져오는 땅과 물의 기억. 생의 감각은 눈으로 읽고 온몸으로 감각하는 문장으로 곳곳에 범람한다. 섬세하게 그려진 계절의 풍경은 독자로 하여금 미묘하고 쌉쌀한 관계의 맛을 느끼게 할 것이다. 이 책을 읽는 이가 부디 먼 곳을 가만히 바라보게 하는 고요에 닿기를.

p.156 "그러니까 죽을 거면 제대로 죽어야 해요. (...) 절대로 억지로 일어나려고 하지 말아요. 아무리 큰 소리가 나도, 아무리 누가 흔들어대도, 속으면 안 돼요. 정신 차리고 진짜 소리를 들으세요."

p.189 두 사람 위에 바닥 모를 깊이와 밀도로 암흑이 펼쳐져 있었다. 그 구석구석에 몇억이라고도, 몇조라고도 할 수 있는, 몸이 떨릴 만큼 많은 별이 반짝이고 있었다. 몇천 년 전에도, 몇만 년 전에도 별하늘은 이렇게 펼쳐져 있었고, 원시림을 내려다보고, 아낌없이 빛을 쏟아붓고 있었던 것이다.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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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 - 인간에 대한 비공식 보고서
매트 헤이그 지음, 강동혁 옮김 / 인플루엔셜(주)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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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진보를 막아라. 그들은 자신들의 멍청함과 미개함에 걸맞지 않는 파괴적인 진보를 이룰 것이며 그것은 우리 우주의 질서와 평화를 깨트릴 것이다. 너는 그들 사이에 섞여 침착하게 행동할 것이며, 위험요소를 완전히 제거하는 한편 그들에 대한 정보를 수집해 돌아올 것이다. 너는 파견되었다. 우리가 지켜보고 있음을 잊지 말라.

교수, 불성실한 남편, 없느니만 못한 아버지, 오만과 인정욕구로 가득한 인간. 절친한 친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마지막에서 두 번째 네안데르탈인의 머리를 바위로 내리치고 곧바로 돌아서서 그 아내와 관계를 가진 유전자랑 거의 비슷한 수준(206)"인 천재 수학자 앤드루 마틴은 제거당했다. 그리고 대체되었다. 완벽히 복제된 육신과 패닉 상태의 외계인 알맹이로.

그에게는 임무가 있다. 진짜 앤드루가 증명해낸 희대의 난제 리만 가설의 풀이와 그 흔적, 그리고 그 사실을 아는 이들을 제거하고 인간에 대한 지식을 수집해올 것. 잘해라. 너도 죽기 싫으면... 의 막중한 책임을 떠안은 가짜 앤드루는 시작부터 맞닥뜨린 고난에도 어찌저찌 첫 번째 임무를 수행한다. 그 다음은 완전히 난장판이었지만.

p.266 인간의 문명이라는 표면 아래 그토록 가까운 곳에 폭력이 있다니 두려웠다. 걱정되는 것은 폭력 그 자체가 아니라, 인간이 그것을 감추기 위해 쏟는 어마어마한 노력이었다. 호모사피엔스는 매일 아침, 자신이 누군가를 죽일 수 있다는 걸 알고 깨어나던 원시의 사냥꾼이었다.


그에게 인간은 미개와 혼란으로 가득한 종족이다. 어떻게 아직까지도 멸망하지 않았는지 의심스러울 만큼. 일은 일이니까. 이 민둥산 유인원들의 사회에 잠입해 조사하는 것쯤이야... 쉽지 않다. 옷이라는 건 거추장스럽고, 뭐가 이렇게 비효율적이고 성가신지. 틈만 나면 냄새 풍기고 즙이나 흘려대고. 그냥 콱 다 버리고 튀어버릴까, 하던 찰나 낯선 감정이 찾아든다.

왜 이렇게 가슴이 뛰지. 왜 이렇게 불편하고 신경쓰이는 거지. 너희들이 뭔데, 왜 편안하고 고요한 고향이 아닌 죽음으로 시들어가는 지루한 나날에 머물고 싶게 하는 건데. 이 비합리적이고 터무니없는 일상은 영생과 질서를 포기하고라도 지켜낼 가치가 충분한 걸까. 작가는 애써 희망을 말하지 않는다. 여전히 한심하고 추잡스러운 찰나의 존재는 오늘도 내일을 꿈꾼다. 고비에서 가능성을 찾는다.

