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힐링 스페이스 - 나를 치유하는 공간의 심리학
에스더 M. 스턴버그 지음, 서영조 옮김, 정재승 감수 / 더퀘스트 / 2020년 4월
평점 :
절판
기분이 우울하거나 힘들때 어떤 장소가 떠오를 때가있다. 그곳에 가면 마음이 편안해질 것 같고, 참다운 쉼을 누리며 마음과 생각이 정리될 것 같다. 누군가에겐 따뜻하고 안정감을 주는 엄마 품이나 친정이 그럴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맛있는 음식점이 그럴 것이고, 어떤 이에게는 잡념을 할 틈도 주지 않는 신나는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이 그럴 것이다. 나에게도 그런 장소가 있다. 특정한 어떤 장소라기보다 드넓고 잔잔한 바다를 보고 있으면 언제그랬냐는듯이 마음에 평화가 찾아오고 복잡했던 머리가 정리가 되는 것을 느낀다. 요즘 사회적 거리두기로 집에만 있으니 더 더욱 바다가 그립다.
에스더 M. 스터버그 M.D의 '힐링 스페이스'는 나를 치유하는 공간에 대한 심리학 책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행복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장소와 공간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아주 상세하게 의학적, 과학적, 심리적, 환경적, 공간적 근거를 두고 통합적으로 이야기 한다. 또한 우리의 몸과 마음의 상태를 우리가 어떻게 보고, 지각하며 그것들이 어떻게 상호작용함으로 치유되는지 여러 분야에 걸쳐서 증명해나간다. 단순하게 힐링할 수 있는 장소가 어떠해야 하고, 그곳에서 어떻게 치유함을 받을 수 있는지에 관련된 심리학책인줄 알았다. 그건 나의 큰 착각이었다.
병실 창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치유에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보여준 1984년의 기념비적인 일을 해낸 사람이 바로 울리히였다. 울리히는 1972년부터 1981년까지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교외에 있는 한 병원에서 담낭 제거 수술을 받은 환자들의 기록을 관찰했다. 입원기간 중 침대가 창가에 있던 여성 환자 30명, 남성 환자 16명을 선정했다. 환자 46명의 침대 중 23개는 창을 통해 작은 숲이 내다보였고, 나머지 23개는 벽돌담이 내다보였다. 작은 숲이 내다보이는 침대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이 벽돌담이 내다보이는 자리에 입원해 있던 환자들보다 24시간가량 먼저 퇴원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p.39)
우리의 뇌와 몸에는 회로가 있는데, 그 회로는 햇빛과 만나면 우리의 기분과 스트레스 반응의 리듬, 면역세포가 감염과 싸우는 방식을 변화시킨다. 이 실험은 막연하게 그럴것이라 생각했던 부분들을 증명한 실험이었다.
빛의 파장이 달라지면 행동과 기분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빛이 우리 눈을 통해서 들어올때 시신경과 뇌로 전달되는 과정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의학적인 용어가 많이 언급되어 어렵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아하~그렇구나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들이 많다. 정재승박사님이 이 책을 감수하셨다고 해서 의아해했는데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이었다.
공간과 건축이 인간의 사고와 행동에 끼치는 영향을 측정하고 이를 바탕으로 더 나은 건축을 탐색하는 학문을 '신경건축학'이라 부른다. 신경건축학이라는 것이 있다는 것을 이 책을 통해서 처음 알았다. 2003년에 샌디에고 출신 건축가 앨리슨 호이트로의 아이디어로 '신경건축학회'가 발족되었다. 20세기 말에 건강을 유지하느냐 못하느냐에는 뇌와 면역체계의 연관성이 결정적이라는 사실을 규명하지 못했다면, 건축공간이 건강에 영향을 줄지 모른다는 생각은 과학적 차원에서 연구될 수 없었을 것이다. 과학자들은 이미 우리의 뇌와 신체에 영향을 끼치고 치유를 돕는 환경의 많은 특성을 찾아냈다. 우리는 하나의 풍경을 바라볼 때 풍경만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전에 내가 경험했던 기억들, 색깔과 연관되어 있었던 여러 가지 일들과 사람들을 떠올리기도 한다. 바라보고 있는것만으로 치유가 되기도 할때 이런 부분을 느끼게 된다. 이 책에 언급된 장소중에 인상적이었던 곳은 루르드이다. 루르드에는 물, 바위, 산 같은 보편적인 상징뿐만 아니라 동굴과 아름다운 경관이 있으며, 거기에 더해 기적의 오랜 역사가 있다. 아울러 더 중요한 것으로 루르드에는 열린 정신이 존재했다. 아픈 것, 도움을 구하고 도움의 손길을 뻗는 것이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지는 곳이고, 그곳을 찾는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모든 경험의 바탕에는 그곳을 찾는 사람들이 표현하고 소중히 여기는 깊은 믿음이 있다고 했다. 우리에게도 루르드와 같은 장소가 있을 수 있다. 우연히 만난 곳이기도 하고, 누군가의 소개로 알게된 곳이기도 하고 여러가지 과정을 거쳐 생겨난 나만의 치유공간이 있을 것이다. 막연하게 느낌만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그러수 밖에 없음을 설명한다.
음악 또한 우리의 감정과 뇌에서 감정이 발현되는 경로만이 아니라 감염과 싸우는 면역세포의 능력에도 영향을 줄 수 있음을 말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매 순간 주변 세상이 변화함에 따라 감각을 통해 우리가 인지하는 것들도 끊없이 변화한다. 신경과학과 기술의 접점에서 흥미로운 영역 하나가 새롭게 생겨나서 발전하고 있다. 사람이 공간을 지각하는 방식, 그리고 건겅할 때와 아플 때 각각 공간에서 움직이는 방식을 고려해서 병원 설계를 개선하는 영역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건축이란 '마음의 소리를 담은 그릇'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정재승 박사는 이 책을 건축을 통해 세상을 치유하려는 신경건축학자들의 따뜻한 분투기라고 표현했다.
이들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건강을 지키는 데 도움을 주는 장소들을 끊임없이 만들어내고 있지만 결국 치유의 공간은 우리 자신 안에서, 우리의 감정과 기억 안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가장 강력한 치유의 힘을 지닌 곳은 바로 우리 뇌와 마음속에 있기 때문이다.우리가 그 곳에 가면 왜 마음이 편해지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을 아주 길고, 상세하게 설명해주는 책이다. 나에게 힐링을 주는 장소가 어디며, 핫한 힐링 장소를 소개받고 싶은 분들이라면 이 책은 피하시길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