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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디바이디드 : 온전한 존재 ㅣ 언와인드 디스톨로지 4
닐 셔스터먼 지음, 강동혁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7월
평점 :
탈주자, 위험분자, 더 가치있는 생명을 살리는 대신 불필요하고 저급한 삶을 선택하는 이기적인 존재들... 살아있는 인간을 그 자신의 의사 무관하게 분해하고 재활용하는 기적의 기술 언와인드. 성원을 살 가치가 있는 시민과 쓸모 없는 몸으로 나누는 사회.
세 명의 탈주자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드디어 종장에 도달했다. 정의와 대의를 표방하는 언와인드 찬성파와 그 산업의 위협은 여전히 건재하고, 저항하는 이들은 어리고, 나약하며, 쉬이 흩어지거나... 말 그대로 분열될 위기에 놓여있다. 죽어야 하는 사람, 사라져 마땅한 삶이라는 상식은 뒤집힐 수 있을까.
p.34 「언와인드를 끝장낼 단 하나의 무언가는 없어.」 그녀가 말한다.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방식이 합쳐져 사회에 양심이라는 게 존재한다는 걸 일깨워 줄 무작위적 사건들이 뒤죽박죽으로 일어나야 해. (...) 이 기계를 세상에 내놓는다고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는 않겠지. 하지만 이 프린터는 다른 모든 사건들을 엮어 내는 바큇살의 중심이 될 수 있을 거야.」
p.199 「언와인드를 싫어하는 사람은 아주 많지만, 그걸 멈추는 방법을 아는 사람은 없어. 그래서 시도조차 하지 않지. (...) 하지만 너한테 아이디어가 있다면, 세상에는 그 이야기를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이 있어. 모두가 귀 기울이지는 않겠지만, 아마도 충분히 많은 사람이 들을 거야.」
숨가쁘게 달려온 이전 이야기와 달리, 최종장을 앞둔 이번 권에서는 그간 들리지 않았던 목소리, 절박했던 마지막과 끝내 답을 얻을 수 없었던 의문들에 귀를 기울인다. 마치, 정말, 이 이야기에는 끝이 있어야 한다고. 그 끝을 향한 마지막 전력질주를 앞두고 크고 느린 숨을 고르는 것처럼.
코너와 리사, 레브, 스타키, 미라콜리나... 수많은 이름들이 분열과 새로운 삶이라는 이름 아래 수없이 달아나고, 저항했다. 그들의 시간은 말 그대로 목숨을 건, 다른 누구도 아닌 자기 자신으로 온전하게 존재할 권리를 위한 투쟁이었고, 절규였다. 그들 자신뿐만 아니라 누구도 이렇게는 살 수 없다고, 누구도 그 자신의 존재를 빼앗길 이유는 없다고.
p.146 그들은 그렇게 말할 것이다. 너는 악몽의 한 자리를 차지하고 꽃으로 그 악몽을 가렸다. 그가 할 수 있는 변명이라고는 〈저는 그냥 제 일을 했을 뿐이에요〉일 것이다. 그 말의 대가로 황새단은 그를 총으로 쏘거나 산산이 날려 버리거나 그의 목에 올가미를 걸고 발밑에서 의자를 걷어차 버릴 것이다. 그가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p.490 왜 하비스트 캠프를 하나 더 지어야만 하는 걸까? 방금 어떤 회사가 모든 장기를 배양하는 방법을 찾았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그 말이 사실이라면 왜 아이들을 썰어 버린다는 말인가? 아무리 나쁜 아이들이라도? 그냥 일이잖아. 그는 자신을 타이르려 한다. (...) 자신의 선택지를 헤아려 본다. 그런 다음 핸드폰을 꺼내 면접을 취소한다. 오늘은 고통스러울지 몰라도, 5년 뒤에는 후회가 없으리라는 걸 안다.
