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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트위스트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29
찰스 디킨스 지음, 유수아 옮김 / 현대지성 / 2020년 1월
평점 :
현대지성 출판사에서 출판되고 있는 '현대지성 클래식'시리즈 책들은 전부 [완역본]이라는 문구가 달려있다. 세계문학을 완역으로 번역해서 출판을 한다는 의미인데, 여기에서 완역이란 '원문을 편집하지 않고 원작가가 쓴 원본을 있는 그대로 번역함'을 의미한다.
조사해보니 예전에는 번역하는 과정에서 편집을 하는 일이 종종 있었기 때문에 중역이나 편역본이 많았다고 한다. 논문의 형식을 띄는 설명하는 글들은 편역이 필요한 부분도 있을거라 생각된다. 다양한 형식으로 출판함으로써 독자들의 기호를 맞춰주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문학장르는 이야기의 형식을 띄고 있고 작가가 나타내고자 하는 주제성이 있기 때문에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담긴 완역본이 좋다고 생각한다. 가능하다면 외국어를 익혀서 원문을 읽는것이 최고라고 생각하지만 현실상 힘들기에 원문과 가까울수록 좋다고 생각이 되는 것이다.
세계문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올때에는 외국어에서 한국어로 언어가 바뀌어서 들어오기 때문에 번역가가 누구인지, 어떤 스타일로 번역을 했는지를 살펴보게 된다. 번역된 스타일에 따라서 글을 읽을때에 느낌이 조금씩 달라지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데미안 책을 읽을 일이 있어서 책을 찾아 읽었는데, 평소 읽어오던 출판사책이 아닌 다른 출판사에서 번역되어 나온 데미안책을 한번 읽어보았다. 다른 책은 초반에 읽다가 이전의 책에 익숙해져버린 탓인지 어쩐지 거부감이 들어서 책을 덮어버리고 기존의 책을 다시 찾아 읽었다. 분명 글의 기본 스토리라고 하는 뼈대는 같을텐데 문체가 달라지니 읽는 느낌이 확연히 달라졌던 것이다.
다양한 책을 접하면서 독서를 하다보면 좋아하는 작가가 생기게 되고 선호하는 출판사도 생기게 된다. 분명 다양한 작가의 책을 출판해내는 출판사들인데 신뢰하게 되는 출판사가 생겨버리는 것이다. 신뢰하는 출판사들 중에 한곳이 바로 이 책의 출판사인 현대지성 출판사이고 그 중에서도 특히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좋아하게 되었다.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를 처음 만난것은 도덕경이였는데, 도덕경 내용자체가 뛰어나서 내용에 빠져들고 책에 빠져들고 표지에 빠져들게 되었다. 첫 책에 대한 호감은 전염되는것 처럼 같은 표지를 가지고 있는 다른 책도 덩달아서 좋아하게 되는 효과를 낳았다.
초록색의 단정한 고전의 느낌을 가지는 표지에 호감을 느낀상태로 두번째 책인 '걸리버 여행기'를 접하게 되었는데, 생각외로 책 내용이 굉장히 재밌고 가독성있게 잘 읽혀서 이후에도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책이 눈에 보이면 일단 신청하고 받아서 읽어보리라는 욕심이 생겼다.
현대지성 클래식으로 나오는 책들은 최근에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는 책들이기에 현대우리말에 맞게 번역이 된듯하다. 원본책 자체는 19세기 고전이지만 옛책을 읽는다는 느낌이 안들고 현대동화를 읽는듯 문체가 친숙하고 자연스럽게 읽히는 점이 좋다. 그래서 고전을 처음 접하는 이들에게 '쉽게' 접해보고 싶으면 현대지성 클래식으로 접해보라고 추천을 해주곤 하는데, 추천 해줄때 번역이 의역을 넘어선 초월번역이라는 말을 꼭 해준다. 엄청나게 쉽게 읽히니 말이다.
이번에는 현대지성 클래식 시리즈중에 29번인 '올리버 트위스트'가 도착을 했다. 책을 받았을때 제일 처음 보게 되는 표지디자인에서 익숙한 친구를 만나듯 반가운 마음이 흘러나왔지만, 책을 손에 잡고 무게를 느낀순간 긴장감도 같이 느끼게 되었다. 책이 엄청나게 두꺼웠던 것이다. 이번 올리버 트위스트 책은 600페이지가 넘어가는 엄청난 장편인 벽돌책이었다. 다른책이 이런 페이지를 가지고 있었다면 조금은 책에 대한 거부감이 밀려왔을지도 모를 일인데, 어쩐지 이번 책에는 거부감이 들기는 커녕 기대감이 들었다.
