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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들어진 서양
니샤 맥 스위니 지음, 이재훈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6월
평점 :
"서양"은 어디인가? 아니, 서양은 무엇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서양이란 무엇인가? 상대적인 방위가 문명과 인종의 절대적 선으로 자리하기까지, 어떤 분투와 경합, 왜곡과 해석이 동원되었는가? 대관절 "서양 문명"이란 무엇인가? '기독교 세계'에서 신을 모사한 최고의 인종이 일구어낸 유산이자 결과인가? 그의 기원은, 문화적 토대는 어디에서 출발하는가?
수천 년 간 셀 수 없이 많은 접촉과 교류, 분쟁과 정복, 사기와 기만에 가까운 재정립과 경계짓기가 있었다. 그 모든 시간의 중심에서 누군가에겐 정당성의 근간, 누군가에게는 야만과 문명의 경계였던 이름, "서양"이란 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확고한 경계와 명백한 승계로 형성된 관문과도 같은 것일까? 마치, 환영합니다. 여기서부터는 서양, 백인의 땅입니다. 처럼.
p.20 첫째, 모든 역사는 정치적이라는 것이다. 다시 쓰기, 재고하기, 공식 역사 수정하기 등을 선택하는 것은 정치적 행동이다. 마찬가지로 역사를 다시 쓰지 않겠다는 선택 역시 정치적 행동이다. 둘째, 역사적 사실 그 자체가 언제나 분쟁의 대상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논쟁은 어느 사실이 언제 어디서 강조되어야 할지에 초점을 맞춘다.
p.21 거대 서사를 뒷받침할 증거는 오랫동안 무너져 왔고, 개별적 요소들이 여전히 유지되는 동안 전체적 서사는 더는 우리가 아는 사실과 부합하지 않게 되었다. 그러나 서양의 일부 세력은 아직도 이념적 가치를 위해 이 거대 서사를 고수하고 있다.
만일 저자의 말처럼, 서양의 개념이 지금까지의 "상식"과 달리 의도적으로 편집되고 해석된 일종의 구성물이라면, 그것은 누구의 이득을 위한 추동이었는가? 진보와 문명, 합리와 보편의 가치가 어떤 "인종", 문화, 국가 혹은 체제를 올바른 기준으로서 대표하도록 의도되었다면, 그 기준 자체를, 기준이 목표하는 이상의 본질부터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많은 경우에 한 덩이로 묶여 서술되는 그리스-로마 문화는 정말 비슷한 근원을 가진 대체로 동질한 꼴이었을까? 익히 알려진 고대의 사상가, 예술가, 심지어 신성의 계보까지도 푸른 눈에 하얀 피부를 가진 남성의 전형이었을까? 피부색에서 인간성까지, 인간을 분류하는 미묘하고도 "과학적"인 스펙트럼은 정말 확고한 기준에 따라 분류될 수 있는, 신의 섭리를 드러내는 불변의 증좌였을까?
p.79 대륙을 아우르는 유산을 지녔고 아시아의 트로이가 자신들의 기원이라는 자의식은 로마인의 세계가 서양이나 유럽인의 눈으로 보는 것과 달랐음을 드러낸다. (...) 로마 제국의 다양성을 보여 주는 압도적인 증거에도 불구하고 근대 서양인은 로마인을 백인종으로 특징짓고 민족적이고 관상학적인 용어들을 그들에게 적용했다. 하지만 정작 로마인은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자신들을 범주화했을 것이다.
p.271 인종 만들기의 과정은 한 집단이 다른 집단을 일정 범주의 인구 집단으로 규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 이 인구 집단은 선천적이고 태생적인 것으로 여겨지는 특징에 의해 규정된다고 상상된다. 그리고 그 특징이 그 인구 집단에 부여된 사회적 지위를 정당화한다고 생각한다. 이 과정은 근대 서양의 전유물은 아니었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여러 사회에서 저마다의 방식으로 인간을 그 차이점에 따라 분류했고 권력 위계를 만드는 데 그 차이를 이용했다.
