맥파이 살인 사건
앤서니 호로비츠 지음, 이은선 옮김 / 열린책들 / 201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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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 소설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 혹은, 어떻게 읽을 것이라 기대되는가? 전통적인 형식의 추리소설, 이를테면 형사 혹은 탐정이 주축이 되어 미궁에 빠진 사건을 해결하고 진실을 만천하에 드러낸 후에 범인의 원한 혹은 죄책어린 자백이 이어지는 형식의 작품의 독자는 으레 사건의 발견부터 해결까지 주변에서 서성대는 구경꾼의 지위에 가깝다.

이 시기의 작가는 범인이자 탐정이었으며, 작품 속 모든 인물과 사건의 창조주인 동시에 그들 모두이기도 했다. 등장인물들의 말 한 마디와 행색, 곳곳의 사물과 자연, 심지어 시간마저 작가의 설계에 따라 배치되고 움직인다.

p.70 어째서 영국의 시골 마을은 종종 살인 사건의 무대가 될까? 내가 전부터 이걸 궁금해하다 해답을 깨달은 것은 치체스터 인근 어느 마을의 조그만 시골집을 임대하는 실수를 저질렀을 때였다. (...) 혼란스러운 도시에서는 금세 잊힐 감정들이 시골에서는 광장을 중심으로 곪아터지고 사람들을 정신병과 폭력의 세계로 몰고 간다. 추리 소설 작가에게는 선물이다.

p.224 물론 탐정들은 우리보다 똑똑하다. 우리는 그들이 우리보다 똑똑할 것으로 기대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이 타의 모범이 되는 건 아니다. (...) 탐정을 좋아하거나 존경할 필요는 없다. 우리가 그들을 저버리지 않는 이유는 그들을 신뢰하기 때문이다.


여기서 성실한 독자의 역할은 진실이 밝혀질 줄을 알면서도 마음 졸이기, 어떻게든 한 발 먼저 알아내려 요리조리 머리를 굴려보기 정도다. 추리를 추리하는 조수의 생각을 추리하는 구경꾼! 이랄까.

추리소설의 용의선상은 과히 파격적일 경우가 아니고서야, 우선적으로 독자를 비껴간다. '자, 일단 나는 아니고...' 에서 시작해 다음 내용이 궁금해 절로 넘어가는 책장을 아쉬움 반, 기대 반으로 읽어나가는 독자가 가장 황당해할 일이라면 아무래도 '사람을 짜증나게 하는 방법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식의 전개가 아닐까.

이야기는 추리소설 편집자의 시선에서 시작된다. 신간 원고, 그것도 거장의, 생각만 해도 설레는 것을 물흐르듯 읽어나가던 차에 별안간 이야기가 끊겨버렸다. 원고 일부가 없다. 그것도 해결을 코앞에 둔 때에, 첩첩이 쌓인 증거의 산에서 반짝이는 증거를 들어올려야 할 때에!

p.16 「장례식이 그래서 문제야. 다들 철저하게 위선자가 되는 거. 다들 고인이 얼마나 훌륭했는지 모른다는 둥, 얼마나 친절하고 마음씨가 넓었는지 모른다는 둥 하지만 속으로는 그게 아니라는 걸 알잖아. 나는 메리 블래키스턴을 좋아한 적이 없었던 사람으로서 그녀가 계단에서 굴러 목이 부러졌다는 이유만으로 그녀에 대한 찬사를 늘어놓을 생각은 없어.」


해결책은 간단하다. 사라진 원고를 찾든지, 욕을 바가지로 먹을 각오로 작가에게 묻든지. 여기서 다시 문제 하나. 원고도 없고 작가도 없으면 어쩌죠. 아니, 있었는데, 없어졌다니까요? 둘 다 세상에 없는 존재가 되어버렸다고요. 죽은 사람이라도 불러내 물어야 할 판이다. '아니, 그래서 다음이 뭔데요?'

미궁에 빠진 사건의 해결을 진짜 미궁에 빠트려버린 사건, 살인사건을 조사하는 탐정의 창조주가 사라진 원인은 무엇인가? 자살? 사고? 마지막 작품의 시작처럼, 설마, 살인? 그렇다면 대체 누가? 진실도 해결도 없는 미완의 추리는 과연 완성될 수 있는가?

p.223 탐정 소설의 핵심은 진실이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불확실로 가득한 세상에서 모든 게 깔끔하게 정리가 되는 마지막 페이지에 다다르면 자동적으로 속이 시원해지지 않는가.

p.224 이야기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모방한다. 우리는 긴장과 애매모호 속에서 살아가며 그것들을 해결하려고 애를쓰는 데 인생의 절반을 투자하지만 임종을 목전에 두고서야 모든 게 명확해지는 순간에 다다른다. 그런데 거의 모든 탐정 소설이 그런 희열을 제공한다. 그것이 탐정 소설의 존재 이유다. 『맥파이 살인 사건』이 우라지게 짜증 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곳곳의 단서와 오마주로 연결되는 두 편 같은 한 편의 이야기는 액자보다는 마주보는 거울과도 같다. 끝없이 이어지는 이미지에는 사실 시작점이 있다. 난제를 추리하는 동시에 난제의 일부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흩어지고 숨겨진 조각을 어떻게든 이어붙여야 한다.

장담컨대, 이 책의 모든 것들, 단어와 문장과 인물을 비롯해 책 자체를 구성하는 요소 하나하나가 단서고 이정표다. 추리소설의 전통을 완벽하게 계승하는 동시에 고정관념을 정면으로 비웃는 작가는 성실한 독자에게 이렇게 도전장을 던진다. 추리하는 자와 얼뜨기 조수가 아닌, '당신도, 그 누구도 모르는' 진실을 한 발 앞서 알아낼 수 있겠느냐고.

그런 의미에서 모든 것이 힌트며, 마치 클라인의 병처럼 안팎이 연결되는 이야기를 마주한 독자의 선택은 둘 중 하나다. 기꺼이 응전해 진실을 거머쥐든지, 미궁에 빠진 미궁에 아쉬운 입맛만 다시든지. 목격자이자 탐정일 그대 독자는, 진실의 진실을 알아낼 수 있겠습니까?

p.223 손가락 사이로 스르르 빠져나가는 책장을 느끼며 읽고 또 읽다 보면 어느덧 왼쪽으로 넘어간 책장이 오른쪽에 남은 책장보다 많아지고, 속도를 늦추고 싶지만 그래도 끝까지 밝혀지지 않았으면 하는 결말을 향해 돌진하는 기분. 나는 그것이 탐정 소설의 남다른 매력이고, 문학이라는 보편적인 카테고리 안에 탐정 소설만의 특별한 자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모든 등장인물 중에서도 탐정이야말로 독자와 사실상 독특한 관계를 맺지 않는가 말이다.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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