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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칼라하리의 절규
델리아 오언스 / 살림출판사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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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살림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데다 광막하다기엔 심히 옹졸한 규모의 자연을 맛본 것이 전부일 대다수의 현대인에게 '야생의 경이'란 아마도 미디어의 편집과 가공을 거친 이미지로만 존재할 것이다. 나또한 그렇듯이. 끝없는 대지, 혹은 바다. 한줄기 빛도 없는 울창한 밀림 또는 작열하는 태양과 불길, 모래바람을 피할 곳 없는 메마른 땅. 인간의 발길을 허락하지 않는 그런 곳에 극히 미미한 존재로 자리하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사나운 야생의 땅. 나약한 인간의 문물이 아닌 날것 그대로의 거칠고 잔인한 삶. 모든 것을 태워버릴 들불과 가뭄, 찰나의 폭풍우가 피워내는 풍요의 시기. 사막에서 들판으로, 다시 모래와 마른 풀의 땅으로. 그곳에서도 생명이 살아간다. 태어나고, 사라지고, 오고 가며, 머물고 떠난다. 도처에 생명을 가진 것들이 살아가지만 인간은 없다. 냉혹한 그곳은 인간을 허락하지 않는다. 겸허히 몸을 낮추고 다른 것들과 마찬가지로 살기 위해 분투하지 않는 한 조금의 틈도 내어주지 않는다. 인간이 작아진다면, 찰나를 살아가는 오직 몸 하나뿐이라는 것을 인정한다면 슬며시 장막을 걷고 머무름을 허락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꼭 허락되는 만큼, 딱 그만큼만.
그곳에 젊은 부부가 있었다. 무슨 용기인지 전재산을 홀랑 털어 알거지 직전이 되어서는 현지인들도 감히 접근하지 못한다는, 지도조차 없는 야생에 제발로 뛰어드는 두 학자가 있었다. 델리아와 마크 오언스, 이들의 이야기는 그들의 열정으로 시작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거대한 자연의 한폭을 뒤로하며 끝난다.

흔히 '탐사'라 함은 용감한 대원들과 모닥불이라든지, 웃음과 경이, 위대한 모험이 함께하는 제법 유쾌한 그림을 떠올리기 마련이다. 과연 그럴까. 그것만이 탐사라면 이들 부부의 이야기는 고생... 그것도 아주 생고생으로 불러야 할 것이다. 순탄한 때가 없다. 아름다운 이야기와 야생에서의 우정? 속편한 소리다. 우정은 무슨, 소득은 무슨. 시작부터 굶어죽거나 말라죽거나, 운이 좋으면 홀라당 잡아먹히는 것 중 하나를 고를 판이다. 희망은 보이지 않고 물부족 돈부족 체력부족 장비부족... 사랑은 무슨, 우정은 개뿔. 도처에 널린 것은 고난과 역경 뿐이다.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구멍이 있고 와중에도 손길을 내미는 이가 있다. 생판 모르는 낯선 이를 환영하고 가진 것을 모두 나누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이상한 냄새와 소리가 나는 무언가 정도로 여겨졌겠지만) 다행히 가까이서 관찰하고 숨쉬고 잠드는 것을 허락하는 동물들이 있다. 혹독한 곳에서 피어나는 것은 그런 감동일지도 모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런 이야기에서 따뜻함을 느낀다. 아주 작고 미미하다는 점에서, 손을 뻗고 숨을 죽이고 몸을 낮추고, 경계심을 누그러뜨려야만 서로에게 닿을 수 있는 그 거리를 말하는 이들에게서. 아마도 이 젊은 학자들이 가져온 것은 빛나는 별과 짐승의 생태 뿐만이 아닐 것이다. 거대한 곳에 작게, 함께,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터전, 그리고 자연으로 돌아가는 삶에 관한 경험일 것이다. 차마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의미를 가득 담은.

