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해질 용기 - 이젠 인생이 무섭지 않다 / 지금 시작하는 아들러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용택 옮김 / 북스토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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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기를 내서 온몸으로 행복을 쟁취해보라고 응원해주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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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질 용기 - 이젠 인생이 무섭지 않다 / 지금 시작하는 아들러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용택 옮김 / 북스토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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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러는 모든 고통은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회화 동물이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도 고통도 기쁨도 행복도 모두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본 것이다.

정말 그럴까?

가끔 유튜브를 보다 보면 동물의 세계에서 어미가 자식을 버리거나 심지어 물어 죽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자식이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너무 약하게 태어났을 때는 자신과 다른 새끼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죽여버리는 것이다. 슬프지만 동물들은 강한 육체와 개인화를 택했으니 자신의 안전을 선택하는 장면은 어쩔 수가 없다. 육체의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의 강함을 포기하고 도구를 선택하면서 사회화를 택했다. 포식자를 만났을 때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여있어야 함을 의미하고 무리에서 버림받는다는 것은 위험에 처했을 때 살아남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인간이 무리 속에 속해있고 싶어 하는 것은 생존본능과 같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무리에서 버림받지 않도록 무리에게 잘 보여야 하고 도움을 주면서 내가 이곳에서 필요한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어야 하며, 무리에게 기대와 인정을 받고 함께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이 들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되며 열등감을 느끼고 인정욕구로 인한 고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우리가 사회화라는 무리를 택한 것이니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엔젤비트'라는 애니메이션이 생각이 났다.

어린 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배경은 학교인데 안타까운 건 이들은 이미 죽은 영혼이라는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못다 핀 꿈을 펼쳐보라며 신이 만들어준 사후세계. 그곳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성불한다는 스토리이다.

행복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신은 아이들을 학교의 학생으로 만들었다. 놀이공원이라던가 좀 더 쾌락을 즐길 수 있는 판타지스러운 장소가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장소인 학교라는 점이다. 학생이 되어야 할 나이에 당연하게 학생의 신분으로 있고, 당연하게 학교 안에서 일상을 보내게 하는 것. 그것이 신이 선택한 아이들이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 속에서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룰 때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인데, 그 안에 아이들의 꿈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혼자라면 만족하지 못할 인간관계 속의 꿈 들이다.

"온몸으로 용기를 내라"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의 책을 살펴보면 전부 용기이다. '상처받을 용기', '버텨내는 용기' 그리고 이번 책 '행복해질 용기'까지.

제목에 용기가 굳이 들어가 있지 않더라도 그의 책을 읽어보면 책 내용 자체가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를 처음 접했던 건 그의 책 '미움받을 용기'가 국내에서 크게 히트를 쳤을 때였다. 당시에도 독서모임을 하고 있었기에 그 책을 선정해서 읽고 토론했고 최근의 '마흔에게'까지 그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다 같이 읽고 토론해왔다.

기시미 이치로의 책을 독서모임에서 토론하면 상당히 즐겁다. 초반에는 책의 긍정적인 부분을 끌어내기 위해서 책을 통해 새롭게 배운 점과 본받을 점과 장점들을 이야기해본다. 그런 다음 부정적인 이야기를 살짝 꺼내기 시작하면 차분했던 토론 분위기에 엄청난 활기를 띤다.

그러니깐 이런 식이다.

"밥아저씨가 참 쉽죠? 하는 느낌이에요" . "수능 만점 받은 학생이 교과서만 봤어요. 하는 느낌" , "식이요법과 운동만 하면 다이어트 성공할 수 있어요. 운동을 하세요. 용기를 내요. 용기 내서 운동하면 다이어트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느낌이다.

그의 책은 틀린 말 하나 없이 모두 맞는 말인데 그 말을 너무 담백하고 간단하게 말해버리니 거부반응이 오는 것이다.

'남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눈치 보고 그러니 인간관계가 고통인 것이지.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미움받아라. 그럼 행복해질 수 있어. 용기를 내' 이런 식이다.

좀 더 이어가고 싶지만 이번에 이 책은 서평 이벤트로 받은 책이니 긍정적인 부분만 적도록 해야겠다.