불멸하는 예술, 수의 법칙을 깨부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꺼이 넘어지고 다시 일어난다. "모든 삶에는 위기의 순간이, 내가 믿어온 것이 틀렸다고 말해주는 순간이 존재한다. 이런 일은 모두에게 일어난다. 유일한 차이는, 그 깨달음이 사람을 어떻게 바꿔놓느냐는 것뿐"이기에. 외계인에게도 말이다. 개와, 땅콩버터 그리고... 사랑이 있다면 말이지.

p.356 나는 무언가였다. 그리고 이제는 다른 무언가가 되었다. 나는 괴물이었고, 이제는 다른 유형의 괴물이 되었다. 언젠가 죽고 고통을 느끼겠지만, 또한 살아갈 괴물. 언젠가 행복을 발견할지도 모르는 괴물. 이제 내게 행복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행복은 상처의 뒷면에 존재한다.


*도서제공: 인플루엔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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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 뒤에서 - 지워진 아내 아일린
애나 펀더 지음, 서제인 옮김 / 생각의힘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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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색된 동화로 알았을 때부터 오래도록 사랑해왔다. 읽을 수 있는 작품은 모조리 구해 읽었다. 사랑하지 않을 수 없었다. 번득이는 지성, 먼지와 살이 뒤엉켜 풍기는, 지워지지 않는 피로의 냄새를. 끔찍한 사회를 꿰뚫어 보는데서 오는 지독한 환멸에도 끝내 사유하는 지성이기를, 양심을 가진 존재이기를, 관찰자이기를, 고발하기를 포기하지 않는 끈기를.

생생한 전장의 고백, 패배하고 방황하는 자의 영혼을 가감없이 기록하는 정직과 거침없는 풍자와 고발의 용기를 사랑해왔다. 나뿐만 아니라 세상이 그를 사랑해왔다. 그의 일생, 작품세계, 누군가의 입을 통해 전해진 평가까지도. 위대한 문인이자 시대의 지성이었고, 그 자신이 어떤 시대의 증언과도 같은 존재였다. 조지 오웰은.

p.90 보이지 않고 급료도 없으나 당신의 시중을 드는 것이 생의 피할 수 없는 목적이기에 꼭 감사를 표할 필요도 없는 누군가로부터 이익을 얻는다는 것. 그런 당신이 해낸 일을 당신 혼자서,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해냈다고 상상하게 된다는 것이다. (...) 나는 만들었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그리고 이 문장 속에서 당신의 아내는 사라져버린다.

p.102 가부장제는 오웰이 자기 아내의 보이지 않는 노동으로부터 이익을 얻도록 허용해 주었다. 그런 다음 똑같은 방식으로, 전기 작가들이 그가 그 모든 일을 혼자 해냈다는 인상을 주도록 허용해 주었다. 전기 작가들은 오웰의 이야기에 들어갈 사실들을 세상에서 골라내는데, 그 사실들은 이미 오웰에게 유리하도록 세상이 선별해 놓은 것들이다. 가부장제와 전기의 서술 기법은 솔기 없이 매끈하게 결합한다.


그런데 만일 그 모든 게 그의 것이 아니었다면. 오롯히 홀로 이뤄낸 업적이 아닌 것을 넘어 숫제 훔치고, 갈취하고, 교묘하고도 뻔뻔스럽게 덧칠해버린 누군가의 이름이었다면. 그의 글, 그의 파란만장한 일생, 그의 사유는 과연 진실된 것이었을까. 조지 오웰이 아닌 진짜 '에릭 블레어'는 대체 어떤 사람이었던 걸까.

