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킹맨션의 보스는 알고 있다 - 기존의 호혜, 증여, 분배 이론을 뒤흔드는 불확실성의 인류학
오가와 사야카 지음, 지비원 옮김 / 갈라파고스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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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지 못하는 이를 신뢰할 수 있는가? 낯선 타인과 동석해 하루를 나눌 수 있는가? 누구도 진심으로 신뢰하지 않는 동시에 타인의 일면과 순간을 온전히 믿고 의지할 수 있는가? 비정형적이고 강제되지 않는 집단 내의 호혜를 기대하고 또 그 연쇄에 기꺼이 참여할 수 있는가? 호의가 배반으로 돌아올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 '비즈니스 파트너' 관계는 성립 가능한 것인가?

이 모든 질문에 망설임 없는 긍정은 고사하고, 그 가능성을 상상하는 것조차 허황된 꿈, 어리석은 이상론으로 치부하지나 않으면 다행인 사회에 살고 있다. 아니, 그렇지 않은 실현을 경험한 적조차 없다. 불가지 혹은 이해-전은 곧 불신으로 직결되고, 정보우위가 곧 생명인 세계에서 타인은 언제나 암묵적인 경쟁대상이므로, 제거와 압도를 목표해야만 안전을 담보할 수 있다. 과연 그러한가?

p.6 이들은 누구도 믿지 말라고 말하면서도, 역설적으로 아무도 배제하지 않는 열린 커먼즈를 구축한다. (...) 뼛속까지 장사꾼인 이들이 타자를 돕는 이유는, 무엇보다 "내가 너를 도우면 '누군가'가 나를 도울" 것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도운 당사자에게 보답을 기대하는 대신, 누군가를 돕는 행위를 더 넓은 세계로 이전함으로써 세계 자체를, 커먼즈로 만드는 셈이다.

p.92 카라마와 동료들은 (...) '지금'의 상황에 한정하는 형대로만 타자를 평가한다. 언뜻 냉정하게도 보이지만 이는 일종의 관용과도 표리일체다. 즉, '페르소나'와 그 뒷면에는 '민낯'이 있는데 '민낯'을 모르니까 신뢰할 수 없다. 라고 생각하는 게 아니라, 책임을 돌릴 수 있는 일관된 불변의 자기 같은 건 없다고 인식하고 있는 듯하다.


그것은 유일한 진리가 아니다. 그저 믿어진 규칙, 그렇다고 선언되기 때문에 믿어지는, 이외의 가능성을 완전히 소거했다고 믿기 때문에 유일한 것처럼 여겨지는 일종의 방향 혹은 선택지 중 하나일 뿐이다. 공고하게 구축된 불신과 경계의 토대에서 호의의 순환경제는 요원하거나 공허할 뿐이다. 그러나 '헐렁한 이상론'이 현실에서 작동하는 곳이 있다.

비정주노동자와 이주노동자, 상인의 도시. 돈과 물건과 사람이 쏟아지듯 밀려오고 스쳐지나가는 곳, 홍콩, 그 중에서도 가히 "국제적인 비공식 경제의 거점"으로 알려진 청킹맨션. 천차만별의 인간군상이 득실거리는 곳, 짝퉁과 내일을 장담하지 않는 이들이 모였다 흩어지는 곳에 바로 그 가능성이 있다. 그를 향한 여정의 안내를 맡은 것은 역시나 도통 못 미더운 동시에 모두에게 신뢰받는 자칭 타칭 '보스' 카리마다.

p.157 TRUST가 공식 중고 거래/경매 사이트와 다른 발상으로 만들어졌음을 보여주는 가장 큰 특징은 TRUST가 '신용할 수 있는 브로커/고객'과 '신용할 수 없는 브로커/고객'을 점차 가려내는 플랫폼이 아니라는 점이다. TRUST에는 변함없이 누구나 신용할 수 있고 누구도 신뢰할 수 없는 세계·인간관이 유지되고 있고, 거래 실적이나 자본 규모, 과거의 실패나 배신과도 관계 없이 누구에게나 기회가 돌아간다.

p.173 비즈니스에 관한 이기적인 관심과 타자에 대한 이타적인 행동을 분간하기 어렵게 맺어져 있는 구조가 구축되면, 누군가가 내게 베푼 친절에 직접 갚아주지 못하더라도 이게 그 사람의 기회로 이어질 수 있으며 (...) 즉, 여기에도 '부담'을 애매하게 만들며 자발적인 도움을 촉진함으로써 '분명 누군가가 도와준다'라는, 국경을 초월한 거대한 안전망을 형성하는 장치가 있는 것이다.