무언가를 받았다는 것은 은혜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도 같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고통은 인간관계에서 온다. 타인에게 미움과 상처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단점을 곱씹고 인간관계를 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온다. 즉, 인간관계를 피하는 것은 내 행복을 직접적으로 막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내 스스로 나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고 맞서야 한다.

그러기에는 내 단점을 보는 것부터 멈춰야 하는데, 내 단점을 보는 시각을 바꿔서 장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를 장점으로 바라보려면 '나를 사랑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시미 이치로는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보라고 말했다. 마침 남편과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남편이 올여름에 여행 가기 전에 살 좀 빼놔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난 바로 실전 적용을 했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말이야.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봐야 한대. 그러니깐 난 살찐 게 아니고 귀여운 거야"라고 말해보았다.

남편은 대단하다면서 한번 비웃어주고는 내 뱃살을 퉁치더니 다시 장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무거워진 게 아니고 요 근래 중력이 좀 세졌다고 생각하자!!!

나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걸까?

거의 모든 심리학에서 나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외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며 존재 자체로 빛이 난다고 외친다. 뭘 어떻게 해야 날 사랑할 수 있게 될까?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것?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는 것?

주변에 공헌해서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것?

유대관계를 만들어서 존재 자체로 타인에게 위안을 주는 것?

난 이것만큼은 열심히 고민하고 연구해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가장 좋았던 건 '단점을 장점이라고 시각을 달리해보세요' 이런 거 말고 '난 단점이 있어. 근데 왜? 단점이 있는데 어쩌라고? 단점이 있지만 날 사랑해 줘' 이런 식으로 해보는 것이다.

나는 신의 정체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할 줄 안다는 건 신을 불러들이는 것이며 지금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성격책에는 '너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다면 네가 바리새인과 무엇이 다르느냐'라며 말한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능력이며 용기이다. 나는 사랑할 용기가 있었던가. 그리고 만일 내가 미워하는 이들도 이 능력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면? 사실은 그들은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미워하는 자도 사랑할 줄 아는데 내 안에 미운 부분은 쉽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 자체를 그냥 사랑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 안에 있는 한 명의 인간이 마주 보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타인 안에 있는 인간도 마주 보이며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인류애가 된다.

이번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는데 어쩐지 예전에 이런글을 한번 썼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서 '사랑'으로 검색해보니 에리히 프롬의 '자기를 위한 인간' 책을 쓰고 서평을 썼던 내용이 나왔는데, 이번 감상이랑 거의 똑같지 않은가? 결국 모든 심리치료의 시작은 자기자신을 사랑하면서 부터 인가보다.

-예전 에리히 프롬의 '자기를 위한 인간' 읽었을 때 썼던 글-

한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며, 배려를 해야 하며, 그 사람이 생산적이 삶을 살수 있도록 노력하는 생산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사랑이 아니다. 그 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한 인간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므로, 그 사람 외에 다른 누구라도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인간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며, 또한 인간인 나를 사랑할 줄도 안다는 것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사랑할 줄 알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류를 사랑한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랑에는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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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그리스어 원전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지음, 박문재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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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 출판사에서 나오는 '현대지성 클래식'시리즈를 만나고 고전을 쉽게 접하고 있다. 이 클래식 시리즈 책들은 원문을 완역해 출판하므로 전부 '원전 완역본'이라는 표식이 붙어 있다. 유명한 고전을 완역을 했다는 문구에서 어려워서 읽을 수나 있을까라는 걱정과 긴장감이 우선적으로 먼저 드는데, 직접 읽어보면 번역이 현대어로 굉장히 매끄럽게 잘 되어 있기에 어려움 없이 잘 읽을 수가 있다.

그래서 지금까지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가 출판된다는 소식을 들으면 이 초록색 표지의 시리즈들을 꼬박꼬박 보았으며, '현대지성 클래식 30.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책이 출판되자마자 반가운 마음으로 신청해서 받아본 것이었다.