먼동이 트는 하늘, 혹은 태우듯 물들이는 해질녘의 노을을 보라. 쏟아져내릴 것만 같은 별로 가득한 밤하늘을 보라. 물결치듯 일렁이는 저 먼 산을 보라. 손가락 사이로 흩어져내리는 모래와 세차게 흐르는 물과 갓 돋아나 어리고 작은 생명을 보라. 문득 그것이 대상이 아닌 나를 둘러싼 거대한 세계라는 생각이 들 때, 떨리는 손이 두려움 때문인지 벅찬 감동 때문인지 알 수 없을 때, 비로소 나 자신이 자연 안에 존재함을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지구상에 야생이라고 부를 만한 부분은 크게 사라져버렸다. 우리는 사자와 별과 바다와 숲을 동경하면서도 그것들을 파괴하는 데에 조금도 거리낌이 없다. 『칼라하리의 절규』는 고전에 가까운 시대의 것이지만 그때와 지금의 인간은 달라진 면이 없고 그 가차없는 파괴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이상 동경과 낭만의 이야기로 읽혀서는 안 될 책이기도 하다.
지금 바로 여기, 찰나의 순간에 존재하고 이내 흩어질 작은 인간 존재를 절감할 때 비로소 제목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피가 튀고 뼈가 드러나고 먼 데서 알 수 없는 울음과 바람이 밀려오는 곳, 타오르는 태양과 피할 수 없는 들불과 모래와 비와 죽음과 삶이 한 데 존재하는, 지금까지도 그래왔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존재할, 그래야만 하는 곳, 칼라하리의 절규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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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 오늘의 클래식
도나 바르바 이게라 지음, 김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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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다. 말에는, 언어에는 힘이 있다. 언어는 사람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하고 또 다채로운 동시에 아무리 다른 언어라 할지라도 근원적인 정서와 구조를 공유한다. 그것이 전달매개체로서의 말이다.
이야기는, 말이 서사를 갖추고 상상의 옷을 입혀 전달되는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쉽게 잊히지 않는 이야기에는 겉으로 드러나 전달되는 것 이상의 본질이 있어 듣는 사람도, 전하는 사람도 몇번이고 곱씹어 생각해야만 한다. 말이 이야기가 될 때, 그것은 단순한 문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야기에는 말하는 사람과 그의 문화가 담긴다. 어떤 이야기는 아주 오래도록 살아남아 처음으로 그것을 시작한 사람보다 널리, 끝없이 이어진다. 그것은 분명 문장과 상상 이상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재난에 처한 지구에서 시작된다. 세계는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해 지금보다 훨씬 기계와 기술에 익숙해져 심지어 이야기조차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시스템이 있어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를 쓴 것, '진짜 책'은 과거의 잔재가 되었다. 그런 세계에서 여전히 페트라와 그의 할머니는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 할머니의 할머니가 전해준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이 멸망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하는 것은 어떤 기업이며 이들은 '가치있는' 개체룰 선별해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시키고자 한다. 모두가 똑같이, 차이 없이, 동일하게 됨으로서 차별과 불편을 없앨 수 있다고 믿는 이들. 그들은 내적 획일화를 위한 신세계를 꿈꾼다. 주인공 페트라와 그 가족은 다행히도 우주선에 탑승한다. 늙어 '가치 없는' 할머니와, 거북이, 사랑했던 모든 것을 남겨두고. 오래도록 잠들어 새로운 곳에 정착해 깨어날 여행을 위해, 선발되지 못해 울부짖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혼란스럽고 두려운 수면에서 깨어난 페트라는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가족도, 돌봐준다던 승무원도 없다. 모두가 같은 가치를 향해, 모든 것을 콜렉티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부적합한 자는 모두 제거당한다. 사람이 아니라 부품을 다루듯이. 페트라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지구에서의 기억을 모두 제거당하고 각자 수면 중 주입된 지식의 도구로 기능한다. 살기 위해서는 숨겨야 한다. 모든것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실용적이지 않은 이야기 따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제타 1'이 아니라 나, 페트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야기의 초반에서 언급되는 페냐 부부의 직업적 관심사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식물과 암석, 개체에서 개체 혹은 상상도 못 할 시간에 걸쳐 이어지는 동질성과 다양성. 무엇 하나 무가치하지 않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과 그 기반, 환경. 어쩌면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주인공 페트라이며, 그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할머니에서 부모님, 다시 페트라와 하비에르로 이어져 마침내 첫 세대가 될 제타-아이들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고 부른다. 은유와 비밀, 위험으로 가득하지만 용기내지 않는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것. 또한 모든 것을 혼자서는 해낼 수 없어 사랑하는 사람과 모두를 함께 끌어안지 않는다면 결코 나아갈 수 없는 그것을 우리는 세상이라고 부른다. 삶이 이어져나가는 것, 시간과 공간,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것이 바로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있는 한,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기억하고 전하는 한, 언제든 다시 나아갈 수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모든 사람이 각자의 개성과 삶을 제거하고 조직의 일부로서 헌신하는 것이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일까? 불필요한 지식이 있을까? 있어봤자 혼란을 야기할 뿐인 개인사와 추억들은 지워버려야 마땅한 것일까? 이야기 내내 콜렉티브의 성원들을 통해 반복되는 이 질문에 저자는 단호하게 답한다. 그렇지 않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실수와 실패를 기억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다고.
p.30 “저들이 원하는 게 두려운 건 아니야. 그것을 얻기 위해 저들 이 제시하는 방법이 두려운 거지." (…) ”평등은 좋은 거야. 하지만 평등과 일치는 각기 다른 거라고, 사람들은 이따금 그게 진짜 무슨 뜻인지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말을 한다니까..... 저 사람들의 도그마는 아슬아슬해.“
p.31"우리가 잘못한 부분을 기억하고, 우리 자녀와 손주들을 위해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될 거야. 서로의 차이를 감싸고,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 페트라는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이다. 내가 나임을 잊지 않은 마지막 존재가 된 세계에서 그가 짊어지는 무게를 무엇으로 다 말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 이어져온 상상과 기억에서 시작해 새로운 곳에 도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책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하나의 이야기이다. 삶이라는 두렵고 알 수 없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이자 위로이며 새로운 쿠엔토다.