저자는 홍콩과 아프리카를 잇는 가품과 모조, 도박과 도전의 경계를 넘나드는 비공식 경제에 참여하는 이들과 생활을 공유하며 그들의 독특한 호수관계에 주목한다. 모두가 입을 모아 누구도 믿지 않는다고 말하지만, 동시에 완전히 낯선 이에게 의탁하고, 호의를 베풀며, 그것이 배반당할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각자를 하나로 묶는 것은 그때그때 달라지는 처지와 불안정한 연결 뿐이다.

서로의 전체와 근원을 파악할 수 없는 유동적 관계에서 이 완벽한 불신과 절대적 신뢰의 기묘한 공존을 무엇을 의미하는가? 담보 없는 신뢰, 잠재적 폭력을 예비하지 않는 우호적 관계 구축이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 필요한 이유는 무엇인가? 숱하게 증명된 호의와 선의의 순환이 전지구적, 전사회적으로 확대되어야 할 필요는 무엇이란 말인가?

p.249 역설적으로 들릴지도 모르지만, 우리는 돈벌이에만 관심이 있다. 돈을 버는 건 좋은 일이다, 우리는 어떤 기회도 자신의 이익으로 바꿀 수 있다, 라고 누구나가 공언하기 때문에 가볍게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것이다. (...) 자본주의경제에 대항하는 지점으로 증여경제 또는 분배의 구조를 구상하는 게 아니라, 증여경제나 분배경제가 잠재적으로 내포한 부정적인 측면이 자본주의경제에 의해 활용될 수 있는 힌트가 감추어져 있다고 생각한다.

p.282 돈벌이라는 목적은 이들을 순식간에 연결하는 동시에 연결을 적절히 끊는 것도 가능하게 한다. (...) 동료를 만들고 증여를 순환시키기 위해 돈을 버는 게 아니라 돈벌이를 동료나 증여를 순환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삼는다. 돈벌이야말로 사회를 만드는 놀이라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전반적 금융, 상업 시스템은 불신에 기반한다. 각자도생을 전제하고 대가를 선지불하지 않으면 신뢰도 없다. 시작이 없으니 성취도 없다. 조력이 없으니 회복도 없다. 저자는 청킹맨션의 사례가 정답이라 말하지 않는다. 호수 시스템 유지와 구축에 '낭비되는' 유무형적 자원에 대한 비판 또한 무시할 수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특수성'을 보편신념으로 만들 필요가 있다. 담보가 신뢰에 앞서는 사회에서 순간의 실패가 회복으로 이어질 수 없다는 것은 곧 누구도 안전할 수 없는, 영원히 존재하지 않는 담보를 갈구하는 길로 이어지기 떄문일지 모르기에. 느슨한 연대, 무관심의 관용, 그렇게 펼쳐질 가능성의 세계.

p.259 지금 우리가 사는 세계는 '안심', '안전'을 부르짖으며 미래를 예측 가능하게 만들고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준다는 확약 없이는 줄 수 없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하고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즉시 청산하려는 태도를 낳는다. (...) 매 순간 빌려준 것과 빌린 것을 셈해서 딱 맞아 떨어지는지 신경 쓰인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손해를 보고 있다'고 느끼면 선순환의 상호성은 손쉽게 악순환의 상호성으로 전환한다.

p.292 이들이 효율성과 편의성을 '함께 살아가는 것'보다 우위에 두거나 신뢰의 등급화를 목표로 삼는 것과는 다른 회로로 실현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에 대한 방법론으로 민족지를 통해 세련된 사회경제 시스템의 이론과는 다른 인간 사회의 가능성을 제시했다. 우리가 반드시 '위험한 타자'나 '이질적인 타자'를 배제하지 않아도 공유할 수 있음을 사고하는 한 걸음이 된다면 기쁠 것이다.


*도서제공: 갈라파고스

#청킹맨션의보스는알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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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녀서 거장의 클래식 5
천쉐 지음, 김태성 옮김 / 글항아리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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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미친 여자가 있다. 그 이름은 언제, 어떻게 붙여졌을까. 가엾게도 여자를 밝힌 탓에, 아니, 밝혀진 여자이기 때문에, 아니, 여자가 밝은 탓에, 별다른 도리가 없이? 다시 생각해보자. 미친 여자가 있다. 날 때부터 미쳐있었는지, 어느날 갑자기 360도에 18도쯤 더 돌아버린 건지, 나름 숨 쉬고 살 붙이며 잘 살고 있는데 느닷없이 미친 여자로 "지정된" 탓에 그렇게 된 건지 알 도는 없지만, 마치 "저것은 해로운 새"처럼.

