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에다마처럼 모시는 것 도조 겐야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심정명 옮김 / 비채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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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은 어떻게 태어나는가. 그것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이야기의 형태로 전승되는가. 괴담은 봉인된 상자와도 같아 손에서 손으로, 입에서 입으로, 사람을 타고 이어진다. 이 안에는 몹시 두려운 것이 들어있으니 열지도, 궁금해햐지도 말라는 경고와 함께.

그러나 타국의 오래된 신화처럼, 참을 수 없는 호기심은 인간사 전반의 오래된 화근이다. 그말인즉슨 두려움은 호기심을, 금기는 범계로 말미암은 재앙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금기 없이 형성되는 괴담은 없다. 두려운 것과 안전한 현실을 가르는 경계를 넘는 자는 필연히 등장하기 마련이고, 이는 괴담의 먹잇감이 되어 명맥을 잇는다.

이번 작품에서 도조 겐야 일행이 도달한 곳은 고립된 촌락, 단 한 번도 부유한 적 없었던 작은 마을이다. 뱃일로 근근이 먹고 사는 마을 사람들에게는 영험하고도 두려운 존재, '하에다마님'이 있다. 인근 마을과의 합병 논의로 어수선한 분위기는 차치하고라도, 음산하고 폐쇄적인 축제와 마을 곳곳에 시대 차를 두고 전해내려오는 괴담을 둘러싼 마을주민들의 태도에는 어딘지 이해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

주민들의 적대적인 태도는 비단 외지인에의 경계가 아니다. 그들은 두려워하고 있다. 탐사의 난항도 잠시, 설상가상으로 괴담을 재현하는 듯한 살인사건까지 일어난다. 누가, 대체 왜? 동기도 방법도 알 수 없는 사건들에 경찰까지 동원되었으나 진상은 여전히 묘연하다. 기묘한 축제와 미심쩍은 전설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는 것일까. 과연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괴이'일까, 그 이름 뒤의 무언가일까.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괴담이 태어나기 위해서는 통제 불가능한 재앙의 가능성과 위반의 대가, 그에 대한 금기가 필요하다. 이 재앙은 반드시 초현실적 존재를 상정하지만은 않는다.

가장 중요한 점은 두려움은 반드시 외부로부터 도래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집단 내의 치부, 떳떳하게 마주할 수 없는 기억, 말로 표현될 수 없는 현실과 감정을 어떻게든 덧대고 가린 흔적이 괴담의 형태를 띄기도 한다는 뜻이다. 귀신보다 무서운 게 사람이라는 경험적 진리는 세월과 함께 그 형체를 달리해 곳곳에 스며들기 때문에.

이 이야기는 장르로도, 소재로도 근대 사회의 폭력과도 결부되어 있다. 논리와 이성의 백일하에 낱낱이 규명되는 비현실적인 존재와, 공포라는 비이성적 감정의 실각. 그러나 인간이 과연 그런 존재인지, 이성의 힘으로 현실은 분석 가능한 대상이 되었는지, 제도는 충분한 정의를 표방하는지... 뿌리깊은 두려움의 힘은 얼마나 센지.

겐야 일행과 함께하는 이 여정의 끝에서 누구도 뒤를 돌아볼 수 없기를 바란다. 우리 인간이란 얼마나 연약하고 부서지기 쉬운 존재인지를 선득한 시선과 함께 오래도록 잊지 못하기를 바란다. '그것'이 돌아올 때, 깊이를 알 수 없는 저 아래 무엇이 도사리고 있는지. 깊은 밤 먼 곳에서 일렁이는 불빛, 깊은 숲 미로와 바위를 휘감는 파랑 너머에는....


*도서제공: 비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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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의 철학적 대화
가렛 매튜스 지음, 김혜숙.남진희 옮김 / 바람의아이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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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을 아십니까? 오만군데에 꼬리붙이로 따라붙는, 술자리 돌림노래 내지는 '나무야 미안해'가 아닌, 학문으로서의 철학을 아십니까. 사기꾼으로 몰리거나, 그게 밥 먹여주냐며 지청구나 듣기 딱 좋은 말이다. 이 말은 곧 철학이 이상론 따위로 취급받는 데에 더 이상의 낯섦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만학의 왕, 인문학의 꽃. 3일만 굶으면 누구나 철학자가 된다는데, 어째서 지금의 철학은 이다지도 배부른 이상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걸까.

가장 큰 이유는 무엇보다도 모든 것이 빠르게 소비되는 물질시대에 비물질과 정신 그리고 첨예한 개념 따위의 입지가 너무도 좁기 떄문일지 모른다. 동서양을 막론하고 철학과가 굶어 죽기 딱 좋은 전공이라는 데에는 우스개의 탈을 쓴 자조로 대강 합의된 지도 한참이지 않은가.

