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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일록 작전
필립 로스 지음, 김승욱 옮김 / 비채 / 2025년 2월
평점 :
어느 날, 내가 둘이 되었다. 아니, 여기 있는 동시에 저곳에 있다. 아니, 아니다. 저곳에 내가 있다고 한다. 내 이름으로, 얼굴로, 목소리로 말하며 나를 만나고자 하는 이들을 만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환상인가? 전화를 건다. 여보세요. 누구십니까. 나는 필립 로스입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내 이름은 필립 로스, 내가 '진짜' 필립 로스다. 저 자는 누구인가?
나는 그곳에 가야 한다. 나 아닌 내가 있는 곳, 이스라엘로. 나 아닌 내 이름으로 휘젓고 다니는 그가 있는 곳으로. 왜? 알기 위해서다. 그는 누구인지. 왜 그런 일을 하는지. 마침내 마주한 진실은, 그가 평범한 사칭범이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필립 로스다. 또다른 필립, 모이셰 피픽, 로스. 도둑놈 망토처럼 뒤집어쓴 내 이름으로 그는 무엇을 하려는 걸까? 나는 여기에서 무엇을 마주하는가?
p.30 이미 나는 이 정도로 당황하고 있었다. 놈이 내게 아무렇지도 않게 제 이름을 말했을 때, 내가 내 이름을 밝히고 놈의 반응을 지켜보기만 했으면 됐을 것이다. (...) "이런, 나도 필립 로스입니다만. 뉴어크에서 태어나 다수의 책을 썼지요. 당신은 어떤 필립 로스입니까?" 이런 말로 쉽사리 그를 무너뜨릴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수화기 속에서 내 이름을 말한 것만으로 나를 무너뜨린 건 바로 그놈이었다.
p.92 그는 울고 있었다. 속까지 흠뻑 젖은 나를 품에 안고 울었다. 우리 둘 중의 하나가 한밤중에 센트럴 파크를 가로질러 무사히 돌아오기라도 한 것처럼 극적인 광경이었다. 반가움과 안도의 눈물... 나는 그가 '나'를 실제로 만나면 두려움에 움츠러들어서 항복할 줄 알았다. "필립 로스! 진짜 필립 로스.. 드디어!"
그 시간 이스라엘에서는 세기의 재판이 열리고 있었다. 학살자, 전범, "공포의 이반"을 심판하기 위한 자리다. 그는 자신이 "그 이반"이 아니라 주장한다. 평범하게 살아온 노인일 뿐이며, 선량한 이웃일 뿐이라 말한다. 이웃들은 그의 결백을 주장한다. '생존자'들은 그가 틀림없다고 말한다. 한없이 다정하고 온순한 노인이 "그 도살자"일 수 있을까?
다시 또다른 필립 로스, 편의상 나의 말을 따라 "피픽"이라 부를, 그의 이야기로 돌아와 생각해보자. 그는 왜 이런 일을 벌였는가. 유명 작가인 나의 삶과 이름을 훔쳐 무엇을 하려는가? 그는 "디아스포리즘"을 주장하며, 현대 이스라엘 국가의 정당성을 부정한다. 신화가 아닌, 뿌리내리고 살아온 역사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한다. 그것이 진정한 '유대인 정신'이라 말한다.
p.81 트레블링카에서 최고의 시간을 보낸 네가 미국에서 상냥하고 근면하고 하찮은 사람이 되었다는 건 수수께끼가 아니야. 너의 명령으로 시체를 치웠던 사람들. 여기서 널 고발한 사람들이 너 같은 사람들한테 그런 일을 당한 뒤 평범한 삶과 조금이라도 닮은 생활을 할 수 있었다는 점이 수수께끼지. 그 사람들이 어떻게든 평범하게 살 수 있었다는 사실, 그게 믿기 힘든 일이라고!
p.244 혀가 매끄러워지는 느낌이 들더니 내 언변이 좋아져서 나는 계속, 계속 유대인들의 탈이스라엘을 외쳤다. 그렇게 취한 듯한 충동에 따르고는 있어도, 가엾은 갈의 눈에 보이는 만큼 자신감은 느껴지지 않았고, 아버지를 사랑하는 효자 아들이면서 아버지에게 반항하는 비행을 저지르고 있다는 갈등으로 갈처럼 나도 마음이 둘로 갈라져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에도 혼쭐을 내기는 커녕 홀랑 휘말린 나는 혼란에 휩싸인다. 이스라엘, 땅 없는 민족의 정착지, 유대인들의 영혼의 고향이라 불리는 그곳은 무엇으로 정당화되는가. 생각지도 못한 사건에 휘말리며 과거와 현재를 정신없이 오가는 동시에 마주치는 이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이곳과 저곳, "민족의 기억"과 분열된 자아를 마주한다.