어느 작가가 있다. 너무도 음란하므로 '18세 이하 열독 금지'라는 가림막 너머로 보내진다. 숱한 이가 묻는다. 왜 이런 글을 썼는지. "비정상"을 굳이 드러내서 얻는 게 대체 뭔지. 아, 그러니까, "그게 싫다"는 건 아니고 이해는 하지만 "굳이 드러내는 건 싫다 "뭐 그런 뜻이지. 또다른 숱한 이가 물었다. 어떻게 구할 방법이 없는지. 작가는 말한다. 나한테도 없는 걸 어떻게 달란 말씀이신지. 수많은 복간 요청 끝에 30여년의 세월을 지나 금서가 돌아왔다.

p.26 "나는 글을 써. 사랑하고 싶기 때문에." 나는 줄곧 내 몸 안에 닫힌 자아가 하나 숨겨져 있다고 생각해 왔다. 어떤 힘이 그걸 닫히게 한 것일까? 알 수 없었다. 그건 도대 체 어떤 모습일까? 알 수 없었다. 내가 희미하게 느낀 것은 겹겹이 봉쇄된 무거운 상태와 불안한 소란, 그리고 내 왜곡되고 변형된 꿈 속에, 내가 아주 허약할 때의 잠꼬대 속에, 깊은 밤 억제할 수 없는 고통 속에 드러나는 그 외롭지만 뭔가를 갈망하는 자신이었다.

p.49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였다. 웃을 때는 몹시 방자하고 오만하면서도 우렁찼다. 우리가 길을 걸을 때면 모든 남자가 그녀에게로 눈길을 던졌지만 그녀의 눈은 나만 주시하면서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반복적으로 훑고 있었다. 눈빛으로 내 옷을 한 겹 한 겹 다 벗겨버리려는 것 같았다. 그녀의 그런 눈빛에 나는 얼굴이 빨개지고 심장이 심하게 뛰어 손발을 어디에 둬야 할지 몰랐다.


네 편의 이야기, 어쩌면 회고 혹은 어떤 밤의 기억에는 하나같이 글 쓰는 작가, 또는 그의 이름에서 갈라져나간 또다른 천쉐가 등장한다. 그는 사랑한다. 욕정한다. 파괴하고, 방황하며, 글을 쓴다. 마치, 어느 세계에서든 그러지 않을 수가 없다는 듯이. 어떤 환상과 환각의 가능성에서도 '쓰지 않는 자신'이 존재할 리가 없다는 듯이.

탐하고, 전율하고, 찢어발기고 무너지는 몸, 더없이 질척하고 뜨거운 소리, 그리고, 글, 쓰는 사람, 쓰여진 것. 이 작가에게 그것은, 그 가능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p.27 "차오차오, 꼭 완성해. 그리고 내게 살아갈 기회를 줘." 아쑤는 펜을 내 손에 쥐여주면서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몸으로 나를 안고는 가볍게 책상 앞 의자에 앉혀주었다. "자신의 천재성을 두려워하지 마. 이게 네 운명이니까." 나는 악마의 가면을 쓴 천사를 보았다. 비틀비틀 더러운 진흙탕 위에서 몸을 일으켜 한 칸 한 칸 문자의 긴 사다리를 향해 파리하게 마른 두 팔을 뻗었다. 그렇게 앞으로, 또 앞으로 나아갔다...

p.63 "내게는 이야기가 없어" 그렇게 지리멸렬하고 더없이 황당무계한 잠꼬대는 너에게 어울리지 않아. 타오타오. 지나친 호기심은 고양이 한 마리를 죽일 수 있지. 이야기를 다 듣고 나면 과다하게 긴장했던 상황은 결국 지나가고 그저 전율과 공포... 혐오만 남아. "나는 듣게 될 거야, 네가 반드시 말해줄 테니까"


그의 세계에서 욕정하는 여자, 여성의 정욕은 결코 사랑스럽고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오히려 지독한 폭력으로 덧칠된다. 잘못 자란 풀, 있어서는 안 될 것처럼, 네 편의 이야기, 그 이상의 환상 혹은 기억에서 그들은 언제나 숨어든다. 달아오른 숨을 나누고 사랑을 속삭이지만 마주치는 시선 바깥, 그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들이 함께 존재할 자리는 없다.

