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의 바다 - 제12회 문학동네작가상 수상작
정한아 지음 / 문학동네 / 2007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뒹구르르 굴러들어온 내 인생에 축배를...

 

                                                정한아의 [달의 바다] 속으로 쑤욱!

  

 

 

 가끔 난 내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나를 위한 거대한 '트루먼 쇼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한다. 수백, 수천 만의 사람들이 나를 지켜보고 있고, 나는 내게 주어진 24시간을 그들에게 보여준다. 다만 나만 그것을 알지 못한다. 그들은 나를 통해 울고 웃는다. 나는 어떤 거대한 존재가 나를 지켜보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 콧구멍을 후비거나 큰일을 보러 갈 때면 조금 망설여지긴 하지만 그래도 그럭저럭 살아간다. 그리고 어떤 기운에서 벗어나면 난 누군가가 지켜보는 삶이 아닌 진짜 삶을 위해 안간힘을 쓴다. 이곳이 아닌 바다 건너 어디론가로 가면 분명히 새로운 세상이 펼쳐질 거라고 믿는 것이다. 

 

 그 믿음이 나를 현실의 세계로 이끈다. 그것이 나를 다시 일으킨다. 환상이라는 화려한 색채가 없었더라면 난 한걸음도 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래, 우리는 이렇게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가고 있지만 단 한 명도 같은 세계를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지극한 현실주의자들도 자신의 무의식 속에 박힌 환상 하나 쯤은 가지고 있으니까. 정한아의 소설, '달의 바다'가 나를 새로운 세계로 이끌었다. 그리고 문장과 문장, 단어와 단어 사이에서 나는 내게 주어진 우연한 일상을 제대로 살아가기 위한 강력한 긍정을 그녀에게 선물 받았다.

 

 

 목표를 세운다. 그 목표가 인생 그 자체가 된다. 자꾸만 실패한다. 그것이 진짜 원했는지조차 헷갈린다. 정말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 희미해졌다. 필연적인 결과로 죽음을 생각한다. 그래서 기자 시험에 여러 번 떨어진 은미는 알약을 잔뜩 사다가 자살을 준비했다. 더이상 이 세계에서 자신이 의미있지도 않을 뿐더러 뭔가를 해야할 필요성이 없다는 확신이 선다. 그래, 자신을 버리기로 한다.

 

 은미와 가장 친한 친구 민이. 그는 훤칠한 키에 연예인 뺨치는 외모를 가진 남성이다. 하지만 육체만 그러할 뿐, 그의 이성은 그가 이미 '여성'임을 충분히 피력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성과 감성 사이에서,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생과 죽음 사이에서 자신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고분분투하는 그는 섬세하고 따뜻하다. 진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단 한명쯤은 자신을 믿어주는 이가 필요하다. 괜찮다고, 정말 네가 원하는 삶을 살길 바란다고 응원해 줄이가 필요하다. 민이 뿐 아니라 모두가 그러하듯이.

 

 이야기는 은미의 자살 결심으로부터 시작되었으나, 갑작스레 할머니의 계획이 끼어들었다. 어린 시절 결혼 실패로 아이만 남겨두고 떠난 고모를 찾아가라는 임무가 은미에게 주어졌다. 왜 자신이 그 일을 해야하는지도 모른 채, 은미의 죽음은 도시락통 속에 갇힌 알약으로 보류되었다.

 

 민이와 함께 은미는 미국행 비행기를 타고 렌트카를 타고 고모의 집으로 향한다. 우주 비행사가 되어 비밀 편지를 부친 고모. 딸의 삶과 꿈을 존중해주었던, 언제까지나 응원해 주었던 할머니. 민이, 은미, 고모, 할머니까지 그들은 삶의 중대한 선택을 해야만 했고, 그들이 만들어 놓은 환상 속에 적절하게 현실을 섞어 생을 살아내고 있었다.