이번 아리스토텔레스 책의 번역가는 박문재 선생님으로 28번인 소크라테스의 변명 편을 번역해 주신 분이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책이야말로 초월 번역이 되었다고 할 정도로 읽는데 아무 걸림돌 없이 쉽게 읽을 수가 있다. 그렇게 매끄러운 번역으로 소크라테스를 만나니 마치 소크라테스가 옆집 아저씨처럼 푸근한 아저씨처럼 느껴졌는데, 느껴지는 이미지에서와는 달리 글 속에 그의 말은 너무나도 날카롭고 논리정연하며 감동을 주기에 책 자체에 푹 빠졌었던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읽는 것만으로 앎이라는 것과 모른다는 것에 대한 소크라테스의 진정성과 지혜가 느껴져서 감동으로 읽었던 책이었다. 그러니 이번 아리스토텔레스 책도 비슷한 기대와 같은 감동을 느낄 것으로 예상하고 표지만 빠르게 훑고, 쉽게 책 속으로 들어가고자 얼른 책을 펴보았는데, 어쩐지 글이 쉽게 안 읽히기에 낯선 어려움과 당황스러움이 느껴졌다.

다시 표지로 돌아와서 번역가 선생님이 같은 분 맞는지 살펴보고 번역가 선생님의 이력 부분으로 넘어가서 읽어보고 살펴보게 되었다.

이번 아리스토텔레스 책은 쉽게 술술 읽히는 책은 분명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애초에 책을 쉽게 읽어 보려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의 천재적인 두뇌를 쉽게 접해보려 했다니 어찌 가당찮은 생각이었던가. 마음을 진정시키고 책을 차근차근 살펴보니 이번 책은 연설할 때 설득의 기술에 관해 논하고 있는 수사학 책이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플라톤의 가르침을 받는 제자였으니 스승들의 현자와 같은 철학들을 배우고 얼마나 물려받았을까. 또한 그는 본인 자체의 철학의 세계를 위대하게 키운 또 한 명의 현자였다. 그래서 서양철학사의 위대한 철학자를 뽑으라고 하면 빠질 수 없는 인물이 아리스토텔레스이고 그의 글들이다.

"1998년 서양철학사에서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철학사를 뽑는 설문 조사에서 현대 철학자들에게 1위를 받은 아리스토텔레스"

기원전 384년에 그리스 마케도니아 지방의 스타게이로스에서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생전에 다뤘다고 하는 분야들이 논리학, 형이상학, 인식론, 심리학, 윤리학, 정치학, 수사학, 미학, 동물학, 식물학, 자연학, 철학사, 정치사 등으로 굉장히 폭넓었다. 생애 후반에는 불경죄로 고발된다고 나오지만 재판받았다는 내용은 없고, 그저 타 지역으로 떠난 후에 62세의 나이로 별세했다고 한다.

이번 책에서는 그의 수사학에 대한 철학을 들을 수 있는 기회로 생각하고, 그의 말과 생각을 들으면서 그의 논리에 대해 우선 감동할 준비를 하고 책 속으로 들어가 보았다.

수사학의 정의가 설명되어 있는 부분에 '설득력 있는 요소들'이라 쓰여있는 부분에 주석이 달려있어서 주석 부분을 읽어보았다. '설득력 있는 요소'를 한 단어로 표현하면 '피스티스'라고 한다고 한다. 그리스어로 된 원전에는 이 부분이 '피스티스'라고 써진 건지 아니면 그리스어로도 '설득력 있는 요소'라고 쓰여있는데, 이를 번역가분이 이에 맞는 그리스어는 '피스티스'라고 표현해놓은 건지 책만을 가지고는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만일 그리스어 원전에 이 부분이 '피스티스'라는 단어로 쓰여있었다면 이 부분은 번역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 그대로 '피스티스'라고 써두어도 좋을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피스티스'는 변증학에서 '증거'라고 말한다고 한다.

수사학은 각각의 사안과 관련해 거기 내재된 피스티스를 찾아내는 능력이다. 조언을 위한 연설, 법정에서의 변론, 선전을 위한 연설을 잘하기 위해서 어떤 피스티스를 써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배우는 책이 이 아리스토텔레스 수사학 책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의 다른 이름은 '피스티스'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말로 신뢰를 주는 방법에는 세 가지가 있다고 한다.

어떤 것은 화자의 성품과 관련되어 있어서 성품과 미덕에 대해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설득하려면 본인의 성품이 어떻게 보여야 하는지도 신경 써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고 보니 청중이었을 때 연설가를 바라보는 시선에 성품이 들어가 있었던 거 같다. 내 말이 설득력을 얻기 위해서는 내 성품이 어떻게 보이고 있는지도 신경 써야 하는ㅈ것이다.