작가는 끊임없이 묻는 듯하다. 어떻게 욕망하지 않을 수가 있지, 생각만 해도 뺨이 달아오르고 다리를 꼬게 하는데. 어떻게 사랑이 아닐 수 있지, 입 맞추고 가슴께로 글어당겨 젖을 먹이고 싶은 마음이. 그의 글과 사랑, 욕정(혹은 정욕)은 모성애와 닮아있다. 아니, 모호한 경계로 뒤얽혀있는지도 모른다.

p.75 "나는 이 세상이 싫어." (...) 그때 나는 그 애가 내 몸 깊숙이 죽음의 뿌리와 싹을 심어놓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 싹은 내가 직접 물을 주고 키워야 했다. 내가 만신창이가 되어 부서지고 쇠잔하면 그 싹이 다시 나를 산 채로 집어삼킬 것이었다. 나는, 구차하게 살고 있다. 그 애가 버린 세상, 그 애가 떠나버린 집에서 살아가고 있다.

p.190 그녀는 여자라 월경이 오는 것이 당연했다. 월경이 오면 나처럼 몸이 아팠다. 이건 분명한 사실이었다! 이게 아주 창피한 일인가? 여자인 게 잘못이란 말인가? 왜 우리는 여자임을 인정하는 일이 그렇게 부끄러운 것일까? 서로를 사랑하는 두 여자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왜 그리 부끄러운 일이란 말인가?


현실과 환상을 그늘처럼 오가는 이야기에 평온하고 달콤한 휴식, 서로의 내일에 당연히 얽어넣어지는 희망 따위는 없다. 도리어 죄악감과 불안의 냄새를 풍긴다. 마주친 눈동자에는 서로만 가득한데, 대낮같은 세계의 규범 아래서는 아무리 끌어안고 몸을 겹친대도 그것은 "없는 일"이다. 편견과 혐오가 아닌 이름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이다.

이는 절망의 흔한 기록인가. 그렇지 않다. 독자는 짓눌린 고백, 단절되지 않는 환희와 열락의 틈새에서 어떤 가능성을 본다. 언제나 나아가고 있었다는 것.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그러므로, 결코,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처음으로 돌아가 묻는다. 여기, 미친 여자가 있다. 그의 이름은 무엇인가.

p.228 나 쉐가 네 눈앞에 있잖아. 확실히 존재하고 있잖아. 과거보다 더 강인하고 더 용감해져 있잖아. 나는 나 자신의 창작과 인생이 세상의 온갖 질의에 직면해 있다는 걸 잘 알아.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내가 지금보다 더 고통스러울 수 있을까? 그럴 리 없어. 영혼을 잃는 것보다 더 슬픈 일은 없으니까. 더 이상 나로 하여금 나 자신의 방향을 포기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없어.

p.237 우리가 『악녀서』에서 볼 수 있는 여성 동성애 감정들은 거의 전부가 의도적으로 사회적 맥락을 피하지만 사회적 간섭을 피하려 할수록 오히려 사회의 노예로서의 일면을 드러내고 만다. 천쉐의 작품에서 모든 여성 동성애의 정욕은 죄악의 느낌으로 가득하다. 사실 이러한 느낌이 호소하는 것은 배후에서 분명히 말하지 못하는 사회적 제약으로서 이야기의 주인공들과는 아무런 필연성을 갖지 못한다.


*도서제공: 글항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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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연인
에이모 토울스 지음, 김승욱 옮김 / 현대문학 / 201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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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1966년, 뉴욕의 한 사진전에서 안정적이고 평범한 삶을 살아가는 우아한 중년 여성 케이티는 생각지도 못한 얼굴을 맞닥뜨린다. 젊음의 초상이자 기억 속의 사랑을. 사진 속의 얼굴은 더없이 초라하고 지쳐있었으나, 동시에 숨길 수 없는 어떤, 불꽃같은 빛을 지니고 있었다. 여전히, 그때와 같이.

약간 비껴나간 폐허에서 재건된 사회, 상실과 파괴의 냄새를 풍기는 거대한 부, 안정된 일상이라는 허상. 개중에서도 가장 우스운 것은 그 모든 기억을 안고도 여전히 잘만 굴러가는 사회. 우리는 '그 일'이 아니었다면 여전했을까. 어쩌면, 당신은 여전히, 아름답고, 초라하고, 경이로운지. 그때와 같이.

p.10 1950년대에 미국은 세상을 거꾸로 들고 탈탈 털어서 주머니에 든 동전까지 챙겼다. 유럽은 가난한 친척 같은 존재가 되었다. 가문의 문장만 남았을 뿐, 식탁을 제대로 차릴 수는 없는 존재.

p.18 그런데도 내 생각은 나도 모르게 과거로 향했다. 힘들게 쌓아올린 지금의 완벽한 모습에 등을 돌린 채, 나는 달콤했지만 불확실하던 과거를, 그때의 우연한 만남들을 찾아 헤맸다. 그때는 정말 우연하고 열띤 만남 같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마치 운명 같다는 느낌이 그 위에 내려앉았다.


가히 한 세기를 쑥대밭으로 만들어놓은 여파 혹은 특수가 적당히 일상의 더께로 자리잡은 시기, 구시대의 무게를 벗은 젊은이들의 비격식이 새로운 유행으로 다가오던 때, 재즈와 낭만이 폭풍처럼 사교계를 휘감던 바로 그 시대, 1930년대, 미국. 이야기는 바로 그곳에서 시작된다.