정녕 철학은 현실과 유리되어 활자와 강단의 밀실에서 순조로이 고사하는 중인가? 급기야 철학은 모든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우리가 그저 살아 숨쉬는 쓰레기통이 아니기 위해 질문할 힘을 잃고야 말았는가?


철학이 더 이상 삶의 일부가 아니게 되었는지를 묻기 위해서는 강단에 갇힌 철학이 아닌, '철학-함'이란 무엇인지를 먼저 물어야 한다. 그것은 분명 말끔한 강의실에서 교수식으로 이루어지는, 시험으로 급을 매기고 정해진 답을 요구되는 형식에 딱 맞추어 좋은 점수를 얻어내는 일과는 다르기 때문이다.

'철학함'이란 무엇인가. 철학하는 인간의 조건은 무엇인가. 많이 배우고 오래 산 자? 사고의 틀을 뛰어넘기 위해 역설적으로 사고의 한계를 단단히 둘러친 자? 기실 이른바 철학적 질문을 하는 사람들, 철학에의 관심을 드러내는 존재는 대체로 성가신 이들이다. 주변인들 뿐만 아니라 그 자신에게도 끊임없이 묻고, 의심하고, 살피려 들기 때문이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바라보는 일은 끊임없이 일상을 벗어나는 것과 같은 이유로, 유사 이래 철학하는 자는 대체로 성가시고 별난 존재였다. '철학이 밥 먹여주냐'는 말은 유효타가 아닌 적이 없었다. 남들 다 받아들이고 사는데 사사건건 따지고 드는 태도는 덜 성숙하고, 사회화되지 못한 것으로 여겨져왔다. 그런 의미에서, 어린이이야말로 '철학함'에 가장 가까운 존재일 것이다.

p.33 도널드는 내가 그 질문에 답해 주거나 문제를 해결해 주길 바라는 것 같지는 않았다. 그 대신 그 문제를 자기 것으로 여기고, 그 질문을 품고 답을 찾기 위해 애쓸 것이다. 생각에 푹 빠진 모습은 참 아름다웠다


기존의 발달심리학의 관점에서 어린이는 철학, 즉 추상적이고 첨예한 사고를 필요로 하는 개념을 다룰 인지능력이 어렵다고 여겨져왔다. 과연 그럴까? 분명 생물적, 사회적 발달의 차원에서 아동의 자원-능력은 어른의 그것에 비해 분명한 한계를 갖는다. 그러나 그 간극이 곧 어린이와 철학적 대화가 불가능함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저자는 인지능력의 발달 단계를 부정하지 않으면서도 '철학함의 능력'에 의문을 제기한다. 그가 어린이들과 나눈 대화는 일종의 도전이자 실험과도 같아 단순한 발견에 그치지 않는다. 더 나아가 어린이와 어른이 나누는 대화의 지평을 확장하려는 시도이기도 하다. 편견을 내려놓고, 귀를 기울이는 것, 무한한 가능성을 주저없이 제기하는 것.

p.59 만일 어떤 아이가 무지한 것은 아닌데 좀 이상하거나 특이한 말을 하면, 어른들은 아이가 어떤 개념상의 한계나 추리 능력의 부족, 혹은 둘 다 때문에 그렇게 생각한 거라고 성급하게 판단을 내린다. (...) 아이들이 인지적 무능함 때문에 이상한 질문이나 예상하지 못한 결론을 내는 것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아이들이 말하는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지 못하고 놓쳐 버리게 될 것이다.


이 책은 순수나 창의성에의 찬양이 아니다. 앞서 말한 한계로 인해 어린이의 논리에는 '더 배운' 어른에 비해 허점과 모순이 가득하다. 그러나 그것을 서슴없이 딛고 가로지르는 것, 그것이야말로 철학함의 본질이 아니던가?

