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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미안 - 나는 그였고, 그는 나였다
헤르만 헤세 지음, 랭브릿지 옮김 / 리프레시 / 2024년 11월
평점 :
※ 이 리뷰는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데미안'
헤르만 헤세의 '데미안'은 필독서 중의 필독서라고 생각한다.
한때는 '헤르만 헤세'라는 작가 자체의 광팬이 되었던 적도 있었다. 시작은 '데미안'이었으나. '싯다르타'에 완전히 반하고, '수레바퀴 아래에서'를 읽으면서 그 자체에 빠져들어갔다.
후에 '헤르만 헤세'라는 인문자체를 탐구하기 시작하면서 나만의 정의를 시작했던것 같다.
헤세가 어떤 환경에서 자랐는지, 어떤 유년시절을 보냈는지, 그의 혼란과 방황은 무엇이었을지, 그는 정신과 주치의인 '융'을 만나 어떤 치료를 받았을지.
'융'은 그당시 어떤 연구를 하고 있었고 환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이었는지를 계속해서 연구했던 적이 있었다.
그렇게 하다보니 어느새 '데미안' 내용 그자체를 감상하지 못하고, '구스타프 융'의 이론이 펼쳐진 '데미안'이라는 짜집기를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그렇게 잠시 멀어졌었던 '데미안'이지만.
서평이벤트란에 '데미안'이라는 글자를 보자마자 당연하게 끌려야 할것에 끌리는 것처럼 신청하고 받아보게 되었다.
이번 '데미안' 책은 '리프레시' 출판사에서 나온 책으로 '랭브릿지'옮김이다. 번역가의 이름이 아닌 '랭브릿지'라는 번역단체라고 한다. 혼자서 번역하는 것보다 여러명이서 함께 번역하며 문맥의 흐름을 잘 연구했을것이라 생각하니 번역에 대한 신뢰도가 올라갔다.
-민음사 번역
"내게는 내 이야기가 중요하다. 내 자신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또한 그것은 한 인간의 이야기,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은 그저 그 자신일 뿐만 아니라 어떤 경우에도 중요하며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이야기가 중요하고, 영원하고, 신성한 것이다. 그래서 한 사람 한사람은, 어떻든 살아가면서 자연의 뜻을 실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경이로우며 충분히 주목할 만한 존재이다. "
-랭브릿지 번역
"내 이야기는 어떤 작가의 이야기보다 나에게 더 중요하다. 왜냐하면 이것은 나 자신의 이야기이며, 한 사람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상상의, 가능성의, 이상적이거나 또 다른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가 아닌, 실제로 존재하고 유일무이한 한 인간의 야기이다.
각 사람은 단지 자기 자신일 뿐만 아니라, 세계의 현상들이 교차하는 유일하고 특별하며 중요한 지점이다. 그렇기에 각자의 이야기는 중요하고, 영원하며, 신성하다."
이번 책의 독특성은 삽화가 있다는데에 있다.
목탄이나 거친연필로 그린듯한 삽화가 매력적이었다. 좀더 삽화에 대해서 살펴보니 설명란에 '삽화의 일부는 생성형 AI가 그렸습니다.'라는 문구를 발견했다. 아..이제 이런 시대구나를 납득하며 AI가 문맥을 이해하고 그려준 삽화를 구경해봤다.
소설의 가장 큰 장점은 글자만으로 이루어진 뼈대에독자의 상상력을 더해서 하나의 세계를 만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상상해왔던 싱클레어와 데미안의 모습은 AI가 표현한 모습과 많이 달랐다.
이 책이 학생들에게도 필독서인 만큼, 중요포인트와 해설이 많이 존재한다고 알고있다.
이번 책 소개 부분에서도 중요포인트가 짚어져있는 부분을 보았다. 그 부분을 보면서 다시금 자신의 느낀점에 대해서 생각해보고, 나는 유독 어느지점에 감정이 많이 머물렀는지를 생각해보게 된다.
그중에서 가장많은 생각과 토론이 이루어지는 대목은 싱클레어가 가지는 '이원론'과 '싱클레어가 바라보는 밝은세계' 였다.
싱클레어가 가지고 있었던 이원론은 밝은세계와 어두운세계로 표현되는 선과 악, 종교와 성, 신과 악마였다. 자신 속에 무의식으로 표현되는 모든것을 포용하여 단일성을 이루어야 했으니, 싱클레어의 자기구현의 모습은 양성적인 모습을 띈다.