꿈과 낭만, 새로운 인생은 고사하고 당장 하루 살기도 바빠 죽을 지경인 케이트와 이브에게 완벽한 신사의 표본과도 같은 팅커 그레이와의 만남은 충동이자 열정이었고, 말 그대로 환상적이었다. 어딘지 비밀스러운 구석이 있는, 그러나 점잖고 세련되기 짝이 없는 그와의 시간에, 어떻게 사랑에 빠지지 않을 수가 있을까. 모든 것이 완벽했다. '그 일'이 일어나기 전까지는.

p.63 "저 젊은이는 누구야? 자네 친구인가, 아니면 친구의 친구인가? (...) 그런 건 오래 못 가, 날씬이." "그건 아저씨 말이죠." "아니, 해도, 달도, 별도 하는 말이야."

p.114 흡혈귀는 거울에 비치지 않는다고들 한다. 어쩌면 이브는 사고로 인해 흡혈귀와는 반대의 속성을 지닌 유령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이제 이브는 거울에 비친 모습 외에는 자신의 모습을 보지 못했다.


사고 이후, '그'는 달라졌다. 아니, 여전한가. 적어도 셋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이 흘러간다. 새로운 삶에 적응하려 애쓰는 사이, 더는 함께할 수 없는 갈림길에서 서로의 길을 응원하며, 그리고... 생애 최고의 충동에 몸을 던지며. 불타오르는 사랑, 서로만 있다면 어떻게든 살아갈 수 있을 것만 같았던 미래는 산산이 부서졌다.

우리는 더이상 '우리'가 아니게 되었다. 어째서, 어떻게 당신이 나한테 그럴 수가 있어. 당신은 대체 누구지. 망가진 관계, 폐허의 자리, 그제서야 보인다. 손에 쥐고 태어난 것만 같았던 세련된 태도와 겸양인 줄 알았던 미소는 억눌린 마음의 반증이었다는 것을. 숨길 수 없이 반짝이던 눈 깊은 곳에 타오르던 불꽃이 무엇이었는지를.

p.303 "사진이란 참 웃기는 거야, 그렇지? 사진이라는 매체 전체가 순간을 기반으로 하고 있거든. 몇 초 만이라도 셔터를 열린 채로 그냥 두면, 사진이 시커멓게 나오지. 우리는 자신의 삶이 연달아 이어지는 행동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지. 자신이 성취한 것들이 계속 쌓이고, 스타일과 의견들이 물 흐르듯이 이어진다고 말이야. 하지만 사진은 16분의 1초 동안 엄청난 파괴를 저지를 수 있어."

p.441 "대부분의 사람들은 땅콩 껍질을 벗기듯이 하루하루를 살아갈 뿐이야. 하지만 1천 명에 한 명쯤은 놀라움을 담은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크라이슬러 빌딩을 보고 빙충맞게 입을 쩍 벌리는 걸 말하는 게 아냐. 잠자리 날개나 구두닦이의 사연 같은 것에 감탄하는 걸 말하는 거야. 순수한 마음으로 순수한 시간을 걸어가는 것."


끝내주게 짜릿하고 눈물나게 씁쓸하다. 이것이 바로 어른의 맛. 일견 전형적인 로맨스 플룻으로 보이는 이 이야기는 허무와 폐허의 시대, 어딘가를 살아낸 언젠가의 평범한 이들에게 보내는 찬사로 가득하다. 서서히, 잔잔하게 닳아지고 희미해질지언정 여전히 끝나지 않은 자리에서 서서, 그렇게 세월의 무게 너머로 여전히 사라지지 않은 것들에 대한.

무모한 젊음, 덧없는 열정, 차마 포기할 수 없는 꿈, 그리고 하루하루의 소박한 일상. 어두운 시대, 마지막 순수와도 같았던 그 때, 그 곳의, 그 사람들. And all that Jazz.

p.475 처음 만나서 몇 시간 동안 대화를 나눈 뒤, 그 사람과 나 사이의 유대가 워낙 특별해서 시간과 관습의 한계를 초월한다고 정말로 확신할 수 있을까? 만약 그럴 수 있다면, 그 누군가는 그 뒤로 이어질 나의 시간을 완벽하게 만들어줄 능력 못지않게 온통 뒤엎어버릴 능력 또한 갖고 있는 것이 아닐까?

p.519 나는 팅커의 이름을 부르지 않고 오랜 세월을 흘려보낸 나 자신에게 너무 가혹하게 굴지 않았다. 하지만 그다음 날 아침에 깨어났을 때 내 입술에는 그의 이름이 걸려 있었다. 그 뒤로 지금까지 수많은 날들이 그렇게 흘러갔다.