세간의 찬사가 쏟아진 불후의 명작들, 내가 사랑해온 글들. 그건 대체 누구의 것이었을까. 검열의 흔적이, 강제된 부재가 존재의 반증이라면, 그 자리에는 무엇이, 누가, 어떻게 있었던 걸까. 나는 그것을 더 이상 사랑할 수 없다. 그의 글이, 경험이, 사유가 그 자신의 것이 아니라면. 익숙하고 점잖은 태도로 눈을 감는 일이 오래되고도 익숙한 이름, 여성혐오와 가부장제에의 동참이라면.

p.270 이제 아일린은 스페인에서 자신이 했던 경험들이 자신으로부터 분리되어 있다는 걸 알게 된다. 그 경험은 조지의 일반적인 지식, 아일린은 기여한 적도 관련된 바도 없는 지식이 되어 있다. (...) 모두 아일린이 조지에게 말해 준 것들이다. 아일린 자신도 '내 아내'로 일반화되어 있다. 아일린의 모든 정체성과 행동과 지식이 멋대로 조지의 것이 되어 있다.

p.419 어쩌면 아일린이 참여했다는 사실을 오웰이 그토록 애써 은폐하려 한다는 점이야말로 그 사실을 가장 강력하게 보여주는 증거일지 모른다. 오랜 시간이 흐른 뒤 오웰은 친구에게 이렇게 말한다. '아일린은 그 책의 기획까지 도와줬다'고 말이다. 이것은 도용과 삭제를 합친 수법이다. 누군가가 한 아주 작은 기여에는 감사를 표하면서 훨씬 더 큰 기여는 지워버리는 방식.


사랑했던 시간을 물어내라고 따지고 싶어지는 마음을 아는가. 읽다 말고 치미는 화에 뜨끈해지는 눈가를 짚는 기분을 아는가. 그렇다면 가장 중요한 일은 나의 배신감도, 이 충격을 극적인 수사로 포장하는 것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무엇보다 시급한 일은 지워진 존재, 이름도 삶도 당연하게 소거된 이의 자리를 돌려주는 것이다.

어떤 부재, 집요하게 들어내진 흔적은 역설적으로 존재의 강한 반증이 된다. 저자가 기록의 '빈틈들'에서 찾아낸 한 여성의 생애가 그러하듯이. 조지, 아니, 에릭은 그와 추종자들이 그려온 것처럼 시대의 양심도, 용기있고 재치있는 작가도 아니었다. 그저 이기적이고 잔인한 철부지에 불과했다. 이것은 과거의 유물이 아니다. 여전히 현재가 아니던가.

p.432 오웰이 후에 그 여성에게 보냈다는 편지에 대해서는, 나는 할 말이 없다. 그저 오웰이 리디아에게 했던 비난의 말들만 떠오를 뿐이다. 상대가 원치 않는 섹스의 날짜를 지정해 놓고는 그 시간에 리디아가 집을 비우자 오웰이 퍼부었던 말들만. 남자는 자기가 원하는 걸 가질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게 당신이라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p.455 한 여자가 자신의 필요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여기다 못해 자신을 반드시 받아야 하는 의학적 치료조차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으로 만들어버리는 말들. 그럼으로써 남편이 오든 안 오든 그의 마음이 편해지게 해주는 말들. (...) 자기말소는 가부장제에서 여성에게 요구되는 덕목이지만, 결국에는 스스로를 드러내게 되고 범죄처럼 보이게 된다.


누구도 자신을 모욕하는 이에게 감사하며 "진짜 가치"에 주목하도록 요구받지 않는다. 그러나 여성에게는 여전히, 당연한 일이 아닌가. 저자는 '아내'라는 이름으로 끔찍하리만치 말끔하게 소거되어온 이의 생애와 그를 둘러싼 치밀하고 집요한 폭력을 고발함으로써 의아하고도 고통스러웠던 '명작'의 여성혐오를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그에게 주어의 자리를 돌려주기를 바란다. 그렇게 읽히기를 바란다. 그 자신 외에 다른 누구의 이름의 뒤로 밀려나지 않기를 바란다. 오웰의 아내, 오웰에게 빼앗긴, 오웰에 의해 무엇이 된... 이 아닌, 아일린, 아일린 오쇼네시. 번득이는 지성, 눈부신 용기와 별과 같은 성품을 가진, 욕망하고 후회하고 사랑하고 슬퍼했던 사람, 아일린 오쇼네시로.