'에라세 케 세 에라', 옛날옛날에, 페트라라는 용감한 소녀가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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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뱅의 질문들 - 우주의 탄생과 진화에 관한 궁극의 물음 15
토니 로스먼 지음, 이강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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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과학, 그중에서도 우주과학은 어딘가 마음을 설레게 하는 구석이 있다. 아주 자연스러운 것인데도 불구하고. 모든 것의 시작이었으나 볼 수도, 알 수도, 재현할 방도도 찾지 못하기 때문일까. 바로 그 이유로 지금 이 순간에도 끝없이 넓어지고 있는 광막한 우주 가운데 지극히 작은 존재인 인간은 우주의 시작, 빅뱅과 그 이후의 시간을 알아내고자 애쓰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우주론에 대한 대중적 인식은 신비하고 아름다운... 푸른점! 내지는 이런저런 방정식과 익숙한 이름의 법칙 몇 가지를 버무려 참 쉽죠? 정도일지도 모르겠다. 혹자는 말한다. (선정 이유는 모르겠지만) 초등학생 수준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어야 진정으로(!) 잘 아는 것이라고.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도 되는 게 있고 안 되는 게 있다. 인간의 삶과 시간, 시야를 훌쩍 벗어나는 분야를 무슨 수로 떠먹여준다는 말인가.
이 억지 아닌 억지에 수많은 학자들이 비유와 예시를 총동원하여 응답해온 역사가 제법 되었고, 이 책 또한 그렇다. 우주의 시원, 모든 것의 시작, 시간의 출발인 빅뱅에 관한 15개의 질문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가보자. 그리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자. "왜 아무것도 없지 않고 뭔가가 있을까?"

