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와 나
이종산 지음 / 래빗홀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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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거대한 고양이가 나타나 물었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사시겠습니까?" 혹자는 고민할 틈도 없이 답했고, 또다른 누군가는 잠시간의 고민 끝에 조심스레 결정했다. 그렇게 전 세계 인류의 5%가 고양이로 변했습니다. 네??? 정말고양이가되었나요?? 네 실화입니다 알아서하세요.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최저최악끔찍보송사건이란 말인가요...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야옹.

어느 날 고양이가 물었습니다. 사람을 그만두고 싶지 않니. 차라리 고양이로 살고 싶지 않니. 그렇게 하겠다고 답한 마음은 대체 무엇이었을까. 남겨진 사람은 알 방도가 없다. 그저, 행복하니, 물으면 가만히 깜박이는 시선이 돌아올 뿐. 그렇다면 이젠 정말 어떡하면 좋지. 네가 있는 것도 없는 것도 아닌, 다르게 있는 여전한 세상에서.

p.13 다른 사람들에게는 '내가 만나는 분' '같이 사는 분' 하는 식으로 모호하게 말한다. 부모님이나 동생에게는 '같이 사는 친구'라고 한다. 이런 지칭에는 쿠션이 깔려 있다. 나는 비밀을 싫어한다. 적어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나 나는 비밀보다 충돌을 더 싫어한다. 누가 내게 참견을 하거나 내가 선택한 것, 내가 선택한 방식이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상황도 싫고, 내가 그것을 무시하거나 반박해야 하는 상황도 싫다.

p.31 나는 동반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이라는 존재가 필요했다. 그는 세상에서 딱 하나밖에 없는 유일한 존재다. 그런데 그 존재가 고양이가 되는 상황에 대해서는 생각해보지 못했다. 고양이가 된 사람의 수명은 어느 정도일까? 고양이만큼 살까, 사람만큼 살까?


살다보면 누구나 한 번쯤 묻게 된다. 이렇게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차라리 저 팔자 좋은 동물로 태어났더라면, 안 씻어도 귀엽기만 하고 하루종일 자도 뭐라고 하는 사람 없으니 지금보다 훨씬 낫지 않았을까. 그래서였을까. 남겨진 사람들은 묻는다. 행복하니. 이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을까. 사실 사람으로 사는 일은 피곤과 환멸의 연속이다. 할 수 있는 것 많고, 해야 할 일은 더 많다.

게다가 사람 틈바구니에 끼어 살아야 하는 습성까지. 생각 많은 동물은 꼭 그 머리 수만큼 복잡한 관계에 얽혀 산다. 그런 이유로, 이 허무맹랑한 환상은 무료한 일상에 들이닥친 달콤한 파랑이기도, 비현실을 빌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이야기이도 하다. 동시에, 비현실에 힘입어야만 할 수 있는 말은 역설적으로 현실에 절실히 필요하고 또 이미 도래해있으나 그러지 못한 것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존재, 의미, 삶. 뭐 그런 것들.

p.89 프공은 그런 면에서 단단하다.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남들의 시선 때문에 포기하는 일은 없다. 어릴 때부터 그랬다. 그런 성격 때문에 남들과 부딪힐 때도 종종 있지만, 결국 인정할 사람은 인정하고,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은 지나간다. 나는 프공을 보며 그런 것을 배웠다.

p.175 고양이가 되다니 운이 좋다. 그동안 내 인생은 그리 크게 운 좋은 일도 없었고, 또 그리 크게 불행한 일도 없었다. 그럭저럭 남들만큼. 가끔 운 좋은 일도 있었다. (…) 가끔 운 나쁜 일도 생겼다. 운이 나쁜 일에는 어떤 것들이 있었는지 잘 기억이 안 난다. 나는 의외로 나쁜 일들을 금방 잊어버리는 성격이다. 지금 돌아보니 일부러 지우면서 살았던 것 같기도 하지만, 작게 운 좋은 일들과 작게 운 나쁜 일들로 내 인생은 이루어져왔던 듯하다.