저자는 기존의 통념과 편견을 정면으로 부수고 나와 사회적 비주류와 정당성 경합의 역사에 주목한다. 그는 수사가 아닌 증거를 발굴해냄으로서. '전통적인' 역사서는 시간 순으로 배열되며, 대표적인 인물과 사회를 통해 당시를 재구성하고 박제하는 식으로 나열된다.
이 방식은 필연적으로 일종의 착각을 불러일으키는데, 주류와 비주류를 보편과 어긋남으로, 권력자의 입장에서 해석된 역사를 정답으로 인식하게끔 하는 것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대부분의 '권위있는 역사가들의 공신력있는 작품'들이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오래된 아버지들'의 세계는 이미 무너지고 해체되고 있다.
p.292 계몽주의 시기 유럽에서 베이컨과 그 동시대인이 서양이라는 개념의 토대를 다졌다면 그 개념적 구조는 유럽인이 지배하게 된 유럽 바깥의 더 넓은 세계에서부터 쌓아 올려졌다. 서양과 그 나머지 사이의 구분은 그곳에서 더욱 선명한 의미를 가졌고, 비서양 세계를 인식 가능한 것으로 만들고 그곳의 거주민을 길들일 수 있는 존재로 만들기 위해 그들을 서양인에게 친숙한 고대사 속 존재들로 은유했다.
p.388 두 차례의 세계 대전이 식민주의적 세계의 오랜 질서를 성공적으로 뒤엎으면서 서양의 세계적 패권은 융해되기 시작했다. (...) 식민 제국의 해체는 〈저 바깥〉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었다. 그 것은 〈집 안에서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었다. 식민지 피지배민의 이민과 노예의 강제 이주는 제국의 심장부에서 인구 구성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그렇다면 여기서 물어야 한다. 굳이 지금에 와서, 이 모든 혼란과 억지 반, 선언 반의 결과물일지언정 일견 진리와도 같이 믿어지는 '서양'의 개념에 의문을 던져야만 하는가? 혹자는 이런 우려를 내비칠 것이다. 서양의 개념을 해체하는 과정은 더이상 어떤, 서구 사회의 미덕으로 알려진 모든 가치와 역사까지도 해체해버리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세계는 그 어느때보다 구시대로 역행하려는 반동적 흐름에 휩싸여있다. 저자는 '서양'이란 통념에 정면으로 반박하며 패권이 정의를, 해석이 진리를 대체하려는 시대에 통찰을 제시한다. 흠모와 무조건적 부정이 아닌, 지워지는 이름을 되살려내 총체적인 비판으로 사고할 때 비로소 열리는 미래를. 다시금 전란으로 향하는 세계의 모든 지성인에게 일독을 권한다.
p.456 이들은 서양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 지난 세기에 이루어진 대부분의 사회 변화를 무위로 되돌리고 서양이 세계를 지배했던 영광의 나날을 회복하길 바란다. (...) 현재 서양의 핵심을 이루는 원칙들을 반대하면서 이제는 명백히 과거에 속한, 철 지난 서양의 원칙들을 지지한다. 그리고 그들이 새된 소리로 서양 문명을 수호해야 한다고 부르짖을 때 사실 그들은 우리에게 도덕적으로 파산한 허구를 지키기 위해 결집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p.458 이 책은 서양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나는 이 책이 서양과 그 근본적 원칙에 대한 찬사를 담고 있다고 주장한다. (...) 의문을 던지고 비판하며 주어진 지혜를 논박하는 것보다 더 서양다운 것이 있을까? 대화에 참여하는 것보다 더 서양다운 것이 있을까? 역사를 다시 형성하기 위해 재상상해 보는 것보다 더 서양다운 것이 있을까?
*도서제공: 열린책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