목차를 따라 읽어보자. 중력에 대한 기본적인 설명으로 시작해 상대성이론과 우주과학의 핵심 개념들을 지나 비교적 현대에 제시된 양자역학과 다중우주론으로 글을 마친다. 이 짧은 소개로 내용의 전부와 역사, 그래프와 수식을 다룰 수는 없겠지만 단 한 가지는 확신할 수 있다. 우주는 아름답다. 그 아름답고 경이로운 우주를 탐구하는 우주론, 우주물리학을 결국 아름다움의 극한을 찾아 밀고나가는 일과도 다르지 않다. 우리 인간은 끝없는 평야에 내리는 노을과 마치 원시의 그것처럼 일렁이는 바다를 보며 감탄과 경이에 휩싸인다. 우주 또한 그렇다. 우리가 지금 이 순간 존재하는 그 광막하고 무한한 공간을 가늠하다보면 누군가는 공포를, 누군가는 감동을 느끼지 않을까. 결국 이 책은 우주라는 아름다움을 이해하려는 역사이자 찬사이다. 광막함과 영겁에서 행성 하나의 찰나의 순간을 공유할 수 있었음이 하나의 기쁨이었다던 칼 세이건의 말처럼. 어쩌면 누군가에게는 삶의 근원적 질문이자 열정인 이야기.

여전히 의문은 남아있고 모든 것을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 괜찮다. 저자가 말하듯 마음을 편하게 가져라. 다음 세대의 우주론자들이 걱정을 이어나갈 것이다(p.237).

#빅뱅의질문들 #토니로스먼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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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락모락 - 우리들은 자라서
차홍 지음, 키미앤일이 그림 / 문학동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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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진짜 너무 귀엽다... 너무 귀여운데? 를 연방 외치게 만드는 책이었다. 모락모락.
대체 '우리'가 누굴까? 누구길래 연신 나에게 말을 거는걸까? 대체 누구길래 나와 평생을 함께 하는걸까? 너희는 누구니?
이 책의 화자는 표지의 귀여운 꽁지머리, 어쩌면 뒷목과 이마를 간질이는 잔머리, 또 어쩌면 보슬보슬한 배냇머리이다. 그러므로 이 책은 요 깜찍하고 다정한 머리카락들이 태어나 첫 미용부터 삶의 계절들을 함께하는 작고 소중한 이야기이다. 1부터 100까지 매겨진 번호를 따라 함께 울고 웃고 가슴시린 이별과 사랑을 하는, 그런 이야기이다.
사실 요 귀여운 표지 사진만 보면 의성어와 의태어로 가득한 동화가 아닐까, 싶겠지만 이것은 어린이와 어른 모두를 위한 책이다. 아기가 어린이가 되고, 첫 교복과 사랑 그리고 삶의 끝을 바라보는 고요한 노년까지 끄 모든 순간과 과정을 자라고 빠지고 잘렸다 물들여졌다 꼭 사람만큼 바쁜 머리카락들과 함께 겪어나가는 한편의 영화다. 우리는 이것을 감동이라고 부르기로 했어요.

아이야, 내게도 어린 시절이 있었듯 너에게도 미래가 있단다. 시간은 흐르고 늙어감은 곧 익어가는 일이겠지. 도저히 메울 수 없는 이별도 삶의 전부를 내바치는 사랑도 그 어느 하나 쉬운 일이 없겠지만 그것은 두렵기만 하지는 않을거야. 내가, 너의 모든 순간에 함께할게. 그렇게 속삭이는 살랑살랑 모락모락 간질간질, 머리카락들과 함께.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어린이와 어른에게 사랑을 보낸다.

모락모락, 우리는 자라서, 너와 함께할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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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중독을 사랑해 - 환상적 욕망과 가난한 현실 사이 달콤한 선택지
도우리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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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출판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쓰는, 주관적 후기입니다.

중독이라고 하면 어쩐지 병리적으로 느껴지는 부분이 없지 않다. 그도 그럴 것이, '중독'으로 수식되는 것들은 대개 알코올, 마약 등 해로운 물질이나 도박, 게임처럼 썩 긍정적으로 권해지지는 않는 행위가 아닌가. '중독'이 붙으면 어쩐지 문제가 커지는 것 같다. 밤낮없이 그것에만 매달리고 일상을 매몰해가며 파멸로 치닫는...!

