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 없이 싫어하는 것들에 대하여
임지은 지음 / 한겨레출판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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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에도 유행이 있는가. 언젠가는 사랑스럽게 굴라더니 또 언젠가는 또 사납게 쟁취하는 태도가 미덕이었다가 이제는 사랑하라고 말한다. 모든 것을. 좋아할 것들을 엄격히 가려내세요. 무엇보다 당신을 사랑하세요. 사랑해야만 합니다. 바야흐로 인류의 어느 시대보다 사랑이 넘치고 있지 않은가. '싫음'은 부끄럽다. 모났다. 감춰져야 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정말 모두가 서로와 자신과 세상을 사랑하고 있을까? '좋아함'을 목놓아 외칠수록, '싫어하는 마음'을 싫어할 수가 없음을 드러내고 있는 게 아닐까. 어쩌면 싫어하는 마음은 가까이서 들여다보고, 마침내 그에 비친 나를, 나의 내면까지도 들여다보고서야 알아챌 수 있는 게 아닐까.

p.8 무언가 이유 없이 싫어지는 날이면 그 마음을 가만히 들여다본다. 대체로 거기에 있는 건 내가 가진 진실이다. (...) 미움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생각할수록 사람을 더 잘 견디게 된다는 건 조금 이상하지만, 정말로 그렇다. 무언가를 좋아한다는 건 그것대로 멋진 일이다. 그러나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이다. 거기에는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

p.26 사람들은 자주 오롯이 혼자서 삶을 해내야 한다고 믿는다. 나도 그러기를 바란다. 그러면서도 나는 누군가의 삶 속에서 외부의 개입이 필요한 순간이 있다는 생각을 멈추지 못한다. (...) 한 사람의 자립성은 타인에게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로 망가지지 않는다. 때때로 그 영향은 한 사람을 지탱하거나 그의 내부에서 끝까지 살아남는 게 무엇인지 발견하게 도와주고, 그건 그 사람이 누군지와 무관하지 않다.


누구나 한번쯤, 괜히 싫은 마음이 들 때가 있다. 누군가를, 무엇을 미워하는 마음이 툭, 굴러나올 때가 있다. 금세 사라지지도 않고 성가신 소리를 내며 마음을 굴러다닌다. 언젠가는 스스로가 가장 미워 결국 앙다문 입을 하고 뚝뚝 울게 만드는 것들. 가만히 집어들어 살펴본다면 제법 많은 이름이 붙어있을지 모른다. 외로움, 그리움, 민망함, 슬픔 같은 것들.

그런 이유로 골이 패인 자리에 담겨있는 것을 들여다보노라면 차마 그 마음마저 그저 미워할 수는 없는 것이다. 수많은 파편과 흠집을 보며 어디서 깨져왔는지, 어쩌다 멍이 들었는지. 그것이 무엇을 말해주는지, 그런 것들을 생각하게 되므로.

p.69 마르셀 프루스트는 모든 사물은 기억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그 문장은 꼭 그저 그럴 게 틀림없을 그 스탠드에 할머니가 있다는 것처럼 읽힌다. (...) 버려졌거나 전혀 상관없는 사람에게 가 있을 할머니의 스탠드를 상상한다. 우두커니 홀로 있을 스탠드를 상상하다 보면, 정말이지 나는 프루스트가 싫어진다. 망할 놈이 하필 그딴 문장을 남겨서 사람 마음을 따갑게 한다.

p.106 그러나 나는 어쩐지 그들 각자의 상처나 불행이 없어지길 곧장 바라지는 않는다. 거기서 오는 고통과 모순 같은 것들은 한 사람을 감싸는 오래된 맥락이므로. 나로선 그 안에 새겨진 것들을 가만히 들여다보고 싶다. 그들의 완두콩들을 헤아려 보고 싶다. 그런 건 사람이 상처와 불행 속에서도 그럭저럭 버티며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알려준다.


