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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주의 페미니즘
웨인 A. 그루뎀 지음, 조계광 옮김 / CH북스(크리스천다이제스트) / 2020년 3월
평점 :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과 영화를 보고 마음이 많이 다운되었던 기억이 있다. 남편과 함께 이야기를 나누면서 지금의 현실을 마주보며 나와 김지영이라는 주인공의 삶이 겹쳐지면서 느꼈던 허무함이 답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거기서 끝내지 않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성경의 관점으로 다시 생각해보는 시간을 가졌다. 성경에서 말하는 여자와 남자의 역할이 무엇인지, 오래 전에 쓰여진 성경의 말씀이기 때문에 그 역할을 다르게 해석하고 바꿀수 있는 것일까? 그 시대는 그랬지만 지금을 시대가 바꼈으니 지금의 시각으로 말씀을 다르게 해석할 수 있을까?결론은 그럴수 없다였다. 내가 받아들이기 힘들다고 해서 사실이 거짓이 되는것이 아니고 진리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웨인 그루뎀의 '복음주의 페미니즘'을 읽으면서 다시 한번 들었던 그때 대화가 생각났다.
"하나님의 말씀은 다 순전하며...너는 그 말씀에 더하지 말라 그가 너를 책망하시겠고 너는 거짓말하는 자가 될까 두려우니라"(잠 30:5,6)
웨인 그루뎀은 평등주의를 말하는 자유주의자들이 주장하는 15가지 논제를 놓고 성경의 말씀을 기초로해서 반박해 나간다.
(1) 창세기 1-3장의 권위와 진정성을 부인한다.
(2) 바울이 틀렸다고 주장한다.
(3) 고대의 모든 사본에 나타나는 구절들이 성경의 일부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4)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아닌 성경 이후에 이루어진 발전이 궁극적인 권위를 지닌다고 주장한다.
(5) "구속적인 흐름의 해석학"을 내세워 신약 성경의 윤리적인 명령을 모두 의문시한다.
(6) 개개인의 입장이 어떤 성경 구절을 우선시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주장한다.
(7) "논쟁적인 구절"이라는 이유를 내세워 남자와 여자의 역할을 다룬 가장 적절한 성경 구절들을 무시한다.
(8) 여성들이 목회자와 장로들의 권위 아래에서 얼마든지 성경을 가르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9) "우리는 교회가 아니다."라는 말로 신약 성경의 명령을 외면한다.
(10) 성경보다 교회의 전통을 더 우위에 둔다.
(11) 성경보다 경험을 더 우위에 둔다.
(12) 성경보다 주관적인 소명 의식을 더 우위에 둔다.
(13) 성경보다 현대의 예언을 더 우위에 둔다.
(14) 성경보다 독특한 상황을 더 우위에 둔다.
(15) 성경의 가르침을 농담으로 여겨 왜곡한다.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이런 주장들은 신학적 자유주의로 향하는 심각한 경향을 드러낸다.(p.195-196)
이 책의 목적은 복음주의 페미니즘을 지지하기 위해 자주 사용되는 주장들이 성경의 권위를 크게 훼손하고 있는 현실에 대해 깊은 우려감을 표명하는 한편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방식으로 성경의 권위를 훼손하는 운동이 옳을 수 있단 말인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평등주의'를 가르치고자 하셨다면 그 개념을 성경에서 발견하기 어렵게 만들어 이토록 많은 그릇된 방법을 통해 그것을 찾아내 옹호하게 하셨을 리가 만무하지 않겠는가?라는 의문을 제기하는 데 있다.(p.12)
"신학적 자유주의"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온전한 진정성을 소유하고 있고,우리의 삶속에서 유일무일한 절재적 권위를 지닌다는 것을 부인하는 사상 체계를 그리고 "복음주의 페미니즘"은 결혼생활이나 교회에서의 지도자적 위치가 남자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운동을 각각 가리킨다. 복음주의 페미니즘에 의하면 남자는 단지 남편이라는 이유만으로 결혼생활에서 지도자적 위치를 독차지할 수 없다. 지도자적 역할은 남녀가 각자의 은사와 욕구에 따라 동등하게 공유해야 한다. 교회에서도 지도자적 위치는 남자들에게만 국한되지 않는다. 남성은 물론 여성도 목회자나 장로를 비롯해 교회의 그 어떤 직분도 맡을 수 있다.(p.17-18)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들이 "자녀들아 주 안에서 너희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것이 옳으니라"(엡 6:1)와 같은 말씀을 읽고 오늘날의 자녀들이 부모에게 복종하는 것이 옳다고 결론짓는 이유는 그것이 새 언약의 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을 위해 기록된 말씀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즉 신약 성격이 그렇게 가르치기 때문에 그대로 적용하는 것이다. 대장금의 드라마에서 장금이가 음식을 먹고 들어간 재료를 맞추는 장면이 생각이 난다. 맛을 보니 그맛이 나서 재료를 이야기했는데 왜 그 재료를 말했느냐고 묻는말에 그 맛이 나서 그 재료를 이야기했다고 하는 장면이다. 성경이 그러하다해서 믿는 것인데 왜 그 말씀을 믿냐고 하면 어떤 말을 해야할까? 그러한것을 아닌것이라고 주장하려고 하니 길어지고, 논리가 희박해지고, 두서가 없어진다.
신약 성경에서 구약의 말씀을 언급한 부분들이 많다. 신약 성경의 저자가 구약 성경을 해석한 내용을 잘 이해할 수 없다고 해서 우리에게 그의 해석을 거부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건 아니다.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다면 신약 성경의 저자가 구약 성경을 잘못 해석했다거나 우리가 임의대로 거부할 수 있는 해석을 제시했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그것이 흔들리게 되면 우리의 믿음의 근간이 흔들리게 되고, 구원도 흔들리게 된다.
이 세대는 문화라는 통로를 통해서 비진리가 교회안으로 들어온다. 각 세대마다 그 문화 안에는 성경의 가르침과 반대되는 대중적인 견해들이 존재하고 있다. 깨어있지 않으면 어느새 자유주의에 물들게 된다. 조금씩 교회안에 스며든 자유주의가 잘못된 것인지 분별하지 못하고 설교에 전한다면 어떻게 될까? 서서히 끓는 물에 개구리가 죽어가듯이 진리의 복음주의가 훼손되며 더이상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하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이 좋아하는 말씀만 읽고 지키려하고, 자신이 싫거나 부담이 되는 말씀은 지키지 않게 되는 현상이 일어나지 않을까? 그렇게 하다보면 하나님의 말씀뿐 아니라 하나님의 권위마저 거부하고 내가 주인이 되는 삶을 살게 될 것이다. 누구에게서 어떻게 배우는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느낀다. 성경을 성경대로 가르치고, 배우며,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되어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이 서길 바래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