다음 내용은 오는 주 같은 시간에 방송됩니다. 유튜브나 OTT 채널에서 짧은 클립과 하이라이트 씬을 모아 볼 수도 있어요. 주연배우의 인스타그램이나 팬사이트에서는 화보와 착용 제품을 모아 볼 수 있고, 소속사에 따라 메신저 대화 서비스를 구독하시면 아침 점심 저녁 새벽 짬짬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어요.
마음에 드는 제품이 너무 비싼가요? 모처럼 마음 먹고 새벽부터 줄 서서 사온 것보다 마음에 드는 모델이 나왔다구요? 걱정마세요. 중고거래가 있잖아요. 매너있는 말투와 좋은 별점 부탁드려요^^ 눈 뜨면 출근, 퇴근하면 녹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뭐다? 배달음식이다. 문앞에 두고 가주세요. 리뷰이벤트 참여해주신 분들께 서비스를 쏩니다! 별점 다섯개 꼭 눌러주세요!
매일 먹는 맛도 질린다. 내 인생 왜 이래? 그래 이게 다 사주가 안 맞아서 그래. 전애인 성격을 봐. INFJ니까 ESTP인 나랑 맞을 리가 있나. 역시 데이트앱을 믿는 게 아니었어. 내가 거기서 왼쪽으로 스와이프하는 게 아니었는데. 아, 클래스 강의 밀렸었지. 하나라도 더 해야 뭐라도 비벼볼텐데. 어제 본 가구 예뻤지. 홈꾸는 언제 하고 미라클모닝은 언제 하냐. 이러다 죽기 전에 갓생러 될 수 있기는 할까? 지친다 지쳐. 아 인스타 알림 왜 이렇게 안 와.

지치지 않을 턱이 있나. 우리는 과잉의 시대를 살고 있다. 정확히는 저자와 같은 대다수의 '젊은 도시인'은 자극 과잉의 시대를 허부적대고 있다. 아침부터 밤까지 온 감각을 꽉꽉 들어채우는 오감 뿐만 아니라 더 성실하게, 더 짜릿하게, 더 화려하고 더 '있어보이게'. 더, 더, 더!의 세계를 살아가는 '요즘 젊은이들'이 수수하고 건실하기를 바라는 게 더 우스운 시대가 되었으니 누굴 탓하랴.
근면성실과 노력으로 정상 사회에 녹아들기만 하면 어떻게든 살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이미 세대와 지역으로 촘촘하게 나뉘는 빈부격차로 사라진 지 오래이다. 불확실한 미래를 위해 죽자사자 버티던 젊은이들은 한 번 사는 인생, 즐겨! 질러!를 외치며 YOLO를 외쳤고, 돌아온 일상은 여전히 최저한의 생계보장도 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은 우리 사회의 최신 트렌드는 결국 또다시 '노오력(노력이 아니다. 힘주어 '오'를 발음하는 것이 포인트.)'과 자력갱생, '귀티'를 외치며 극복할 수 없는 격차를 겉으로나마 메꿔 모방하거나 어떻게든 차별화를 강조하는 모양새가 되어버렸다. 이것을 'MZ세대 의 빠르고 신속하며 저렴하거나 화려한 만족을 추구하는 세태'라고 조롱하고 싶은 자, 얌전히 정수리에 쟁반이나 맞도록 하라(안다. 이 또한 지나간 유행임을).

누군가는 공감하고 또 누군가는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이러느냐며 혀를 차겠지만, 이 과잉 자극, 과열 경쟁, 과소비와 헐값 그리고 끝없는 소비촉진 사회에서 청년세대가 '월든'같은 삶을 바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한 꿈이 되었다. 이 책은 그런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세대에 대한 보고서이자 저자 자신에 대한 분석 내지는 고백이기도 하다.
저자 도우리는 '그들'이 아닌 '나'를 이야기하며 우리 사회의 현재를 낱낱이 들어보인다. 아마도 저자 자신이 클럽 앞에서 첫차를 기다리고 내일이면 후회할 소비에 매달려 본 경험이 있기 때문이리라.

SNS 서비스 오류에 문 닫힌 단골가게 앞을 서성이는 사람처럼 임시보관함을 채우고 또 채우며 트위터야 아프지마!를 외치는 우리는 과연 어떤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걸까. 사이버 파랑새는 갓생러의 꿈을 꾸는가? 알티 탄다. 뮤트할게요~

#우리는중독을사랑해 #도우리 #한겨레출판 #하니포터 #하니포터5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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