출판사가 현대지성 클래식이니깐 지금까지 처럼 쉽게 번역되었을거라는 믿음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고 무엇보다 강한 호기심이 들었던 것은 책의 작가가 영국의 대문호인 '찰스 디킨스'였기 때문이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세익스피어를 가져서 행운이라고 하는데, 우리는 찰스 디킨스를 가져서 더 행복하다"라고 영국인들은 말한다고 한다. 그만큼 당대 최고의 인기작가이자 영국인들과 세계인들에게 사랑 받았고, 또 지금도 사랑이 이어지는 작가가 바로 찰스 디킨스이다.
이번 '올리버 트위스트' 책은 19세기의 산업혁명 시대를 비판하는 사회 풍자소설이다.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인물의 출생부터 일대기를 그린 서사소설인데 작중 올리버의 엄마가 홀로 떠돌다가 아이를 구빈원에서 낳았기에 올리버는 구빈원 출신이 되고야 만다.
처음 구빈원이라는 단어에 낯섬을 느꼈는데 구빈원은 빈민을 구제하는 곳으로 이 당시 사회가 빈민 구제법이 시행되고 있음을 알수있다. 나라에서 빈민을 구제해주기 위해 법도 정하고 구빈원도 만든다고 하면 언뜻 잘되어있는 사회라고 볼수있는데, 찰스 디킨스는 이 구제법과 구빈원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하면서 그만의 해학을 보여준다.
소설은 처음부터 제도가 가지고 있는 왜곡과 인간 내면의 악을 끄집어 내면서 비판과 풍자가 시작되는데 그의 날카로운 시선과 우리가 진정 깨우쳐야 될 점이 무엇인지 시사해준다.
누군가는 찰스 디킨스에게 왜 구제법을 풍자했냐고 물을 수도 있겠는데, 이는 찰스 디킨스 본인이 빈민가 출신이라 빈민들에 대한 삶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에게 이 소설의 배경은 허구의 산물이 아닌 현실이였던 것이다.
"사실 올리버에게는 성가시고 귀찮지만 인간이 편안하게 살아가기 위해서 반드시 필요한 의례인 '호흡'이라는 중차대한 임무가 남아 있었다."
한가하게 독서하는 삶을 살고 있는 나인데, 최근들어 배우고 익히는 일들이 갑자기 많아졌다. 유튜브로 타로영상도 봐야하고 인간과 상징도 복습해야 하고 독서모임에 선정도서도 읽어야 한다.
최근들어 굉장히 바빠짐에 따라 이런 벽돌책을 읽어낼 시간적인 여유가 전혀 없었는데, 이 책을 꾸준히 붙잡고 내 시간을 쏟아가면서 끝까지 읽을 수 있었던 것은 이 소설의 이야기가 굉장히 흥미진진하니 재밌었던 덕분이였다. 다른 책이였다면 아마 이렇게 못 읽어냈으리라.
소설속에는 고아가 감당해야 할 현실이 지극히 처참한 형태로 그려진다. 고아는 부모도 없고, 처음부터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채로 세상에 나오기에 태어나면서 부터 극빈이다. 그냥 빈민도 아니고 극빈민이다. 어린아이와 고아인 어린아이는 전혀 다르다. 세상에 홀로 우뚝 서버려 아무데도 기대고 의지할곳 없는 어린아이가 바로 고아다.
그런 아이를 돌봐주려 나라에서는 구빈원을 운영하지만 구빈원의 관리들이 왜곡되고 삐뚤어져서 인간의 악을 가지고 있으니 이 자체가 현실이자 풍자가 된다.
불쌍한 어린아이가 이제 안불쌍해지려나 싶으면 악당을 만나서 더 험한꼴을 당하게 되고, 이 아이의 인생은 이럴 수밖에 없나 하고 포기하려 하면 누군가 슬며시 희망을 준다. 그래 인생이 나쁠 수만은 없다며 좀 살아보라고 응원을 할라치면 또 악이 집어삼킨다.
