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양 - 가족의 오랜 비밀이던 딸의 이름을 불러내다
양주연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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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이해하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고, 그 중 가장 좋은 방법은 그 사람의 말을 그의 삶에서 직접 보고 듣는 것이겠으나, 이는 곧 본질적인 한계에 부딪히고 만다. 말해줄 사람이 남아있지 않다면, 그 자신으로서의 그 누구도 말해주지 않는다면. 나아가, 그의 이름이 마치 끊겨버린 길처럼, 도려내진 자리처럼 그저 흔적, 외에는 남아있지 않다면.

포기 앞에는 단 하나의 선택만이 남는다. 나로 미루어 당신의 얼굴을 비추어보기. 지워지고 침묵된 흔적에서, 부재의 자리에서 존재의 기억을 더듬어나가기. 목소리를 불러내기. 당신만이 할 수 있는, 당신의 이야기를, 이름을 부르는 일. 나에게서 당신을, 당신에게서 나를 그려보이는 일.

p.32 외할머니의 삶을 카메라에 담으며 깨닫게 된 것이 있다면, 나는 삶의 결과가 아니라 삶의 과정이 중요한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조상이 된 영혼에게도, 원귀가 된 영혼에게도 삶의 과정은 존재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몇 개의 언어만으로 압축될 수 없는 순간들이 가득하다. 그 안에는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삶의 이야기가 분명히 존재한다.

p.56 그녀들은 늘 자신들의 삶이 특별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런 반응 앞에서 문득 궁금했다. 특별한 삶은 무엇이고, 특별하지 않은 삶은 무엇인지. (...) 결론은, 결국 내가 담고자 하는 이야기는 특별한 사람을 다루는 특별한 이야기가 아니라, 무엇이 특별한지를 묻는 이야기라는 것이었다. 세상에 설정된 특별함의 기준을 묻고 그 기준을 뒤흔드는 이야기에 언제나 더 관심이 갔다.


다큐멘터리 감독, 평범한 가정에서 자란 딸, 한국 여자. '남동생이 하나 있다' 한 마디면 아, 하고 누군가는 말 없이도 다 이해할 그런, 딸자식으로 자란 사람. 누이처럼은 되지 말라고 말하는 아버지의 딸로 태어나 누군가의 누이로 살아온 사람. 양주연이라는 이름을 가진 한 명의 사람.

'평범하라'는 압박 속에 자라온 저자의 고백은 지극히 익숙한 동시에 평범하다. '양 씨 집안 여자들은 불행하다'는데, 불행을 안고 태어나 불행하게 살았을 그 여자들의 이름은, 얼굴은, 삶은 왜 기억나지 않을까. 무엇이 그들을 불행의 자리에 주저앉혔나.

p.31 나는 그 말을 '정상성'과 관계된 것으로 이해했다. '정상적으로 살아야 해, 정상적으로.' 그렇다면 정상적으로 사는 삶은 뭐고, 정상적이지 않은 삶은 또 뭘까. (...) "평범해야 해, 평범" 이라는 말은 각종 통과의례를 별 탈 없이 거치고 정상적인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말이기도 했다. 외할머니의 말을 들으며 나는 80년 5월 이름도 명예도 없이 사라진, 누구보다도 평범한 삶을 살았을 어떤 이들을 떠올렸다.

p.156 고모의 존재를 지워 가며 할아버지가 그토록 지키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환상이었을까? 낙인으로 남은 고모의 죽음과 마주하며, 나는 화목하고 평범한 가족이라는 규범적 관념 속에서 가려졌을 또 다른 누군가의 이름과 존재를 떠올렸다. 그리고 생각했다. 내가 보낸 안전하고 화목한 시간들이 누군가를 지워서 얻은 것이라면, 더 이상 그런 화목함을 바라지는 않는다고.