어떤 것은 청중의 심리상태와 관련이 있어서 각각의 감정이 어떤 것이고 감정의 특징은 무엇이고 감정이 어떻게 생기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한다. 설득을 하는 이유는 듣는 이가 판단하도록 하기 위함인데, 감정적으로 결정해버리는 인간이기에 설득할 때도 감정의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떤 것은 뭔가를 증명하거나 증명하는 것처럼 보이는 말 자체에 관한 것이어서 삼단논법을 통한 추론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점은 말하는 자들이 신뢰를 얻기 위한 방법으로 말 자체를 선택하기 보다 청중의 심리상태를 선택했다는 점이다.

수사학의 고유한 방법론은 설득이고, 설득은 일종의 증명 작업이라고 한다. 설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삼단논법이라고 하는데, 책의 초반 부분에 사람들이 삼단논법을 사용하지 않는 이유가 재미있다.

누군가를 설득하기 위해 말하는 자들은 삼단논법을 생략하고 그 외에 다른 보조적인 방법인 감정에 호소하는 방법을 사용한다고 하는데, 이들이 감정적으로 나아가는 이유는 결정하는 사람이 감정을 가진 인간이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재판 시에 재판관이나 배심원들을 향해서만 사용한다고 하는데, 대중을 상대로 연설할 때에는 감정적인 연설이 아니고 자신의 연설이 사실인지만 보여주면 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러니깐 말하는 자들이 삼단논법을 사용하면 듣는 이가 삼단논법을 알아들어야 하는데 듣는 이들이 그만큼 지혜롭지가 못하니 감정적인 부분을 설명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까지 수사학에 관해 글을 쓴 사람들이 실제로는 수사학과는 아무 상관 없는 전문 기술을 설명하는 데 몰두해왔고, 그 때문에 법정 변론을 선호해왔음을 밝혔다.

진리와 정의는 그 반대되는 것보다 본성적으로 더 힘이 있기 때문에 수사학이 유용한 것이다. 따라서 판단이나 판결이 적절하게 내려지지 않아 진리와 정의가 패배했다면, 그것은 변론한 사람의 잘못이기 때문에 그들이 비난을 받아야 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하는 '정의의 본성적인 힘' 부분을 읽고 더 이상 진도를 나가지 못하고 한참이나 생각에 빠졌었다.

판단하는 자는 무엇을 판단하는 것일까? 옳고 그름. 옳다는 것은 정의일 것이다. 그러니 판단하는 자는 무엇이 정의이고, 누가 정의로운 자인지 손을 들어주는 자일 것이다. 여기서 정의가 졌다는 말은 무엇일까? 둘 중에 누가 정의인지 판단하지 못할 정도로 사안이 난해하고 복잡하다는 것일까? 아님 정의의 반대세력의 힘이 판단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정도로 권력적인 파워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일까?

진리와 정의는 본성적으로 힘이 있는 게 맞을까? 진실로 그렇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니면 그렇다고 믿고 싶은 것일까? 그것이 믿고 싶다고 여기는 것일지라도 판단에서 정의가 이기지 못했다면 그것은 변론가의 패배로 변론가의 잘못이기에 비난받아야 한다는 말이 의미심장하며 꽤나 감동스럽고 멋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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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 - 동굴벽화에서 고대종교까지
전호태 지음 / 창비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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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에서 도착한 생각들' 표지를 보니 울산의 반구대 암각화를 무척이나 닮았다는 생각을 했다. 울산에 살고 있으면서 반구대암각화 견학을 하면서 전문가의 해설을 듣기도 하고 실제 암각화를 멀리서 바라보기도 했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기 때문이다.
책 날개를 보니 신기하게도 이번 작가인 천호태교수님은 울산대 역사문화학과 교수와 반구대암각화 유적보전 연구소장으로 재직하고 계신다고 한다. 표지가 암각화로 보인게 우연이 아니였나보다.
내가 울산 사람이다보니 책날개에 울산에서 활동하시는 이력들만 눈에 띄게 보였다. 울산광역시에서 문화재위원으로 계시고 울산대 박물관장등을 역임하셨다니 어쩐지 반가운 마음이 들고, 지금까지 출판해내신 책들이 책날개에만 8권으로 많으니 문화재쪽으로 많은 학식을 가지신 대단하신 분이라는걸 알수가 있었다.