한계 없는 태도에 마주한 경험의 확장, 가능성의 발견. 그것이야말로 저자가 말하는 현실 아래 퇴색된 철학적 사고의 힘일지 모른다. 이 책으로 말미암아 더 많은 어른들이 어린이와 철학적 대화를 나누길 바란다. 현실의 더께에 가려지지 않은 빛을 발견하고 철학이 삶의 곳곳에 던지는 물음임을 잊지 않기를 바란다.

p.8 이 책은 한 문장도 슬렁슬렁 건너뛰어 읽으면 안 됩니다. 한두 문단이라도 어림짐작으로 짚어 내려고 하면 반드시 실패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어린이에 대한 예상이 얼마나 빈약한 것이었는지 느끼게 됩니다. 어린이들의 철학함 속에는 그들이기 때문에 포착해내는 독창적인 논점이 있고 갇힘을 모르는 사유의 추진력과 인간의 울타리를 뛰어넘는 개방된 시선이 있습니다.

p.83 우리는 발달 개념을 가지고 아이들의 말을 걸러 냄으로써, 그러한 말들이 가진 철학적 탐색의 기회를 막고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아이들의 존재는 물론 그 아이들이 가진 진지함과 장난기 가득한 철학적 견해를 모두 막고 있는 것이다.


*도서제공: 바람의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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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뚝들 - 제30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김홍 지음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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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는 말로는 다 설명할 수 없는, '너무'를 너무 많이 붙이고도 모자라겠다는 느낌이 드는 작품을 만나면, 기쁨보다는 낭패감이 차오른다. 분명 오래도록 잊지 못할 것만 같다는 생각에, 삶의 어느 순간에 불쑥 차올라 잠겨버릴 것만 같다는 생각에. 홍보문구며 추천사에 눈길 줄 새도 없이 빠져드는 경험은 행운일까, 벅차도록 즐거운 재앙일까.

평범 그 자체인 장의 일상은 한 문장과 함께 송두리째 뒤엎어진다. "트렁크에 넣어뒀습니다". 범인도 동기도 알 수 없는 납치사건. 수없이 떠올리고 둘었으나 여전히 불가해한 그 날을 기점으로 그의 세계는 불운의 클라인보틀처럼 비현실에 맞닿아버렸는지 모른다. 그는 여전히 몰랐다. 아니, 모르고자 했다. 이 불행이 더 큰 불행의 전초전에 불과했음을.

p.11 아무도 장의 불행을 덜어 가려고 하지 않았다. 장은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이게 전부 내 것이라고? 이렇게나 크고 많은 것이? 이 정도 불행이면 모두가 함께 나눠야 공평하지 않은가? 비록 내가 누군가의 불행을 나눠 가진 적이 없더라도 말이야. 그의 불행은 온전히 그의 것이기만 했다. 자꾸만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겼지? 그런 질문조차 사소해지는 순간이 올 줄은 몰랐다.

p.143 어쩌면 세계가 불행해진 건 아닐까? 장은 자신의 불행이 세계와 연결되어 있을 가능성을 생각했다. (...)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썼다. 타인의 불행을 달래기 위해 은행 창구로 왔던 그 사람의 얼굴이 먼지가 잔뜩 낀 유리창처럼 희미하게 번져 있었다. 이름이 뭐였더라? 다른 나라의 낯설었던 그 이름 역시 기억나지 않았다.


그 모든 일의 이전에 말뚝이 있었다. 기원도 정체도 알 수 없이, 한때는 사람이었다고만 알려진 그것은 바다 한가운데에 나타나 무리지어 존재할 뿐이었다. 어느날 이름도 정체도 알 수 없는 그들이 다가오기 시작했다. 그들은 무엇인가? 죽었으되 채 죽지 못한 것, 덜 죽은 것, 완전히 죽음에 이르지 못한 것들.

장은 묻는다. 나의 불행이 세계의 불행과 연결된 것은 아닐까. 불행한 자들의 불행한 세계에 다가오는 말뚝의 도래는 차라리 범람에 가깝다. 그 앞에 선 사람은 이유도 모르는 채 그저 눈물을 흘릴 뿐이다. 영문도 모르는 채, 속절없이. 그냥 두면 사람이 아니지. 온갖 의미를 쥐어짜낸다.

p.159 그때 누군가 조용히 흐느끼기 시작했다. 장의 옆에 있는 사람도 훌쩍였다. 흥 하고 코를 푸는 소리가 들렸다. 장도 코가 매워졌다. 눈이 간질거렸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장의 눈에도 이유를 모르는 눈물이 가득 고였다. 훔쳐낼 틈도 없이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울고 있기는 유리문 밖의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저기요. 너무 이상해서 그런데 지금 왜 울어요?" 옆 사람이 울면서 장에게 물었다. "모르겠어요. 그냥 눈물이 나요."

p.191 죽은 사람도 여전히 사람인가? 살아 움직이지 않더라도? 어쨌든 그들이 살아 있는 사람들의 세계로 돌아온다는 건 분명했다.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혹자는 종말을, 권력의 영속을, 누군가는 단 한 번도 패배당한 적 없는, 아쉬움도 구김도 없는 얼굴을 들이미는 와중에도, 장은 알고 있다. 이것은 죽음이다. 얼굴 없는 자, 잊혀진 이름의 죽음이다. 이는 누군가 말했듯이, '도처에 널린 죽음'이다. 그들은 묻는다. "나는 왜 죽지 않았는가(최진영, 『원도』)". '물음에 처해진 자'는 물음을 이어갈 의무에 놓인다. 이 죽음은 어째서 고요한가.

