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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솔드 : 흩어진 조각들 ㅣ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3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평점 :
사회는 오래전에 무너졌다. 그리고 재건되었다. 이전의 평화를 되찾는 데에 그치지 않고, 더 평화롭고 진보된 세상으로의 진일보를 이룩하였다. 공동체의 안전을 위협하는 "10대 무법자"들을, 한정된 자원을 축내는 "잉여인간"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뿐만 아니라, 공동체에 유익한 방식으로 "재활용"할 방법을 정착시키는 데 성공했으니. 언와인드. 죽음이 아닌 분열된 상태로 살아가는 삶. 언제든 새로운 몸을, 영생을 얻으세요.
혼란한 사회를 비집고 들어온 것은 언제나 그랬듯, 자본이다. 금전적으로, 지위적으로 이득을 보는 이들. 자신만은 희생자가 되지 않을 것을 확신한 채로, 죽어도 될 생명을 추려내는 데 거리낌이 없는 이들. 익숙한 도식과는 다르게, 권력은 더이상 무시무시한 이빨을 내보이지 않는다. 미소를 띄고 '공익'을 섬기는, 마땅히 존경받아야 할 선구자로서 손을 내민다. 이 얼마나 선량하고 올바른지!
p.12 〈이 전쟁이 낳은 10대 무법자들에게 조치를 취해야 합니다.〉 정치인들은 입법부라는 울타리 안에서 푸념한다. 아니, 교육 예산을 전쟁용으로 돌려놓고서도 이럴 줄 몰랐다는 건가? 어떻게 공교육이 실패하리라는 걸 모를 수 있단 말인가? 학교도, 직업도 없이 손에 쥔 것이라고는 시간뿐인 저 아이들이 말썽을 부리는 것 외에 무슨 일을 한다고?
p.571 「모두가 하트랜드 전쟁이 끝나고 10대 무법자들을 눈앞에서도, 머릿속에서도 치워 버릴 수 있다는 사실에 기뻐했다. 그 애들이 어디로 가는지는 누구도 생각하려 하지 않았어. 이제는 누구나 원하기만 하면 익명의 장기를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지.」
그런 이유로, '언와인드'라고 쓰고 인권 박탈이라고 읽는 끔찍한 '제도'는 사회 구성원들의, 정확히는, 구성원으로 인정되는 대다수의 성인과 소수의 자본가들의 합의로 이 사회에 무사히 정착했다. 이전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나아가 미성년자 뿐 아니라 재소자까지도 언와인드 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다. 사회 시스템에 "기생하는" 이들을 '유용한 자원'으로 환원하자는 데 그 누가 반대할까.
지난 권에서 본격적으로 모습을 드러낸 "능동적 시민"의 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다. 분해되고, 완전해지지 못하고, 영혼을 부정당한 '어린 인간'들은 여전히 패배의 연속에 맞닥뜨린다. 반면 언와인드 대상을 확대하려는, 더 많은 "잉여인간"들을 거대 산업의 아가리로 밀어넣으려는 세력은 일상에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누가 그들을 연민하는가. 이 비인간적인 세계에서 대체 누가 인간일 수 있을까.
p.188 한 가지는 확실하다. 타일러가 정말로 존재한다면, 그에게는 성장할 여지가 있다. 리사는 분열된 사람이 성장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아니면 그들은 그냥 언와인드된 나이로 굳어 버리는 걸까. (...) 「너희는 모두 타일러가 언와인드당하기 전에 어떤 사람이었는지, 뭘 원했는지에만 집착해. 왜 타일러가 3년 뒤에 무엇을 원했을지는 생각하지 않는 거야?」
p.397 하지만 소변으로 얼룩진 리와인드의 바지를 보고 냄새를 맡자 다시금 리와인드의 무력함이 떠오른다. 아전트의 지하실에 갇혀 있던 자신의 모습이. 동정심은 코너가 절대 느끼고 싶지 않은 감정이지만, 어쨌든 느껴진다. 그 감정은 증오를 부식시킨다. 리와인드의 솔기에서 절망감이 그야말로 스며 나오는 듯하다. 코너는 이 생명체에게 고통을 더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차마 그러지 못한다.