저자는 오래동안 침묵으로 가려져온 또다른 양 씨 여자, 고모의 삶을 죽음에서부터 추적해나가는 과정은 당연하게도 가족의 역사를 되짚는 일과도 같다. 관습의 이름으로 내쳐지는 것들, 사랑하지만 다 똑같이 사랑하지는 않는. 그 여정을 따라가노라면, 독자는, 관객은, 필연히 묻게 된다. 그 많던 '평범한 여자'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드세고, 조용하고, 욕심 많은 꿈을 꾸던 '여자애'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그 많던 여성들은. 그 많던 여자애들은. 누이, 딸, 아내가 아니었던, 계집애도 딸년도 아닌 자기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그들은. 그 사람들은, 그 이름들은 다 어디로 갔을까. 어째서 그들의 자리는 공백으로 남았는가. 분명 있었는데, 그 때 그렇게 살아있었는데, 꼭, 없는 것처럼. 없었던 것처럼.

p.163 애도될 수 있는 죽음과 애도될 수 없는 죽음의 차이는 무엇일까? 죽음이 삶의 반대가 아니라 삶의 거울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죽음과 삶이 그만큼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고 또 닮았다는 말일 것이다. (...) 삶이 저마다 다르듯 죽음도 결코 똑같은 모양은 아니다.

p.184 지금까지의 가족의 시간 속에서 지워져야만 했던 이름, 흔적 조차 남기지 않으려고 했던 바로 그 이름, 지영이었다. 그 이름을 지우는 데에는 누구도 쉽게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지만, 사라진 이름이 다시 새겨지고 드러나는 데에는 몇 배 이상의 시간과 고민이 필요했다. 자살했다는 이유로, 불명예스러운 죽음을 맞 이했다는 이유로, 질문조차 박탈당했던 이름의 귀환이었다.


양주연의 기록은 기어코 양양의 말에 도달한다. 현실에 후련한 결말 따위는 없고 따져 물을 수도 없는 물음은 오래도록, 어쩌면 평생을 불편하게 맴돌 것이다. 떠나진 사람은 돌아올 수 없고, 끊겨버린 기억은 이어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지영과 주연의 기억에 이어진 우리들은 함께 상상하고야 마는 것이다.

"여성들은 여성이라는 이유로 밀려 나거나 잊히지 않는, 여성이기 때문에 누군가와 불평등한 관계를 맺을 필요도 없고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없는 죽음을 맞이했다는 이유로 낙인이 찍히거나 수치스러운 것으로 이야기되지 않는, 누군가의 삶도, 죽음도 당사자의 의사와 무관하게 쉽게 가려지거나 비밀이 되지 않는" 미래를. 나의 삶에서 당신과 우리의 기억이 손을 맞잡는, 그런 미래를.

p.10 두려움도 이와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멀리서 볼 때는 꽤 강력해 보이지만, 하루하루 거기에 다가가 뭉쳐진 시간과 감정을 풀어 나가기 시작하면 두려움은 생각하지도 못했던 방향을 알려 주기도 한다. 때로는 누군가를 깊숙이 이해하게 하기도 하고, 때로는 가려진 슬픔과 만나게 하기도 한다. 과거를 헤매는 일은, 고모라는 존재를 알아 가고 내 안의 두려움을 응시하면서 여러 감정과 상태를 살피는 일이었다.

p.201 한 여성의 삶을 이야기한다는 것이 새로운 세상과 이어질 수만 있다면. 그 세상과 함께 나는 매일 매일 새롭고 익숙한 용기를 이어 갈 것이다. 용기는 지나온 시간과 함께 생겨나고, 다가올 시간을 향해서 걸어간다. 용기를 낸 만큼 새로운 세상이 올까? 지금 확실한 한 가지는 내 앞에 놓인 세상 속에서 이제 더 이상 고모는 금기의 존재로 머물러 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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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전들
저스틴 토레스 지음, 송섬별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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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해보라. 신새벽의 상쾌한 여명도, 한낮의 정직하게 내리비추는 광채도 아닌, 해가 넘어가는 때의 잔열같은 빛을. 게으르고, 부도덕하고, 형태를 흐리게 하는 색채를. 찰칵. 다른 장면. 쿰쿰한 살냄새, 땀 배인 샅의 냄새가 짙게 깔린 방 안, 문틈새로 스며들어오는 가느다란 조명의 색. 눅눅하고 미지근하게 달아오른 공간에 고인, 살아있는 자의 열기.