마치 둘이 아닌 하나, 분열된 자아가 주고받는 격렬한 논쟁처럼 보이는 작가 특유의 장광설, 일견 분노처럼 보이는 성토에서 독자는 눈치채게 된다. 아니, 현장에 끌려들어가게 된다. 피해자인가? 가해자인가? 성서의 이름으로 집단은 하나가 될 수 있는가? 과연 '그들'과 "우리"는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현대판 아우슈비츠"는 구태연한 관용구가 되어버렸단 말인가?
p.187 그래, 그들은 앞으로도 계속 희생자를 자처하며 과거와 자신을 동일시할 걸세. 하지만 딱히 과거를 무시하는 행동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 이 나라의 존재 자체가 그 증거야. 그들의 강박적인 이야기가 이제는 그들의 현실감각을 해치는 수준에 이르렀을 거야. 우리의 현실 감각은 확실히 해치고 있지. 그들이 희생되었던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지 마! 우리는 이 세상에서 그것을 가장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야!
p.361 내 이목구비를 모델로 만든 가면을 쓰고 전체적으로 나와 같은 분위기를 풍기며 습관적으로 나를 사칭하던 자. 다른 사람 행세를 하면서 의기양양 기뻐하는 그를 다시 접할 수 있다. 그 입안에 혀가 몇 개나 있을까? 놈 안에 사람이 몇 명이나 있을까? 상처는 몇 개일까? 참을 수 없는 상처가 몇 개일까!
작가는 이스라엘의 현재 지위와 유대인에 대한 통렬한 지적과 자기인식이 반영된 길고 긴 환상에서 반복해 묻는다. 이때 그의 글은 결백을 주장하는 낯선 이처럼, 심문당하는 자처럼 형식에서 시작해 마지막의 짧은 '글'까지, 허구를 주장하는 형식은 이 모든 것이 진실임을, 생생하고 사실적인 묘사는 그것들이 꾸며낸 이야기일 뿐임을 역설한다. 모든 일은 일어났으나 사실이 아니며, 진실과 폭로인 동시에 은유이다.
그는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무의미하게 만든다. 그 앞에서 현실과 비현실을 구분하려는 노력 따위는 헛된 발버둥이 된다. 그런 이유로, 이 긴 이야기는 하나의 사건이나 그 끝은 디아스포라와 자아정체성에 대한 물음으로 향한다. 남겨진 독자는 묻는다. 산산이 부서지는 세계에서 죽음은 어디로 향하는가. '그곳'을 보라. 약속의 땅, 신의 은총이 내리는 곳을.
p.551 "누가 피픽을 고용했냐고? 인생이 피픽을 고용했소. 만약 전세계 정보기관들이 하룻밤 새에 모두 폐지되더라도 사람들의 정돈된 삶을 복잡하게 만들고 파괴할 피픽 같은 인물은 아주 많을 거요. 오로지 구경거리, 무의미한 폭력, 혼란을 원하는 얼간이들이 스스로 나설 테지."
p.571 이 책은 허구다. 3과 4장에 인용된 아하론 아펠펠드와의 격식 있는 대화는 1988년 3월 11일자 〈뉴욕타임스〉에 처음 실렸다. 9장에 인용된 법정 대화는 1988년 1월 27일 예루살렘 지방법원에서 열린 존 데미야뉴크의 재판중 오전에 진행된 내용을 그대로 적은 기록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 외에는 모든 이름, 인물, 장소, 사건이 저자의 상상력의 산물이거나 가상의 것이다. 실제 사건, 장소, 인물과 혹시 비슷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우연이다. 이 고백록은 가짜다.
*도서제공: 비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