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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이야기 전달자 - 2022년 뉴베리상 100주년 대상 수상작 ㅣ 오늘의 클래식
도나 바르바 이게라 지음, 김선희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2년 10월
평점 :
*출판사 위즈덤하우스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읽고 쓴, 주관적 후기입니다.
말에는 힘이 있다. 말에는, 언어에는 힘이 있다. 언어는 사람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하고 또 다채로운 동시에 아무리 다른 언어라 할지라도 근원적인 정서와 구조를 공유한다. 그것이 전달매개체로서의 말이다.
이야기는, 말이 서사를 갖추고 상상의 옷을 입혀 전달되는 이야기에는 힘이 있다. 쉽게 잊히지 않는 이야기에는 겉으로 드러나 전달되는 것 이상의 본질이 있어 듣는 사람도, 전하는 사람도 몇번이고 곱씹어 생각해야만 한다. 말이 이야기가 될 때, 그것은 단순한 문장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이야기에는 말하는 사람과 그의 문화가 담긴다. 어떤 이야기는 아주 오래도록 살아남아 처음으로 그것을 시작한 사람보다 널리, 끝없이 이어진다. 그것은 분명 문장과 상상 이상의 것이다.
이 이야기는 재난에 처한 지구에서 시작된다. 세계는 과학기술이 고도로 발전해 지금보다 훨씬 기계와 기술에 익숙해져 심지어 이야기조차 자동으로 생성해주는 시스템이 있어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를 쓴 것, '진짜 책'은 과거의 잔재가 되었다. 그런 세계에서 여전히 페트라와 그의 할머니는 여러 세대에 걸쳐 이어진, 할머니의 할머니가 전해준 이야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이다.
이 멸망 위기에 처한 인류를 구하는 것은 어떤 기업이며 이들은 '가치있는' 개체룰 선별해 새로운 행성으로 이주시키고자 한다. 모두가 똑같이, 차이 없이, 동일하게 됨으로서 차별과 불편을 없앨 수 있다고 믿는 이들. 그들은 내적 획일화를 위한 신세계를 꿈꾼다. 주인공 페트라와 그 가족은 다행히도 우주선에 탑승한다. 늙어 '가치 없는' 할머니와, 거북이, 사랑했던 모든 것을 남겨두고. 오래도록 잠들어 새로운 곳에 정착해 깨어날 여행을 위해, 선발되지 못해 울부짖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혼란스럽고 두려운 수면에서 깨어난 페트라는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깨닫는다. 가족도, 돌봐준다던 승무원도 없다. 모두가 같은 가치를 향해, 모든 것을 콜렉티브를 위해 봉사하고 헌신한다는 이야기를 한다. 부적합한 자는 모두 제거당한다. 사람이 아니라 부품을 다루듯이. 페트라를 제외한 다른 이들은 지구에서의 기억을 모두 제거당하고 각자 수면 중 주입된 지식의 도구로 기능한다. 살기 위해서는 숨겨야 한다. 모든것을 기억한다는 사실을, 실용적이지 않은 이야기 따위를 알고 있다는 사실을, 내가 '제타 1'이 아니라 나, 페트라라는 사실을.
우리는 이야기의 초반에서 언급되는 페냐 부부의 직업적 관심사를 떠올려 볼 수 있다. 식물과 암석, 개체에서 개체 혹은 상상도 못 할 시간에 걸쳐 이어지는 동질성과 다양성. 무엇 하나 무가치하지 않은, 살아 움직이는 생명과 그 기반, 환경. 어쩌면 그것을 가장 잘 나타내는 것이 주인공 페트라이며, 그 가치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은 할머니에서 부모님, 다시 페트라와 하비에르로 이어져 마침내 첫 세대가 될 제타-아이들일지도 모른다.
모두가 이야기를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것을 삶이라고 부른다. 은유와 비밀, 위험으로 가득하지만 용기내지 않는다면 시작조차 할 수 없는 것. 또한 모든 것을 혼자서는 해낼 수 없어 사랑하는 사람과 모두를 함께 끌어안지 않는다면 결코 나아갈 수 없는 그것을 우리는 세상이라고 부른다. 삶이 이어져나가는 것, 시간과 공간, 세대를 넘어 전해지는 것이 바로 이야기이다. 이야기가 있는 한, 누구도 혼자가 아니다. 기억하고 전하는 한, 언제든 다시 나아갈 수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 정말 모든 사람이 각자의 개성과 삶을 제거하고 조직의 일부로서 헌신하는 것이 평화와 행복으로 가는 유일한 방법일까? 불필요한 지식이 있을까? 있어봤자 혼란을 야기할 뿐인 개인사와 추억들은 지워버려야 마땅한 것일까? 이야기 내내 콜렉티브의 성원들을 통해 반복되는 이 질문에 저자는 단호하게 답한다. 그렇지 않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실수와 실패를 기억하고 반성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달라질 수 없다고.
p.30 “저들이 원하는 게 두려운 건 아니야. 그것을 얻기 위해 저들 이 제시하는 방법이 두려운 거지." (…) ”평등은 좋은 거야. 하지만 평등과 일치는 각기 다른 거라고, 사람들은 이따금 그게 진짜 무슨 뜻인지 제대로 생각해 보지도 않고 말을 한다니까..... 저 사람들의 도그마는 아슬아슬해.“
p.31"우리가 잘못한 부분을 기억하고, 우리 자녀와 손주들을 위해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게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될 거야. 서로의 차이를 감싸고, 평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해."
제목에서 알 수 있듯, 주인공 페트라는 마지막 이야기 전달자이다. 내가 나임을 잊지 않은 마지막 존재가 된 세계에서 그가 짊어지는 무게를 무엇으로 다 말할 수 있을까. 이 이야기는 아주 오래 이어져온 상상과 기억에서 시작해 새로운 곳에 도달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이 책은 이야기에 대한 이야기인 동시에 하나의 이야기이다. 삶이라는 두렵고 알 수 없는 세계를 향해 나아가는 이들에게 전하는 응원이자 위로이며 새로운 쿠엔토다.
'에라세 케 세 에라', 옛날옛날에, 페트라라는 용감한 소녀가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