기실, 마음놓고 사랑하라거나 미워하라고 말하기 어려운 세상이다. 가라앉혀 들여다볼 시간을 주지 않는 탓이다. 눈 돌린 새에 엎어지고 쓸려가는 이가 수두룩한 탓이다. 이런 세상에서 아파하는 사람은, 슬퍼하는 사람은, 부끄러워하고 화를 내는 사람은 많은 경우에 부숴진 이들을 아파하고 그러모으다 사랑마저 손끝처럼 닳아버린 이다.

사랑과 행복이 간절한 세상에서 짧게 우는 사람들, 금세 일어서거나 소리마저 눌러 참는 사람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 말이다. 나 홀로 사는 세상이 아니라서, 어떤 마음은 영영 곁에 남아 꼭 떠나보낸 적 없는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그렇기에 다시 일어서거나 애써 웃어보일 수 있다. 한꺼풀 벗겨낸 '싫음' 아래에는 어쩌면, 이런 마음이 있다.

p.164 죽음에 책임이 있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갖는 게 아니라 희생자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죄의식을 나눠가진다고 했다. 그 죽음에 뭐라도 했어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 죽음에 정말로 책임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랑하기 때문에 죄책감을 느끼는 거라고 했다. 그런 죄책감이야말로 타인의 고통에 심리적 유대감을 갖는 사람이라는 증거라는 거였다.

p.246 누군가 나를 지켜볼지 모른다고 느낄 때 불쑥 터져 나오는 것들이 있으니까. 괜찮아 보이려 애쓰다 보면 압력이 생겨나고, 그 압력은 마중물처럼 깊은 감정을 길어 올리니까. 제 머리카락을 뽑아 신을 엮고 싶을 정도의 그리움 같은 것을. 그는 그 신을 신겨주고픈 사람에게 웃는 낯을 보이려다 그만 울어버리고 만 것인지 모른다.


그러니 "슬픔과 기쁨과 외로움이 버무려진" 삶에서, 조금 알고 많이 모르는 타인들을, 말끔하게 차갑게 멸균된 사랑보다는 모나고 뜨끈뜨끈한 '싫은 마음'을 너무 싫어하지 않으면 좋겠다. "그러나 무언가를 미워한다는 것 또한 때로는 좋은 일임을, 거기에는 거기서 찾아낼 수 있는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아무런 이유도 없이 무언가를 싫어하는 마음이 드는 날이면, 서툰 사랑이 꿈틀대는 내 마음을 가만히 마주해보는 건 어떨까". 서툴게 사랑하고, 쉽게 다치고 흔들리는 마음을, 그런 마음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가만히 바라보면 어떨까. 이유 없이 싫어하는 마음을 그러모으면 나타나는, 희망의 형태를.

p.201 혼자 진지해온 이들은 점차 기대보다 제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다. 거듭 인생의 쓴 맛을 보다 보면 삶의 지지분함을 처리하는 게 결국 자기 자신에게 달려 있다는 걸 알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은, 나는 나무를 보는 방식만으로도 지지분한 시간을 지나갈 수 있다. 그건 때로 살아간다는 것에 다름없다.

p.233 평범은 때로 사람을 기진맥진하게 한다. 누군가 서투르고 어색한 차림으로 거리에 나설 수 있게 만들어주는 것, 평소와 다른 오늘을 허락해주는 것. 그 승인은 그 애를 더 아름답게 만들어줄 것이다. 그 애가 기존의 자신보다 조금 더 멀리 가보도록 격려해줄 것이다. 그 애가 다시 그전의 자신으로 돌아가더라도, 평범을 견디며 서서히 나아갈 만큼의 힘을 만들어줄 것이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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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자비들
데니스 루헤인 지음, 서효령 옮김 / 황금가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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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4년 보스턴, 공공주택 마을 '사우디'. 마피아가 점령한 동네, 가난한 아이들이 자라 마약과 총, 줄줄이 딸린 가족으로 이어지는 예정된 곳에 메리 패트가 있다. 하나뿐인 딸 줄스와 함께 사는, 거칠고 불같기로는 소문이 난, 어지간한 동네 깡패는 쪽도 못 쓰고 당하는, 강인하고 사나운 여자. 하루하루를 살아내는, 보통의 여자.