그런 이유로 이 이야기는 단순한 환상을 넘어 물음으로 뻗어나간다. 사는 일에 정답이 있느냐고, 좋아하는 것을 좋아하는 마음으로는 안 되는 거냐고. 그 사람이라서, 이런 마음이라서, 그런 이유로는 안 되는 걸까. 어떤 이름은 꼭 틀에 박힌 형태로만 인정받을 수 있는 걸까. 그게 삶이래도, 사랑이래도.

누군가는 조롱이 되어버린 안다무(안온, 다정, 무해)의 총집합이라 말하겠지만, 뭐랄까, 이런 두 박자는 너무 느리고, 한 박자보다는 긴, 한 박자 반쯤 느린 이야기도 세상에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사시겠습니까?" 쉴새없이 몰아치고 닦아세우는 세상에서 숨을 멈추는 그런 순간이, 그 작은 틈이 절실했던 사람이 답하지 않았을까.

p.47 그는 고양이가 되었어도 그였다. 내가 사랑하는 그 사람만이 가지고 있는 특유의 느낌이나 분위기 같은 것이 있었다. 방 안에 고양이가 가득 차 있다고 해도 나는 금방 그를 알아보고 골라낼 자신이 있다.

p.150 심지어 책과 관련된 일은 명문대를 나오거나 의사 같은 직업을 가진 것보다 사회적으로 더 낮은 위치에 있다. (...) 그러나 다시 말하지만, 내가 무슨 일을 하는지 남에게 말해야 하는 상황이 두려운 것은 내 직업의 사회적 위치가 낮아서가 아니라 책과 관련된 일이 너무너무 멋지다고 생각하는 나의 마음 깊숙한 곳의 자의식 때문이다. 그 우쭐거리는 놈을 없앨 수가 없어서다.


아무도 서로를 원망하지 않고 울부짖지 않는 충격이라니, 순진한 구석이 있다고 생각했다. 틀렸다. 천진함을 세상 물정 모르는 미숙으로 치부하는 나의 세계가 닫혀있을 뿐이었다. 어떤 맑음은, 어떤 긍정은 무수히 깨져나가는 가운데 단단히 살아남은 것임을, 아니, 어쩌면, 반짝이는 것은 수없는 흠과 파편의 결과라는 것임을 몰랐던 이유로.

작가는 말한다. 여전히 이런 사람이 남아있다, 이런 마음이 있다, 고 말한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이 남아있다고, 그렇게 믿는다고, 믿어야만 한다고. "이해와 존중을 품고 나아가는 환대의 미래"는 이런 의미일 것이다. 솔직하게 사랑하는 마음, 그저 그대로도 괜찮을 수 있다는 용기. 당신에게도 기회가 있습니다. 앞으로 남은 삶을 고양이로 사시겠습니까? 고요한 사랑. 그저, 이 말을 남길 뿐이다.

p.216 그냥 내가 그를 너무 사랑해서. 사람이었던 그도 너무 사랑하고, 고양이가 된 그도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건데. 사람이었던 그가 그립고, 고양이가 된 그가 너무 아름다워서, 우리의 미래가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몰라서, 여러 마음이 너무 복잡하게 뒤섞여서 어쩔 줄을 모르겠는 순간이 있는 건데. 그런 마음을 무신경한 타인에게 말할 수는 없다.

p.243 그곳에서는 이상하게 희미한 희망을 품게 된다. 어쩌면 이곳에서 내가 기다리던 이야기를 만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사랑 그 비슷한 것, 아니 비슷한 것이 아니라 사랑 그 자체를 보게 될지도 모른다는. 세상에 존재하는 사랑이 고스란히 담긴 어떤 이야기가 이곳에서 탄생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그런 희망 말이다.


*도서제공: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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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 장 반 타임머신 블루스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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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출간 이후 16년이 지났다. 다시 돌아온 얼간이 잡탕찌개, 아니, 청춘들은 어떤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을까? 청춘은 열정, 열정은 뜨거움 아닌가? 쪄죽고 타죽는 한여름의 교토에서 오순도순 '네 탓'을 이어가며 변함없이 허접쓰레기와 의미모호를 절찬리 생산 중인 그들에게 비현실의 순간이 들이닥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여름, 이대로 쾅, 우주라도 멸망하지 않으려나.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숫제 시간여행이다. 본편의 환상성을 우주차원으로 확장한 허무맹랑 코메디의 실력이 과연 어떠할지.

p.19 아카시 군이 그토록 생산적인 한나절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대체 무엇을 했나. 무더운 다다미 넉 장 반에서 반라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서로 노려보며 비지땀만 생산하고 있었다. 무익하다. 어리석다. 현세의 지옥이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인생의 서머타임이 양지바른 곳에 놓은 빙수처럼 녹아간다. 너무 허무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p.98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 시공의 저편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은 다다미 넉 장 반의 대행렬. 어제가 오늘과 똑같고 오늘도 내일과 똑같다면 이 여름에 과연 끝이 있을까. 나는 영원한 서머타임을 떠돌고 있다.


