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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 파국의 시대를 건너는 필사적 SF 읽기
강양구 지음 / 북트리거 / 2025년 7월
평점 :
만일,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에 완벽히 만족하는 자가 있다고 치자. 아니, 한 발 더 나아가, 전지전능한 신이 있다고 하자. 그는 홀로 완전하며, 모든 것이 그의 세계에 완벽하게 존재한다. 그의 존재는 유일한 완전 그 자체이므로, 타자도, 바깥도 필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시간의 흐름은 무의미하다. 모든 것을 동시에 알며, 예지와 기억에 차이가 없다. 그렇다면, 그는 무엇을 상상할 수 있을까?
오랜 생각이다. 이에 대한 나의 답은 '아무것도'이다. 전지전능한 자에게, 혹은 모든 것에 만족하는 이에게 상상은 필요치 않다. '가능성을 상상'할 여지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완전의 다른 이름은 결핍의 결핍이다. 현실이 이상과 다르지 않고 결핍과 균열이 없다면 무엇을 꿈꾸고 대안을 말할 수 있겠는가?
p.8 인류의 미래를 낙관하기보다는 비관하는 목소리가 커졌습니다. (...) 디스토피아를 전망한 음울한 SF보다 현실이 더 잿빛인 상황이라서 이 책을 쓰면서 어느 때보다도 마음이 아팠습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오히려 이런 시도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우리가 지금 고민하고, 선택하고, 실천하는 일이 우리의 미래를 좀 더 낫게 만들 수 있으니까요. '정해진' 미래 따위는 없습니다.
p.45 당장 내일의 생존을 걱정해야 할 어려운 상황에서 인류는 직접적인 생존과 무관한 어떤 것으로 자신의 존재 이유를 찾아야 했습니다. (...) 그들은 무사히 살아 있음을 기념하면서 일상의 삶을 벽화로 그리고, 생존을 자축하는 손바닥을 찍었죠. 또 그들이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풍요의 상징을 만들고, 내일의 사냥 성공을 기원하고요. 예술 활동은 그들의 생존을 기념하고 또 더 나은 미래를 꿈꾸는 일이었습니다.
혹자는 이에 다른 존재의 가능성을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모든 것이, 그의 존재와 내면이 나의 뜻으로 충만해 조금도 이변과 예측불가능의 여지가 없다면, 타자 또한 나의 연장일 뿐이다. 타자가 '나'의 불완전을 반증할 수 있는 것은, 그가 나의 의지와 이해를 벗어나기 때문이다. 같은 이유로 인간은 스스로에게조차 자기인 동시에 타자이다.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완벽히 만족하는 자에게 상상의 여지가 없다면, 상상을 기반으로 하는 문학은, 상상의 세계는 불만에서 출발한다. 그 말은 곧 비현실이 현실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뜻이다. 모든 상상은 현실을 반영하며, 그런 까닭에 가장 현실적이지 않은 세계야말로 가장 현실적이다.
p.47 이 남자는 셰익스피어의 유쾌한 희곡 〈한여름밤의 꿈〉 을 보고서 웃기는커녕 눈물을 흘립니다. 그가 처한 생존의 고단함은 소설을 통해 그의 삶을 만나는 우리로서는 짐작하기 힘들어요. 하지만 왠지 그 남자가 눈물을 흘린 이유는 알 것 같습니다. 연극을 보면서 그는 따뜻한 위로를 받았어요. 정말로 삶은 생존만으론 부족합니다.
p.86 누스는 단순히 지적 능력이 뛰어난 존재에 그치지 않습니다. 평범한 인간과 차원이 다른 도덕의식을 포함한 정신까지 지닌 이 '초인류'는 인간의 본성을 드러내는 거울이자 인간 윤리의 시험대 역할을 하죠. 순종 세력에게 누스는 위험 요소입니다. "안타깝지만 우리가 관용을 베풀 수는 없네. 우리보다 머리가 좋은 생물이 있다는 점을 허용할 수 없는 걸세."
이런 이유로 상상에서 출발하는 이야기, SF는 가장 현실적인 장르일 수밖에 없다. 같은 이유로, 디스토피아는 희망의 열쇠이기도 하다. 작가가 써낸 게 예언서가 아니라면 말이다. 이미 절망스러운 현실, 뻔하거나 알 길 없게 된 미래. 그것들은 결국 지금 당장, 여기에서 해결해야만 할 문제들이다.
가장 우려해야 할 것은 절망의 도래를 말하는 이들이 가져올 '사회적 혼란'이 아니라 상상이 더이상 상상이 아니게 되는 것, 문학이 현실의 단순 서술에 그치게 되는 것, 아무것도 상상할 수 없게 되는 것이다.
p.124 한국 사회를 복지국가로 만드는 일이 이토록 지지부진한 데는 상위 20퍼센트 혹은 그 바로 밑에서 자신을 중산층이라고 믿는 이들의 욕망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딸이 계속 불평등 사회의 상위 20퍼센트로 살아갈 수 있도록 열심히 '유리 바닥'을 단단하게 만든다면, 사회 전체가 복지국가가 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p.182 AI나 로봇과 일자리의 관계를 짚을 때마다 나오는 장밋빛 전망 가운데는 재교육의 신화가 있어요. 설사 AI나 로봇으로 일자리를 잃는 사람이 나오더라도 재교육을 통해서 그들을 새로운 산업의 노동자로 변신, 아니 개조시킬 수 있다는 발상이죠. 정말로 그럴까요?
손 쓸 길 없이 닥쳐버린 재앙을 들이미는 이야기는 기실 상상이 현실이 되지 않으려면, 절망을 비극인 채로 남겨두지 않으려면, 무엇을 어떻게 해야겠냐는 절박한 물음이다. 저자는 열 여덟 편의 작품, 그것도 하나같이 절망스러운 현실을 그려내는 이야기들을 통해 현실을 돌아보고자 한다.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이라는 제목은 바로 그런 의미일 것이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보자. 우리 인간은 불완전하고, 세계는 타자로 가득하며 이미 망가져있다. 통제 불능한 세계에서 우리는, 상상하는 인간은, SF는 무엇을 지향하는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무능과 절망을 인식하는 것, 바로 그 지점에서 미래를 상상하는 것, 바로 그것이 우리의 이야기가 가진 힘이자 유일한 길일 것이다. 망가진 세계에서 우리는, 다른 미래를 꿈꿀 수 있다. 미래가 현실이 되도록, 상상이 예언이 되지 않도록.
p.213 눈앞의 현실도 이런데, 지구 바깥으로 눈을 돌린다고 나아질까요? 인류는 우주 멀리에 사는 외계인과 접촉하기는커녕 지금의 문명조차 유지하기 벅찬 상황입니다. 우주 식민지를 개최하기는거녕 석기시대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죠, 우주 저쪽의 지적 외계 생명체의 사정은 어떨까요? 인류처럼 상호 공감이 아닌 상호 갈등의 문명을 일군다면 그들 역시 우주를 가로지르기 전에 자멸할 가능성이 훨씬 크지 않을까요?
p.255 흥미롭게도 똑같이 인공 자궁을 반기지만 그 이유는 정반대인 사람도 있습니다. 바로 극단적인 여성 혐오주의자예요. 황당하게도 그들은 여성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며 여성 없이 남성만으로 사회를 꾸릴 수 있다고 생각하죠. 이들에게 인공 자궁은 인류의 재생산, 즉 임신과 출산에서 여성의 역할을 없애도록 돕는 과학기술입니다.길 이들은 기꺼이 인공 자궁을 이용할 경제적 능력이 되는 부유한 계층이겠죠.
*도서제공: 북트리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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