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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홀리 : 무단이탈자의 묘지 ㅣ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2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평점 :
언와인드 대상 축소 법령이 통과된 지금, 사람들은 '언와인드 대상'들을 사람으로 여기게 되었을까? 그것은 과연 누구를 위한 '조율'이고 '개정'이었을까. 2권에서는 인간에게서 인간성을 분리해낼 수 있다고, 나아가 초월적인 존재를 창조해낼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이 등장한다. 과연 믿음이 무엇이길래, 존재가치에 순위를 매길 수 있다고 여기게 하는 걸까.
언젠가 읽은 적이 있다. "자신의 행위에 대한 정당성에 집착하는 자들은 언제나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마치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부차적인 문제일 뿐, 우리의 삶을 최대한 합리적으로 만들기 위한 노력이라는 것을 내세우는 것처럼. 반면에 "살아남으려는 사람들"에게 논리 따위는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 살아야 한다는 것에 이유는 필요 없으니까(신철규 저, 『심장보다 높이』, 남승원 해설 중에서)".
p.56 「용서해다오.」 부모는 그녀에게 애걸하고 또 애걸했다. 종종 눈물도 흘렸다. 「우리가 저지른 이 일을 용서해 주렴.」 미라콜리나는 그들을 용서하곤 했다. 하지만 이런 부탁이 혼란스럽기는 했다. 미라콜리나는 언제나 십일조가 되는 것이 축복이라 생각해 왔다. 아무 의심의 여지없이 자신의 운명과 목표를 안다니. 어째서 부모는 그녀에게 목표를 주었다는 이유로 미안해하는 걸까?
p.130 수천 명의 열일곱 살짜리들이 하비스트 캠프에서 석방되었다는 뉴스가 나왔을 때는 분명 사방에 승리감이 넘실댔다. 그건 인간의 연민이 거둔 승리, 언와인드에 반대하는 사람들의 위대한 승리였다. 하지만 그 승리감에 취한 사람들은 정작 언와인드라는 문제 전체에 대해서는 눈을 감았다. 언와인드는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었지만, 사람들은 이제 다른 곳을 보며 자신의 양심이 깨끗하다고 믿을 수 있었다.
수요는 그대로인데 "공급"이 줄어드니 갈망은 커지고 '가격'은 상승하리라는 것은 예견된 결과였다. 급기야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버렸다. 죽어서 공급되어야 할 이유를, 누군가가 인간이어서는 안 될 이유를 만들어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이러니한 것은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이 악착같이 만들어낸 논리가 때로는 살아남기 위해 행동한 사람들을 엉뚱하게 "폭도"라고 설명하는 방식으로 남게 된다는 것이다(앞의 책)."
그러므로 그들 자신의 생명을 지키려는, 누군가가 자기 자신이어서는 안된다는 이유만으로 '분해되지' 않게 하려는 이들은 사회의 질서를 해치고, 나아가 악에 가담하는, 아니, 악 그 자체인 존재가 된다. 살겠다는 이유만으로, 죽지 않게 도왔다는 이유만으로. '수요'가 있는 한, 욕심이, 요구가 있는 한 이 지옥은 끝날 수 없는 걸까?
p.370 코너는 세상이 늘 지금 같았던 것은 아니라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평생 세상이 한 가지 방식으로만 존재해왔기에 그게 달라질 수 있다고 상상하기란 어렵다. (...) 병든 사회가 자신의 병에 너무 익숙해진 나머지, 건강했던 시절을 기억조차 못 할 수도 있을까? 지금의 상황을 반기는 사람들에게 기억이라는 것이 너무 위험한 것이라면?
p.382 우리는 언와인드를 멈출 수 없어. 제독이 언젠가 말했다.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은 최대한 많은 아이를 구하는 거다. 하지만 오래된 뉴스 보도를 보고 난 뒤 제독의 말이 틀렸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꾸 든다. 어쩌면 언와인드를 끝낼 방법이 있을지도 모른다. 정말로 과거에서 무언가를 배울 수 있다면…
1권 말미에 간신히 도래했던, 지극히 부서지기 쉬운 피신처는 또다시 위기에 처했다. 누군가는 새로운 삶을 찾고자 하고, 또다른 누군가는 새로운 증오와 혼란에 잠식되어간다. 낙원은 붕괴되었고, 사회는 여전히 그들이 존재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급기야, 누군가는 새로운 인간을 창조해내는 지경에 이른다.