속편 출간까지의 시간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실과 허구, 사건과 사건을 치밀하게 뒤섞고 넘나드는 솜씨가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하나같이 한심하다 못해 누추하고 허름한 청춘들. 읽다보면 이렇게 앞뒤가 딱딱 맞을 수가 없다. 허투루 흘려보내는 것 하나 없이 꼼꼼하게 챙겨 담는다. 맥빠지게 하는 일화들마저도 설계도에 빠짐없이 들어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된다.

꼭 우주가 그렇게 되리라고, 처음부터 정해져있던 것처럼... 잠깐, 처음부터? 읽다보면 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이번에야말로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도 결국 지나가듯 젊음의 한 페이지가 끝나는 후련함과 아쉬움을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그래서 제 감상은요, 아 짜증나게 멋있어… 감동적인데 열받아… 자존심 상해... 콜로세움같아...

p.133 자신의 어리석은 실책을 얼버무리기 위해 우주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은 너무나도 불손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카시 군이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우주가 멸망해서는 의미가 없다. 그녀가 살아가는 이 우주를 지키기 위해 어리석은 결단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게 바로 청춘이고 그런 게 바로 인생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울고 싶어졌다.

p.149 "밖으로 한 걸음 나가면 세계는 풍부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어. 너 자신이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너란 인간의 가치는 그 무한한 가능성에 있는 거야. 물론 장밋빛 생활이 기다린다는 보증은 없지. 괴상망측한 종교 동아리에 걸려들지도 모르고, 동아리의 내분에 말려들어 깊은 상처를 입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이렇게 말하고 싶어. 그래도 된다고. 온 힘을 다해 가능성을 살아가는 게 청춘이니까."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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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미 넉 장 반 신화대계 다다미 넉 장 반
모리미 도미히코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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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편 출간 이후 16년이 지났다. 다시 돌아온 얼간이 잡탕찌개, 아니, 청춘들은 어떤 일상을 이어나가고 있을까? 청춘은 열정, 열정은 뜨거움 아닌가? 쪄죽고 타죽는 한여름의 교토에서 오순도순 '네 탓'을 이어가며 변함없이 허접쓰레기와 의미모호를 절찬리 생산 중인 그들에게 비현실의 순간이 들이닥친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만 같은 여름, 이대로 쾅, 우주라도 멸망하지 않으려나. 그것이 현실이 되어버렸습니다? 이번에는 숫제 시간여행이다. 본편의 환상성을 우주차원으로 확장한 허무맹랑 코메디의 실력이 과연 어떠할지.

p.19 아카시 군이 그토록 생산적인 한나절을 보내는 동안 우리는 대체 무엇을 했나. 무더운 다다미 넉 장 반에서 반라로 책상다리를 하고 앉아 서로 노려보며 비지땀만 생산하고 있었다. 무익하다. 어리석다. 현세의 지옥이다. 다시는 되찾을 수 없는 인생의 서머타임이 양지바른 곳에 놓은 빙수처럼 녹아간다. 너무 허무해서 뭐라 할 말이 없다.

p.98 어제와 똑같은 오늘, 오늘과 똑같은 내일… 시공의 저편까지 끝없이 이어지는, 판에 박은 듯이 똑같은 다다미 넉 장 반의 대행렬. 어제가 오늘과 똑같고 오늘도 내일과 똑같다면 이 여름에 과연 끝이 있을까. 나는 영원한 서머타임을 떠돌고 있다.


