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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해질 용기 - 이젠 인생이 무섭지 않다 / 지금 시작하는 아들러 심리학
기시미 이치로 지음, 이용택 옮김 / 북스토리 / 2021년 6월
평점 :

아들러는 모든 고통은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말했다. 우리는 사회화 동물이고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민도 고통도 기쁨도 행복도 모두 인간관계에서 온다고 본 것이다.
정말 그럴까?
가끔 유튜브를 보다 보면 동물의 세계에서 어미가 자식을 버리거나 심지어 물어 죽이는 장면을 보게 된다. 자식이 다리를 저는 장애를 가지고 태어났거나 너무 약하게 태어났을 때는 자신과 다른 새끼가 위험에 노출되지 않도록 죽여버리는 것이다. 슬프지만 동물들은 강한 육체와 개인화를 택했으니 자신의 안전을 선택하는 장면은 어쩔 수가 없다. 육체의 강자만이 살아남는 세계인 것이다.
그러나 인간은 육체의 강함을 포기하고 도구를 선택하면서 사회화를 택했다. 포식자를 만났을 때 서로 힘을 합치기로 한 것이다. 이는 살아남기 위해서는 모여있어야 함을 의미하고 무리에서 버림받는다는 것은 위험에 처했을 때 살아남지 못한다는 의미이다. 그래서 인간이 무리 속에 속해있고 싶어 하는 것은 생존본능과 같이 아주 중요한 것이다.
무리에서 버림받지 않도록 무리에게 잘 보여야 하고 도움을 주면서 내가 이곳에서 필요한 인간이라는 느낌이 들어야 하며, 무리에게 기대와 인정을 받고 함께 있어도 좋다는 소속감이 들고 싶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는 것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타인의 눈치를 보게 되며 열등감을 느끼고 인정욕구로 인한 고민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우리가 사회화라는 무리를 택한 것이니 벗어날 수 없다고 말한다.
'엔젤비트'라는 애니메이션이 생각이 났다.
어린 학생들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배경은 학교인데 안타까운 건 이들은 이미 죽은 영혼이라는 것이다. 너무 어린 나이에 죽어버린 아이들의 영혼을 달래기 위해 못다 핀 꿈을 펼쳐보라며 신이 만들어준 사후세계. 그곳에서 행복을 느낀다면 성불한다는 스토리이다.
행복을 느끼게 해주기 위해서 신은 아이들을 학교의 학생으로 만들었다. 놀이공원이라던가 좀 더 쾌락을 즐길 수 있는 판타지스러운 장소가 아닌 지극히 평범하고 당연한 장소인 학교라는 점이다. 학생이 되어야 할 나이에 당연하게 학생의 신분으로 있고, 당연하게 학교 안에서 일상을 보내게 하는 것. 그것이 신이 선택한 아이들이 행복을 느끼게 할 수 있는 장소라는 것이다. 평범하고 당연한 일상 속에서 이루고 싶었던 꿈을 이룰 때에 행복을 느끼게 된다는 것인데, 그 안에 아이들의 꿈을 다시금 떠올려보면 혼자라면 만족하지 못할 인간관계 속의 꿈 들이다.
"온몸으로 용기를 내라"
'미움받을 용기'로 유명한 기시미 이치로의 책을 살펴보면 전부 용기이다. '상처받을 용기', '버텨내는 용기' 그리고 이번 책 '행복해질 용기'까지.
제목에 용기가 굳이 들어가 있지 않더라도 그의 책을 읽어보면 책 내용 자체가 '용기를 내!!!'라고 말하고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기시미 이치로를 처음 접했던 건 그의 책 '미움받을 용기'가 국내에서 크게 히트를 쳤을 때였다. 당시에도 독서모임을 하고 있었기에 그 책을 선정해서 읽고 토론했고 최근의 '마흔에게'까지 그의 신작이 나올 때마다 다 같이 읽고 토론해왔다.
기시미 이치로의 책을 독서모임에서 토론하면 상당히 즐겁다. 초반에는 책의 긍정적인 부분을 끌어내기 위해서 책을 통해 새롭게 배운 점과 본받을 점과 장점들을 이야기해본다. 그런 다음 부정적인 이야기를 살짝 꺼내기 시작하면 차분했던 토론 분위기에 엄청난 활기를 띤다.
그러니깐 이런 식이다.
"밥아저씨가 참 쉽죠? 하는 느낌이에요" . "수능 만점 받은 학생이 교과서만 봤어요. 하는 느낌" , "식이요법과 운동만 하면 다이어트 성공할 수 있어요. 운동을 하세요. 용기를 내요. 용기 내서 운동하면 다이어트할 수 있을 거예요" 이런 느낌이다.
그의 책은 틀린 말 하나 없이 모두 맞는 말인데 그 말을 너무 담백하고 간단하게 말해버리니 거부반응이 오는 것이다.