찰칵. 차르륵.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서. 나지막하지만 선명하게 파고드는 목소리. 너의 이야기를 들려주렴. 검열된 몸, 퇴락과 쇠약 사이 어딘가를 부유하는 몸짓을 들려줄테니. 말해봐라. 그때의 너는 무엇이었지? 후안, 나는요, 익명의 남자가 입을 연다. 찰칵. 또다른 장면.

p.36 「그리고 이제 당신은 제게 보여 주고, 말해 주며 틈을 메워 주겠죠. 그렇죠?」 「그런데 그 틈이 다 메워지기에 너무 많다면? 그럼 어쩌지?」 (...) 「내일은 내가 이야기할 차례가 올 거야.」 「그 말만 자꾸 하시잖아요.」 「내일 또 내일 또 내일. 먼지 쌓인 죽음의 길로.」

p.76 후안은 죽어 가고 있었지만, 오직 빛 속에서만, 오직 몸속에서만 그랬다. 어둠 속에서 그의 목소리는 나보다 더 예리하며 생기로 충만하게 방 안을 채웠다. 매일, 해뜨기 전, 동들녘 찰나의 여명 속에서, 사막이 푸르고 한하고 부드러운 빛으로 물들면, 나는 커튼을 열었고 후안은 매트리스 위에 포개진 채 잠들어 죽음을 바라보았다.


한 권의 책, 필연적으로 순서를 갖는 언어. 그러나 두서없이 얼크러지고 때로는 말하는 사람조차도 말이 되게 말할 수 없는 그런 기억들은 어떻게 말해질 수 있을까. 비규범, 혹은 탈규범의 존재들. 이탈되고 모순하는 이들. 비정상이야. 태생적으로, 혹은 적극적으로 탈선해 도착에 도착하는 사람들. 이해의 폭력.

이것은 이야기이다. 기억인 동시에. 이 책은 소설인가? 손끝으로, 무딘 혀끝으로 더듬어 올라가는 기억의 시원. 청년과 노인. 구부러지고 부딪히고 배회하던 몸들의 역사. 검은 책에 담긴 증언들. 검게 지워진, 혹은 덮어씌워진. 어둠은 침묵을 닮았지.

p.116 「하지만 나는 우리가 가진 이 책, 내가 찾아낸 모습 그대로 새까맣게 지워진 이 책이 더 좋아. 깨달음의 짧은 시들로 가득한 이 책 말이야. (...) 순서대로 읽는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겠어? 아무 페이지나 열어젖히면 그 속에 과거로부터 솟아오른 어떤 삶의 스케치가 끝없이 펼쳐지고, 그 하나하나가 등장한 인물이 극복했거나 극복하지 못했음을 토로하는 단 하나의 증언인 것을.」

p.223 「맞아요. 후안. 하지만 그 시절엔 누가 날 사랑하게 만드는 법은 그것밖에 몰랐어요. 몸부림치는 것.」 「몸부림? 멋진 말이구나… 털어 내는 게 지닌 쓸모와 망가뜨리는 게 가진 낭비와 폭력의 중간 어디쯤. 그게 바로 요령이지? 내가 그걸 좀 일찍 알았더라면…」 「침대 위에서도, 밖에서도, 늘, 몸부림쳤죠.」


쓴 사람의 글을 책으로 만들어낸 사람이 그 모양과 질감에 어떤 해석을 담았다면, 읽는 사람이 그 물성에서 의미를 찾아내는 것 또한 어쩌면 당연하고 또 어쩌면 응답하는 일일지 모른다. 이를테면 가름끈의 색이라든지, 금이 그인, 지워진, 가려지고-실패된 이름들, 글자들이라든지… 번쩍, 하고 잠시 스쳤다 사라져버리는 빛을 닮은.

까슬한 표지를, 있는 힘껏 긁어내려서, 상처 내고 싶었다. 긁어내리고 찢어벗기고 싶었다. 그 아래에 무언가 있다고, 분명 이 아래에 지극히 아름다운 것이 있음을 믿어 의심치 않는 것처럼. 그 다음은, 찰칵. 다음 장면. 잊어버렸어요. 침묵.