속편 출간까지의 시간을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현실과 허구, 사건과 사건을 치밀하게 뒤섞고 넘나드는 솜씨가 조금도 녹슬지 않았다. 하나같이 한심하다 못해 누추하고 허름한 청춘들. 읽다보면 이렇게 앞뒤가 딱딱 맞을 수가 없다. 허투루 흘려보내는 것 하나 없이 꼼꼼하게 챙겨 담는다. 맥빠지게 하는 일화들마저도 설계도에 빠짐없이 들어있고, 실제로도 그렇게 된다.

꼭 우주가 그렇게 되리라고, 처음부터 정해져있던 것처럼... 잠깐, 처음부터? 읽다보면 안다. 이렇게 어른이 되어가는 거라고. 이번에야말로 처음으로 돌아가지 않는다. 무더운 여름도 결국 지나가듯 젊음의 한 페이지가 끝나는 후련함과 아쉬움을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독자에게 추천한다. 그래서 제 감상은요, 아 짜증나게 멋있어… 감동적인데 열받아… 자존심 상해... 콜로세움같아...

p.133 자신의 어리석은 실책을 얼버무리기 위해 우주 전체를 위기에 빠뜨리는 것은 너무나도 불손한 행위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아카시 군이 아무리 사랑스러워도 우주가 멸망해서는 의미가 없다. 그녀가 살아가는 이 우주를 지키기 위해 어리석은 결단의 결과를 받아들여야 하는 것이다. 그런 게 바로 청춘이고 그런 게 바로 인생이다. 그런 생각을 하다 보니 울고 싶어졌다.

p.149 "밖으로 한 걸음 나가면 세계는 풍부한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어. 너 자신이 가능성으로 가득 차 있으니까. 너란 인간의 가치는 그 무한한 가능성에 있는 거야. 물론 장밋빛 생활이 기다린다는 보증은 없지. 괴상망측한 종교 동아리에 걸려들지도 모르고, 동아리의 내분에 말려들어 깊은 상처를 입을지도 몰라. 하지만 난 이렇게 말하고 싶어. 그래도 된다고. 온 힘을 다해 가능성을 살아가는 게 청춘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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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수를 믿다
나스타샤 마르탱 지음, 한국화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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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여자가 곰에게 공격당했다. 아니다. 캄차카 반도를 홀로 탐방하던 인류학자가 야생 곰과 마주쳤다. 이것도 충분하지 않다. 이방의 존재가 이계의 존재와 조우했다. 그렇다. 이것은 이해 너머에 있는, 그러나 언제나 함께 살아가는 존재와 마주한 인간의 이야기다. 얽힘이다. 휘말림이다. 뒤섞임이며 혼돈과 근원으로의 휩쓸림이다.

저자는 캄차카 반도 화산지대의 소수 거주민을 연구하기 위해 홀로 탐방 중이었다. 그곳에서 곰을 마주쳤고, 그와 곰은 서로에게 지워지지 않는 흔적을 남겼다. 치료를 위해 돌아온 일상에서, 파편화된 의식 속에서, 밀려오는 고통과 무의식에서 그는 차라리 혼란에 가까운 의문을 마주한다. 무엇이 나인가? 이해와 신비의 세계를 가르는 선은, 그 경계는 무엇인가.

p.27 나는 나 자신의 이야기를 생각한다. 내 에벤 이름 마추카에 대해 생각한다. 내 얼굴에 맞닿은 곰의 키스를, 정면으로 닫히던 곰의 이빨을, 부서진 내 턱을, 부서진 내 머리를, 그의 입안의 어둠을, 축축한 열기로 훅 끼쳐온 숨결을, 엄습하던 이빨이 느슨해지던 순간을, 나를 끝장내지 않은 그 이빨과, 설명할 수 없는 이유로 불현듯 생각을 바꿔 끝내 나를 잡아먹지 않은 나의 곰을 생각한다.

p.39 검고 젖은, 빛나면서 날카로운 두 눈을 들어 그가 나를 바라본다. 곰은 너를 죽이고 싶어 하지 않았어, 곰은 너에게 표식을 남기고 싶어 했어, 너는 이제 미에드카야, 서로 다른 세상의 경계에서 사는 자.


기약없이 이어질 치료를 위해 돌아온 일상에서 그는 상처가, 수술이, 치료가 그 자신의 것만이 아님을 깨닫는다. 그의 몸은 냉전의 유산이고, 서방의 의료기술이며, 실험대상이자 구경거리인 동시에 혼란과 혐의를 담고 있다. 전장이다. 그의 일부는 설원을 떠도는 곰이 되었다. 동시에 그는 감시대상이고, 두려움이며, 인간의 경계를 넘어선 자다.