*도서제공: 현대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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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몸으로
김초엽 외 지음, 김이삭 옮김 / 래빗홀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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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강물에는 두 번 발을 담글 수 없다. 인간 신체의 세포는 주기적으로 교체된다. 길어야 10여 년 정도면 이전의 것이 전부 대체된다. 존재하는 것은 흘러가고 변한다. 지금 이 순간에조차. 그렇다면, 끊임없이 변하는 이 우주, 이 세계에서 무엇이 이 강이 어제와 같은 것임을, 맞잡은 손이 여전한 그 사람임을 증명하는가?

기이하리만치 과거에 매이지 않는, 아니, 과거와의 연결이 희미하다못해 부유하는 나의 연인, 어느날 전세계에 그와 같은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말과 기억이 와해된다. 어제와 오늘, 지금과 미래는 조금도 연결점을 갖지 못한다. 보지 않는 것, 닿지 않은 것은 말끔히 지워져버린다. 사람과 사람, 존재의 연속을 증명하는 모든 것이 힘을 잃었다.

p.87 나는 언어가 한 사람의 가장 짙고도 깊은 바탕색이라고 믿었다. 과거의 모든 흔적을 대뇌에서 지워낼 방법이 없는 것처럼 사람은 자신의 모어를 바꿀 수 없다. 그러나 샤오광은 그렇지 않았다. 그녀는 부드러운 시폰 같았다. (...) 반면 관광객이라는 걸 모두가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나는 항상 꿔다 놓은 보릿자루였다. 그녀가 현지 말투로 내게 말을 걸 때면 나는 무의식적으로 낯섦과 불쾌함을 느꼈다.


사람 뿐만 아니다. 언어가, 그로 매개된 사회가, 우주 전체가 변하고 있다. 빨리감기처럼, 마치, 우주라는 거대한 뇌가 시냅스를 재구축하는 것처럼. 제멋대로 분해되고 재연결되는 시공간에서 기존의 관념은은 더이상 의미를 갖지 못한다. 어떻게든 해야, 아니, 너를, 나를 잃지 않기 위해, 네가 없는 세계는 결코 이전과 같지 않다는 것을, 나의 우주는 너로 이루어져 있다는 것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지. 어떻게 해야 내가 너의 세계에 여전히 존재할 수 있는 걸까.

오래된 의문이다. 어제의 내가 오늘의 나와 같음을, 너의 존재는 유일무이하며 영원하다고 믿고 싶은 인간의 마음만큼이나. 어떻게 우리가 여전히 우리일 수 있을까. 오늘의 사랑은 어떻게 어제의 기억을 담아낼 수 있는가. 흔들리지 않는 토대, 교집합, 연속선, 이를테면, 진리에 가까운 무언가가 없다면. 공통분모가 깨끗이 지워진, 재편성된 세계에서 여전히 너의 안에 내가 있음을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p.90 모어는 인간 개개인에게 흔들리지 않는 존재였다. 어린 시절에 습득한 언어적 습관이 종종 평생을 가기도 했으니까, 물론 삶에서 마주하는 것들이 미묘한 영향을 주기도 한다. (...) 그런데 언어의 진화 속도가 달라진다면? 1,000배나 빨라 진다면? 외국에 간 지 사흘밖에 되지 않았는데도 자기 모어를 잃게 된다면?

p.112 "별의 위치가 바뀌었어." 그녀가 잇새로 말을 짜내듯 뱉었다. (...) "넌 언어가 변화하면 그걸 알아채지 못해?" 그녀가 나를 노려보았다. 두 눈이 붉어져 있었다. 별이 바뀌었어, 혼란스러워졌다고. 언어처럼, 사람들의 머릿속처럼 말이야!"


유한한 존재는 영원을 갈구한다. 흔들리고 위태로운 것은 불변하는 진리에 매달리고자 한다. 인간, 말로 매개되는 동물, 걷기도 전에 언어를 흡수하는, 연약하고 무력한 짐승이 태어나 가장 먼저 배우는 말은 뇌리 깊은 곳에 심어지는 뿌리와도 같다. 그것을 잊는다면, 너무도 쉽게 새로운 뿌리가 심겨지고 또 사라진다면, 우리는 그 자신의 존재를, '그 언어'로 매개된 관계를 어떻게 증명해낼 수 있을까.

