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줘서 고마워요 - 사랑PD가 만난 뜨거운 가슴으로 삶을 껴안은 사람들
유해진 지음 / 문학동네 / 2012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당신에게 건네는 말, "살아줘서 고마워요"

 

 12월 이맘 때즈음이면 늘 생각나는 장면이 있다. 분명 그때도 겨울이었을텐데 왜이리도 따뜻하게만 느껴지는지. 사람의 온기라는 것이 겨울이라는 시린 계절을 거슬러 따뜻한 봄으로도, 뜨거운 여름으로도 만들 수 있는 것이라는 걸 그때 처음 알았다.

 

 정신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던 마지막 날, 폐쇄병동 안 조그만한 책방에 열 사람이서 동그랗게 앉아 있었다. 처음으로 서로를 마주 보며 눈을 맞주치던 그때. 우리는 6개월 간의 시간을 정리하며 마지막 날을 기념하려고 서로의 손을 잡았다. 그렇게 양손 가득 잡은 손을 놓지 않은 채로 서로에게 느꼈던 이야기들을 했다. 늘 멍하니 천장만 바라보던 사람이, 다른 세상 속으로 시선을 던지며 격렬히 기도 드리던 사람이, 필기를 하다가 노트를 죽죽 찢어버리며 화를 내던 사람이, 도저히 그 어떤 것도 하기 싫다며 뛰쳐나갔던 사람이 그토록 슬픈 눈으로 나의 마지막을 아쉬워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의 전율을 나는 잊을 수가 없다. 그날 난 이제까지 단 한 번도 그들과 교감한 적 없다고 여겼던 내 생각이 틀렸음을 알았고, 비록 나와 다르게 살아가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나처럼 위안을 줄 누군가가 필요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누구든 그랬다. 살아있다는 건 뭔가를 느끼고 있다는 것이고, 그건 누구에게나 고마운 일이었다. 그리고 그 날, 처음으로 그곳에서 함께 했던 6개월이란 시간이 고마웠다. 그곳에서 보낸 시간이 값지고 아름답게 여겨졌다. 같은 시간, 같은 공간 속에서 아무것도 일궈낸 것이 없다고 여겼지만 나는 그 사람들의 마음을 얻었다는 것을, 그것이 가장 큰 선물이라는 걸 알았다.

 

 나는 그때 그 어떤 순간보다도 큰 위로와 위안을 받았고, 더 열심히, 더 가치있는 삶을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이후 나는 그 모든 것들은 금세 잊었고, 사람에 치이고, 세상에 치이며 누군가를 원망하고 불평하며 감사도 모른 채 그럭저럭 살아갔다.

 

 내 20대를 돌이켜보면 습관처럼 '죽고 싶다'는 말을 달고 살았다. 왜 그랬는지 무언가 늘 우울했고, 불안했고, 힘겨웠다. 무기력함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니고, 열등감이 날개처럼 내 등에 딱 달라붙어 있었다. 나는 나보다 힘든 사람들을 보며 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생각보다는 내 감정에 파묻혀 나보다 잘난 사람들을 보며 자주 나락으로 떨어졌다. 대단한 일을 하고 싶다는 열망을 품기도 했지만 내가 뭘 할 수 있겠냐며 금세 포기해버렸고, 이 시대를 사는 슬픈 자화상이 된것 마냥 우울한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일쑤였다. 정신없이 살다보니 어느덧 나는 삼십대로 들어서 있었고, 결혼을 했고, 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올해의 마지막 달에 이 책, 『살아줘서 고마워요』를 만났다. 차갑게 식어가고 있는 내 마음을 뜨겁게 달구어줄 이야기들.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깨닫게 해줄 이야기들이 가득 담긴 바로 이 책, 『살아줘서 고마워요』.

 

 다큐 피디가 만난 뜨거운 삶을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 띠지에는 여기저기서 주워 들은 적이 있는 방송 제목들이 눈이 띄었다. '안녕, 아빠', '풀빵 엄마', '너는 내 운명'.... 나는 사실 시청자들의 눈물샘을 자극하는 휴먼다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극한 상황에서 끝끝내 무언가를 해내는 모습, 가난하고 힘들면서도 웃음을 잃지 않는 사람들, 아픈 사람 옆에서 평생을 병간호를 하면서도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람들. 나는 보고 싶지 않았다. 어쩌면 나는 운명을 믿고, 위대한 사랑을 믿고, 사람의 진심을 믿는다고 자부해왔지만 깊은 내면에서는 그런 것 따위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다 가식일 뿐이라고 치부해왔는지도 모르겠다.

 

 애써 외면해온 것들을 나는 한 자 한 자 더듬어 가듯 그들의 절절한 사연들을 읽어내려갔다. 나는 그 사연들을 결코 외면하지 못했고, 어쩌면 나에게도 일어날 지도 모를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자 어느 순간 툭, 하고 눈물이 터져나오기 시작했고 수돗물처럼 콸콸 쏟아졌다. 살아있다는 것이 이토록 대단한 일이었던가. 그저 숨이 붙어 있어서, 목숨줄이 끊어지지 않아서 질질 끌려 오듯 살아왔던 내가 아니었던가. 그런데 이 세상의 빛을 1초라도 더 보기 위해 아픔을 견뎌내는 사람들, 그것을 지켜보는 가족들, 몇 년간 병수발을 하면서도 그저 살아있어서 고맙다는 남편, 그것을 지켜보는 아내. 시리면서도 따뜻했고, 아프면서도 아름다웠다.