죽음에는 애도가 필요하다. 어떤 죽음도 아무렇지 않아서는 안 된다. 없던 것처럼 갈아치워져도 좋을 이름은 없다. 마땅한 애도가 허락되지 않으므로 완결되지 못한 죽음. 그러므로 말뚝이 도래한 사회는 제대로 죽지 못한 이들로 가득하다. 웅크린 울음은 무리지어 피할 길 없는 반향으로 들이닥친다. 빛나는 것, 묵묵히 놓인 것, 바로 언젠가의 그 때까지만 해도 살아있었을 사람.

p.171 장은 의지와 상관없이 계속 눈물이 났다. 말을 걸어보기도 했다. 안녕하세요. 누구세요. 어떻게 죽으셨어요. 입은 열리지 않았다. (...) 꼬깃꼬깃 접은 종이를 장에게 건네던 손이 떠올랐다. 이름. 그 사람의 이름을 기억하려고 노력했지만 역시 떠오르지 않았다. 부르튼 손등과 짧게 닳아 있던 손톱만 생생했다.

p.208 "안 되는 게 어딨어요. 그냥 하지 마요." 차 대리의 어조는 단호하면서도 이유가 있었다. 그 말을 들으면 누구라도 하고 있는 일을 하고 싶지 않아질 것 같았다. 수거자가 차 대리에게 반문했다. "그럼 뭐 해요?" "마스크 벗고 같이 울어요."


그러니 감은 눈을, 이해할 수 없는 얼굴을, 미완의 죽음을 목도한 이가 가장 먼저 처해지는 의무는 애도이다. 눈물 흘리는 일이다. 치워버리지 못하게 하는 일이다. 제대로, 마땅히 슬퍼하는 일이다. 모르는 이의 죽음에 나의 책임이 있음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일이다. 그런 이유로 작중 '그'에게의 내용증명은 부채의 고백에 다름아니다.

초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들며 쉴새없이 질주하는 이야기의 끝에서, 돌이킬 수는 없어도 되풀이하지는 않을 수 있음을 믿는다. 이미 지나간 일이 그렇게 끝나서는 안 될 때, 애도와 언어는 고발과 증언의 동력이 될 수 있음을 믿는다.

누구도 서로에게 의지하지 않을 수 없는 삶에서 서로가 서로에게 지는 빚으로 모두가 연결되어 있음을 믿는다. 제발, 제발. 타자의 안위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을 믿는다. 우리 연약한 짐승이 이 잔인한 세계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힘은 오직 "빚을 빛으로 기억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마음"뿐이었음을 믿는다. "바다에서 도시로, 도시에서 내 앞으로" 도래한 말뚝들의 세계에서.

p.265 장은 이제까지 삶에 대해 너무 큰 거짓말을 해왔다는 걸 이쯤에서 인정하고 싶었다. 희망 같은 건 믿지 않는다고 말했다. 거짓말이었다. 지금은 기적을 믿는 것 말고는 다른 방법이 없었다. 누군가의 보호 아래 있다는 명백한 느낌을 믿었다. (...) 두려움은 희미해졌다. 그러니 제발.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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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베세의 마지막 여름 작가의 삶과 작품에 관한 이야기를 찾아 떠난 길
피에르 아드리앙 지음, 최정수 옮김 / 뮤진트리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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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문턱에서 외로운 이의 마지막 여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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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시대 - 독립을 넘어 쇄신을 꿈꾼 식민지 조선 사회주의 유토피아
박노자 지음, 원영수 옮김 / 한겨레출판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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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분단 이후 남한 정치사회계의 무조건 반사, 가히 만능 트리거라고 불러도 좋을 게 있다면 두말 할 것 없이 공산주의, 이른바 레드 콤플렉스일 것이다. 기실 들여다보면 그 내용은 전혀 낯설지 않으나 무슨 불에 덴 것처럼 입에 담기조차 조심스러워하는 그 이름 공산주의, 붉은 깃발은 흔한 수사처럼 정말 중국과 함께 한반도로 흘러들어온 것일까?