 

 

 고모는 우주비행 대신 샌드위치를 만들어 알 수 없는 곳으로 보내는 일을 하루도 빠짐없이 하고 있었다. 또한 뜻밖에도 돌이킬 수 없는 과거에 대해 후회 대신 자신의 선택을 존중하고 있었다. 가끔은 숨을 쉴 수조차 없는 고통이 찾아오는 고모. 폐에 생긴 낭종으로 인해 쇼크를 일으키는 것이다. 고모는 자신만의 세계에서 잘 살고 있노라고 엄마에게 보여주고 싶어 아름다운 거짓말로 편지를 써왔다. 자신을 응원해준 엄마에게 아름다운 모습을 들려주고 싶었던 거다. 고모는 자신만의 삶을 잘 살아내고 있었다. 꼭 꿈꿔왔던 일을 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나는 종종 꿈꾸는 일을 해야만 행복해질 거란 착각을 한다. 누군가가 인정을 해주어야만 나의 존재가 반짝거릴 거란 터무니없는 오해 속에 빠져산다. 꿈꿔온 일에 가닿는 과정 속에 우리에게 찾아오는 생각지도 못한 삶이 있다. 그것은 온전히 우리들이 받아들어야할 삶이라는 걸 이 소설에서 말해준다. 그 현실을 무작정 손사래치며 내쳐버릴 것이 아니라 그 속에서 진짜 삶을 찾는 것. 우주비행사가 아닌 우주비행모형이 가득한 곳에서 샌드위치를 만들고 있더라도 그 속에 더 나은 것을 발견할 수 있도 있는 것 아닌가.

 

 미국에서 한국으로 돌아와 민이는 몸과 마음 모두 여성이 되기 위해 수술을, 은미는 할아버지가 경영하는 남노갈비집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한다. 점점 호흡이 힘들어지는 고모는 할머니에게 마지막 편지를 보내는 걸로 이 소설은 끝이 난다. 차라리 공기가 존재하지 않는 우주 속에서 더 속 시원히 숨을 쉬며 훨훨 날아다닐 수 있는 고모의 편지는 아름다웠다.

 

 언제든지 명령이 떨어지면 저는 이곳으로 완전히 정착할 준비를 시작해야 돼요. 그때가 되면 더이상 편지를 쓰지 못할 거예요. 지구와 달을 오가는 우체부는 없으니까요. 만약에 그런 날이 오더라도 엄마, 제가 있는 곳을 회색빛의 우울한 모래더미 어디쯤으로 떠올리진 말아주세요. 생각하면 엄마의 마음이 즐거워지는 곳으로, 아, 그래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나는 달의 바닷가에 제가 있다고 생각하세요. 그렇게 마음을 정하고 밤하늘의 저 먼 데를 쳐다보면 아름답고 둥근 행성 한구석에서 엄마의 딸이 반짝, 하고 빛나는 것을 찾을 수 있을 거예요. 그때부터 진짜 이야기가 시작되는 거죠. 진짜 이야기는 긍정으로부터 시작된다고, 언제나 엄마가 말씀해주셨잖아요? -p.161

 

 

책 속을 헤매다가 도망치듯 살아온 내 삶을 다시 끄집어 보았다. 이곳이 아닌 저곳으로 가면 멋진 신세계가 나를 두 팔 벌려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가장 행복한 순간은 언제나 다른 곳으로 갔던 그 끔찍한 순간이 아니라 가기 전 상상 속에서 반짝반짝 빛나던 화려한 내 모습을 그리고 있을 때였다. 나와는 별개로 트루먼은 자신의 삶을 개척했고, 늘 떠날 인사를 준비했고, 무대 밖의 자신의 삶을 찾아냈다. 과연 그는 행복했을까. 사람마다 행복의 기준은 다르겠지만 행복만으로 가득한 삶은 없을 것이다. 선택과 갈등, 고민과 아픔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어떤 세계에 발을 담그는 순간부터 갈등은 시작된다. 그러나 나의 결론은 그랬다. 내가 깨달은 삶의 긍정은 굴러들어온 인생을 모르는 척 하지 않고 다시 그곳에서 오뚜기처럼 일어나 꿋꿋하게 살아내는 것. 그것이 '진짜' 내 자신의 이야기가 시작되는 시점이었다. 뒹구르르 지루한 내 인생에 축배를 들어본다. 부라보!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프랑켄슈타인 (무선) ㅣ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94
메리 셸리 지음, 김선형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프랑켄슈타인!

 

당신은 괴물이 아니었습니다. 다만 괴물을 창조해낸 인물이었죠. 당신의 비상한 두뇌와 과학도의 천재적인 지식물로 탄생한 괴물. 추악하고 험악해서 보는 것만으로도 토악질을 일으키고 모든 이의 얼굴을 찡그리게 만드는 그 괴물. 그것은 당신의 소산물이었습니다.