또다시 오래된 물음. 아무도 없는 숲의 나무가 쓰러지는 소리를 누구도 듣지 못했다면, 그 숲에서는 소리가 나지 않은 것과 같을까? 누구에게도 인식되지 않는, 그 누구의 기억에도 남지 않은 이는 존재하지 않는 것과 같을까? 경험한 적 없는 속도로 재편성되는 우주, 순식간에 사라져버리는 기억. 네가 없어도 세계는 여전히 존재하겠지. 하지만 나는 아니야. 나의 우주는 네가 없이는 존재할 수 없어.

p.118 모어를 잃는 건 괜찮았다. 모든 걸 잊어도 괜찮았다. 심지어 나 자신을 잊어도 상관없었다. 그러나 그녀만큼은 절대로 잊을 수 없었다. 샤오광을 잊는다면 내 마음의 구멍은 영원히 메워지지 않을 것이다. "언니, 언니는 충분히 강한 사람이에요."


쓰러지는 나무를 막을 수는 없다. 흩어진 소리를 주워담을 방법도 없다. 그렇다면 남은 것은 서로가 서로를 증명하는 일, 손을 내밀고, 기꺼이 품으로 뛰어드는 일. 이 세상은 여전히 예측할 수 없고 끊임없이 변화하겠지만 너의 존재는, 너로 인한 나의 세계는 그렇지 않음을 믿는 일. 서로가 서로의 곁이 되는 것. 네가 나를 증명해. 내가 너의 존재를 증명해.

'그 일'이 있든 없든, 세계는 여전할 것이다. 상관 없다. 두렵고, 이해 가능한 범위를 아득히 넘어서는, 말 그대로 천지가 뒤바뀌는 우주라고 해도. 네가 나의 세계이듯, 나또한 너라는 작은 우주의 일부일테니. 내 곁에 네가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우리는 이 믿음에 붙일 이름을 아직 찾지 못했다. 상관없다. 텅 빈 숲, 쓰러진 나무에게 또다른 나무가 그러했듯이.

p.119 그 건물이 어쩌다가 창문 밖에 나타나게 된 건지는 아무도 알지 못했다. 이렇게 기이한 일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났다. (...) 내가 두 팔을 뻗기도 전에 그녀가 폴짝 뛰었다. 샤오광은 내게 날아들었고, 우리 둘은 카펫 위로 넘어졌다.

p.120 샤오광이 내게 말했다. 나를 잊을 수가 없었다고. 이건 내 환각일까? 아니면 우주가 과거의 기억을 포기한 샤오광처럼 신경세포를 재조직하고 있는 걸까? 만물을 깨뜨렸다가 다시 연결하는? 뭐든 상관없었다. 샤오광만 내 곁에 있어준다면. 사람들은 이 새로운 우주에 적응할 것이다. 우주 자신도 앞을 향해 나아갈 거고.


*도서제공: 래빗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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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달새 언덕의 마법사
오키타 엔 지음, 김수지 옮김 / 비채 / 202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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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술도 마법도 평범한 일상의 한 부분으로 자리한 어느 세상, 죽은 사람을 살려내는 것 빼고는 뭐든지 가능한 마녀와 마법사. 그들은 평범한 이들과 섞이는 듯, 그러나 한 곳에 머무는 법이 없이 떠돌며 살아간다. 어느 날인가부터 소문이 들려온다. 종달새 마을에는 마녀가 살고 있다. 마음 속 가장 간절한 소원을 이루어준다는 마녀가.

언덕 중턱에 위치한 작은 마법상점에 가면, 찾아온 이가 누구든, 얼마나 큰 대가를 내밀든, 그것이 마녀의 마음을 움직인다면 무엇이든 이루어준다고 한다. 무엇이든. 누구든. 그곳을 찾는 이들은 제각기 간절한 소망을 품고 있다. 단 한 번이라도 좋으니, 기적같은 힘을,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이룰 수 없는 그 소원을, 마법으로 해결해주기를.

p.155 마법은 어떤 기적이든 행할 수 있다고들 한다. 그렇다면, 마법의 힘을 빌릴 수 있다면 한 번 더 소설을 쓸 수 있지 않을까. (...) 마법으로 그 구멍을 메울 수만 있다면, 하루코는 소설을 계속 쓸 수 있다. 앞으로도 소설가로 살아갈 수 있다.

p.216 유카를 잃고 계절이 몇 번 바뀌었다. 도키오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일 년 사이에 요시히코의 상처가 아문 것 같지 않았다. 형이 슬퍼하지 않는 이유는 그 감정을 극복했기 때문이 아니다. 요시히코는 마음에 새겨진 깊은 상처가 필사적으로 호소하는 아픔을 무시할 뿐이다.


전능한 힘에 비해 그들은 좀처럼 마법을 쓰지 않는다고 한다. '종달새 언덕의 마녀'만 해도 어느 나라의 대통령인지도 그렇게 애원했다는데 눈도 깜빡하지 않고 단칼에 거절했단다. 또 누군가는 그저 재밌겠다는 이유만으로 흔쾌히 마법을 부렸다는데...

