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조니 선 지음, 홍한결 옮김 / 비채 / 202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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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 어른 다 됐다, 정말. 언젠가부터 습관처럼 툭 내뱉게 되는 말이다. 으레 뒤따르는 한숨과 함께 그러게. 정말 언제 이렇게 됐지, 하는 중얼거림과 함께. 사는 일은 대개 지루하고, 하루하루는 반복되고, 할 일은 끊이질 않고... 그렇다고 할 일 없이 가만히 있는 시간이 편하냐고 하면 그건 또 아니고.

어른이 된다는 게 이래도 탈, 저래도 울상인 게 사는 일이냐고 하면 선뜻 아니라고는 할 수 없게 된다는 거였냐고, 언젠가의 내가 따져 묻는다면, 입이 다섯 개여도 할 말이 없지 않을까. 바쁜 일상에 살아있다는 고양감을 느끼는 사람이 쉬는 것도 그냥은 안 되고, 잘 쉬어야 하는 세상에서 '잘 살아남기'란 나름대로 여간 벅찬 일이 아니다.

p.28 축하하면 비판적으로 보지 못할까 봐 두렵다. 비판적으로 보지 못하면 잘할 수가 없을 것 같다.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려고 애쓰고 있긴 하다. 즐거워하면서도 얼마든지 비판적 태도를 유지할 수 있다고. 애정이 있으면 더 세심해질 거라고. (...) 즐겁게 접근해보려고 하지만, 역시 쉽지 않다. 뭔가를 사랑하고 있다는 사실도 나로서는 '실제로 일어났음'을 인정하기 힘든 것 중 하나라서.

p.62 미완의 줄은 내가 일하고 있다는 증거고 내가 존재한다는 증거다. 그게 있으면 빈 화면을 우두커니 응시하는 기분이 들 일도 없고, 빈 공간을 또 어떻게 채우나 걱정할 필요도 없다. 하지만 그러기 위해선 늘 두려움을 안고 살아야 한다. 미완의 줄을 너무 많이 남겨두었다간 자칫 손쓸 수 없는 상황이 되어, 끊임없이 떨어지는 블록 때문에 화면이 꽉 차면서 게임이 끝나기 십상이니까.


저자 조니 선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일러스트레이터, 시나리오 작가, 에세이스트, 극작가, 설치 예술가, 연구원... 대체 손 대본 적 없는 일이 뭐냐고, 쉴 시간이 있긴 했느냐고 따져묻고 싶은 경력에 걸맞게, 정말 아무 것도 안 하자니 어색하고 그냥 흘려보내기엔 아깝다는 듯이 "쉼 프로젝트"를 해보겠다는 사람을 무슨 수로 말리겠나.

일상의 순간마다 스쳐지나가는 생각들, 우울, 두려움, 불안, 외로움과 소박한 즐거움 등등의 기록을 모아 읽노라면 습관처럼 내뱉는 어른 다 됐네, 에 잔잔한 슬픔이 배경음처럼 깔려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런 나대로 괜찮다고, 이렇게 살아가는 순간이 있다는 것을 애써 위로의 말로 덧씌우지 않아도 된다고, 태생적으로 그게 맞지 않는 사람도 있다고.

p.99 우리가 떠날 때는 식당 사람들이 모두 문간에 모이고 안쪽 공간에서 나와 부모님에게 "만쩌우, 만쩌우!" 라고 인사한다. 문자 그대로는 '천천히 가세요'라는 뜻이지만 곧 조심히 살펴 가세요, 다시 말해 '안녕히 가세요' 라는 뜻이다. 나는 그 인사가 좋다. 이곳을 떠나 현실 세계로, 일과 부담과 기대를 안고 쉼 없이 돌아가는 일상으로 잘 돌아가라는 그 인사를 들으면 말 그대로 천천히 살고 싶은 마음이다.

p.151 물 입자는 파동의 모습을 전혀 보지 못한다. 그저 앞의 입자를 따라 위아래로 움직일 뿐이다. 오직 물 밖에 있는 관찰자만 파동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물 입자는 그런 관찰자가 될 수 없다. (...) 우리가 스스로의 변화를 관찰하기 어려운 이유는 우리가 물 밖에 있지 않기 때문일 테다. 각자 제자리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하루하루 가라앉지 않고 버티느라 여념이 없는지도.