 

당신을 알기 전, 나는 자주 친구들의 얼굴이 엉망으로 일그러질 때마다 "뭐야, 프랑켄슈타인이야?" 하는 농담을 즐겨해왔습니다. 바로 당신이 괴물의 형상이라도 믿었던 거죠. 당신은 자신이 만들어 놓은 창조물을 내 몰라라 했습니다. 혼자 팽겨쳐 놓고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아무 일도 하지 않은 냥 자연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며 즐겼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살인이 일어났을 때...... 당신은 잊고 있었던 당신의 창조물을 떠올렸지요.

 

그랬습니다. 그 괴물은 당신의 소중한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갔습니다. 태어나자 마자 축복 속에 휩싸여 환한 빛을 두르고 행복에 겨워 어쩔 줄 몰라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영문도 모른 채 버려지고 찢겨지는 자도 있습니다. 그 괴물은 후자에 속했죠. 자신이 어디에서 온 지도 모른 채, 순수한 마음 하나로 버텨내며 사랑을 갈구했습니다. 그게 뭐 그리 잘못된 일인가요? 진심을 다해 따뜻한 마음을 원했고 남몰래 가난한 사람을 도왔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게 무엇이었나요? 사랑을 배워본 적도, 받아본 적도 없는 이가 자신의 모든 걸 내걸고 도와주었을 때에 그가 바란 건 많은 것이 아니었을 겁니다.

 

그 모든 파괴와 고통과 잔인한 살인은 응당 당신이 받아야 할 짐이었습니다. 아, 물론 알고 있습니다. 괴물이 자신과 같은 형상을 하나만 더 만들어 달라고 했을 때, 그와 함께 멀리 멀리 도망가서 살아가겠다고 했을 때, 당신은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이익보다 인류의 미래를 생각했다는 것을요. 하지만 당신이라도 그 괴물을 품어 줄 수는 없었나요. 그 찢겨진 마음을 의심이 아닌 사랑으로 따스하게 감싸줄 수는 없었나요.

 

사랑하는 사람을 잃고 앙상해진 채로 복수라는 하나의 감정만으로 버텨내며 앙 물며 생을 살아내고 있을 때, 나는 숨이 막히도록 힘겹고 당신의 여정이 아팠으나 그것보다 더 당신에게 쫓김을 당하면서도 관심 받고 싶어 하는, 마지막까지도 사랑을 바랐던 괴물 때문에 더 많이 아팠습니다.

 

마지막 장면은 어떻게 펼쳐질까 궁금해 하며 책을 손에서 놓지 못했습니다. 내가 읽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당신이 그려내고 있는 이야기가 모든 게 환상은 아닐까 하며 치를 떨었습니다. 그 모든 살인은 괴물이 아닌 당신이 행한 건 아닌가 의심도 했습니다. 제 예상대로 흘러가진 않았습니다. 결과는 처참했습니다. 아무것도 남은 것이 없이 상처투성이만 여기저기 공기 중에 떠다니는 것만 같았습니다. 그 상처투성이가 어디엔가 뿌리를 내려 잘못 없는 누군가의 가슴에 생채기를 낼까 두려웠습니다. 괴물은 결국 당신의 가장 어두운 부분의 자리 잡고 있던 당신의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아니 어쩌면 그 괴물은 나 자신일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감싸주고 싶고 아껴주고 싶었습니다.

 

 

덧붙여 이 생에 함께 머무를 수 없었던 당신의 그림자였던 P에게 :

그래도 사랑해야 할, 내 어둠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너에게 - 한때는 괴물이라 불렸던 너-

다음 생엔 꼭 추함이 아닌 아름다움으로, 찡그림이 아닌 환한 웃음으로, 따뜻한 포옹으로, 행복한 삶으로 다시 만나자. 안녕, 나의 그림자. 나의 괴물이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살아줘서 고마워요 - 사랑PD가 만난 뜨거운 가슴으로 삶을 껴안은 사람들
유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에게 건네는 말, "살아줘서 고마워요"

 