p.302 〈제5장: 백인 여성들이 말하는, 흑인 포주 밑에서 일하는 이유〉에서, 폴린, 에이다, 팬지는 자신들의 포주가 예전에 만난 백인 포주보다 더 잘해 준다고 말했어. 아니면 그저 이렇게 표현하기도 했다. 난 그를 사랑하고, 그도 나를 사랑한다는 걸 전 알거든요.」

p.329 「그럼, 이거 하나만 말해 줘요, 후안. 다시는 돌아가지 않을 거예요.」 「떠나라 간청하지 마시옵소서? 모든 결말은 지저분한 결말이란다, 네네. 앞날에 놓인 모든 것은 위대한 망각이다. 이제 언제라도 암전이 찾아올 거다. 그리고 몸은… 네네, 모든 끝은 지저분하지.」 「떠나라 간청하지 마시옵소서.」


이것은 젊은 날의 혈기도, 눈부신 청춘도 아니다. 말캉하고 보드라운 살갗으로의 회복을 도모하지 않는다. 대의를 품고 한 발 한 발 어떠한, 품위랄지, 긍지라고 할만한 영광으로 향하지도 않는다. 대신 죽음, 쇠약해져가는 것, 폭력과 울부짖음의 단편을 내보인다. 상처내고 비틀어지기를 선택하는 것. 여전히 철철 벌어진 채로 존재하는 것.

그게 당신이 할 말의 전부냐고 묻는다면, 어쩌면요. 모르겠어요. 들어봐요, 나는, 이 다음은. 이해할 수 없겠지만. 일렁이는 울대. 다음 장면. 완전한 어둠. 커튼을 치고 문을 닫는다. 멀어지는 등, 화면을 덮어 가리는 손. 찰칵. 암전. 침묵. 적막. 고요.

p.207 그리고 나는 소리 없는 검보랏빛 하늘을 보며 느꼈다. 아니. 감지했다. 언젠가 날이 밝아 올 것이라고 믿기조차 어려운 그때, 우리는 밤의 반대편 가장 깊은 바닥에 있었노라고.

p.366 「네가 이 이야기 좋아할 줄 알았다! 상상해 보렴! 오로지 너를 위해, 그 이야기를 여기까지 짊어지고 왔다. 사람들은 죽음 앞에서 정말 까다롭게 굴지 않니? 하지만 우리는 그렇지 않지.」 「전 당신이 돌아오길 바라요. 영원히.」 「그런 생각은 버려, 네네. 그저 흘려보내.」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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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쓰는 소년 - 미시마 유키오 단편선
미시마 유키오 지음, 박성민 옮김 / 시와서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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믿고 읽는 이름. 알아도 보이는 신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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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비 이야기
기시 유스케 지음, 이선희 옮김 / 비채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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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품어온 생각이 있다. 공포는 많은 경우 슬픔에 맞닿아있다고. 보복에의 두려움이 죄책감에 뿌리내리고 있는 것처럼. 물어뜯고 해치는 감각을 알고 있는 자는 필사적으로 제 목덜미를 감추려 드는 법이다. 가해의 가능성을 알지 못하면 보복을 두려워할 일도 없으므로.

전작 『가을비 이야기』의 수록작들이 고전 기담에 착안해 저항할 수도, 예견할 수도 없는 공포와 절망이 녹여낸 기묘한 환상의 조각들이었다면, 『여름비 이야기』는 보다 맹렬한 포식과 치밀한 사냥꾼의 면모를 보이는 이야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도망칠 수 없다. 알아채는 순간 이미 늦었다. 너는 이미 알고 있으나...

p.98 "살인자의 하이쿠는 공허하고 삭막하며 오직 무서울 따름이에요. 여기에 있는 건 전부 그런 시들뿐이죠. 형식은 하이쿠지만 옛날 상처를 건드리는 것처럼 자신의 범죄 행위를 재현하는, 추악한 자기만족에 넘친 저주의 말에 불과해요."

p.277 그는 현관문 앞에서 페어리 링으로 뒤덮인 잔디를 바라보고, 새삼 등줄기가 서늘해졌다. 이 기괴한 현상에 의미가 없다곤 생각할 수 없었다. 균사가 만연한 지하에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의지가 숨어 있는 게 아닐까. 균류는 지금까지 계속 숲을 파괴해온 인간을 어떻게 생각할까. 만약 그런 인간에게 강한 적의를 가지고 있다면.