그래, 나도 이따금이라 하기엔 퍽 자주 쉬고 싶다,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 푸념하지만 아주 놀고만 싶지는 않다. 이렇든 저렇든 할 일이 있는 게 좋고, 때로는 숨차게 바쁜 일정에 희열을 느끼고, 내가 만들고 지나온 궤적을 훌훌 털어버리기엔 아까운 마음이 크다. 불안과 우울을 덜어내고 싶다가도 그것까지도 정체성의 일부로 받아들인지 오래고, 선망되는 사교에 거리를 두는 자발적 고독을 사랑한다.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드물까. 스스로에게조차 만사가 오케이!일 수 없는 사람들이 모두 털어놓고, 비우고, 아무튼 잘 한다 잘 된다 속삭이는 위로에 거부감은 느끼지 않을 수 있을까. 십중팔구 의도는 고맙지만 내가 알아서 할게, 다음에 신경 꺼... 가 따라붙지나 않으면 다행일 것을.

p.110 내가 농장 게임을 하는 이유는 실제로 농장을 운영하고 싶어서는 아니다. 일한 만큼 결과가 또박또박 나와서 내가 일했음을 증명해주는 게 좋을 뿐. (...) 어쩌면 성과의 기약이 없는 일에 한평생 매달리고 나서, 시간을 투입하면 그만한 보상이 반드시 주어진다는 판타지 속으로 도피하는 것이 꿈이 되어버렸는지도 모른다. 작물을 심고 보살피면 뭔가가 자라날 테니까.

p.136 내가 불안에 대처하는 방법 하나는 불안이 세금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고 싶은 걸 하고, 일상을 영위하고, 무슨 일이든 해내기 위해서는 먼저 불안세를 내야 한다. (...) 불안은 내 본질이 아니고, 내 인격도 아니고, 나를 대변하지도 않는다. 단지 나라는 사람이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치러야 할 세금일 뿐.


다시 처음으로. 어른이 된다는 것은 결국 잔잔한 슬픔과 돌이킬 수 없는 단절을 끌어안은 모습조차도 나의 일부라는 것을 받아들이는 일이라는 생각을 한다. 순간은 영원하지 않지만, 상실 또한 여러 형태로 나타나 영원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 누군가 사라진 후에도 세상은 여전히 존재한다는 것. 그러니 외로움이, 허탈함과 밭은 숨이 차오르는 날엔 지난 흔적을 돌아볼 수도, "하던 일을 멈추고 바닷속으로" 뛰어들 수도 있겠다.

언젠가의 날들을 오랜 시간이 지나서 문득 깨달을 수도, 모나고 불완전한 나를 적당히 데리고 사는 요령을 터득할 수도 있다. 호들갑스러운 위로가 아닌, 함께 먼 곳을 바라보며 어깨에 힘을 뺀 채 나누는 이야기로. 그렇게 보통 사람, 평범한 소시민으로 살아갈 것이다. 오늘도, 어쩌면, 내일도, 그 다음 날도, 그렇게.

p.20 아무리 달려도 슬픔에서 벗어날 수는 없다. 슬픔은 이미 도처에 있다. 슬픔이 우리에게 찾아오는 게 아니라, 우리가 슬픔에게 찾아간다.

p.247 이제는 슬픔이 찾아오면 그냥 오게 놔둔다. 막으려고 해봤자 결국 더 거칠게 밀고 들어올 뿐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슬픔이 찾아오면, 될 수 있는 한 가만히 붙어 앉아서 슬픔 하나하나의 섬세한 특징을 찾아본다. 찬찬히 살펴 보면서 각 슬픔이 내게 어떤 감정을 일으키는지 느껴본다. 그러면서 슬픔은 한가지가 아님을 깨닫는다.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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