 12월 이맘 때즈음이면 늘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분명 그때도 겨울이었을텐데 왜이리도 따뜻하게만 느껴지는지. 사람의 온기라는 것이 겨울이라는 시린 계절을 거슬러 따뜻한 봄으로도, 뜨거운 여름으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정신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마지막 날, 폐쇄병동 안 조그만한 책방에 열 사람이서 동그랗게 앉아 있었다.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맞주치던 그때. 우리는 6개월 간의 시간을 정리하며 마지막 날을 기념하려고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양손 가득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서로에게 느꼈던 이야기들을 했다. 늘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사람이, 다른 세상 속으로 시선을 던지며 격렬히 기도 드리던 사람이, 필기를 하다가 노트를 죽죽 찢어버리며 화를 내던 사람이, 도저히 그 어떤 것도 하기 싫다며 뛰쳐나갔던 사람이 그토록 슬픈 눈으로 나의 마지막을 아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전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날 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그들과 교감한 적 없다고 여겼던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고, 비록 나와 다르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나처럼 위안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구든 그랬다. 살아있다는 건 뭔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고, 그건 누구에게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그곳에서 함께 했던 6개월이란 시간이 고마웠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값지고 아름답게 여겨졌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 아무것도 일궈낸 것이 없다고 여겼지만 나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그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때 그 어떤 순간보다도 큰 위로와 위안을 받았고, 더 열심히, 더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그 모든 것들은 금세 잊었고, 사람에 치이고, 세상에 치이며 누군가를 원망하고 불평하며 감사도 모른 채 그럭저럭 살아갔다.

 

 내 20대를 돌이켜보면 습관처럼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왜 그랬는지 무언가 늘 우울했고, 불안했고, 힘겨웠다. 무기력함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열등감이 날개처럼 내 등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감정에 파묻혀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보며 자주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기도 했지만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며 금세 포기해버렸고, 이 시대를 사는 슬픈 자화상이 된것 마냥 우울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덧 나는 삼십대로 들어서 있었고,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달에 이 책, 『살아줘서 고마워요』를 만났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내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줄 이야기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줄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바로 이 책, 『살아줘서 고마워요』.

 

 다큐 피디가 만난 뜨거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띠지에는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적이 있는 방송 제목들이 눈이 띄었다. '안녕, 아빠', '풀빵 엄마', '너는 내 운명'.... 나는 사실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휴먼다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극한 상황에서 끝끝내 무언가를 해내는 모습, 가난하고 힘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아픈 사람 옆에서 평생을 병간호를 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람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운명을 믿고, 위대한 사랑을 믿고, 사람의 진심을 믿는다고 자부해왔지만 깊은 내면에서는 그런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 가식일 뿐이라고 치부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애써 외면해온 것들을 나는 한 자 한 자 더듬어 가듯 그들의 절절한 사연들을 읽어내려갔다. 나는 그 사연들을 결코 외면하지 못했고,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툭, 하고 눈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졌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토록 대단한 일이었던가. 그저 숨이 붙어 있어서, 목숨줄이 끊어지지 않아서 질질 끌려 오듯 살아왔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 세상의 빛을 1초라도 더 보기 위해 아픔을 견뎌내는 사람들, 그것을 지켜보는 가족들, 몇 년간 병수발을 하면서도 그저 살아있어서 고맙다는 남편, 그것을 지켜보는 아내. 시리면서도 따뜻했고, 아프면서도 아름다웠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얼마간 마음을 쓸어내리고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했다. 죽을 병에 걸려 아픈 몸을 이끌고 나는 아이를 위해 마지막까지 풀빵을 구워낼 수 있을까. 서글픈 울음 대신 가슴으로 웃을 수 있을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그 사람이 아프다. 몇 년이 지나도 차도가 없다. 처음 가진 그 마음으로 지속되는 그 병고를 모질게 싸워낼 수 있을까. 계속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 옆에 남을 수 있을까. 정의를 위해 내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한 가지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고 내가 믿는 것들을 위해 끝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

 

 때론 내 마음의 위안이 타인의 불행이나 슬픔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그 사연들을 읽으며 한편으론 내 일이 아니라서 안도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 일일수도 있다는 마음에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그 아픔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로 다가설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의 온도를 1도라도 높일 수 있는 거라면... 그것이 때론 살고 싶지 않는 내 삶에 커다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가 반짝이는 이유가 된다면.... 내 조그만한 손길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꾸준하고 질기게 노력하면 조금씩은 움직인다는 것을. p.223

 

그 아픔과 힘듦과 슬픔을 짊어지고 또다시 한걸음 나아가는 존재. 그것이 사람이다.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상처에도 아파하지 않아 강한 것이 아니라