이번 책은 빨리 부지런히 읽어야 겠다는 부담감이 컸다. 일단 책 제목과 설명에서 이 책이 고대사상을 이야기할 것이라는 짐작을 했는데, 책을 받아보니 굉장히 두껍다. 508페이지의 장서이다.
고대사상을 담은 장서이니 어려울터인데 내용이 많으니 부지런히 읽어야 서평기일에 간신히 맞출수 있겠다는 부담감이 확 밀려왔다.
그런 생각으로 책을 펼쳤고 우선 '책머리에'부터 읽었다.

" 모교의 후배 교수가 갑자기 강의 하나를 부탁해왔다. 꼭 좀 해달라며 내밀었던 제목이 '한국의 고대 사상'이다. 아니 웬 고대 사상이냐고 물으니 새로 개설했는데 강의할 사람이 마땅치 않다는 것이다."

새 강의의 개설을 이런식으로 하는구나 싶어서 작가님의 모교가 대체 어디인지 책 날개로 돌아가보았다.
"서울대 국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하고....."
그렇구나.
교수님은 이 때 제안받았던 '고대인의 사고'라는 주제로 16개의 강의안을 만드셨다고 하시는데, 그때 16개의 강의안 쓰셨던 것을 다듬어서 이번 책의 16개의 목차로 만드셨다고 한다. 그 당시의 글을 잘 다듬는 과정에서 대화형식이라는 새로운 형식으로 만들어서 이번책의 책 출판까지 이르렀다고 하신다. 제목과 표지에서 보였던 호기심은 목차를 살펴보면서 더욱 커지게 되었는데, 목차구성이 '생각의탄생'이라던지, '인간과 신', '신앙' 같은 그 당시에 살았던 사람들의 신앙과 사상을 담고있는 제목들이라 내용이 더욱 궁금해지고 기대가 되었다. 처음에는 아들과의 대화형식의 책이라 낯설다는 느낌이 크고 마치 아동용 역사동화를 읽고있다는 느낌에 살짝 거부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지만 첫 부분 낯섦을 잘 버티면 새로운 지식이 밀려온다.



어릴때에 접하는 단군신화는 순전히 동화책이였다. 아이들에게 들려주기 위한 이야기구성으로 인간을 사랑하여 홍익인간을 펼치기 위해 지상으로 내려온 환웅과 곰과 사자가 동물의 모습으로 등장하는 어린이용 신화였다.
동화처럼 알고 있었던 단군신화를 국어선생님께서 역사적으로 들려주셨을때가 생각난다. 환웅은 북쪽에서 내려온 군사집단이였을거고 곰과 호랑이는 그 집단에게 속해지기 위해 머리를 숙이며 다가온 주변 부족이였을 거라고 했다. 각각 곰과 호람이를 신으로 섬기던 곰부족과 호랑이 부족중 환웅의 선택을 받은 것은 곰부족이였고, 곰부족은 부족장의 딸을 환웅의 처로 받쳤을거라는 설이였다.
그렇게 알고 있었던 단군신화를 이번 책에서 순전히 신화적인 해석으로 풀고 있었다. 환웅을 있는 그대로의 신 으로 보는 것이다. 환웅은 땅의 신이고, 땅의 신이 보기에 곰이 가장 멋지니 곰의 모습으로 하늘의 여신인 웅녀와 인연을 맺어 단군이 탄생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었다. 신화라는 것은 그 당시 사람들이 원하고 바라는 신의 모습을 담고있는데,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동화형태의 단군신화만 접해봤지 원문형태의 단군신화는 접해볼 생각도 안했다는 생각을 했다.
책을 통해 처음듣는 단군신화의 신화적인 이야기가 낯설기도 하고 재밌기도 했다.