주로 아일랜드계 미국인인 사우디 주민들은 인종차별의 열기에 휩싸여있다. 우리 아이들을 "흑인 동네"의 학생들과 교환등교(버싱)시킨다니. 우리 아이가 "흑인 학교"에 다녀야 한다니. "감히 흑인이" 이곳에 오지 못하도록 시위를 벌이자. 항의하자. 너희들 자식이나 "깜둥이 동네"로 보내라고.

p.90 메리 패트는 나름대로 똑똑해 보이게 잘 갖추어 입었다고 생각했지만, 하버드 교정에 있는 거만한 녀석들과 히피들이 곁눈질하는 모양새로 판단하건대 그녀가 어떤 사람인지가 확실히 드러나고 있는 듯하다. 어쭙잖은 시어스로벅 통신 판매 카탈로그에서 가장 좋은 옷을 골라서 입고 그들의 세계로 들어온, 강 건너 노동자 계층의 아줌마.

p.277 럼은 자신이 지금 무엇을 보고 있는지 깨달았다. 사우디에서 어제와 똑같은 하루하루를 살게 될 나머지 삶이었다. (...) 하지만 빼앗길 수도 있다. 빼앗길 것이다. 빼앗겼다. 저들은 그들의 생각과 방식, 그들의 거짓말을 강요해 오고 있다. 변화가 우리를 더 행복하게 해 줄 거라고, 더 부유하게 해 줄 거라고, 우리 세계를 밝혀 줄 거라고. 거짓말이다.


이 문제에는 상상 가능한 모든 일이 얽혀 있다. 인종차별 폐지정책을 명령한 판사와 그를 지지하는 정치인들의 고급 거주지는 버싱 정책에 해당되지 않는다. '사우디'는 인종분리를 주장하는 폭력 조직 세력권이다. 그들은 화합을 바라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들의' 화합을 원하지 않는다. 그들의 "결정"은 인종주의의 가장 큰 피해자, 오늘과는 다른 내일을 기대하는 것이 사치인 이들의 삶과는 동떨어져있다.

유럽의 흑인, 하얀 흑인. 가난하고, 폭력적인 자들. 흑인에게는 백인, 백인에게는 "유색인종" 취급 받는 이방인. 이 모두가 미국의 아일랜드계 시민을 향한 말이다. 자유와 평화, 평등의 수호자를 자처하는 '문명사회'에서 그들이 거칠고, 배타적이며, 인종주의의 대표격인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사우디'의 "평범한 사람들"마저도.

p.120 "베트남에 아이를 많이 보내지 않은 사람들은 어디에 살까요? (...) 의사들도 그 애들을 위해서 이명이나 평발, 골극 같은 온갖 개소리를 생각해 내더군요. 내 아이는 록스버리행 버스에 태우고 싶어 하면서, 잔디가 다 깎이고 해가 지면 자기들 동네에는 흑인들이 얼씬거리지 않기를 바라는 작자들이죠."

p.176 떠올릴 때 인간의 존엄성을 한 꺼풀 벗겨 내는 명칭이라면 뭐든 상관없다. 그게 목표다. 그런 일을 시킬 수 있게 된다면, 당신은 아이들더러 바다를 건너가 다른 아이들을 죽이라고 시킬 수도 있다. 아니면 바로 여기, 집에서 머무르면서도 같은 일을 하게 시킬 수도 있다.


노예제를 필두로 법률상의 인종차별이 사라진 때까지도 여전히 공공연한 인종차별과 린치로까지 이어지는 혐오 범죄, 열악한 수준의 공공복지, 빈민촌의 마약 문제, 전쟁으로 불거진 미국사회 내의 계급 등, 차별에 차별이 가세되어 더욱 크게 번지는 혐오는 다시 '사우디'의 혐오와, 실종, 살인으로 돌아온다.

이야기로 돌아가, 메리 패트는 안다. 침묵하라는 '그들'의 말에서, 약에 취한 웃음에서. 그들이 그를 빼앗았다는 것을, 그들이 자라온 세계가 끝끝내 '쓰레기 같은 내일'의 가능성마저 부숴버렸다는 것을. 그러므로 그는 돌려주고자 한다. 그들이 부순 심장을, 피흘리는 고통을, 그들이 그의 심장의 미래를 빼앗았으므로, 그들의 내일을 지옥에 처박아버리기로.