p.79 아일린은 오웰이 소중히 여기던, 인간이라는 존재가 "꼭 갖추어야 하는 고상함"을 체현해 놓은 존재였다. 오웰은 작가로 살아가는 동안 이 고상함이야말로 우리가 잘못된 권력에 — 우리를 '안전하게' 지켜준다고 떠들어대면서 실은 억압하는 구조에— 생각 없이 굴복하지 않게 해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한 가지 자질이라는 걸 깨달았다. 그건 오웰이 지니고 싶어 했을 만한 자질이었다.

p.570 노라는 생각한다. 편지를 든 손이 무릎으로 떨어진다. 아니야. 아일린이 그 대신 이뤄낸 건 삶 그 자체였어. 이제 뭘 해야 할까?



*도서제공: 생각의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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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에 내가 원한 것
서한나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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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좋아하시나요. 누군가 이렇게 묻는다면, 혹은, 좋아하는 계절로 여름을 꼽는 이가 있다면, 혹시 더위라도 먹은 게 아닌지 반문하고 싶어진다. 대놓고 그럴 것까진 아니라도, 솔직한 심정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치만, 아무래도 그렇잖아. 뜨겁다 못해 숨이 턱턱 막히고 모든 감각이 지나치게 선명한 그 계절을, 적어도 기억 속에는, 단 한 번도 좋아해본 적이 없다.

여름을 좋아하지 않는다, 아니, 싫다, 를 넘어 몸서리치게 두려워한다. 이 고백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에 따라붙을 나의 음울하고 축축하고 노상 비실거리는 자아를 꺼내보이는 일이 영 마뜩찮기 때문이다. 할 수만 있다면 여름마다 죽었다 살아나 재작년쯤에 삼만이천번째 죽음에서 부활하신 기네스 신기록 메시아가 되었을 것이다. 그만하면 삼도천에서도 간보기 금지라고 써붙였을걸.

p.193 개떡 같은 날씨 100번에 끝내주는 순간 한 번으로 대낮의 더위가 용서되었던 날도 있다. 습기에 습기를 더하는 비도 가끔은 괜찮다. 그런 날씨는 일상으로부터 나를 밀어내는 듯하다. 한 번도 가지 않은 곳에서 비를 피하기도 하고, 비를 맞으며 짧은 거리를 달려보기도 하고, 갈아입을 계획이 없던 옷을 벗게 한다. 변수가 많은 계절이면서 동시에 그 변수에 몸을 내맡기는 충동성도 함께 주는 날씨다.

p.258 여름이 아닐 때도 여름밤의 냄새를 맡을 수 있는 향수를 찾아다녔지만, 향수는 좋기만 해야 해서인지 그 냄새를 구현하지 못했다. 플랑크톤과 세균과 안 좋은 것이 섞인 냄새. 흙 먼지 냄새. 불운한 기운… 그 모든 게 합쳐져야 그리운 냄새가 되는 것인지.


두려움의 이유는, 다른 무엇보다도 지나치게 살아있기 때문이다. 뜨겁고, 선명하고, 타는 듯한 햇살에 고스란히 노출되어 지나치게 생생한 감각이 온몸을 찌른다. 매미 우는 소리, 비 내리는 하늘, 감은 눈 뒤로 시뻘겋게 타오르는 세상. 살다가 살다가 죽어버리라는 것만 같아 천천히 가라앉다 흩어져버리고 싶은 나 같은 종자에게는 겨울의 적막이 그저 숨통 트일 구석일 뿐이라서.

그래서일까. 여름을 좋아하는 사람도 어쩐지 이해하기 어려운 별종 같다. 이 살다 못해 죽어가는 계절에 사랑할 구석이 있다니, 찐득하고 축축하게 젖어드는 온도에 낭만 비슷한 것이 들러붙는다니. 아무래도 더위를 먹은 게 틀림없군요… 동시에, 대책없는 긍정 비슷한 것을 슬몃, 부러워해버리고 마는 것이다. 여름의 감정. 여름 맛. 귀여웠다 늘어졌다 하는, 내게 없는 것들.