인간의 사상에는 지역적인 부분과 문화적인 부분도 있지만 시대적인 부분도 있다. 여기에서는 고대의 사상부터 다루고 있으므로 구석기시대의 사상부터 등장하는데, 내 관심을 크게 끌었던 것은 교수님이 시대별로 달라지는 신의 모습을 비교분석해 주시면서 부터이다.
칼융이 인간에게는 원형이 있다고 말하는 것처럼 신화에도 공통적인 원형이 존재하는데, 태초에 등장하는 신들은 전부 거대 거인화였고 여신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선사시대에 등장하는 신들의 모습이다. 신석기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사람들의 사상속 신들은 태초의 신들의 모습과 비슷하여 거대했으며 어머니신이였다. 우리나라는 신석기시대에는 큰여신님 혼자 하늘을 다스리거나, 하늘이 큰여신님이라고 생각했던거 같다. 그런 태초의 신들은 청동기 시대에 와서 자식같은 신들에 의해 쫒겨나거나 갇히거나 죽임을 당한다. 그리고 사람들이 믿는 주신은 어머니신에서 남신으로 바뀌게 된다.
신이라는 것은 결국 사람들의 사상과 소망이 인격화하는 것인데, 사람들의 사상이 바뀌었으니 신도 바뀌는 것이다. 구석기 시대의 사람들의 소망은 생명과 먹이였으니 생명을 주관하는 여신의 모습과 사냥에 먹이가 스스로 오게 만드는 곰뼈같은걸 신으로 모셨을 거다. 신석기시대의 사람들의 소망은 농사지을때 적절한 날씨이니 하늘에 큰여신의 모습의 신을 만들고 섬겼을 것이다. 청동기시대의 소망은 국가의 체계와 권력이니 청동과 검에 신이 내리고 승리로 이끈다고 믿었을 것이다. 바뀐 신들과 함께 바뀐 신들을 섬기는 방법과 바뀌게 된 사상부분을 읽는것이 상당히 재밌고 신비로웠다.

이 책은 사상과 관념, 신앙과 종교처럼 보이지 않아서 존재할 수도 있지만 존재하지 않는다고 이야기 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있다. 무엇이 실제이고 무엇이 허상인가? 영혼은 실제인가? 영혼이 실제가 아니라면 조상신은 어떤 형태로 존재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 제사지내는 대상은 과연 누구이고 무엇을 바라며 행하고 있는 일일까?
정말이지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 어디까지 말할 수 있을지 궁금해진다. 인간의 마음이 허구를 상상할 수 있고, 그 허구를 믿는 능력이 설계되어진 건 어떤 이유가 있어서 일 것이다. 인간은 보는 존재가 아니다. 다만 믿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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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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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지성 출판사에서 출판되고 있는 '현대지성 클래식'시리즈 책들은 전부 [완역본]이라는 문구가 달려있다. 세계문학을 완역으로 번역해서 출판을 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에서 완역이란 '원문을 편집하지 않고 원작가가 쓴 원본을 있는 그대로 번역함'을 의미한다.

조사해보니 예전에는 번역하는 과정에서 편집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중역이나 편역본이 많았다고 한다. 논문의 형식을 띄는 설명하는 글들은 편역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거라 생각된다. 다양한 형식으로 출판함으로써 독자들의 기호를 맞춰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학장르는 이야기의 형식을 띄고 있고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성이 있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담긴 완역본이 좋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외국어를 익혀서 원문을 읽는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상 힘들기에 원문과 가까울수록 좋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다.

세계문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올때에는 외국어에서 한국어로 언어가 바뀌어서 들어오기 때문에 번역가가 누구인지, 어떤 스타일로 번역을 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번역된 스타일에 따라서 글을 읽을때에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데미안 책을 읽을 일이 있어서 책을 찾아 읽었는데, 평소 읽어오던 출판사책이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데미안책을 한번 읽어보았다. 다른 책은 초반에 읽다가 이전의 책에 익숙해져버린 탓인지 어쩐지 거부감이 들어서 책을 덮어버리고 기존의 책을 다시 찾아 읽었다. 분명 글의 기본 스토리라고 하는 뼈대는 같을텐데 문체가 달라지니 읽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졌던 것이다.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독서를 하다보면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게 되고 선호하는 출판사도 생기게 된다. 분명 다양한 작가의 책을 출판해내는 출판사들인데 신뢰하게 되는 출판사가 생겨버리는 것이다. 신뢰하는 출판사들 중에 한곳이 바로 이 책의 출판사인 현대지성 출판사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좋아하게 되었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처음 만난것은 도덕경이였는데, 도덕경 내용자체가 뛰어나서 내용에 빠져들고 책에 빠져들고 표지에 빠져들게 되었다. 첫 책에 대한 호감은 전염되는것 처럼 같은 표지를 가지고 있는 다른 책도 덩달아서 좋아하게 되는 효과를 낳았다.