앞서 말한 가해의 기억과 보복에의 두려움은 포식과 피식의 관계가 역전되는 것에의 두려움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익숙한 얼굴, 누려 마땅하다 의심 없이 믿어온 권력, '눈 감고도 다니는 길'이 불연듯 낯설어지는 것. 꿈과 현실의 경계가, 발밑이 무너져내리는 불신의 낭떠러지. 쩍 벌어진 아가리의 내부를 처음으로 마주한 자의 공포.

그것은 결국 사람이 사람의 속을 알 수 없다는 본질적 한계에 기인한다. 거죽을 까뒤집는대도, 수족처럼 부린대도, 그 누구도 그날의 진상을 알지 못한대도. 나풀나풀한 옷소매, 사근사근한 눈짓에 숨겨진 진의는 누구도 알 수 없다는, 그 절대적인 경계. 몸 너머의 인간, 인간의 마음.

p.64 이 웃는 얼굴은 어디까지 믿을 수 있을까. 그의 마음속에서 의혹이 머리를 치켜들었다. 생각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조금 전까지 느꼈던 천사 같은 웃음과는 다른 어두운 그림자가 보이는 듯했다.

p.138 요시타케는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지름길' '샛길'이라고 쓰인 간판 사이에 있는 좁은 골목으로 들어갔다. 간판. 제등. 격자 창문 사이에서 유혹하는 여인들. 지금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지만, 마치 식충식물처럼 사냥감을 유인하고 있는 것 같지 않은가.


앞서 말했듯, 보복에의 두려움은 가해의 기억과 죄책에 뿌리내리고 있다. 그렇다면 사죄가 곧 용서로 이어지리라는 순진한 믿음의 고리를 무너뜨리는 것은 결국 원점으로의 회귀 불가능성이 아닐까. 일어난 일은 되돌려질 수 없다. 숨통이 끊긴 이는 돌아올 수 없다. 백번을 참회한대도, 울며 조아린대도.

하물며 기억 너머로 사라진 죄의식은 어떠하랴. 그에 더해 이만큼 빌었으면 되지 않았냐는 뻔뻔함, 속죄도 참회도 아닌 그것은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죽은 자를 두 번 죽이는 것은 결국 그런 것이다. 이만하면 되었다는, 죽은 사람이야 어찌되든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살인자의 자기위안.

p.151 자수할까. 그런 생각도 몇 번 했지만 그것만은 할 수 없었다. 남은 인생을 구경거리가 되어 치욕과 고통 속에서 보내야 한다면 살아 있 을 가치가 없다. 그렇다고 죽을 용기도 솟구치지 않았다. 잠시 지나자 의식이 희미해지며 기억이 모호해졌다. 다만, 깊은 슬픔과 바닥을 알 수 없는 상실감 같은 감정만이 잔상처럼 떠다녔다.

p.214 용서해다오. 정말로 그럴 생각이 아니었어. 부디 여기저기 떠돌지 말고 성불해서 극락정토에 가다오. 평생 네 명복을 빌어줄게. 그러니 나를 원망하지 말아다오. (...) 그건 사고였어. 한순간에 벌어진 일로, 너도 거의 괴롭지 않았을 거야. 난 이미 충분히 괴로워했어. 너보다 훨씬 오랫동안. 너도 잘못했잖아? 그런데 왜 난 아직도 이런 꼴을 당해야 하지? 이건 너무나 불공평하잖아.


전작에 이어 다시금 저항할 수 없는 괴이와 무력으로 돌아온 작가에 이야기 안팎의 모두를 결말로 몰아넣는 솜씨에 이만한 사람이 없다는 생각을 한다. 그의 문장에서 한겹 두겹, 죽는 줄도 모르게 숨통을 조여오는 거미줄을 연상하기 때문일까. 알아차린 순간 처음으로 달려가려 하나, 막다른 길이다.