p.73 너무 좋은 것은 자아를 파괴한다. 박살난 자아는 바로 재조립된다. (...) "애인 만들고 싶은 여자" 이런 문장을 읽기만 해도 내 마음속에는 어떤 이미지가 단번에 피어오른다. 너무 좋아서 마구 뛰어다니고 싶다. 이건 머리로 씹어서 몸으로 먹는 음식이나 다름없다. 내 몸이 있고 이 소설이 있는 게 아니라 이 소설이 있고 비로소 내 몸이란 게 만들어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p.98 이 세상 것이 아닌 정신이야말로 이 세상을 놀라게 할 말을 한다. 그리고 사랑은 우리의 정신을 저세상으로 보낸다. 정확히 그 에너지만큼 우리를 이 세상에 달라붙게 한다. 내가 궁금해하는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있으니까. 그가 우리의 언어로 말하고, 우리의 언어로 생각하니까.


하여간 그런 이유로 여름의 기분이란 뭘까, 절로 묻게 되는 것이다. 슬픔은 겨울의 전유물이라고, 마음껏 외로워할 수 있는 시간은 해가 낮고 밤은 긴 계절 뿐이라는 생각이 틀렸을지 모른다. 여름의 흔적 또한 묘한 슬픔과 아릿한 서글픔으로 남는다. 오래 앓은 사람의 몸이 그러하듯이. 그러니 "여름 좋아 인간"은 대책없는 처치 곤란의 재앙덩어리가 아니라 그저 온 몸으로 부딪히고 끌어안는 사람일지 모른다.

찬란한 청춘이나 상쾌한 웃음 따위는 차원 너머에나 존재하는 관념일 뿐인 계절. 모든 것이 지나치게 생생하고 지나치게 가까워 눈을 감아도 소란하고, 숨막히는 더위와 축축한 공기가 끝나지 않을 것처럼 들러붙어오는 계절. 그 계절의 어느 구석을 사랑으로, 추억으로, 기다림으로 남겨두는 사람은 필경, 물렁한 웃음을 짓고 어깨에 힘을 빼는 법을 아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p.15 모든 사랑하는 사람은 사랑하는 이의 지옥을 돕는다. 이 지옥이란 것은 시기마다 달라져서, 사랑이 시작되기 전에는 욕망의 지옥이고, 사랑이 끝난 뒤에는 자기 내면과 혼자 남는 지옥이 펼쳐진다. 그리고 거기에서 무언가를 처절하게 느끼게 하고, 제 발로 걸어 나오게 한다. 그것이 내가 그 여름에 배운 사랑의 힘이다.

p.164 생에 대한 의지가 강한 사람은 어떤 순간 아주 순수하게도 보인다. 나는 그것을 반만 닮았다. 그는 상쾌한 것을 좋아한다. 지극히 행복한 상태는 시원하게 화장실에 다녀온 뒤 샤워하고 누워 있는 가뿐함이라고 그는 이야기한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여름의 에너지다.


아 싫다. 이대로 읽다간 외롭고 외로워 온몸이 안으로 웅크러들다 끝내 사라지길 바라는 마음을 슬쩍 접어두고 뜨거운 햇살을 그리워하게 될지 모른다. 이 미움과 두려움을 얼마간은 더 남겨두고 싶어진다. 그야, 무섭잖아. 달라진다는 건. 이해할 수 없는 충동에 발길을 맡기고 낯선 사람과 낯선 공기를 사랑해버린다는 건. 그렇게 고집을 부리고 싶어진다.

그럼에도 이 지긋지긋하고 끔찍해서 가끔은 일 년 내내 지구를 떠나고픈 충동에 빠져들게 하는 계절을 조금쯤 사랑해버리게 될지 모른다는 예감이 든다. 에너지레벨의 저 반대편에 있는 사람 같은 이 계절이 귀여워지고 만다. 여름을 사랑하는 이를 사랑해버리고 만다. 충동적이고 기세등등한, 여름을 닮은 것들을.

p.4 내가 탐닉하는 여름의 이미지는 실제 여름과 별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사랑보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했던 사랑이 더 달콤하고 실감나며 애절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내가 글을 써서 하고 싶은 일이기도 하다. 실제보다 부풀리고 없는 것을 상상하면서 현실이 뭐라도 되는 것처럼 느끼는 것. 사라진 것이 내 곁에 어떤 식으로든 존재한다고 느끼는 것.