'남한테 인정받고 싶어서 눈치 보고 그러니 인간관계가 고통인 것이지. 눈치 보지 말고 그냥 미움받아라. 그럼 행복해질 수 있어. 용기를 내' 이런 식이다.
좀 더 이어가고 싶지만 이번에 이 책은 서평 이벤트로 받은 책이니 긍정적인 부분만 적도록 해야겠다.
무언가를 받았다는 것은 은혜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도 같이 감당해야 하는 것이다.
행복해지고 싶은 인간은 고통을 피하고 싶어 한다. 고통은 인간관계에서 온다. 타인에게 미움과 상처를 받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의 단점을 곱씹고 인간관계를 피하게 되는 것이다.
하지만 행복은 인간관계에서 온다. 즉, 인간관계를 피하는 것은 내 행복을 직접적으로 막는 것이며 이것이야말로 내 스스로 나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인 것이다. 그러니 용기를 가지고 맞서야 한다.
그러기에는 내 단점을 보는 것부터 멈춰야 하는데, 내 단점을 보는 시각을 바꿔서 장점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고 한다. 나를 장점으로 바라보려면 '나를 사랑하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기시미 이치로는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바꿔보라고 말했다. 마침 남편과 마트에서 장을 보던 중 남편이 올여름에 여행 가기 전에 살 좀 빼놔야 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난 바로 실전 적용을 했다.
"사람이 행복하려면 말이야. 자기 자신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하는데, 그러려면 자신의 단점을 장점으로 봐야 한대. 그러니깐 난 살찐 게 아니고 귀여운 거야"라고 말해보았다.
남편은 대단하다면서 한번 비웃어주고는 내 뱃살을 퉁치더니 다시 장 보러 발걸음을 옮겼다.
무거워진 게 아니고 요 근래 중력이 좀 세졌다고 생각하자!!!
나를 사랑한다는 건 어떤 걸까?
거의 모든 심리학에서 나 스스로를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고 외친다.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며 존재 자체로 빛이 난다고 외친다. 뭘 어떻게 해야 날 사랑할 수 있게 될까?
단점을 장점으로 바꾸는 것?
있는 그대로 나를 바라보는 것?
주변에 공헌해서 소속감을 느끼게 하는 것?
유대관계를 만들어서 존재 자체로 타인에게 위안을 주는 것?
난 이것만큼은 열심히 고민하고 연구해서 자신만의 해답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중에 가장 좋았던 건 '단점을 장점이라고 시각을 달리해보세요' 이런 거 말고 '난 단점이 있어. 근데 왜? 단점이 있는데 어쩌라고? 단점이 있지만 날 사랑해 줘' 이런 식으로 해보는 것이다.
나는 신의 정체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사랑할 줄 안다는 건 신을 불러들이는 것이며 지금 이곳을 천국으로 만들 수 있는 능력을 행사하는 것이다.
성격책에는 '너를 미워하는 사람도 사랑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지 못하다면 네가 바리새인과 무엇이 다르느냐'라며 말한다. 나를 미워하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야말로 능력이며 용기이다. 나는 사랑할 용기가 있었던가. 그리고 만일 내가 미워하는 이들도 이 능력을 쓸 수 있었다고 한다면? 사실은 그들은 이미 나를 사랑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미워하는 자도 사랑할 줄 아는데 내 안에 미운 부분은 쉽게 사랑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 자체를 그냥 사랑해보는 것이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내 안에 있는 한 명의 인간이 마주 보이고 사랑할 수 있게 된다. 또한 타인 안에 있는 인간도 마주 보이며 사랑할 수 있게 되고 그것은 인류애가 된다.
이번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있는데 어쩐지 예전에 이런글을 한번 썼었던 기억이 났다. 그래서 내 블로그에서 '사랑'으로 검색해보니 에리히 프롬의 '자기를 위한 인간' 책을 쓰고 서평을 썼던 내용이 나왔는데, 이번 감상이랑 거의 똑같지 않은가? 결국 모든 심리치료의 시작은 자기자신을 사랑하면서 부터 인가보다.
-예전 에리히 프롬의 '자기를 위한 인간' 읽었을 때 썼던 글-
한 사람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그 사람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하며, 배려를 해야 하며, 그 사람이 생산적이 삶을 살수 있도록 노력하는 생산적인 사랑을 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그 한 사람에게만 적용되는 사랑이 아니다. 그 한 사람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은 한 인간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므로, 그 사람 외에 다른 누구라도 사랑할 줄 아는 능력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에리히 프롬은 제대로 된 사랑을 할 줄 아는 사람은 인간을 사랑할 줄 안다는 것이며, 또한 인간인 나를 사랑할 줄도 안다는 것이며, 인간이라면 누구라도 사랑할 줄 알게 된다고 말하는 것이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인류를 사랑한다는 것이 된다.
그래서 사랑에는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사랑하는 방법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이해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