동시에 읽는 내내 인간의 도리를 넘어선 죄를 묻는 자는 과연 누구인가, 정의에의 의지가 불가하다면 남은 길은 결국 저주와 복수 뿐이지 않은가, 그렇게 묻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사방을 둘러친 덫의 결말은 슬픔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허무와 슬픔. 그렇게 몰아치고도 결국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은. 그렇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두려움이 뿌리내린 곳은 슬픔이라고.

p.320 세계는 거대한 소용돌이처럼 물결치고 있다. 몸도 마음도 산산조각이 난 듯한 감각. 의식은 드넓은 공간으로 확산되어서, 맥락 있는 사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런데 어느 강렬한 생각이, 뿔뿔이 흩어진 자기 자신을 잠시 뭉치게 한다. 그것은 한없는 사랑이고 분노와 증오이며, 그리고 공포였다. 하지만 이윽고 망각이 모든 걸 어둠으로 뒤덮으려고 한다. 잊고 싶지 않다...

p.353 작별 인사라는 건 알고 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진정한 이별은 산 자가 죽은 자를 잊는 게 아니다. 죽은 자가 산 자를 잊는 것이다. 두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에서 있었던 일을 잊어버리고 여행을 떠나야 하는 것이리라.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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뤼미에르 피플 - 개정판
장강명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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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작가의 원류 혹은 근원에 가까운 글을 만난다는 것은 퍽 즐거운 일이 아닐수 없다. 동시에 제법 찝찝한 일이기도 한데, 아무래도 그간 내 멋대로 쌓아올린 작가의 인상이 무너지거나 미묘하게 느껴지던 기류의 시작점을 맞닥뜨리게 되기 때문일 것이다. 고이고이 모셔둔 정원석 아래 벌레소굴이 있을지 금덩이가 있을지 뒤집어 파보기 전까진 모른다 이거예요.

그런 이유로 장강명 월드의 원류라는 이 책을 집어드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다는 나름의 변을 달아본다. 『뤼미에르 피플』 동명의 빌딩에 살고 있거나 그 주변의 사람들을 소재로 한 열 편의 연작소설로, 그곳은 빛, 광명이라는 뜻의 이름과는 딴판의 '밑바닥 소굴'로 그려진다. 지극히 평범하고 가난하며 주류에서 밀려난 낙오자들의 안식처.

p.59 남자는 지금 자신이 세계 최초의 '숨 참기' 자살을 다시 시도하려는 것이 합리적인 이유에서가 아니라 고통에 질 수 없다는 오기 때문이란 걸 알았다. (...) 돌이켜보면 남자는 언제나 그런 식이었다. 자기 앞에 놓인 과제를 포기하지 못했다. 그는 열심히 싸웠다. 그런데 그 싸움의 대상은 내가 정한 것이었나? 그 목표라는 것들은 과연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이었을까?

p.110 정신을 잃고 쓰러지며 재홍의 품에 안길 때 나는 스스로에게 뭔가를 묻고 있었다. 내가 앞으로도 변함없이 재홍을 좋아할 수 있을지, 아니면 내가 재홍을 포기하고 그와 떨어질 수 있을지. 아마 나는 그중 아무것도 하지 못할 것이다. (...) 그건 내가 약하기 때문이었다. 재홍도 그걸 알고 있었다. 약한 사람은 어떤 것을 경험해도, 죽을 위기에 빠졌다 살아난다 해도, 결국 변하지 못한다.


등장인물 제각각은 사회의 어떤 '정상성'에 부합하지 못한다. 밀려나고 외떨어져있다. 고만고만한 도심 속 빌딩, 그 안의 판에 박은듯 똑같이 생긴 방, 그래, 집보다는 방에 가까울 공간의 사람들. 얼핏 보기에 그저 다 같은 낙오자로 보이나 행복은 비슷비슷하지만 불행의 모습은 제각각이라는 말처럼 그들을 이루는 결핍은 제각각이다.

유흥과 환락의 밀집, 쳇바퀴처럼 굴러가는 노동에 찌든 일상, 몸과 세계와 나와 남에서 소외된 사람들과 그들의 뤼미에르, 빛들의 무리, 뤼미에르 빌딩. 그들의 현실과 우리시대를 요약하는 것은 죽어가는 눈, 타인에의 무관심, 경멸과 모멸이 아닌가. 도시의 밤은 지상의 살아 춤추는 별빛이 아닌 고깃배의 불빛 혹은 부나방의 환상과 닮아 있다.

p.21 만화에 대해 이야기하는 동안에도 그녀에게서는 진한 슬픔이 풍겨 나왔다. 그녀를 알게 된 이후로 나는 세브란스병원 영안실에 다닐 필요가 없어졌다. 그녀의 슬픔은 빈소 한 곳의 슬픔보다 컸다. 어떻게 한 인간에게 그렇게 큰 슬픔이 담겨 있을 수 있는지, 그렇게 큰 슬픔을 간직하고 있으면서 어떻게 저렇게 시치미를 뚝 떼고 태연한 척할 수 있는지 궁금했다.