맥없이 흔들리고 끝없이 아파하면서도 살아냄을 멈추지 않기에 결국 강한 것이다. p.173

 

 다큐 피디로 살아가는 유해진 PD는 방송과 현실 사이, PD와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진솔한 모습에서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나 또한 경제학과를 다니면서 세상에 대한 변화를 꿈꿨던 시절이 있었다. 어쭙잖은 운동이랍시고 피켓을 들고 번화가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도로를 향해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곤 했었다. 무엇이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그들의 대열에 끼어 그렇게 뭔가를 외치고 칼바람을 가로지르고 나면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이 된냥 유쾌해지곤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 괜시리 부끄러워졌다. 스스로가 만들어난 잣대로 가치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면서 내가 생각한 영역에서 벗어난 것들은 무시하고 하찮게 여겼던 시간들. 가슴으로 느껴보지 못한 허위로 가득찬 지식들을 두 손에 움켜쥐고 나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포기했던 수많은 일들이 생각이 났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떻게든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얼마간 무력해져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면 죽음을 택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같은 시기를 지나오면서 유해진 PD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유해진 PD는 치열한 고민의 결실로 다큐 피디가 되어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고민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기웃거리다 길을 잃은 듯 여기 멈춰 서 있다는 것. 그런데 그가 퍼뜨린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내려앉아 나를 뒤흔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내가 지닌 가슴에게 자꾸만 묻게 된다. 너의 아름다움의 순도는 몇 퍼센트냐고. 누군가를 위해 뜨거운 가슴을 내어준 일이 있느냐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내게 진짜 모성애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 책,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내게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책,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미래와 희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책, 현실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을 껴안고 살면서도 아름다움을, 따뜻한 온기를 전해줘야할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 『살아줘서 고마워요』. 이 책은 내 마음의 빈 공간에 다가와 깊은 울림으로 퍼져나갔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달, 12월이다. 오랜만에 코끝이 찡하도록 울었더니 개운해졌다. 늘 울보였던 나의 새해 소망은 한결같이 '울지 않기'였지만 이번 새해에는 더 많이 감동하고,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느껴보자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나의 가족에게, 나의 친구에게,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그리고 아직도 가끔은 헤매고 방황하는 나의 내면에게 뜨겁게 전하고 싶다.

           

                   "살아줘서 고마워요."

                                                              "당신이라서, 그저 당신이라서 고마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소설 주목 신간 작성 후 본 글에 먼댓글 남겨 주세요.

 

 올 한해는 내게 선물 같은 한해였다. 유난히 책을 많이 읽기도 했고, 혼자만의 시간을 많이 누리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책과 관련된 기분 좋은 소식들이 많이 들려왔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알라딘 신간평가단에 당첨된 일이다. 12월부터 새로 나온 책들 중에 관심이 가는 책들을 훑어보며 이야기하는 시간. 새로 나온 책을 설레는 마음으로 훑어보는 일 또한 축복이리라.

 

순전히, 나의 개인적인 취향이라는 것만 알아 두시라!

 

 

 

장은진 작가의 두번째 소설집이 나왔다. '빈집을 두드리다'.

 

제목은 허전하고 외로운 느낌이 가득한데, 표지 그림은 왠지 모르게

그 텅빔이 따뜻하고 아늑하다. 장은진 작가의 첫 장편소설이었던 '아무도 편지하지 않다'는 쉽게 읽히지만 여운이 길게 가는 소설이었다. 아마 이 소설집도 그러지 않을까 싶다. 여전히 고독 속에서 자신과의 사투를 벌이며 글을 쓰고 있는 작가의 모습이 떠오르는 듯 하다. 아이러니하게도 그 고독과의 사투 속에서 발견된 생각이나 느낌들이 함께 하는 우리들에게 묘하게 힘이 되고, 용기를 준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누군가 나를 생각하고 궁금해한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 일인가. 그게 증오든 미움이든.
나는 나를 찾는 사람에게 언제든 달려갈 준비가 되어 있다. 그들이 내 페이지를 궁금해하듯 나 또한 그들이 궁금하기 때문이다. 난 나와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알고 싶다. 179쪽

 


 

 

 

2012년. 올해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모옌의 작품 '열세 걸음'

그 이름만으로도 온 세상을 들썩이게 했던 그의 작품을 나는 한 번도 만나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번에 한 번 만나보려고 한다.