후련한 복수라는 게 있기는 할까. 지옥에서 올라온 복수극은 또다른 지옥을 만들어놓고서야 막을 내린다. 고통을 고통으로 갚고서야, 그렇게 당해도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는 사실은, 처음부터 우리의 탓이었다고 말할 수 있게 되어서야 드러난다. 복수에는 행복이 없다. 그저 처참과 참담 사이 어딘가의 지옥일 뿐. 그러므로 다시금, 지옥에서 올라온 복수는 스스로마저 지옥에 거꾸러박고서야 끝나는 것이다.

p.314 그들이 자기 사람들을 죽이고 있었다. 그들이 모든 세대의 아이들을 알약의 노예, 거울과 돌돌 말린 지폐의 노예, 바늘과 숟가락의 노예로 만들어 왔다. 노엘을 죽인 건 마약이 아니었다. 노엘을 죽인 건 버틀러 패거리였다. 노엘의 아버지를 죽였던 꼭 그대로. 노엘의 여동생을 죽였던 꼭 그대로.


'흑인을 죽이고 달아난 백인 소녀와 딸을 잃은 어머니' 라는 소개에 갇혀 중요한 것을 모두 놓치고 있었음을 마지막에 가서야 깨달았다. 믿음은, 이전에 알았던 세계는 전부 부정당하고 망가졌다.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 그런 이유로, 이 이야기는 더할 나위 없는 복수극이다. 복수의 끝은 어떤 의미로든 파멸일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더더욱.

복수의 여정에서 메리는 자신을, 딸을, 그가 속한 세계의 진실을 마주하게 된다. 그 길의 끝에 무엇이 기다리고 있을까. 그의 피비린내나는 복수에 독자가 휘말려들기를 바란다. 누구도 빠져나갈 수 없이 빠져들기를, 마침내 그 끝에서 그가 마주한 것과 같은 것을 보기를, 증오와 혐오의 시대에서 간절히 바란다.

p.378 "당신은 아이를 신이 만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다른 사람을 증오해도 괜찮다고 생각하도록 키웠어요. 당신이 그 증오를 허락한 거라고요. 어쩌면 당신이 가르친 걸 수도 있죠. 당신 자식과 꼭 당신 같은 인종 차별주의자 부모에게서 자란 그 인종 차별주의자 친구들은 자기들이 가진 증오와 어리석음을 이 세계에 수류탄처럼 내던졌던 거예요."

p.400 "괜찮지 않아요. 내 딸은 죽었고 어기 윌리엄슨도 죽었어요. 내가 딸에게 거짓말을 했기 때문이죠. 그 애는 그게 거짓말이라는 걸 알지만 결국 받아들였어요. 애들은 늘 알죠. 다섯 살 꼬맹이도 알아요. 하지만 우린 거짓말을 계속 되풀이해서 애들을 꺾어요. 그게 최악이죠. 애들의 마음에서 좋은 것을 모조리 몰아내고 그 자리에 독이 채워질 때까지 꺾는 거죠."


*도서제공: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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딕테
차학경 지음, 김경년 옮김 / 문학사상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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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기다렸던, 찾아 헤맸던. 어디에도 갇히지 않음으로서 그 자신이 되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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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와 기름
단요 지음 / 래빗홀 / 2024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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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부류의 인간이 있다. 존재의 종착점이 초월적 존재의 품이기를 바라는 자와 그렇지 않은 자. 더하자면 그 거대한 힘 자체를 믿지 않는 자까지. 이들 간에는 타협 불가능한 쟁점이 여럿 있는데, 개중 가장 끈질기게 이어져온 것은 다름아닌 '구원'이라 할 수 있겠다.