p.45 여자아이는 사는 게 너무 힘들어서 이야기를 하나 만들어냈다. 모범적인 삶을 살았지만 야비한 운명의 덫에 걸려 거지 같은 상황에 빠진 어떤 남자의 이야기였다. '다른 선택을 했어도 별 수 없었을지 몰라'라는 생각이 힘든 삶에 위안이 돼 주었다.


이런 군상을 그려내는 법에 있어 가장 손쉬운 선택은 동정일 것이다. 혹은 그럼에도 인생은 살만하다는, 대책없는 긍정 캐치프레이즈거나. 그도 아니면 드라마 주인공처럼 캔디삼순이로 개명이라도 하든지. 그러나 작가는 잔뜩 상처받고 균열투성이인 사람들의 이야기에 달콤한 연민을 구하지 않는다.

안전하고 푹신한 위안을 대차게 걷어차고 떠나버린다. 그 끝에 무엇이 있을지 보여줄 생각도 없이. 환상과 절망의 경계를 열쳐둔 채로. 작중 괴수들, 인간 아닌 것과의 경계가 흐려진 이들을 보라. 여기서 다시금 독자는 작중 금수의 이름으로 등장하는 이들을 떠올린다. 현실이 이미 반인반수의 세계 아닌가.

p.158 '게임'에 대해서 처음 아이디어가 떠오른 것은 그때였다. 처음에는 그날 술자리에서와 마찬가지로, 다른 사람을 이용해 사촌들에게 모욕감을 주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는 사촌들이 자신을 괴물로 봐주길 원했다. 그를 불쾌해하면서 두려워하다 마침내 피하게 되길 바랐다.

p.282 어머니의 왕국은 비교적 최근에 나타나, 빠르게 성장하는 중인 걸까? 쥐들의 지하 왕국은 먼 고대 괴물 쥐의 후손들로 이뤄진, 쇠퇴하는 사회일 거라 여겨왔는데… 우리 종족에게 미래가 있다는 발견으로 갑자기 힘과 희망을 얻은 듯하면서, 동시에 신촌 지하에 있는 괴물 쥐의 서식지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에 으스스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어쩌면 이 난감하고 환상적인 이야기의 연속을 한 데 묶는 것은 슬픔일지 모른다. 밀려나고 미끄러지고 주저앉은 사람들. 겨우내 웅크려 상처를 핥고 또 핥으며 거듭 곪아터지는 마음들. 그 삶들을 잔인하리만치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문장들에는 형언키 힘든 위로가 담겨있다. 이 잔혹무도하고 곰팡내나는 환상들이 그저 조롱으로 느껴지지 않는 이유기도 하다.

저기요. 괜찮으세요. 손을 뻗게끔 한다. 파국을 예견하면서도 끌어안게 한다. 가난의 습기가 옮을까, 번번이 실패하는 인생이 전염될까 소스라치게 털어버리는 대신. 적어도 외면하지는 않겠다는 듯이 담담한 시선이 있다. 책을 덮는 순간 마음 깊은 곳에 들어설 이름들을 지워내는 데에는 평생으로도 모자라리라, 되뇌어본다.

p.318 날이 있는 물건을 병적으로 무서워하면서도 그런 물건이 근처에 있으면 눈길을 돌리지 못했다. 손에 쥐고, 휘두르고, 무언가를 베고 싶은 욕구가 있었다. 나중에 자신이 그걸로 무서운 일을 저지를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했더니 소녀는 고개를 저으며 "넌 참 이상해"라고 말했다.

p.353 섬이 꾸는 꿈은 한없이 아름답고 동시에 비인간적인 것이어서 보통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웠다. 사람들은 거의 대부분 아름다움이 인간적인 특성이라고 오해한다. 섬은 밀려오는 강물과, 자신을 둘러싼 지형과, 자신이 품은 동식물을 재료로 아름다운 음악을 연주하고 싶어 했다. 강이 마르지 않는 한 영원히, 쉼 없이 노래하고 싶었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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