초록색의 단정한 고전의 느낌을 가지는 표지에 호감을 느낀상태로 두번째 책인 '걸리버 여행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생각외로 책 내용이 굉장히 재밌고 가독성있게 잘 읽혀서 이후에도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책이 눈에 보이면 일단 신청하고 받아서 읽어보리라는 욕심이 생겼다.

현대지성 클래식으로 나오는 책들은 최근에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는 책들이기에 현대우리말에 맞게 번역이 된듯하다. 원본책 자체는 19세기 고전이지만 옛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안들고 현대동화를 읽는듯 문체가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점이 좋다. 그래서 고전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쉽게' 접해보고 싶으면 현대지성 클래식으로 접해보라고 추천을 해주곤 하는데, 추천 해줄때 번역이 의역을 넘어선 초월번역이라는 말을 꼭 해준다. 엄청나게 쉽게 읽히니 말이다.

이번에는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중에 29번인 '올리버 트위스트'가 도착을 했다. 책을 받았을때 제일 처음 보게 되는 표지디자인에서 익숙한 친구를 만나듯 반가운 마음이 흘러나왔지만, 책을 손에 잡고 무게를 느낀순간 긴장감도 같이 느끼게 되었다. 책이 엄청나게 두꺼웠던 것이다. 이번 올리버 트위스트 책은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엄청난 장편인 벽돌책이었다. 다른책이 이런 페이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은 책에 대한 거부감이 밀려왔을지도 모를 일인데, 어쩐지 이번 책에는 거부감이 들기는 커녕 기대감이 들었다.

출판사가 현대지성 클래식이니깐 지금까지 처럼 쉽게 번역되었을거라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무엇보다 강한 호기심이 들었던 것은 책의 작가가 영국의 대문호인 '찰스 디킨스'였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세익스피어를 가져서 행운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찰스 디킨스를 가져서 더 행복하다"라고 영국인들은 말한다고 한다. 그만큼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이자 영국인들과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았고, 또 지금도 사랑이 이어지는 작가가 바로 찰스 디킨스이다.

이번 '올리버 트위스트' 책은 19세기의 산업혁명 시대를 비판하는 사회 풍자소설이다.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인물의 출생부터 일대기를 그린 서사소설인데 작중 올리버의 엄마가 홀로 떠돌다가 아이를 구빈원에서 낳았기에 올리버는 구빈원 출신이 되고야 만다.

처음 구빈원이라는 단어에 낯섬을 느꼈는데 구빈원은 빈민을 구제하는 곳으로 이 당시 사회가 빈민 구제법이 시행되고 있음을 알수있다. 나라에서 빈민을 구제해주기 위해 법도 정하고 구빈원도 만든다고 하면 언뜻 잘되어있는 사회라고 볼수있는데, 찰스 디킨스는 이 구제법과 구빈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면서 그만의 해학을 보여준다.

소설은 처음부터 제도가 가지고 있는 왜곡과 인간 내면의 악을 끄집어 내면서 비판과 풍자가 시작되는데 그의 날카로운 시선과 우리가 진정 깨우쳐야 될 점이 무엇인지 시사해준다.

누군가는 찰스 디킨스에게 왜 구제법을 풍자했냐고 물을 수도 있겠는데, 이는 찰스 디킨스 본인이 빈민가 출신이라 빈민들에 대한 삶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 소설의 배경은 허구의 산물이 아닌 현실이였던 것이다.

"사실 올리버에게는 성가시고 귀찮지만 인간이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의례인 '호흡'이라는 중차대한 임무가 남아 있었다."

한가하게 독서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인데, 최근들어 배우고 익히는 일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유튜브로 타로영상도 봐야하고 인간과 상징도 복습해야 하고 독서모임에 선정도서도 읽어야 한다.

최근들어 굉장히 바빠짐에 따라 이런 벽돌책을 읽어낼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는데, 이 책을 꾸준히 붙잡고 내 시간을 쏟아가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소설의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진진하니 재밌었던 덕분이였다. 다른 책이였다면 아마 이렇게 못 읽어냈으리라.