 

한 걸음부터 열세 걸음까지 차근차근 준비되어 있는 그 걸음을 따라 가면 어떤 이야기들을 내게 들려줄지 궁금해진다.

 

환상적인 느낌으로 민담, 역사, 현실을 잘 버무려 비극적인 모습을 잘 표출해낸다는 평을 받고 있는 그의 작품. 무척 기대된다!

 

 

 

 

 

“아주 오래된 아름다운 전설이 하나 있어요. 참새가 한 걸음씩 내딛는 것을 본 사람이 있었대요. 참새가 병아리처럼 한 발 한 발 걸어가는 걸 보면 하늘에서 행운이 뚝 떨어진대요. 참새가 한 걸음 내디디면 횡재수를 안겨주고, 두 걸음을 내디디면 관운을 안겨주고, 세 걸음을 내디디면 여복을 안겨주고, 네 걸음을 내디디면 건강운을 안겨주고, 다섯 걸음을 내디디면 기분이 늘 유쾌한 상태를 누리게 되고, 여섯 걸음을 내디디면 사업이 순조로워진대요. 일곱 걸음을 내디디면 지혜가 곱절로 늘어나고, 여덟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가 잘하고, 아홉 걸음을 내디디면 이름을 온 세상에 떨치게 되며, 열 걸음을 내디디면 생김새가 멋지게 바뀌고, 열한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가 아름다워지며, 열두 걸음을 내디디면 아내와 애인이 화목하게 어울려 자매처럼 친한 사이가 된다는 거죠. 하지만 절대로 열세번째 걸음을 보아선 안 된대요. 만일 참새가 열세번째 걸음을 내딛는 걸 보았다가는 앞서의 모든 행운이 죄다 곱절의 악운으로 바뀌어 당신 머리 위에 뚝 떨어져내린다지 뭐예요!” _ 552쪽

 

 

 

 

 

 

김형경 작가의 자전소설이었던 이 소설, 20년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출간이 되었다. 소설로도 명성을 얻었지만 심리에세이로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된 김형경은 소설을 쓸 때조차도 어쩌면 자신의 '성장'을 위한 '치유', '고통'에 의한 '승화'를 위한 글쓰기를 했던 걸까. 열두살부터 서른 세살까지의 성장과정을 그린 이 소설. 여성인 나에게는 읽어내려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을 것만 같아서 이 소설을 추천하고 싶다. 김형경 작가의 솔직함이, 담담하면서도 날카로운 그 글이 나는 좋다.

 

 

 

 

“언젠가, 지금 여기서 잃어버린 열쇠를 회한으로 떠올리는 날이 올지도 몰라. 그 열쇠로 열고 들어갈 수 있었던 방들에 대해 두고두고 미련을 갖게 될지도 몰라. 안타까운 상상 속에서 그 방은 점점 더 거대하고 화려하게 변하고, 그러면 일상은 늘 상대적으로 작고 초라하게 여겨질지도 몰라.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 내가 꿈꾸어온 것이 이렇게 버려져 녹슨 열쇠가 되게 할 수는 없어.”

 

 

 

 

지난 책과 이번 책 사이의 긴 시간, 나는 약풀 되기를 감히 꿈꾸기는커녕 약풀이 절실히 필요한 영혼이었다. (……) 느릿느릿 몸을 일으키는 동안, 세상을 보는 내 눈에 덮였던 비늘 한 점이 또 떨어져나갔다. 언젠가는 이 시기에 스친 것들에 대해 쓸 수 있으려니, 그건 무엇보다도 큰 위로가 되었다._‘작가의 말’

 

작가의 말을 보고 이끌린 이 책. 너 없는 그 자리. 제목만으로도 아린 기분이다. 겨울과 딱 어울리는. 뭔가를 비워내기에 좋은, 아파하기에 적당한, 없는 무언가를 그리워하기에 알맞은 이 계절에 딱 어울리는 그런 소설집이 아닐까 싶다. 빠르게 빠르게 나아가는 이 세상 앞에 느리고 느리게, 그리고 사이 사이 틈새를 아는 이 작가의 시선을 따라가고 싶은 12월이다.

 

 

당신, 잘 지내요?