선과 악의 고리에 번갈아가면서 빠지는 이 순환고리에 앞으로 아이의 인생이 어떻게 될지를 작가는 뛰어난 글솜씨로 매우 흥미진진하게 써내려갔다.
한 인물의 성격과 행동에 대한 캐릭터구성이 매우 뛰어나고 인간 내면을 잘 묘사해놨으며, 읽는 독자들이 책을 놓을수 없게 높은 몰입력을 보여주며 이야기를 진행시키기에 처음부터 끝까지 재밌게 읽을수가 있었다.
이야를 진행시키는 그의 필력과 상황의 묘사와 글을 쓰는 솜씨 모두가 합해져서 그를 천성이 작가인 이야기꾼으로 보이게 했다.
"사람은 눈을 꽉 감은 채 완전한 무의식 속에서 5일 밤을 내리 잘 때보다, 반쯤 눈을 뜬 채로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을 반쯤 의식하는 5분 동안에 더 많은 꿈을 꾼다."
보통 일정이라면 아무리 바빠도 저녁 10시면 잘 준비를 하고 이불속에 들어가버리고 핸드폰을 만지작 거리다가 아무리 늦어도 12시 이전에는 잠들어 버리는것이 습관처럼 되어 있었다.
하지만 10시무렵에 낸시가 '우리편'이 되는 순간을 접하면서 부터 스토리가 후반부를 달리며 긴장이 최고조에 다다랐기에 책을 놓을 수없게 되어 결국 새벽 1시가 넘어서 까지 책을 읽어버리는 독서의 열정을 불태우게 만들었던 책이다. 뒷 내용이 궁금해서 책을 덮고 자러갈수가 없었던 것이다. 초반부터 주인공의 삶의 스토리가 계속 꼬이고 꼬여서 마지막에도 꼬일까봐 불안하고 현실적인 결말로 끝날까 걱정되어서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 엄청 높았었는데, 결말을 보니 작가의 찰스 디킨스는 아직 꿈이 있는 다정스런 이야기꾼으로 느껴지게 되었다.
이 이야기가 마음에 드는 것은 아무래도 마지막이 해피엔딩으로 끝나서인데, 이 부분에 대한 감상은 저자 서문글과 같이 읽으면 감동이 배가 된다.
찰스 디킨스는 이 이야기가 어느 잡지에 실렸던 이야기라고 설명을 해주는데 실리기 전부터 도덕적인 측면에서 반대를 받을 것이라고 예상을 미리 했었던 듯 싶다.
그런 예상에도 계속 이 이야기를 싣기를 원했던 것은 그는 이런 이야기에서 어떤 의무감을 느꼈던 듯 하다.
" 나로서는 가장 추하고 불쾌한 이야기에서도 가장 순수하고 선한 교훈이 얻어질 수 있음을 인정한다. 나는 이것이 널리 인정되고 확립된 진리라고 항상 믿어왔다."
찰스 디킨스는 올리버 트위스트라는 희망의 상징을 창조시켜놓고 그를 태생부터 악의 구렁텅이에 빠뜨렸지만 그가 빛을 잃지 않기를 믿어 의심치 않았다. 환경이 아무리 타락하고 주변인물이 아무리 먹물을 내뿜는다 하여도 선한 백조로 태어난 아이는 까마귀속에서도 물들지 않는 선함을 지니는 존재인 것이다. 그래서 부유한 사람들이 사는 곳이든 빈민들이 사는 곳이든 선한 의지는 어디에서든 있으며 그 선함을 주변이 꺽을수는 없다고 이야기해주는 듯 하다.
자신의 타락과 어둠에 대해서 주변환경이 그랬기 때문에 어쩔수 없었다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 사방에서 먹물을 뿜어대는데 내가 물들지 않고 어떻게 버틸수 있었겠느냐고 항변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돌이켜봐야 할 것은 같은 환경속에 있더라도 물들지 않고 본인의 자세를 꿋꿋히 지키는 자들은 분명 있었다는 것이다.
이를 찰스 디킨스는 올리버를 통해 의지의 선함을 보여주고 낸시를 통해 우리 내면속에 솟아나오고 싶은 선함의 본능이 있었노라고 이야기해주려는 듯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