작가는 1권에서의 질문을 계속해 묻는다. 우리가 인간이라면, 단순히 피와 살로 이루어져 분해 가능한 고깃덩이가 아니라면, 무엇이 우리를 인간으로 만드는가. 결코 파괴될 수 없는 근원, 이를테면 영혼 같은 것이, 과연 어디에서 생겨나 어떻게 존재하는가. 어떻게. 믿을 수 있을까.
p.96 「모든 부위는 최고이자 최상의 언와인드에게서 직접 골라낸 거야. (...) 그 가엾은 아이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기에는 너무 불량했어. 하지만 지금은 분열된 상태에서나마 너를 통해 드디어 완성됐지!」
p.236 하지만 그에게 영혼이 있다고 확신할 수 없다면, 어떻게 자신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단 말인가. 기자 회견에서 받았던 공격은 여전히 그를 괴롭힌다. 인간에게 영혼이 있다면 그의 영혼은 어디에 있을까? 인간의 영혼이 나뉠 수 없는 거라면, 그의 영혼은 어떻게 그를 있게 한 아이들의 부분의 총합이 될 수 있을까? 그는 그들 중 하나도 아니고, 그들 모두도 아니다. 그렇다면 그는 누구일까?
이번 권의 또다른 핵심은 오만이라고 생각했다. '내 아이를 내 뜻대로 처분'할 수 있다고, 자식이라는 '실패'를 없던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믿는 것, 변치 않을 신념이 있다고 믿는 것, 내가 타겟이 아닐 뿐인 세상이 여전히 안전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사람을 '수확'할 수 있다고 믿는 것, 신념만으로 사람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 스스로의 삶을 타자의 뜻에 의탁할 수 있다는 믿음. 존엄을 재창조할 수 있다는 믿음.
뜻대로 이루어지리라. 그 모든 믿음이, 주어진 믿음에 의심 않는 순종이 모두 오만일 것이다. 내일을 빼앗긴 '몸'들의 내일은 어떻게 될까. 이 세계의 끝은 정녕 익숙하고 평화로운 절망일 뿐일까. 누구를 위한 안전이고, 문명이며, 합의인가. 이야기의 반을 지난 시점에서 묻는다. 말끔하게 표백된 이 세계에서 여전히 인간이어야 할 이유는 대체 무엇에 있겠느냐고.
p.268 「그러라고 해, 레브, 난 죽고 싶지 않아. 부탁이야, 레브.」 마커스가 애원한다. 「나한테 언와인드의 신체 부위를 주게 해...」 레브는 형의 손을 꽉 쥔다. 「알았어, 마커스, 알겠어.」 그렇게 레브는 운다. 형이 방금 자신에게 사형 선고를 내리지 않았다는 것에 감사하며, 그런 감정을 느끼는 자신을 증오하며.
p.586 「바깥의 상황이 바뀌고 있어. 사람들이 변하고 있어. 그렇게 눈에 띄지는 않을지 몰라도, 분명 변화는 일어나고 있어. 나는 매일 그걸 봐. (...) 세상에는 특별한 일을 하는 평범한 사람들이 있어.」 칼라는 둘에게 다시 윙크한다. 「지금 너희는 내게 그런 특별하고 평범한 사람이 될 기회를 준 거야. 그러니까 내가 너희한테 고마워해야지.」
*도서제공: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