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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속의 용이 울 때 ㅣ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2
이어령 지음 / 파람북 / 2023년 5월
평점 :
한 사람의 팬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신기하다.
그 한사람의 첫 만남도 책이였고, 계속해서 책으로만 만났고, 앞으로도 책으로만 만날테지만. 그래도 나는 계속해서 팬이 될 테다.
평소에도 신간들을 둘러보는 편이고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을 찾아서 살펴보는 편인데, 이어령 선생님의 신간은 특별히 알림등록을 해두었다. 최근에 읽은 이어령 선생님의 책이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1편이기 때문이다. 그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책은 전6권으로 이루어졌다. 1권을 읽었으니 이제 2권이 나올 차례라 기다리는 마음으로 알림등록을 해두었던 것인데,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을때 마음 깊숙히 반가운 마음이 크게 울렸다.
앞 전 시리즈의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 책은 책이 크고 두껍다는 느낌이 있었는데, 이번에 나오는 시리즈들은 '별의 지도'도 그렇고 책이 작고 아담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한국인 이야기' 책은 전 시리즈이기 때문에 '들어가는말'이 모두 동일하다. 모두 꼬부랑할머니의 고갯길로 시작을 한다. 그리고 끝나지 않는 한국인 이야기에서는 앞서 '천지인' 이야기를 하셨다. 그리고 1권이 '별의지도' 라는 제목을 달고 하늘의 이야기를 하신 책이다. 1권을 다 읽으면서 앞으로 나올 2권의 내용을 살짝 예상해 보았는데, 역시나 이번 2권은 '땅속의 용이 울때' 라는 제목을 달고 땅의 이야기를 하신다. 제목에서 '용'은 '지룡' 이다. '지룡'은 '지렁이'이니 이 책은 지렁이의 울음을 이야기 하시는 책이다. 지렁이의 울음을 들어본 적이 있는가?
이번 책은 다 읽고 나서 많이 곤란해진 부분이 있다.
이어령 선생님의 이름이다. 책날개에 선생님의 이름이 한글로만 되어 있길래, 검색창에 '이어령'선생님의 이름을 검색해보았다. 선생님의 이름중에 '령' 이라는 글자는 한자로 '寧' 이렇게 나온다. '편안할 녕' 이라는 글자이다.
"그 뒤 내 글이 국정교과서에 실리게 되어 편수관들이 모였어요. 그때는 남의 이름이라도 본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국가에서 지정한 표기법으로 통일하게 했죠.
집안에서 불러준 '이의영', 중학교 때 '이어영', 그리고 대학에서는 '이어녕' 교육부가 나에게 붙여준 이름 '이어령'.
내가 내이름을 어려서부터 쓰고, 20대부터 글을 쓰고 책을 내기 시작해서 이렇게 거의 60~70년을 이 성과 이름을 가지고 책을 내고 저자 사인을 해주었는 데도 내가 내이름을 제대로 대답하지 못하는거에요."
저 부분에서는 본인의 이름을 잃어버렸다고 하시면서도 그냥 아무렇게나 불러도 된다고 말씀하시만 마지막줄에 가서는 책의 저자부분에 분명하게 '이어영'으로 써놓았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책 전체내용 또한 어려서부터 듣고 익히면서 자라온 언어에 대한 중요성이 많이 나오는데, 이름 또한 어려서 부모님과 고향사람들이 불러주고 그 이름을 듣고 자라온 이름이 진짜 이름이 아니겠는가 생각해보게 된다. 남의 이름을 멋대로 표기법을 바꿔버리다니...
책을 읽을때에는 그 책이 어떤 책이냐에 따라서 읽는 속도가 다 다르다. 읽기 쉽고 가독성이 붙어버리면 페이지가 빨리 넘어가서 금방 읽어버리게 되는 책도 있고, 가독성이 없으면 조금씩 나누어서 오랜시간을 곁에 두고 읽게 되는 책도 있다. 그리고 책 자체가 좋으면 일부러 천천히 느리게 느리게 읽는 책도 있다. 금방 읽어버리는 그만큼 책을 덮어버리는 순간도 빨라지게 되니깐 최대한 느리게 읽어서 책읽는 시간을 길게 잡고 싶은 마음이다.