 

 마지막 장을 덮고 나는 얼마간 마음을 쓸어내리고 나에게 수많은 질문을 했다. 죽을 병에 걸려 아픈 몸을 이끌고 나는 아이를 위해 마지막까지 풀빵을 구워낼 수 있을까. 서글픈 울음 대신 가슴으로 웃을 수 있을까. 정말 사랑하는 사람과 결혼했는데, 그 사람이 아프다. 몇 년이 지나도 차도가 없다. 처음 가진 그 마음으로 지속되는 그 병고를 모질게 싸워낼 수 있을까. 계속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 사람 옆에 남을 수 있을까. 정의를 위해 내 모든 것들을 내려 놓고 한 가지 길을 향해 나아갈 수 있을까. 다른 사람들의 시선 따위는 무시하고 내가 믿는 것들을 위해 끝까지 달려갈 수 있을까.

 

 때론 내 마음의 위안이 타인의 불행이나 슬픔으로부터 나온다는 걸 알게 될 때가 있다. 나는 그 사연들을 읽으며 한편으론 내 일이 아니라서 안도를 했고, 다른 한편으로는 내 일일수도 있다는 마음에 가슴이 아파왔다. 하지만 그 아픔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누군가에게 따뜻한 온기로 다가설 수 있다면... 그것이 내가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의 마음의 온도를 1도라도 높일 수 있는 거라면... 그것이 때론 살고 싶지 않는 내 삶에 커다란 희망이 될 수 있다면... 살아내는 것만으로도 내 존재가 반짝이는 이유가 된다면.... 내 조그만한 손길이 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일조할 수 있지 않을까.

 

세상은 쉽게 바뀌지 않지만 꾸준하고 질기게 노력하면 조금씩은 움직인다는 것을. p.223

 

그 아픔과 힘듦과 슬픔을 짊어지고 또다시 한걸음 나아가는 존재. 그것이 사람이다.

어떤 시련에도 흔들리지 않고, 어떤 상처에도 아파하지 않아 강한 것이 아니라

맥없이 흔들리고 끝없이 아파하면서도 살아냄을 멈추지 않기에 결국 강한 것이다. p.173

 

 다큐 피디로 살아가는 유해진 PD는 방송과 현실 사이, PD와 인간 사이에서 갈등하는 진솔한 모습에서 더욱 인간적으로 다가왔다. 나 또한 경제학과를 다니면서 세상에 대한 변화를 꿈꿨던 시절이 있었다. 어쭙잖은 운동이랍시고 피켓을 들고 번화가 한복판을 가로지르며 도로를 향해 '신자유주의 반대'를 외치곤 했었다. 무엇이 이 세상을 따뜻하게 만드는가에 대한 진지한 고민 없이 그들의 대열에 끼어 그렇게 뭔가를 외치고 칼바람을 가로지르고 나면 스스로가 대단한 사람이 된냥 유쾌해지곤 했던 그 시절이 생각나 괜시리 부끄러워졌다. 스스로가 만들어난 잣대로 가치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을 구분하면서 내가 생각한 영역에서 벗어난 것들은 무시하고 하찮게 여겼던 시간들. 가슴으로 느껴보지 못한 허위로 가득찬 지식들을 두 손에 움켜쥐고 나와 맞지 않다는 이유로 포기했던 수많은 일들이 생각이 났다.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어떻게든 그 틀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나는 얼마간 무력해져 자본주의를 벗어날 수 없다면 죽음을 택하겠다는 결의를 다지기도 했다.

 

 같은 시기를 지나오면서 유해진 PD와 내가 다른 점이 있다면 유해진 PD는 치열한 고민의 결실로 다큐 피디가 되어 사람들의 의식을 변화시키고, 사람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녹이고, 세상을 더욱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애써왔다는 점이다. 그에 반해 나는 이리저리 흔들리며 고민의 결실을 맺지 못하고 휘청거리고 기웃거리다 길을 잃은 듯 여기 멈춰 서 있다는 것. 그런데 그가 퍼뜨린 뜨거운 가슴을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가 내 마음에 내려앉아 나를 뒤흔들었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래서일까. 내가 지닌 가슴에게 자꾸만 묻게 된다. 너의 아름다움의 순도는 몇 퍼센트냐고. 누군가를 위해 뜨거운 가슴을 내어준 일이 있느냐고.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내게 진짜 모성애가 무엇인지 알게 해준 책, '아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는 내게 진심을 다해 사랑하는 일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준 책, 이 사회의 일원으로 살아가면서 미래와 희망을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책임이 나에게도 있다는 걸 알게 해준 책, 현실 속에서 가장 현실적인 고민을 껴안고 살면서도 아름다움을, 따뜻한 온기를 전해줘야할 사람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책. 『살아줘서 고마워요』. 이 책은 내 마음의 빈 공간에 다가와 깊은 울림으로 퍼져나갔다.

 

 한 해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달, 12월이다. 오랜만에 코끝이 찡하도록 울었더니 개운해졌다. 늘 울보였던 나의 새해 소망은 한결같이 '울지 않기'였지만 이번 새해에는 더 많이 감동하고, 더 많이 울고, 더 많이 느껴보자고 다짐해본다. 그리고 나의 가족에게, 나의 친구에게, 나의 소중한 사람에게, 그리고 아직도 가끔은 헤매고 방황하는 나의 내면에게 뜨겁게 전하고 싶다.

           

                   "살아줘서 고마워요."

                                                              "당신이라서, 그저 당신이라서 고마워요."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