"나는 데미안의 얼굴을 보았다. 그가 소년의 얼굴을 가지지 않고 어른의 얼굴을 가졌다는 것뿐만 아라 더 많은 것을 보았다. 보았다고, 혹은 감지했다고 믿었다. 그것이 남자의 얼굴만이 아니며 또 다른 무엇이라는 것을. 여자 얼굴도 조금 그 안에 들어 있는 듯했다. 특히 그 얼굴은 내게, 한순간, 남자답거나 어린이답지 않고, 나이 들었거나 어리지 않고, 왠지 수천 살은 되게, 왠지 시간을 초월한 듯, 우리가 사는 것과는 다른 시대의 인장이 찍힌 듯 보였다. 짐승들이 아니면 나무들, 아니면 별들이 그렇게 보일 수 있었다.
어쩌면 그는 미남이었을 것이고, 어쩌면 내 마음에 들었을 것이고, 어쩌면 내게 거슬리기도 했을 것이다. 그는 한 마리 짐승 같았다는 것, 아니면 유령, 아니면 어떤 형상 같았다는 것이다."
싱클레어는 에바부인에게 관능적인 사랑도 느끼고 있었지만, 그녀가 자기구현의 인도자라는 사실 또한 분명히 느끼고 있었다.
"나의 본질이 이끌려 지향해 가는 것이 그녀라는 인물이 아니고 그녀는 다만 내 자신의 내면의 한 상징이며 나를 다만 더 깊게 내 자신 속에 인도하려 한다는 것을 확실하게 느낀다고 생각했다."
어머니는 생명의 잉태하는 존재로, 어머니상이 완성 되려면 어머니는 죽음도 포용하고 있어야 한다. 자기 구현이 완성되려면 어머니상인 아니마를 받아들여야 하는데, 이것은 죽음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말과 같다.
어머니상은 등장인물로 구현되기도 하지만, 물인 강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그래서 '수레바퀴아래에서' 에서 주인공 한스는 물에 빠져 죽음을 받아들이고, '데미안'에서 에바부인이 죽고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어머니의 키스를 해주고 자신도 죽음으로써 싱클레어의 자기구현을 완성시켜준다. 싯다르타가 강에 빠져 죽으려고했을때. 자신의 온몸으로 죽음인 어머니상을 받아들임 으로써 자기구현에 들어가게 되는 것이다.
익사는 어머니와의 포옹, 즉 근원과 종말을 결합시키는 것, 인류의 고향으로 회귀하는 것이다.
나르치스는 어머니의 뜻에 따라 조각을 완성하는 대신 죽음을 받아들이게 된다. 그는 "행복의 원천이자 죽음의 원천"인 어머니의 뜻에 따라 죽음이 첫사랑만큼이나 커다란 행복을 갖다줄 것이라는 확신 가운데서 죽음을 받아들인다.
사실, '데미안'에서는 아니마로 나오는 인물이 한명 더 있는데 베아트리체이다. 방탕아였던 싱클레어가 그녀를 본 것만으로 그림을 그리고 꿈을 꾸게 만든 인물이다.
베아트리체도 싱클레어에게 인도자역할을 했지만 그녀가 잠시 스쳐지나가는 인연밖에 될수 없었던 것은 어머니의 형상을 띄지 못한 어린 소녀와 소년의 양성모습이였다고 생각해볼수 있다. 이 모습은 에바부인의 소녀시절 모습이 아니었을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이 책을 토론모임책으로 선정했을때,
'싱클레어가 바라보는 밝은세계와 부모님'이라는 주제로 대화할때 재미있다.
선한자가 주변에 끼치는 영향은 무엇일까?
우리는 선한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나?
이를 실제사례들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를 시작하면 인간본성이 가지고 있는 지독한 악과 마주치게 된다는 점이 재밌는거 같다.
'데미안'이 모든 사람에게 필독서인 이유는 어느 나이대의 사람들이 읽어도 다 느끼는 점과 감동이 있기 때문이다. 여러차례 읽고있지만 그때마다 느끼는 감동이 다르고 좀더 깊은 체험에 들어갈 수 있어서 좋다.
조금더 나이가 들어서 노인이 된다해도 '데미안'과 '헤르만 헤세'는 나의 필독서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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