기록으로 남은, 그러니까, 이름으로 남은 수많은 언와인드들과 중간에 사라져 죽음으로 끝났을거라 단정된 이들을 다시금 세상의 한가운데로, 군중의 시야로 불러내는 것은 일종의 경의고 존중이고 찬사일지 모른다. 그렇게 죽어도 될 그렇게 사라졌어야 할 이는 그 누구도 없다는 것처럼, 이 모든 이름에, 부품이 된 몸들 하나하나에 지워진 삶이 있음을 잊지 말라고, 기억하라고 말하는 것처럼.
누구도 도망칠 수 없는 건 공권력의 손길과 분열의 과정이 아니라 누구에게든 죽음과 그 자신이 해온 일의 대가가 찾아온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자기 일이 아니었던 수많은 언와인드에도 무감했으나 정작 닥쳐온 자기의 죽음에 애원하고, 죽을 용기조차 내지 못하지만, 혹자는, 누군가는 모르는 사람을 살리기 위해 기꺼이 자기 몸을 내놓는다. 어느 쪽도 사람이다.
p.478 그래서 온 세상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로버타 그리즈월드는 무릎을 꿇고 총구를 관자놀이에 댄다. (...) 그녀는 방아쇠를 당길 용기를 끌어내지 못한다. 마침내 사람들이 그녀를 데리러 왔을 때, 그녀는 여전히 무릎을 꿇고 머리에 총을 댄 채로 있다. 누구도 그녀를 구할 수 없는 죽음보다 못한 운명에서, 바다 건너에서 쓰나미처럼 확실하게 그녀를 잡으러 오는 파도에 휩쓸린 채로.
p.519 우나는 서약을 하면서 윌의 눈을 가진 또 다른 남자를 바라본다. 그녀는 캠과 반지를 주고받지만, 주례가 〈이제 신부에게 입 맞추십시오〉라고 말했을 때, 그 영예는 완전히 다른 사람에게 돌아간다. (...) 이 공동체, 이 결혼식. 이 모든 것이 언와인드의 부수적 피해다. 불가능한 일이 일어나 언와인드 합의가 뒤집힌다 해도 이들 모두는 앞으로 몇 년 동안 심리적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어떤 상처는 영영 아물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아닌 누군가를 위해 살아간다는 것은, 믿는다는 것은, 희생한다는 것은, 삶이 그 자신만의 시간으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은 탐욕으로 얼룩진 언와인드 산업과 그 수혜자들이 아니라 끊임없는 절망에 맞부딪혔던 이들이 할 수 있는 말이다. 어느 쪽도 사람이라는 것은, 이럴 때나 쓰는 말이다.
모든 것이 마법처럼 해결됐다는 식의 기약 없는 찬사로 끝내지 않아 다행이다. 수많은 "언와인드"들과 주인공들에 비겁하지 않아 다행이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끝난다. 끝나지 않은 길을 앞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를 그 자리에 내려둠으로서. 그러므로 그 어떤 이야기도 끝나지 않았다. 그들은 존재하고, 삶은 도처에 가득하다. 이제 시작이다. 언젠가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갈 수 있다는 단단한 믿음으로.
p.335 그때, 주변이 열기로 가득 차고 사방이 연기로 새까맣게 물들어 갈 때 소니아는 지금껏 들어 본 은혜로운 소리 중에서도 가장 경이로운 소리를 듣는다. 모든 것을 바꾸는 소리다. (...) 살아 있는 모든 것이 언젠가는 가는 곳으로. 그녀는 평화롭게 떠날 것이다. … 그녀가 지하실에서 들은 경이로운 소리는 창문이 깨지는 소리였으니까.
p.555 코너는 이 포옹으로 그들을 리와인드하는 것 같다. 예전의 가족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아직 기회가 남아 있을지 모르는 가족으로 되돌리는 것처럼. 코너는 오늘 이들을 용서할 수 없음을 안다. 이들은 코너의 용서를 받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만한 자격을 갖추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오늘 모두가 살아남는다면, 언젠가는 그런 시간이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도서제공: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