p.246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자신이 인생에서 목격한 진실을 나름대로 말하고 싶어 하는 중인 거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의 존재는 그것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보이는 지하실이다. 스스로의 고독에 짓눌려 편히 쉴 수 없는 이들을 기꺼이 환영하는 짓눌렸던 만큼 거기서 해방감과 오래도록 사라지지 않는 쾌락을 느낄 거라는 걸 알 수 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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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탐정 허균 - 화왕계 살인 사건
현찬양 지음 / 래빗홀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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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오만 무서운 게 있다 해도, 사람보다 무서운 것이 없다. 그런 우스갯소리도 있지 않은가. 침대 밑의 괴물보다 무서운 것은 침대 밑에 있는 사람이라고.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은 반만 옳았다. 열 길이 아니라 스무 길, 가장 깊은 물 속보다도 알 수 없는 게, 당장 눈앞의 사람 아니던가. 얼마나 오래 알았든, 얼마나 가까이 했든.

결국 자기자신조차 알 수 없는 게 사람이다. 그러니 사람의 말만큼 못 믿을 게 또 있던가. 배우고 익히기는 하였으되 하필이면 사람 잡을 손이라, 죽은 사람도 사람이니 그 쪽으로 갈밖에. 그 와중에 가만 두면 맛 따라 멋 따라 휭하니 나돌아다닐 양반한테 코 꿰이고 손목 잡혀 한양 떠나 남도까지 내려온 의생 이재영의 앞날은 어디로 흘러가는가.

p.40 "그저 그런 살인 사건이 괴담 하나로 애생이의 삶을 재구성하는 연극이 되지 않었소. 애생이를 죽인 사람은 그런 것까지 생각한 모양이지라. 아름다운 여인에게 걸맞은, 그럴싸한 최후의 이야기 말이어라." 나는 애생을 검험한 의원이다. 애생의 후두부를 강타하여 생을 빼앗은 것은 고작 고기 한 덩이였다. 한데 죽은 이를 다시 죽일 수 있는 것은 혓바닥 하나로구나.

p.68 "사람이 죽으면 아무 말도 못 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산 사람은 입만 열면 거짓말을 하지만 도리어 죽은 사람은 진실만을 말하는 법이야."


제목 그대로, 작게는 먹는 것 좋아하고 노상 허허실실하는 남자와 함께하는 좌충우돌 수사기행이겠으나 그 이면에는 가늠할 수 없이 매서운 물음이 있다. 웃는 낯 뒤의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남자와 헤아릴 수 없는 증오를 품은 여자, 그리고, 묻고, 묻고 또 묻는 남자가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무엇에도 뿌리내릴 수 없는 어중간하고 초라한 이가.

전란 후의 조선, 나라도 사회도 폐허가 된 가운데 명분만이 고고하게 턱을 치켜들고 버티는 나라. 있는 집에는 고깃국에 과자가 오르고 없는 자는 헐벗은 땅의 풀뿌리조차 구하지 못해 굶어 죽는다. 같은 임금의 나라. 어버이 되시는 왕은 멀기만 하고, 반상의 경계는 지엄하기 짝이 없어 서로의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 순진하고 어리석은 것들. 뼛골까지 쥐어짜이다 죽을 미천한 것들.

p.244 "조선은 임금이 아니라 삼강에 지배되는 나라야. 그대도 알겠지만 삼강이라 함은 '신하는 군주를 따르고 자식은 아비를 따르며 아내는 남편을 따르는 것'인데, 그것을 따르지 않는 것을 죄 중에서도 가장 무거운 죄라 하여 강상죄로 처벌한단 말이지. 그런데 그 강상죄가 사회 전반을 모두 지배하고 있지 않나. (...) 모두가 틀릴 수 있음을 알고 바닥부터 시작하여 진실을 보는 것, 그것이야말로 시작점일세."

p.277 "조선인은 근본부터 잘못되었어요. 나라가 이 모양 이 꼴이 된 것도 당연한 일이지요." 사람이 약간 이상한 이야기를 들으면 금방 반박을 할 수가 있다. 하지만 이 정도로 이상한 이야기를 들으면 이게 고도로 돌려 말한 농담인지 아니면 어떤 해학인지 알 수 없어 도리어 머리가 멍해진다는 것을 나는 이번에 처음 알았다.