이야기는 그 작은 마을에 마녀가 찾아오고도 한참이 지난 어느 날로 시작된다. 간절한 소원을 들어준대. 그렇다면, 나도, 어쩌면... 저마다 미련과 슬픔, 외로움, 자괴감과 상실을 끌어안고 찾아오는 사람들은, 과연 소원을 이룰 수 있을까?

p.116 "언젠가 쿠로와 만나면 부디 친구가 되어주렴. 왠지 잘 맞을 것 같은 느낌이 들거든. 어쩌면 이미 친구일지도 모르겠구나." (...) 친구가 되어달라는 말은 진심이었다. 만약 기회가 있다면 그 아이와 실컷 놀아달라고. 뛰어다니기를 좋아하는 활발 한 아이니까 공원에서 뛰놀고, 나비를 쫓아다니고, 놀다 지치면 햇살 드는 곳에서 같이 낮잠을 자달라고.

p.169 무얼 쓴다고 한들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다. 가치 없는 소설을 만들어내는 자신도 아무 가치 없다. 언제나 머릿속에 있던 이야기들이 무너져내리고 사라져갔다. 공백이 되어버린 자리에 새로운 이야기는 태어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소설가이길 원했다. 하루코에게는 소설이 전부였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해보려고 발버둥질하다가 옴짝달싹 못 하게 되었지만, 자신이 더는 소설가가 아니라는 사실만큼은 인정할 수 없었다.


마녀가 감각하는 시간에 비하면 평범한 인간의 그것은 찰나와도 같다. 그들의 힘에 비하면 인간은 그저 무력하고 아둔한, 하루하루와 눈앞의 일에 벅차 허덕일 뿐일지도 모른다. 그런 인간을, 마녀는 지켜본다. 그리고 말한다. 정말 그렇게 되길 원하느냐고. 네 진정한 소원은 그게 아닐 거라고. 마치, 인간이 인간인 채로, 유한하고 무력한 그 자체로도 충분히 해낼 수 있다는 것처럼.

작가가 굳이 사람 바깥의 세계를 끌어온 이유는, 오랜 시간 수많은 이들이 이처럼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해내는 존재를 그려온 이유는 어쩌면 바로 이것일지 모른다. 나약하고 무력한, 찰나의 존재인 탓에, 수많은 그리움과 좌절과, 목숨만큼 소중한 누군가에 대한 사랑이 있기에, 그 마음을 잊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왔기 때문에.

p.67 메이, 사실 넌 지금도 흉터 따위 전혀 상관없지 않아?" 메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스이가 고개를 끄덕이듯 눈을 깜빡였다. "네가 정말로 없애고 싶은 건 흉터가 아니라 유토 마음속에 있는 짐일 거야."

p.121 쿠로는 미노루와의 나날을 어떻게 느끼고 있을까. 어째서 옆에 있어주는 것일까. "언어는 확실히 중요하지. 하지만 마음을 전할 수 있는 방법이 그것뿐인 건 아니야." 마음을 들여다보고 있다는 듯이 스이가 말했다. 미노루는 고개를 끄덕일 수 없었다.


그러니 마법은 그저 찰나의 기적이 아니다. 그것은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 등 뒤에, 긴 시간에, 자기 자신에게조차 홀로 남겨진 사람이 때때로 눈물짓고 어떤 날엔 무너지더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게 하는 것. 짧은 생의 유한한 기회 속에서도 내일이, 누군가가 있음을 잊지 않게 하는 것. 그것은 결국 현실이다. 마음이다. 긴 이야기의 끝에 남겨진 이에게, '그' 또한 그러했듯이.

오늘도, 작은 마을의 인적 드문 곳에 위치한 상점, 그곳의 문을 열면 긴 머리를 한 아름다운 '마녀'가 언제와도 같은 목소리로 맞이한다. 안녕, 나는 스이. 무슨 일로 왔어? 그러면 당신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하겠지. 당신이 어떤 소원이든 들어준다는 바로 '그 마녀'인가요. 나는, 내 소원은...

p.78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많은 걸 잃어. 그중에는 더없이 소중한 것도 있지. 막을 수 없는 이별도 있어. 그러니 부디 소중히 대해줘. 잃지 않도록, 잘 지켜야 해."

p.255 떠나버린 사람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옆에 있어줄 수도 없다. 그런데도 이제는 없는 사람에게 집착하니 마음에 계속 생채기가 나는 것이다. 그러니 산 사람이 어떻게든 해줘야 한다,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누군가가 다른 사람을 대신할 수는 없다.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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