이어지는 수술, 부정, 어색한 만남, 감염, 또다른 수술, 다시 반복. 그가 돌아온 곳은 더이상 일상이 될 수 없었다. 저자는 직감했을 것이다. 차가운 불빛과 시선의 세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아니, 태곳적부터 그 자신이 속한 적이 없었음을.

p.60 나는 마치 포획되어 자세히 관찰되기 위해 창백한 형광등 아래 놓인 야생동물이 된 것 같다. 내 안의 모든 것이 절규한다. 할로겐램프의 하얀 불빛이 내 눈과 피부를 불태운다. 나는 사라지고 싶다. 태양도 전기도 없는 북극의 밤으로 돌아가고 싶다. 촛불들을 생각한다. 만약 내가 숨을 수만 있다면, 아주 잠시라도 내 몸을 숨길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이 더 편안해질 것이다.

p.91 곰에 맞서 생존한다는 것은 이 세계에서 '다가올 일' 에 맞서 생존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구조적인 변화의 재개를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를 매료시키는 단일성은 결국 그것의 본래 모습인 환상으로 판가름 난다. 형태는 그것만의 고유한 도식을 가지고 재구성되지만, 그것에 사용되는 요소는 모두 외부에서 온다.


그는 피해자인가? 그의 일상은 영영 돌이킬 수 없이 부서지고 훼손되었는가? 얼굴은 곧 정체성이라 말하는 심리치료사의 말처럼 그는 그 자신의 단일성을 영원히 상실했는가? 더 이상 자신일 수 없는가? 그는 얼굴과 턱이 부서지고 다리까지 물린 절체절명의 기로에서 죽음에 순응하지 않았다. 필사적으로 무기를 휘두르고 살기 위해 발버둥쳤다. 모든 생명이 그러하듯이. 영혼을 마주한 자가, 뜨거운 피가 돌고 심장이 펄떡이는 존재가 그러하듯이.

이 모든 혼란, 엄습하는 기억, 차라리 신비에 가까운 불가해의 세계. 마침내 그는 돌아간다. 얽히기 위해. 꿈과 현실이 교차하는 곳, 영혼으로 가득한 곳으로. "수많은 생명체와 호흡하는 법을 아는 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피해자로 남는 대신, 인류학자로서 다시 서기 위해". 서로의 일부가 된 존재의, 캄차카, 눈보라와 안개의 땅으로.

p.103 저는 다시 겨울을 나고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 깊숙한 굴로 들어가는 마추카가 되어야 해요, 그리고 제가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 수수께끼가 남아 있어요, 저는 곰의 문제를 아는 이들, 꿈에서 여전히 곰에게 말을 거는 이들, 우연히 일어나는 일은 없고 삶의 궤도는 항상 매우 명확한 이유로 교차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들 곁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어요.

p.146 곰은 자신을 바라보는 인간의 눈을 참지 못해, 그 안에서 반사되는 자신의 영혼을 보기 때문이야, 이해할 수 있겠어? (...) 인간의 눈을 본 곰은 항상 그가 그곳에서 본 것을 없애려고 해, 곰과 시선을 마주쳤다면 곰은 필연적으로 너를 공격하게 돼, (...) 곰이 인간과 다른 점은 그들이 스스로를 똑바로 바라볼 수 없다는 거야. 이제 무슨 말인지 알겠어?


이해하기 어려웠음을 고백한다. 또한, 그 이유가 오롯이 나 자신을 벗어나지 못하는, 아집에 있었음을. '나'를, 현실을, 과학과 논리의 세계를, 이해 바깥을 상상하지 못하는 고집을 버리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느껴야 하는구나. 그 모든 경험이, 기억과 환상의 경계에 선 불가해와 영혼의 세계가 나를 통과해 또다른 미지로 향하도록 그저 두어야 하는구나. 온몸으로 느끼는 수밖에 없었구나. 처음부터.