사건사고가 차고 넘치는 요즘, 뉴스거리와는 (다행히) 상관없는 우리의 일상은 일견 무탈해 보인다. 어제와 다르지 않은 오늘이 지나가고, 또 내일도 다르지 않을 것임을 짐작하면서 우리는 잠이 든다. 하지만 바로 같은 순간에, 늘 같아 보이는, 평온해 보이는 그 일상과 함께 자라나는 불안과 상처의 자리 역시, 우리는 모르지 않는다.

고개만 돌리면 환한 햇살인데, 그 한 발짝을 내딛지 못해 그늘에 갇혀 있어야 하는 날들이 있다.
_「그리고, 축제」中에서

 

 

 

11월의 마지막 날. 책들을 살펴보면서 미리 12월을 준비하는 느낌, 나쁘지 않다.

좋은 예감이 뒤따를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첫 테이프를 끊었으니, 이제는 축제처럼 즐길 차례다.

한 해의 마지막 달이지만 나에겐 또다른 시작 같다.

 

2013년을 월요일부터가 아닌 일요일부터 시작하는 기분으로,

1월이 아닌12월부터 시작하고 싶다.

 

11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을 단단히 새겨 두며.

 

주목 신간을 마친다!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 정진홍의 900킬로미터
정진홍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3년 전, 나는 대단한 결심 하나를 가지고 무작정 짐을 꾸려 떠났다. 회사엔 사표를 내고, 살고 있는 집으로부터, 부모님으로부터 독립을 하고는 부산토박이였던 나는 서울로 갔다. 나는 다른 사람들과 다르다고, 더 특별한 내가 되겠다고 그렇게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왔다. 그 결심을 하는 데는 일주일도 걸리지 않았지만 아무런 준비도 계획도 없이 떠나온 나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한 평짜리 고시원에 갇혀 머리를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 봤지만 답이 나오지 않았다. 창문도 없는 방 안에서 오로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가만히 누워 이제까지 살아온 내 인생에 대해, 내 존재에 대해 생각해보는 일. 그것이 전부였다. 나는 결국 장이 꼬여 탈이 났고, 극심한 두통에 시달리다가 얼마 간 나 자신을 놓아버린 듯 내내 잠만 잤다. 움직이는 것도, 생각하는 것도, 먹는 것도 멈춘 채 그렇게 딱 일주일을 더 있다가 나는 다시 떠나온 자리로 돌아갔다. 부끄럽고 수치스러웠지만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채 그렇게 제자리로, 원점으로 돌아갔다.

 

 문득 그 시절에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이 책을 만났다면 내 삶은 조금 달라졌을까, 하고 자문하게 된다.

 

 '마지막 한 걸음은 혼자서 가야한다' 제목만으로도 강하게 이끌렸던 책이 내 손으로 들어왔을 때 마치 운명 같았다. 그건 아직 가보지 않은 산티아고 길을 언젠가 나도 걷게 되리라는 예감일지도 몰랐다. 그렇게 만난 책 속에서 나는 정진홍 작가와 함께 짐을 꾸렸다. 마치 그 분의 영을 따라가는 분신처럼 짐을 꾸리고 단단한 결심 한 토막을 가슴이 가득 담아 함께 길을 떠났다. 눈이 휘몰아치는 상황에서 잘못된 표지판을 보고 길을 헤맬 때에도, 홀로 있는 공간에서 바들바들 추위에 떨면서 자신과의 사투를 벌일 때에도, 나는 숨이 가빠졌고, 무언가가 벅차오르듯 숨을 몰아 쉬었다. 길 위에서 만난 동료가 사라진 곳에 덩그러니 동료의 수레만 놓여져 있을 때엔 고삐가 풀린 망아지마냥 멍해지기도 했다. 그렇게 정진홍 작가가 걸어간 900킬로미터의 길속에서 나는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치열한 삶의 의미를 발견했다.

