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구석 미술관 3 - 가볍게 친해지는 서양 현대미술 방구석 미술관 3
조원재 지음 / 블랙피쉬 / 202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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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에 별달리 관심을 두지 않는 이들에게 예술은 어렵다. 정론이다. 현대예술은 더 어렵다. 이 또한 정론이다. 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지도 모르겠고, 그래서 뭘 어쩌라는 건지도 모르겠는데 이해 못 하겠다고 하면 순식간에 무식쟁이가 된다. 그뿐인가? 간신히 마음에 든 작품 하나 찾으면 사방에서 야! 그건 다섯살짜리도 하겠다! 는 시비가 쏟아진다. 이 또한 눈물의 경험적 정론이다.

이 피눈물 반 물음표 반의 진입장벽은 미술이라고 다르지 않다. 나는 굳이 따지자면 미술관을 좋아하는 편인데도. 한가한 날 홀로 찾은 전시관을 거닐고 있노라면 저 멀리서 '그래서 이게 뭔데...' 라든지, '뭔 말이야...' 하며 속삭이는 소리가 들리기가 부지기수다. 나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전시 설명을 봐도 '그러니까 뭘 어쨌다고?' 싶은 마음일 때가 많으니.

p.176 자코메티는 자신이 '실제' 두 눈으로 볼 수 있는 인물의 전신을 고스란히 조각에 복제한 것입니다. (...) 당시 그 누구도 자코메티의 이런 작업을 이해하거나 알아주지 못했습니다. 이쑤시개로 쓸 법한 크기의 볼품없는 석고 덩어리를 의미 있는 작품으로 볼 사람은 없었던 것이죠.

p.300 로스코는 자기 작품에 대한 사람들의 몰이해에 매우 예민하게 반응했습니다. 심지어 자기 작품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평론가, 미술사가 등 소위 전문가라 불리는 이들로 인해 작품의 생명이 위협받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화가는 회화를 통해 비극을 이야기하고 있는데, 다채로운 색면의 색채 관계를 보며 "아름답다"고 말하는 평론가들을 보며 "천박한 식견과 무능한 자들의 잔혹성"이라며 일갈합니다.


어떻게 하면 미술이 재밌어질까? 그린 사람이든 만든 사람이든 다 똑같은 사람인데, 수단이 작품일 뿐 세상에 뭔가 말을 던지고 있다는 점은 다 같은데, 어떻게 하면 이 외계어에 가까운 메세지를 이해하고 심장이 쿵 쿵 뛰는 감동을 놓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런 마음을 이해하기 위해 방구석 미술관을 써낸 게 아닐까. 싶다. 알고 갑시다. 무슨 말을 하는지 일단 들어봅시다. 왜 그걸 만들고 그리고 내보일 수밖에 없었냐면요... 이렇게 말하기 위해. 난해하고 황당한 데서 그치는 게 아니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 이렇게나 아름답고 충격적이라고, 치열한 고민과 작업 끝에 나온 작품이라는 걸 알리고 싶어서.

p.183 매일 작업을 마치며 "내일은 더 좋아질 거다. 진짜 시작은 내일부터다"라고 말하던 그는 매일매일 티끌만큼 조금씩 성취하며 작업을 진전시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기대했고, 그렇게 희망을 품고 있던 낙관주의자였죠. 내가 완벽하게 이해한 사물의 실체를 조각과 회화 형태로 완벽하게 복제하겠다는 목표가 실현하기 불가능한 꿈임을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언젠가는 그 꿈을 이룰 것이라는 희망을 품은 채 작고 허름한 작업실에서 자신과의 씨름을 벌인 자코메티.

p.300 "그림은 예민한 감상자의 눈에서 점점 확대되고 보조가 빨라지는 동반자 관계를 식량으로 삼아 살아간다. 또 마찬가지 이유로 죽는다. 따라서 그림을 세상 속에 내보내는 일은 위험하고 무정한 행위다. 천박한 식견과 무능한 자들의 잔혹성으로 인해 그림이 영원히 손상되는 일이 얼마나 잦은지. 그런 자들은 고통을 전세계로 퍼뜨릴 것이다!"


잠시, "미술"을 '예술'로 확대해 생각해보자. 모든 예술이 사회참여적인 것은 아니다. 나는 이런 사람입니다. 이것에 내 마음이 이렇습니다. 하고 말하는 예술도 있는 법이다. 그러나 전시관 어딘가에 말 없이 존재하는 작품 하나만으로 그 뜻을 짐작하기란 쉽지 않다. 그렇기에 해설이 필요하다. 작품 그 자체뿐만이 아니라 탄생하기까지와 그 이후의 말이라는 우회로를 따라 창작자의 내면에 가닿는 길도 있다는 뜻이다.

일례로, 자코메티의 예술관과 그 형성 과정을 알고 그가 나면 두려워하고 연약하면서도 굳센 인간이었다는 것을, 무대에 올린 나무 한 그루는 그저 소품이 아닌 부서질 것 같이 가녀린 믿음이었고, 절망이나 권태가 아닌 용기였다는 걸 알 수 있다. 다른 예로, 작가의 행적은 작품을 이해하는 실마리가 되기도 한다. 왜 이렇게 무겁고, 고요하고, 깊어진 걸까. 이래서구나. 마음이 가로막히고 끊겼구나, 그 자신에게조차, 라고.

p.190 매일 작업을 마치며 "내일은 더 좋아질 거다. 진짜 시작은 내일부터다"라고 말하던 그는 매일매일 티끌만큼 조금씩 성취하며 작업을 진전시키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렇게 기대했고, 그렇게 희망을 품고 있던 낙관주의자였죠.

p.310 66세의 로스코는 잃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기에 비전만이 찬란히 넘쳐흐르던 젊은 날을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극적인 심리 속 로스코의 내면에 남겨진 색채는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오직 검정과 회색뿐이었습니다.


그런가하면 전례없이 도발적인 방식으로 세상을 놀라게 하는 자도 있다. 소비중심사회에도 고고하게 턱을 치켜들던 고급 문화로서의 예술을 정면으로 걷어차는 동시에 그 자신을 스펙타클, 뉴 룰, 아이콘으로 "팔아먹은" 앤디 워홀처럼. 세간의 인식에 반기도 모자라 불도저를 밀고 들어가 신성이란 이런 것이라고, 세계를 뒤엎은 그처럼.

각 장을 따라 작가와 그 작품의 맥락과 배경을 톺아보노라면 결국 예술을 이해하는 길은 사람을 이해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니 현대미술은 곧 현대인의 미술, 동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고 작품의 면면을 살피다보면 어느샌가 미술관은 더이상 어렵고 지루한 곳이 아니게 될 것이다. 다음엔 어떤 작품으로 만나게 될까?

p.364 "돈은 더러운 것이다" 또는 "일하는 것은 추하다"라고 말하며 사업하는 것을 비하하는 사람들에게 워홀은 이렇게 말합니다. "돈 버는 일은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잘되는 비즈니스는 최고의 예술이다"라고. 그는 '앤디 워홀 엔터프라이즈'를 세웁니다. 그리고 '예술하는 사업가'이자 '사업하는 예술가'로 성공하는 가장 환상적인 예술을 향한 도전을 시작합니다.

p.372 끝없이 자신을, 세상을, 시대를 복제했던 '20세기 가장 문제적 예술가'는 안녕을 고하며 살아 있는 우리에게 '예술'을 남기며 묻습니다. '예술로서의 삶'이란 무엇인가?



*도서제공: 블랙피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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