한국은 올해로 광복 80주년, 조선공산당 창당으로는 100주년을 맞이했다. 일제강점기와 전간기 모두에 한반도에는 공산주의 운동이 자리잡았고, 그 사이 여러 단체가 생겨났다 사라지며 충돌하기를 반복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분명 하루아침에 생겨난 사조와 충돌이 아닐텐데도, 그 이름과 단체들은 근현대사 교육에서도 비중있게 다뤄지지 않는다. 마치 지워진 것처럼.

p.39 조선과 일본 또는 다른 곳에서 전간기 급진파들의 한계가 무엇이었든, 그들은 많은 측면에서 농업의 재구조화, 탈식민화, 성평등과 복지국가가 구현될 1945년 이후 세계의 선구자였다.

p.93 근대성은 사회적 이동의 새로운 패턴과 범게급적 사회적 집합체를 형성했을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이동을 가능케 했는데, 공산주의자는 누구보다 여행을 더 많이 했다. 공산주의자들이 지도하는 (...) 많은 노동자는 시골에서 올라온 이주민, 일자리를 찾아 서울이나 다른 고성장 산업도시로 온 농촌 일꾼이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에서 이어진 1922년 소련 건국은 자연히 식민지 조선과 각국의 망명운동가, 때로는 유학파 지식인에게까지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신분제 철페, 노동자의 조직, 노동환경 개선과 부의 재분배 등 국경을 넘어 구질서에 저항하는 움직임은 필연히 민족주의와도 불가분의 관계를 맺었던 것이다. 유학파와 대중, 토착노동자와 이민자 사회까지 '븕은 물결'에 온 성원이 참여한 것에 의심할 바가 없다.

저자는 한반도와 중국, 러시아와 일본 그리고 코민테른의 유산 등 식민지배기의 '조선인'의 발길이 닿은 곳곳에서 수집한 문헌과 증언을 토대로 평등사회와 독립에의 이상과 피가 넘쳐흘렀던 혁명과 투쟁의 시기 조선과 식민지의 마르크스주의 사상가들의 운동과 연구 양면에서의 궤적을 '붉은 시대'의 이름으로 재조명한다. 그렇다면, 현재 한국의 '좌파 운동'은 어디를 떠돌고 있는가.

p.158 공산주의 강령은 사회적 급진주의, 정치적으로 포용적 태도, 경제적 실용주의, 그리고 민주적이고 해방적인 모더니즘의 유기적 결합을 의미했고, 이는 최대한의 대중적 지지를 받아낼 수 있도록 계산된 것이었다. (...) 러시아의 혁명적 볼셰비키 강령과 유사하게, 조선 공산주의 강령은 1945년 전후로 좌파의 대의에 대한 상대적으로 강력한 대중적 지지를 획득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저 입말로나 이용되는 혁명과 붉은 깃발은 과연 무엇을 위해, 어떤 세상을 위해 투쟁하는가. 백 명이 모이면 백 한 개의 노선으로 갈라지는 분열과 대립의 연속은 더이상 낯설지 않은 실망을 안겨주며 고립으로 이어지고 있다. 제국주의와 자본주의에 힘입은 극도의 폭력이 망령처럼 득세하는 요즘에조차 저항과 혁명은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현학적인 밥그릇 투정의 이미지에 잡아먹히고 있다.

시공을 톺아보는 이 여정에서 독자는 무엇을 발견하게 될까. 전쟁과 독재를 거치며 거듭된 이념 탄압에 휩쓸린 지적, 사회적 탐구와 현장의 목소리를 다시 듣기를 기대한다. 그리하여 과거를 실패가 아닌 의도된 망각으로 이해할 때, 끊임없는 다툼과 분열을 단결된 투쟁으로 선회할 때, 우리는 비로소 이 위기에서의 돌파구를, 너무 오래 닫혀있어 벽이라 여겨지는 잊혀진 문을 열어젖힐 수 있을 것이다.

p.308 1930년대 후반까지 풀뿌리 조선의 대부분에 침투했던 좌파 지하활동가들의 네트워크는 대개 한국전쟁 전후로 절멸했다. 그러나 1980년대 노학연대운동은 그 자체로 남한에서 전후 사회주의적 전통의장기적 발전의 결과로, 노동 활동가 한 세대 전체를 사회주의사상으로 교육시켰다.

p.309 남북한의 사회주의는 실패라기보다는 고점과 저점, 강화와 침체, 패배와 승리를 반복하는 투쟁의 연속이다. 사회주의는 20세기 한반도에서 승리하지 못했고, 다른 곳에서도 승리하지 못했다. 그러나 투쟁은 계속되고 있으며, 이런 투쟁은 조선(한국)의 근대사와 현대사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일 것이다.


*도서제공: 한겨레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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