 

 때로 우리가 가는 길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전혀 알 수 없을 때가 있다. 어쨌든 길을 정해 걸을 때에도 긴가민가 헷갈릴 때가 있고, 다시 돌아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하며 갈등하게 될 때도 있다. 그런 순간에 정진홍 작가는 그 길이 맞든 틀리든 자신의 페이스 대로, 자신이 믿고 따르는 대로 일단 한 번 가보라고 말한다. 느리게 가든, 빠르게 가든 그것은 이미 중요하지 않다. 자신의 생을 자신이 믿는대로 선택하며 사는 것이 진짜 삶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자기 페이스를 알고 그것을 유지하는 것이다. 느리면 어떠냐. 그것이 자기 걸음이라면 느린 것이 아니라 적당한 거다. 남들이 한 달에 걷는다는 길을 나는 두 달 걸려 걷는다. 하지만 그 느림 속에서 나는 더 많이 느끼고 더 많이 생각하고 더 많이 행복했다. p. 193

 

 진짜 삶- 그가 걷는 길 - 에는 수많은 감정들이 공존한다. 별것 아닌 일로 분노하고, 눈물이 날 정도로 감동하고, 터져나오듯이 울음이 쏟아지고, 누군가가 미워지기도 하고, 우울해지기도 하며, 기뻐서 어쩔 줄 모르는 순간들이 찾아오는 것이다. 변화라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매일매일 달라지는 하루하루의 경험에서 솟아오르는 감정들을 고스란히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정진홍 작가는 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토하듯이 눈물을 쏟아내고, 자신의 속에 있는 감정들을 표출하고 비워내면서 아이러니하게도 진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렇게 낯선 공간에서 홀로 있는 시간과 공간 속에서 철저하게 외로워진 후에야 우리는 어쩌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볼 수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자신의 모습을 알고 나면 그때서야 우리는 우리가 원하는 방향으로 '변화' 할 수 있게 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 나는 비로소 내 속에서 꿈틀거리는 뭔가를 발견했다. 험하고 거친 터널을 빠져 나온 것처럼 뭔가 명료해지고 선명해진 기분도 들었다. 그리고 내 귓속에 쩌렁쩌렁 울려 퍼지는 한 문장이 있었다. 그건 바로 '인간은 결코 패배하도록 만들어지지 않았다'. 바로 이 문장이 내 속으로 들어와 내 가슴을 쿵쿵 쳐댔다. 그건 마치 소설 '노인과 바다'에 나오는 노인이 끝끝내 상어떼와의 사투에서 승리한 것처럼 그것은 패배를 패배시키는 힘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노인의 이름은 '산티아고'였고, 그 힘을 가르쳐 준 곳이 산티아고 길이었다.

 

산티아고 가는 길은 나 되기 위해 걷는 길이다. 느리게 홀로 고독하게 걷는 길이다. 걸을수록 비워지고 걸을수록 채워지는 묘한 길이다. p.143

 

 생각해보면 나는 내가 경험한 모든 것들 중에서 결과가 좋지 못한 것이나 어떠한 길을 가다가 돌아가거나 포기하거나 멈춰섰던 모든 행위들을 내 인생에서 도려내고 싶었다. 지금의 나를 만드는 순간순간들이 모두 값진 것들인데, 좋지 못한 것들은 내것이 아닌냥 버려두고 가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무작정 모든 것으로부터 떠나왔던 시간들이 주마등처럼 내 앞을 지나간다. 지금은 너무도 까마득해서 희미해지고 조금은 사라진 기억들이 조금씩 되살아난다. 만약 그 경험들이 없었다면 결코 지금의 나는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멈춰섰다고 생각한 그때의 꿈들, 생각들. 어쩌면 지금도 현재진행중일지도 모른다. 잘못된 길이라고, 포기하며 아까운 시간을 낭비했다며 땅을 치고 후회했던 시절들조차도 어쩌면 내가 지금 가고 있는 길의 중요한 시작이 아닐까 싶다.  3년 전보다 내가 얼마나 더 성장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3년 후의 나, 그러니까 이 책을 읽고 난 후의 나는 내 마지막 한 걸음을 스스로 걸어가기 위해, 스스로 선택해서 나아가기 위해 안간힘을 다할 것이라는 것. 그래서 결국엔 내 삶을 값지고 멋지게 살아내어 이겼노라고 그래서 행복했노라고 웃으며 말할 수 있기를 고대한다.

 

 더 멀리, 더 높이 날기 위한 거대한 정지였던 산티아고 가는 길. 언젠가 걷고 있을 내 모습을 상상하며, 더없이 성장해 있을 내 모습을 기대하며.

 

삶에서 최고의 매력은 끝까지 하는 것이다. 이기고 지는 것이 따로 없다. 끝까지 하면 모두 이기는 거다. p.289

 

 

 

 

 


댓글(0) 먼댓글(0) 좋아요(3)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