이것은 문명세계의 위대한 승리도, 생존에의 찬양도 아니다. 오히려 현재와 과거, 미래가 한 데 얽히고 흘러가는 강이다. 직감인 동시에 예지다. 혼란에서 건져낸, 손가락 사이로 스쳐지나가는 사유다. 오직 이것을 이해해야 한다. 전율과 경이. 새까맣게 빛나는 노란 눈동자, 축축하게 덮쳐오는 숨, 그들은 언제나 이 세계에 함께해왔음을, 시선 너머 희미하게 닿아오는 그들의 말을.

p.14 느껴진다. 그는 지금 멀리 있다. 그는 높은 평원에서 절뚝거리고 있다. 털가죽 위로 피가 맺힌다. 그가 내게서 멀어지고 내가 나 자신으로 되돌아올수록 우리는 각자 스스로를 되찾는다. 그는 나 없이, 나는 그 없이, 서로의 몸 안에 잃어버린 것을 견디며 살아 남는다. 남겨진 것들과 함께 살아간다.

p.172 다리아, 나는 어떻게 인류학을 하는지는 몰라요, 그저 내가 어떻게 하는지 알 뿐, 듣고 있어요? 응, 듣고 있어. 나는 다가가서 붙들리고 멀어지거나 도망가요. 나는 돌아와서 붙잡고 번역해요. 다른 자들에게서 온 것을, 내 몸을 통과해서 내가 모르는 곳으로 가는 것을.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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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랜드 엘레지
아야드 악타르 지음, 민승남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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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속한 세대, 적어도 나의 부모 이상 세대에게 미국은 그야말로 기회의 땅이었다. 넘쳐흐르는 자본, 그에 걸맞는 무한한 일자리, 타고난 신분과 죽어가는 땅에서 벗어나 개인의 노력으로 눈부신 성취를 거둘 수 있는 곳. 황금향이자 이상낙원이고, 자유와 평등, 공정한 기회의 현신과도 같은 곳. 그러므로 미국에 정착한다는 것은, 그 사회의 일원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은 일종의 신분상승의 상징과도 같았다.

그러나 이제는 안다. 아니. 이전에도 수없이 알아차렸으나 이제야 이해받고 있음에 가까울 것이다. "신세계" 침략에서 시작한 그들의 역사는 공고한 성이 되어 단 한 번도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을. 창백한 피부색처럼 빛나는 금의 땅. 단 한 번도 "순혈"인 적이 없었던 그들의 제국. 영원한 이민자들의 땅. 배척의 낙원.

p.53 아버지는 늘 미국을 기회의 땅이라고 불렀다. 그게 아버지만의 독창적인 말이 아니라는 건 나도 안다. 하지만 이런 의문을 품게 된다 누구를 위한 기회? 아버지를 위한 기회? 아버지가 소망하는 것이 될 기회? 물론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지만, 다른 사람들과 아버지가 진정한 동격일 경우로 국한된다.

p.149 만일 이 모든 이야기가 피해망상처럼 들리는 독자가 있다면 그의 행운에 축하를 보내고 싶다. 분명코 그런 독자들은 공화국의 일원이기보다 그 적으로 인식될까 봐 — 그리고 그렇게 취급될까 봐 — 걱정에 시달리는 일상을 보낸 적이 없었을 테니까.


앞서 말했듯, 미국은 여전히 이민자의 땅이다. 인종의 용광로니 글로벌이니 어떤 수사를 붙여도 '이민자'는 이방인일 뿐이라는 뜻이다. 잠시 머무르는 이, "우리" 아닌 자들. 스스로에게조차. 이방인은 그저 낯선 자가 아니다. 영주하지 않는 자다.

그의 신원과 기원, 과거와 현재가 어떠하든 그는 정착하는 자가 아니다. 잠시 머무르는 이유가 해소되면 떠나는 이, 집단에의 충성과 믿음을 소유할 자격을 얻지 못하는 자다. 이방인은 "우리"가 아닌 탓에 우리 이하의 지위를 지닌다. 그들의 자리는 불신과 대립의 가능성으로 얻어진다. 그것을 거부하는 자는 이방인으로도 남을 수 없다.