그래서 이번 '땅속의 용이 울때' 책 또한 느리게 느리게 천천히 읽어 나갔다. 책이 작고 아담했지만. 쓰여진 한글이 쉽고 다정해서 어려운 책이 아니었지만. 도란도란 할아버지의 옛 이야기 같은 책으로 편히 읽히는 책이었지만. 그저 오래시간 천천히 천천히 읽어 나가고 싶었다.
이렇게 책을 읽는 내 모습이 스스로 웃겨서 왜 이 책을 좋아하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이 책은 옛 할아버지의 옛날 이야기를 듣는 것같은 느낌을 주는데, 어쩌면 나는 어르신의 옛 이야기가 정겹고 좋았던게 아닐까 싶다. 삭막해진 현대사회에서 타인의 이야기를 듣는 것 자체가 귀한데 옛 이야기라 추억들이 솟아나곤 했기 때문이다.
책에서 지렁이가 나오면서 '땅강아지'가 나온다. '땅강아지' 글자가 책에 등장했을때 어찌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내가 어렸을 적만 하더라도 아이들의 놀이는 실내가 아닌 실외였다. 흙이였다. 우리는 흙을 파서 소꿉놀이며 여러가지 놀이들을 했는데, 그때 흙을 팔때 '땅강아지'를 종종 봐왔던 것이다. 지금은 실내 생활만을 해서 흙이주는 추억들을 전부 잊고 살았는데, 책을 읽으면서 어릴때의 흙의 추억들이 되살아 나서 무척이나 좋았다. 어릴때의 추억과 시골의 정겨움을 이야기하는 책이 정겨워서 그래서 이 책 자체가 정겹고 좋았나보다.
책을 읽으면서 언어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하게 되어서 좋았다. 어려서부터 한국말을 듣고 자라고 내 속에 한국말이 심어져 싹을 틔운다. 그런 무의식속에 심겨진 한국말은 내 정서가 되고 내 마음이 된다. 한국말에 어떤 정서가 담겨있는지를 배우고, 정서에 따라 바뀌는 한국말을 배운다. 우리에게는 '죽다' 라는 말이 가진 의미가 무엇이었던가. 왜 우리는 다 '풀어' 버리라고 하는 걸까. 그리고 지금 현대인이 사용하는 언어들은 어떤 정서들을 담고 있는가. 그중에서 가장 궁금한건 왜 우리는 아직도 '헬대한민국'이 아닌 '헬조선'이라고 쓰는가 이다.
이번 책을 읽으면서 이번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가 이어령 선생님이 젊었을적에 쓰신 '흙속에 저바람속에' 책이 토대가 되었다는 것을 알았다. 그 흙바람 책도 궁금해서 읽어보고자 책을 검색해두었지만 선생님은 그때랑 지금이랑 사상의 변화가 많아서 어떤 내용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하노라고 말하셨다. 일단은 이번 유작으로 나오고 있는 한국인이야기 시리즈를 우선적으로 읽은 다음에 흙바람책도 읽어봐야겠다.
지금은 사회가 많이 발달된 세상이 되어서 젊고 빠릿빠릿한 인재들만 환영받는 시대가 된 것 같다. 노인들은 뒷전인 세상이 된 거다. 이번 이어령 선생님 책을 읽으면서 노인들이 존중받던 시대에 대해서 들어보았다. 노인들은 역사의 산 증인들이라고 한다. 본인들이 두 눈으로 보고 두 귀로 들은 세상의 산 증인들인것이다. 그런 경험의 이야기가 젊은이들에게 귀하게 여겨지던 시절이 있었다. 노인들의 지혜가 어린아이들을 살리던 시절이 있었다.
책을 덮고 가만히 지금 세대에 대해서 생각해본다. 지금의 노인세대와 지금의 어린아이들 세대에는 간극이 너무나도 큰 것 같다. 일반인이 내가 생각하기에는 너무 크고 심오한 주제이지만. 좀더 어르신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여보는 것은 어떨까. 어르신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런 책들이 좀 더 나왔으면 좋겠다.
'끝나지 않은 한국인 이야기' 시리즈가 시작할때 '천지인' 말씀을 하셨다. 그러면서 1권에서는 '서시'가 주로 나오는 별의 이야기를 하셨고, 2권에서는 '지렁이'가 주로 나오는 땅의 이야기를 하셨다. 그러면 그다음 3권에서는 인간의 이야기를 하실텐데 어떤 주제로 인간의 이야기를 들려주실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나 또한 어디가서는 더이상 젊은이가 아닌 어른이겠지만 진정한 어르신의 이야기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