온전히 믿을 수도, 그렇다고 등돌릴 수도 없이 불완전한 인물들이 매력적이다. 눈웃음 정도로는 택도 없는 불완전, 부조리. 환경의 한계고 성찰의 한계이며 어쩔 수 없는 오만 같은 것. 어쩌면 작중 신분의 격차는 종의 차이만큼이나 깊고 무서운 것이었을지 모른다는 생각. 다르게 살아왔기에, 빼앗겨본 적 없기에 알지도 이해하지도 그럴 의지조차 가져본 적 없을 무지, 비정함.

그러므로 돌아서는 시선끝이 매섭고 차갑다. 그 점을 굳이 감추려 하지 않는 데서 깊은 만족을 느낀다. 그래야지. 되도않는 동정을 덧대느니 어쩔 것이냐, 일갈하고 돌아서 잊어버리는 게 낫지. 그렇게 태어난 사람이겠거니, 죽어 썩어질 때까지 저러겠거니, 이해의 너머에 있겠거니… 어떤 수용은 불구대천의 원한과 한끗 차이 아닌지.

p.136 그는 좋은 양반일 뿐, 한 번도 이 땅의 백성이어본 일이 없다. 조선의 10분지 1, 아니 100분지 1에 해당하는 양반인 그는 100분지 99에 속하는 나의 마음은 영원히 제대로 알 수 없으리라. 비록 그에게 측은지심이 있다 하더라도.

p.179 "자넨 행동이 올곧은 사람이지. 말에서는 품위가 느껴져. 봐. 이토록 그대를 조롱했는데도 욕 한마디 할 줄 모르잖는가. 그것만 봐도 자넨 굶어본 적이 없는 게 확실하거든. 사람이 말이야, 배가 고프면 몸에 힘만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정신의 힘도 떨어진다네. 굶주림을 안다고? 자네는 아무것도 몰라. (...) 나물밥이 별미라고? 한 번도 배고픈 적 없는 놈들 입에서나 나올 만한 말이 아닌가."


작가는 캐릭터의 입을 빌어 원망, 기쁨, 고개를 절로 떨구게 하는 죄책감 앞에 차마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얼어있는 이를 끌어앉히며 말한다. 먹어. 먹고 얘기해. 욕을 하든 펄펄 뛰든 뭘 하든, 일단 먹고나서 해. 밥부터 먹어 일단. 그렇게 말하는 것 같아서… 왜 그랬냐고, 아릿하고 참담한 원망 한 자락을 끌어안고도 꾸역꾸역, 눈물에 밥술을 눌러 삼키게 한다.

그래서인지, 그의 이야기에는 슬픔이 묻어있다. 닿을 수 없는 이해의 너머에도 불구하고 함께하겠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이름의 단단한 그것. 마지막 장면처럼 들이닥치는 이야기가 어디로 향하게 될까. 그들의 여정이 이것으로 끝이 아니기를 빈다. 설령 그 끝이, 채 씹어 삼키지 못한 무언가일지라도.

p.17 "난 너를 정말 이해할 수가 없다." 허형은 하고 싶은 말이 더 있는 듯했지만 내뱉지는 않고 입을 다물었다. 대신 밥그릇에서 밥 한 숟갈을 크게 떠서 내 쪽으로 옮겨주었다. 그렇지 않아도 고봉밥으로 볼록하게 솟은 내 주발 위에 남산만 한 것이 하나 더 생겼다. "많습니다." "내 잔소리가 듣기 싫거들랑 잠자코 먹어라."

p.308 허형은 마치 울 것처럼 눈동자가 새빨갛게 변했지만 울지는 않았다. 대신 그는 "하지만..." 하고 말했다. '하지만, 그러나, 그렇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언제나 그다음 이야기가 듣고 싶었다. 어쩌면 그 뒤에 미안하다는 말이 들려올까 해서. "말하는 건 어렵지 않아. 하지만 내가 모든 것을 털어놓는다면 자네는 또 나를 싫어하게 될 테지. 난 그런 것은 견딜 수 없어."


*도서제공: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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