세계는 고통으로 가득한가. 이 질문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것이다. 사철 배부르고 내일을 두려워한 적이 없는 자가 도처에 가득하대도 그들을 둘러싼 세계는 죽음으로 가득하고 모든 존재는 저마다의 환난을 그러안고 살아가므로. 그러나, 어째서 그런가. 숱한 재난과 절망을, 어쩌면 이조차 창조하신 그는 어째서 외면하는가. Quo vadis, Domine.

p.90 그는 평생토록 도망쳐왔던 세계의 총체가 바로 여기 모였음에 몸서리쳤다. 개념을 물질에 앞세움으로써만 파악될 수 있는 도시의 결절들. 만질 수 없거니와 상상의 대상조차 아니므로 실체와 정신을 동시에 압도하고 마는, 추상화된 객체들. (...) 어째서 하나같이 똑같은가? 전기든 수도든 통신망이든 물류 체계든 어느 하나가 어그러진다면 나머지가 한꺼번에 망가질 텐데도, 분명히 무언가가 매 순간 망가지는데도 변함없는 세계의 모습.

p.162 미슐랭 3스타 파인다이닝을 즐기는 사람과 프랜차이즈 햄버거를 먹는 사람의 거리가 고작 100여 미터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은근한 섬뜩함을 느꼈다. 그 감각은 속물 의식의 발로라기보다는 자신의 처지를 객관적인 입장에서 바라볼 때의 아득함과 비슷했다.


역설적이게도, 절망은 희망에 기인한다. 가진 적도 알 수도 없던 자는 바랄 수도 원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러므로 도처의 참상에 환멸하는 자는 누구보다도 연민하고 구원을 바라는 자에 가까울 것이다. 과연 그러한가? 믿는 자는 실망할 자다. 구원과 정화를 바라는 자는 심판과 처단을 갈망한다. 의인은 마땅히 건져질 것이요. 악인은 벌 받으리니.

그런 이유로 신실한 자는 두려워하는 자다. 그들과 우리를 가르는 자다. 종교적 믿음의 조건은 '나'를 버리는 데에 있다. 자아를 걷어내고 그 자리에 신을 세운다. 판단 이전에 믿음이 있다. 이해에 앞서 '옳습니다!'를 외칠 수 있는 자만이 믿음의 땅에 안주할 수 있다. 자기부정으로 얻어내는 존재의 보증.

p.218 세상에는 가장 순수한 믿음을 추구하는 인간 유형이 존재하며, 그들은 결벽적인 의심으로 인해 최종적으로는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된다. 진정성과 순수성이라는 관념은 실질 사랑이 불러오는 환각이자 판단 유보의 한 형태이기 때문이다.
조강현은 쉼 없이 추론하고 판단했으므로 환각에 빠지지 못했다.

p.356 "비극의 절정에서 삶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이어진다는 것, 인간은 구렁텅이 한가운데에서조차 새로운 기쁨을 발견할 힘이 있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통과 기쁨의 대차대조표가 존재 한다는 것, 그것이야말로 인간사를 추동하는 동력이자 비참의 근원입니다… 이로 인해, 우리 인간은 첫맛만 달고 아주 쓴 술을 계속 마시듯 삶에 중독되고 맙니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의 최선이 신의 최악일 수밖에 없다고 믿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창조한 신의 세계에서 종말은 예정되어 있다. 도처에 가득한 슬픔과 고통, 믿음과 불신까지도. 타락한 세계에 심판이 도래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구원의 약속은 시작부터 그러했듯 임의로 파기되었는가? 신이 인간을, 세계를 버렸다면, 이 두려운 세계에서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대체 무엇인가?

퍽 불경스러운 소리가 아닐 수 없다. 따지자면 신성을 인간의 영역으로 끌어온 순간부터 이미 모독이다. 감히 계약이라니. 그 본질적 속성은 대등한 양자의 상정이다. 과정이며 결과가 어찌되든 명목상으로나마 '자발적인' 동의로 체결된다. 그러나 적어도 아브라함계에 한해, 신과 인간의 대화는 계약으로 시작되었다. 존재 이전에 세계가, 창조 이전에 계율이 있었다. 믿음과 존재의미의 교환. 이해에 앞서는 형태.

