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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 경이로운 세계 속으로 숨어버린 한 남자의 이야기
패트릭 브링리 지음, 김희정.조현주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3년 1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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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결혼식이 열렸어야 했던 날,
형의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그해 가을, 나는 다니던 《뉴요커》를 그만두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지원했다.
그렇게 한동안은 고요하게 서 있고 싶었다”
상실..
고요..
두 단어만으로 이 책을 집어들기에 충분했다.
** p.164
가끔 나는 어느 쪽이 더 눈부시고 놀라운 것인지
잘 모르겠다는 생각을 한다. 위대한 그림을 닮은 삶일까,
아니면 삶을 닮은 위대한 그림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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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너진 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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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군가를 잃었다.
거기서 더 앞으로 움직이고 싶지 않았다.
어떤 의미에서는 전혀 움직이고 싶지가 않았다.
대학 졸업 후 선망 받는 《뉴요커》에 입사해 엠파이어 스테이트 빌딩이 보이는 고층 사무실에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누구보다 똑똑하고 배려심 깊던 형 톰이 젊은 나이에 시한부 암 진단을 받고 세상을 떠나자 깊은 상실감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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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기억 속에 그 미술관은 쥐죽은듯 고요해서 조각상들이 방금 누군가가 던진 마법에 걸린 듯 보였다. 너무 조용해서 걸음을 옮길 때마다 창백한 색깔이 돌 바닥에 올리는 우리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어릴 적 엄마와 형과 함께 갔던 미술관을 기억해 내고 그런 곳이라면 그의 슬픔이 잠시 머물러도 괜찮을 것 같다고 생각한다. 그리고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슬픈 도피를 시작한다.
[연대속에서 회복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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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밴더빌트 대학교에서 경영학을 공부 하고 톡으로 돌아가서 승승장구한 끝에 한 대형 은행의 ‘넘버 쓰리 맨’이 되었다. 하지만 위험을 무릅쓰고 부패 거래를 막으려다 권력자들을 적으로 만들고 말았다. 그러다 사건이 하나 터졌고 1990년대 초반부터 망명자 신분으로 뉴욕에서 살게 되었다.
암살 위협을 겪고 미국으로 망명한 이민자 출신의 동료, 보험회사에서 일했던 동료, 문학가로서 등단을 꿈꾸는 동료, 벵골만에서 구축함을 지휘했던 동료, 유치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동료 등 그야말로 다채로운 출신과 배경을 지닌 이들.
푸른 제복 아래 저마다의 사연을 품은 동료들과 작지만 따뜻한 인사를 건네고, 무심한 듯 격려하고, 함께 편견에 맞서는 과정에서 저자는 엇나갔던 삶의 리듬이 조금씩 맞춰지는 것을 느낀다.
[함께 숨쉬던 작품들로 회복하기]
‘세계 3대 미술관’이라 불리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은 7만 평의 공간, 300만 점의 작품, 연 700만 명의 관람객을 자랑하는 미술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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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저 나와 렘브란트, 나와 보티첼리, 나와 실제로 거의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이라 믿어질 만큼 강렬한 환영들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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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분 후 수업 그룹은 떠나고 나는 아프리카 미술 전시관에 홀로 남겨진다. 월요일에는 근무자들이 더 띄엄띄엄 배치되기 때문에 완전히 혼자다. 전시관을 탐험할 기회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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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과 경건함 그리고 기진맥진한 몸과 마음을 표현한 그 소묘들을 다시 바라본다.
매일 배치 받는 구역에서 새로운 작품들은 만난다. 고요히 바라 보며 다시 한 번 섬세한 표현들을 감각해 본다. 작품들에는 인생과 역사, 고통과 기쁨 등 저자의 슬픔과 견줄만한 것과 그 이상의 것들이 날마다 함께 숨을 쉬고 있다.
신을 향한 비난이 담긴 문장, 초상화에서 발견한 침울함. 저자는 자신이 고민하던 몇 가지 질문들을 인간적으로 바라보기도 했다. 그가 이곳에서 바라 보고 느낀 10년. 경이로운 세계속에 둘러싸인 시간은 그에게 충분한 회복이 되었고 다시 일상으로 나아갈 용기를 마련해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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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년이라는 것이 그 자체로 여정이라기보다는 그동안 추구하던 성장과 변화를 마무리 짓는 최종 목적지 같은 시기라 생각하는 쪽이 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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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일상과 인문학을 경계를 허물고자 하는 지적인 책을 읽었습니다. 그의 사고와 문장력에 박수를 보냈는데 이번 책은 거장들의 작품을 보여주는 지적인 책이라니 제가 읽을 복이 많나 봅니다. 물론 미술관 이야기 그 이전엔 상실을 경험한 이의 이야기가 있지만요..
누구나 예기치 못한 인생을 마주할 때가 있습니다. 무너져 내리는 대신 엄마와 형과 함께한 기억에서 기인한 아름다운 도피처를 선택한 그의 걸음이 다행스러워요. 덕분에 만난 그의 이야기 길은 독자에게 참 고마운 일이고요.
이 책을 읽고 나서 누군가는 미술관의 경비원을 지원하고 싶은 맘이 들 수도 있겠죠? 누군가는 가까운 미술관을 방문해 자신의 고민을 나눌만한 작품을 만날 수도 있을 테고요. 무엇이든 우리에게 회복해야 할 것들이 있다면 이런 시간을 보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니 듭니다. 예상치 못한 상실과 아픔처럼 예상치 못한 곳에서 회복의 시간을 얻을 수도 있을 테니까요.
“나아가야 할 발걸음이 멈춰버린 이들,
소란한 세상에 지쳐 완벽한 고독을 꿈꾸는 이들에게
잔잔하지만 묵직한 사색의 시간을 선사한다.”
- 출판사 서평 중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고요한 회복의 시간이 필요한 당신에게 추천해 봅니다.
시공간을 넘어선 사람과 예술이 들려 주는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