그렇다면, 여기서 물어야 한다. 누가 이 공고한 구조에, "모두의 이익"에 반대를 말하게, 혹은, 그럴 수 없게 하는가. 누가 그들을 현재에 박제하는가. 누가 그들에게 과거가 있었음을, 예측할 수 없는 미래가 있었음을 부정하는가. 누가 그들 모두에게 어른이 되고, 자기 자신으로 살아갈 기회를 빼앗는가. 실패하고 혼란스럽게 살아갈 가능성을, 그렇게 각자의 삶을 살아갈 가능성을, 미래를, '언와인드' 바깥을 빼앗는가.
카뮈 콩프리를 보라. 가장 완벽한 존재, 인간 이상의 인간. 가장 좋은 '부품'을 한 데 모아 최고의 인간으로. 그의 존재는 과학기술의 쾌거, 언와인드의 존재의의를 증명하는 최고의 현신이다. 그는 인간인가? 적어도 그 자신만은 그렇게 믿었다. 아무렇지 않게 팔려나갈 때까지는. 그를 추앙하고, 흡족해한 이들 중 인간으로 본 자는 없었다. 단 한 명도. 그는 언제나 상품이자 물건이었고, 부품의 조합일 뿐이었다.
p.250 예전에는 의학이 세상의 질병을 고치기 위한 것이었다. 연구 자금은 해결책을 찾는 데 쓰였다. 하지만 지금의 의학 연구는 언와인드의 다양하고 잡다한 부위를 사용할 점점 더 기괴한 방법을 찾아내는 것일 뿐이다. (...) 언와인드가 유지되는 건 자식을 구하고자 하는 부모의 간절함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언와인드가 이토록 활기차게 번성하게 된 건 그것이 허영 어린 거래이기 때문이다. 다른 방법이 있다면...
p.463 이유를 설명할 수는 없지만, 우나는 침해당했다고 느낀다. 캠이 어떻게 감히 윌의 음악으로 우나를 이렇게까지 깊이 밀어붙일 수 있단 말인가? 이건 윌의 음악이다. 캠은 윌의 영혼 위에 자신의 영혼을 쌓았으니까. 캠은 그를 창조한 괴물들이 깔아 놓은 토대 위에 세워진, 새로운 무언가다.
어떤 모욕에는 대단한 선언이 필요하지 않다. 그저 너는 인간이 아니라는, 어떤 인간은 다른 인간을 위해 소모되어도 좋다는 합의, 그걸로 충분하다. 언와인드, 반란자들의 여정을 함께해온 독자라면 여기서 다시 물어야 한다. 수요가 공급에 선행하는가, 너무 오래 닫혀있어 벽이 되어버린 문 앞의 우리는, 어떻게 다시 '바깥'을 가능하게 하는가.
가치 없는 몸이 감히 인간으로 존재하기 때문에 '더 귀한 생명'이 혜택을 받지 못했다, 그러므로 너의 생존은 이기심이다, 사회의 해악이다. 합의와 홍보의 형태로 퍼부어지는 프로파간다는 현대사회에도 너무 선명하게 재현되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 무엇의 재현인가. 현실에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반란의 불씨는 당겨졌고, 옳지 않음을 외면할 수 없는 이들이 있다. 여기서 작은 희망을 본다. 이 절망의 끝은 어디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p.572 「그게 끝이 아니죠, 소니아? 뭐가 더 있을 게 틀림없어요. 그렇지 않다면 왜 능동적 시민이 지금도 자신들이 무너뜨린 남자를 두려워하겠어요? 왜 잰슨 라인실드의 이름이 지금까지도 놈들을 덜덜 떨게 하겠느냐고요?」 이제 소니아는 미소 짓는다. 「어느 업계에서든 그 핵심에 두려움을 박아 넣는 단어가 뭘까?」 아무도 대답하지 않자 그녀는 어둠의 주문이라도 되는 듯 속삭인다. 「쇠퇴.」
p.574 소니아의 온몸이 떨린다. 약해서가 아니라 화가 나서다. 「지금 이 시스템을 그대로 유지하는 데 너무 많은 사람이 너무 많은 걸 투자했기에, 놈들이 언와인드에 대한 해법을 없애 버렸다면?」
*도서제공: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