소설속에는 고아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 지극히 처참한 형태로 그려진다. 고아는 부모도 없고,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로 세상에 나오기에 태어나면서 부터 극빈이다. 그냥 빈민도 아니고 극빈민이다. 어린아이와 고아인 어린아이는 전혀 다르다. 세상에 홀로 우뚝 서버려 아무데도 기대고 의지할곳 없는 어린아이가 바로 고아다.

그런 아이를 돌봐주려 나라에서는 구빈원을 운영하지만 구빈원의 관리들이 왜곡되고 삐뚤어져서 인간의 악을 가지고 있으니 이 자체가 현실이자 풍자가 된다.

불쌍한 어린아이가 이제 안불쌍해지려나 싶으면 악당을 만나서 더 험한꼴을 당하게 되고, 이 아이의 인생은 이럴 수밖에 없나 하고 포기하려 하면 누군가 슬며시 희망을 준다. 그래 인생이 나쁠 수만은 없다며 좀 살아보라고 응원을 할라치면 또 악이 집어삼킨다.

선과 악의 고리에 번갈아가면서 빠지는 이 순환고리에 앞으로 아이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를 작가는 뛰어난 글솜씨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써내려갔다.

한 인물의 성격과 행동에 대한 캐릭터구성이 매우 뛰어나고 인간 내면을 잘 묘사해놨으며, 읽는 독자들이 책을 놓을수 없게 높은 몰입력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읽을수가 있었다.

이야를 진행시키는 그의 필력과 상황의 묘사와 글을 쓰는 솜씨 모두가 합해져서 그를 천성이 작가인 이야기꾼으로 보이게 했다.

"사람은 눈을 꽉 감은 채 완전한 무의식 속에서 5일 밤을 내리 잘 때보다, 반쯤 눈을 뜬 채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반쯤 의식하는 5분 동안에 더 많은 꿈을 꾼다."

보통 일정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저녁 10시면 잘 준비를 하고 이불속에 들어가버리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아무리 늦어도 12시 이전에는 잠들어 버리는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하지만 10시무렵에 낸시가 '우리편'이 되는 순간을 접하면서 부터 스토리가 후반부를 달리며 긴장이 최고조에 다다랐기에 책을 놓을 수없게 되어 결국 새벽 1시가 넘어서 까지 책을 읽어버리는 독서의 열정을 불태우게 만들었던 책이다. 뒷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덮고 자러갈수가 없었던 것이다. 초반부터 주인공의 삶의 스토리가 계속 꼬이고 꼬여서 마지막에도 꼬일까봐 불안하고 현실적인 결말로 끝날까 걱정되어서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엄청 높았었는데, 결말을 보니 작가의 찰스 디킨스는 아직 꿈이 있는 다정스런 이야기꾼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무래도 마지막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인데, 이 부분에 대한 감상은 저자 서문글과 같이 읽으면 감동이 배가 된다.

찰스 디킨스는 이 이야기가 어느 잡지에 실렸던 이야기라고 설명을 해주는데 실리기 전부터 도덕적인 측면에서 반대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을 미리 했었던 듯 싶다.

그런 예상에도 계속 이 이야기를 싣기를 원했던 것은 그는 이런 이야기에서 어떤 의무감을 느꼈던 듯 하다.

" 나로서는 가장 추하고 불쾌한 이야기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선한 교훈이 얻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나는 이것이 널리 인정되고 확립된 진리라고 항상 믿어왔다."

찰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희망의 상징을 창조시켜놓고 그를 태생부터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렸지만 그가 빛을 잃지 않기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환경이 아무리 타락하고 주변인물이 아무리 먹물을 내뿜는다 하여도 선한 백조로 태어난 아이는 까마귀속에서도 물들지 않는 선함을 지니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든 빈민들이 사는 곳이든 선한 의지는 어디에서든 있으며 그 선함을 주변이 꺽을수는 없다고 이야기해주는 듯 하다.

자신의 타락과 어둠에 대해서 주변환경이 그랬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방에서 먹물을 뿜어대는데 내가 물들지 않고 어떻게 버틸수 있었겠느냐고 항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돌이켜봐야 할 것은 같은 환경속에 있더라도 물들지 않고 본인의 자세를 꿋꿋히 지키는 자들은 분명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찰스 디킨스는 올리버를 통해 의지의 선함을 보여주고 낸시를 통해 우리 내면속에 솟아나오고 싶은 선함의 본능이 있었노라고 이야기해주려는 듯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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