그것을 묻기 위해 이야기는 버려진 세계에서 시작한다. 기한없이 유예된 종말을 돌려받고자 하는 이들로부터. 약속한 멸망을 내리시어 심판의 그 날에 당신께서 계실 자리에 계시며... 높은 곳에 임하소서, 감히 낮은 곳에 거하지 마시옵고.

p.186 "이 세계는 영원한 죄책감과 부채 의식을 쌓아가는, 가망 없는 세계입니다. 부서지고 상처 입은 세계입니다. 정산을 두려워하며 채무로부터 도망치는 세계입니다 (...) 나는 예수를 확고히 따릅니다! 다만 자율성 뒤편에만 숨는다면, 이 세계에 보다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당신께서는 그 아버지와 별반 다를 바 없는 비겁자라고 믿을 뿐입니다— 나는 예수께 그 문제를 직접 따질 기회를 찾아다니고 있는 겁니다!"


'종말 촉구단'의 이유는 여기서 드러난다. 기한 없는 침묵은 불안을 부른다. 신이 떠난 세계에서 선택과 책임이 같은 곳에서 발원하고 귀결된다는 사실은, 끔찍이도 두려운 일이다. 이는 믿음이 그 숱한 부정에도 살아남아온 이유와도 같다. 이 믿음의 세계가 계약으로 성립된 까닭에 이 쌍방책무의 굴레에서 절대자조차 벗어날 수 없다. 내놔라, 내 구원. 떼인 종말 돌려내라.

곳곳에 조소와 냉소가 묻어있다. 사회의 이물질, 철저한 이방인인 동시에 모든 것을 꿰뚫어 볼 만큼 오랜 시간 들여다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것들이. 인간의 피조물은 생각한다. 고통을 창조하고 파멸을 자초한다. 태어나고 또 낳는다. 무기질적인 세계의 균열에 길이 들어선다. 그런 이유로, 나는 이 긴 이야기를 복음을 걷어차는 구원이라 부르고자 한다. 주인공만큼이나 제정신 아닌 구원이라고.

p.259 "혼자 떠맡고 죽을 문제랑 아닌 문제를 분간할 능력도 없고, 주변 사람들을 곤란하게 만들면서 자기가 뭘 잘못했는지도 몰라. 그러니까 너는 사실 신의라거나 충성, 명예, 안위, 책임 같은 개념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하는 상태고, 그래서 항상 미안하다며 굽실거리면서도 숨 쉬듯이 잘못하고 사는 거야."

p.362 "현실을 보라고. 우리 모두가 최종적으로는 죽는다 해도, 지금 당장 누가 어떻게 죽느냐 하는 건 각각의 삶에서는 중대 사안이야. 그리고 세상이 계속 세상이라면, 그런 까닭에라도 뭐든 해야 하지. 행동하지 않는 것조차 일종의 행동이니까."


*도서제공: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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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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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읽을 것이라 기대되는가? 전통적인 형식의 추리소설, 이를테면 형사 혹은 탐정이 주축이 되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고 진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후에 범인의 원한 혹은 죄책어린 자백이 이어지는 형식의 작품의 독자는 으레 사건의 발견부터 해결까지 주변에서 서성대는 구경꾼의 지위에 가깝다.

이 시기의 작가는 범인이자 탐정이었으며, 작품 속 모든 인물과 사건의 창조주인 동시에 그들 모두이기도 했다. 등장인물들의 말 한 마디와 행색, 곳곳의 사물과 자연, 심지어 시간마저 작가의 설계에 따라 배치되고 움직인다.

p.70 어째서 영국의 시골 마을은 종종 살인 사건의 무대가 될까? 내가 전부터 이걸 궁금해하다 해답을 깨달은 것은 치체스터 인근 어느 마을의 조그만 시골집을 임대하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였다. (...) 혼란스러운 도시에서는 금세 잊힐 감정들이 시골에서는 광장을 중심으로 곪아터지고 사람들을 정신병과 폭력의 세계로 몰고 간다. 추리 소설 작가에게는 선물이다.

p.224 물론 탐정들은 우리보다 똑똑하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보다 똑똑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타의 모범이 되는 건 아니다. (...) 탐정을 좋아하거나 존경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그들을 저버리지 않는 이유는 그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실한 독자의 역할은 진실이 밝혀질 줄을 알면서도 마음 졸이기, 어떻게든 한 발 먼저 알아내려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보기 정도다. 추리를 추리하는 조수의 생각을 추리하는 구경꾼! 이랄까.