p.297 나는 나 자신을 닮은 사람들이 내 눈에 그렇게 보인다는 걸 알았기에 나 자신도 마찬가지일 것임을 알았다. 그들을 닮은 거울 속 나의 모습은 내가 늘 잊고자 하는 나의 진실, 내 외모를 마주할 때를 제외하곤 알 수 없는 진실(내가 〈아웃사이더〉라는 의식이 없음에도 오직 그렇게만 보일 거라는)을 상기시키는(적어도 나 자신에게는) 하나의 암시였다.

p.493 늘 자신을 미국인으로 생각하고 싶어했었지만 사실 그 상태를 열망했던 것일 뿐이었다고. 되돌아 보니 자신은 그 대부분의 시간 동안 하나의 역할을 연기하고 있었던 것이었는데 그 역할이 진짜인 줄 알고 있었다고. 나쁠 건 없었고 그저 그 역할을 하는 것에 지쳤을 뿐이라고.


이방인은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성원으로 생존하기 위해 악착같이 매달려야 하는 가치는 무엇인가? 미국이라는 나라는 그 자신의 생존을 위해 성원 개개인으로부터 무엇을 착취하는가. 그것은 무엇으로 생명을 얻는가. 놀랍지도 않게, 돈이다. 기본적인 삶, 탄생부터 죽음까지, 건강과 교육, 존엄까지도.

미국의 신은, 뿌리는 건국의 여러 아버지도, 하늘에 계신 유일한 아버지도 아니다. "미국인들"이 기함하는 샤하다에 무엇보다도 미국이 목을 맨다니 아이러니하지 않은가. 자본 외에 다른 신은 없으며, 달러는 신의 사도이다. 아, 엉클 샘의 영광이여.

p.363 이제 우리는 시민이기 전에 그 무엇보다도 소비자였으며, 구매가 우리의 특권적 행위였다. 이제 더 이상 제우스나 여호와 같은 의인화된 추상적 관념의 지배를 받지 않고 경제라는 물질적 존재를 섬기게 되었다. 우리는 그 존재의 변덕을 두려워하고, 그 존재가 베푸는 시혜에 감사하고, 의식과도 같은 구매 행위로 그 존재의 가상의 안녕에 이바지했다.

p.425 「사람들이 집도 마당도 돌보지를 않아요. 그들 자신도 돌보지 않고. 아무것도 돌보지 않는 거죠. 단순히 돈이 없어서가 아니에요. 가난해진 건 벌써 30년이나 됐고, 이제 의욕 자체를 잃은 거죠. 그걸 잃게 되면? 깊은 절망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거죠.」


WASP의 제국,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있던 적도 없던 영광을 찾아오겠다는 헛소리는 현실의 위협이 되었다. 설마, 했던 재선까지 이뤄지며. 그 사회에서 여전히 이방인으로 자리하는 이들은 어떻게 구성되고, 이해되는가. 자서전인지 허구인지 모를 이 이야기는 음악적 형식이라는 외피를 두름으로서 다시 한번 독자를 혼란에 빠트린다.

일대기, 일생, 개인적인 동시에 지극히 익숙한 이 되풀이, 론도는 그와 다름없이 태어나 자란 곳을, 그저 우리-아님으로 "생각된다는" 이유로, 입 닫고 살든지 아니면 떠나라는 말을 너무도 쉽게 던지는 '순진함' 앞에서 이야기는 다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이것은 찬양의 노래가 되지 않을 것이다.

p.12 미국은 식민지로 시작했고 식민지로 남아 있다. 즉, 여전히 약탈이라는 단어로 정의되며, 부가 우선이고 시민의 질서는 뒷전인 곳이다. 약탈은 조국이라는 이름으로, 조국의 이익을 위해 이어져 왔으며, 여기서 조국은 더 이상 물리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것, 미국적 자아이다.

p.507 「그거야 내 알 바 아니지요. 난 그저, 여기서 사는 게 그렇게 힘들다면 왜 여기서 사는지 이해를 못 하겠다는 말을 하고 있는 거예요.」 (...) 「내가 여기 있는 건 여기서 태어나 여기서 자랐기 때문입니다. 나는 여기서 평생을 살아왔습니다. 좋든 싫든 — 늘 조금씩 좋기도 하고 싫기도 하죠— 나는 여기 말고 다른 데서 살고 싶진 않습니다. 그런 생각은 해본 적도 없어요. 미국은 내 고향입니다.」


*도서제공: 열린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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