추리소설의 용의선상은 과히 파격적일 경우가 아니고서야, 우선적으로 독자를 비껴간다. '자, 일단 나는 아니고...' 에서 시작해 다음 내용이 궁금해 절로 넘어가는 책장을 아쉬움 반, 기대 반으로 읽어나가는 독자가 가장 황당해할 일이라면 아무래도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식의 전개가 아닐까.

이야기는 추리소설 편집자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신간 원고, 그것도 거장의, 생각만 해도 설레는 것을 물흐르듯 읽어나가던 차에 별안간 이야기가 끊겨버렸다. 원고 일부가 없다. 그것도 해결을 코앞에 둔 때에, 첩첩이 쌓인 증거의 산에서 반짝이는 증거를 들어올려야 할 때에!

p.16 「장례식이 그래서 문제야. 다들 철저하게 위선자가 되는 거. 다들 고인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모른다는 둥, 얼마나 친절하고 마음씨가 넓었는지 모른다는 둥 하지만 속으로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 나는 메리 블래키스턴을 좋아한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서 그녀가 계단에서 굴러 목이 부러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어.」


해결책은 간단하다. 사라진 원고를 찾든지,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각오로 작가에게 묻든지. 여기서 다시 문제 하나. 원고도 없고 작가도 없으면 어쩌죠. 아니, 있었는데, 없어졌다니까요? 둘 다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고요. 죽은 사람이라도 불러내 물어야 할 판이다. '아니, 그래서 다음이 뭔데요?'

미궁에 빠진 사건의 해결을 진짜 미궁에 빠트려버린 사건,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의 창조주가 사라진 원인은 무엇인가? 자살? 사고? 마지막 작품의 시작처럼, 설마, 살인? 그렇다면 대체 누가? 진실도 해결도 없는 미완의 추리는 과연 완성될 수 있는가?

p.223 탐정 소설의 핵심은 진실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불확실로 가득한 세상에서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면 자동적으로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가.

p.224 이야기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모방한다. 우리는 긴장과 애매모호 속에서 살아가며 그것들을 해결하려고 애를쓰는 데 인생의 절반을 투자하지만 임종을 목전에 두고서야 모든 게 명확해지는 순간에 다다른다. 그런데 거의 모든 탐정 소설이 그런 희열을 제공한다. 그것이 탐정 소설의 존재 이유다. 『맥파이 살인 사건』이 우라지게 짜증 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곳곳의 단서와 오마주로 연결되는 두 편 같은 한 편의 이야기는 액자보다는 마주보는 거울과도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미지에는 사실 시작점이 있다. 난제를 추리하는 동시에 난제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흩어지고 숨겨진 조각을 어떻게든 이어붙여야 한다.

장담컨대, 이 책의 모든 것들, 단어와 문장과 인물을 비롯해 책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가 단서고 이정표다. 추리소설의 전통을 완벽하게 계승하는 동시에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비웃는 작가는 성실한 독자에게 이렇게 도전장을 던진다. 추리하는 자와 얼뜨기 조수가 아닌, '당신도, 그 누구도 모르는' 진실을 한 발 앞서 알아낼 수 있겠느냐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이 힌트며, 마치 클라인의 병처럼 안팎이 연결되는 이야기를 마주한 독자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기꺼이 응전해 진실을 거머쥐든지, 미궁에 빠진 미궁에 아쉬운 입맛만 다시든지. 목격자이자 탐정일 그대 독자는, 진실의 진실을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p.223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책장을 느끼며 읽고 또 읽다 보면 어느덧 왼쪽으로 넘어간 책장이 오른쪽에 남은 책장보다 많아지고, 속도를 늦추고 싶지만 그래도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결말을 향해 돌진하는 기분. 나는 그것이 탐정 소설의 남다른 매력이고, 문학이라는 보편적인 카테고리 안에 탐정 소설만의 특별한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등장인물 중에서도 탐정이야말로 독자와 사실상 독특한 관계를 맺지 않는가 말이다.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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