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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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의 생에서 좋아하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감각,
여러 장애물 사이에서도 좋아하는 일을 꿋꿋이 밀고 나가는 의지, 사랑과 꿈 사이에서의 방황과
빠르게 변하는 세상 속 없어지는 누군가의 자리.

대단한 사건은 없지만 평범해 보이는 일상조차
자세히 들여다보면 풍부한 세계라는 것을
이 책은 명확히 보여준다.

담담하고 담백한 문체로 진행되는 이 소설은
읽을수록 마음이 벅차올라 정말 아껴읽고 싶었다.
아끼고 보듬고 싶은 마음, 아껴 읽고 싶은 책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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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 순간 있는 듯 없는 듯, 그저 받아들이기만 하던 석주는 대학에서 문학 수업을 들은 후, ‘자신에겐 허용되지 않을 거라고 믿었던 어떤 세계 속에 자신이 틀림없이 속해있다’고 느낀다. 교한서가에 입사해 교정교열자로 업무를 시작해 산티아고북스의 편집자 된 석주. 그 모든 과정 동안 석주는 매번 자신이 이 일에 적합한 사람인지 고민한다. 익숙해지지도 능숙해지지도 않는 일을 좋아한다고 말할 수 있을까, 이 일을 얼마나 더 할 수 있을까, 계속하고 싶긴 한 걸까, 고민은 반복된다. 고민은 끝나지 않고, 학창 시절 내내 시대를 외면했던 그녀는 여러 책들을 맡으며 점차 오롯이 한 시대를 직면하게 된다. 자신의 마음을 곰곰이 들여다보고 고심해 만들어낸 결과일 것이다.

한편 자신이 배우는 학문이 죽음과 닮았다고 생각했던 석주와 어두운 곳, 지는 쪽으로 향하는 원호는 서로가 닮은 꼴이라는 것을 느끼며 사랑에 빠진다. 그러나 낭만적인 순간은 금방 지나간다. 자신이 마주하는 것은 죽음이 아닌, 세월을 견뎌낸 분명한 실재라는 것을 깨달았던 석주와는 달리 자신의 그늘에 머물러있던 원호는 결국 각자의 길을 간다. 불완전한 세계에 매료된 닮은 꼴의 사랑은 그 완성마저도 불완전하여 이루어지지 못한 것처럼 느껴졌다. (사랑과 꿈, 둘 다 쟁취할 순 없는 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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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인생이 담긴 책 속엔 어떤 내용이 들어가게 될까?
나의 책을 온전히 읽을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나뿐이겠지.
오직 나만의 것은 무엇인지, 내 마음을 천천히 들여다보자.
그렇게 내 삶도 돌아봤을 때 좋은 책 한 권이 되어있었으면 좋겠다.
그렇다면 오직 당신의 것은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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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주인공, 석주에게도 물론 애정이 있지만 책을 다 읽은 후 곱씹어 보았을 때 유독 마음에 남는 인물이 있었다. 석주에게 교정교열을 가르쳐주었던 ‘오기서’. 왜 내 마음에 박혔는지 표현은 못하겠어서 책 속의 문장들을 남긴다.

p.172) 헤어질 때 그는 건강하라는 덕담과 함께 연필 상자 하나를 건넸다. 석주도 언젠가 들어본 적이 있는 에버하드 파버사의 블랙윙 여섯 자루였다. 그것이 몇 해 전 단종된 귀한 물건임을 석주는 나중에 알았다. 셔츠 차림의 그가 묘하게 추워 보였던 까닭이 늘 끼고 다니던 가죽 토시의 부재 탓이라는 것도.

p.172) 석주는 그가 교열을 마친 원고들을 미련 없이 떠나보냈듯 자신의 삶도 그렇게 정리한 게 아닐까 생각했다. 어쩌면 평생 일터나 다름없는 교한서가를 떠나야 했을 때, 그는 늘 얼마간의 냉기가 감도는 거대한 자료실 어딘가에 자신의 남은 삶을 반듯하게 꽂아두고 나온 게 아닐까 하고.

p.173) 긴 세월, 자신에게 주어진 글을 살피고 다듬던 그의 묵묵함과 성실함에 대해, 자신이 알게 모르게 닮고 배웠던 그의 태도와 마음가짐에 대해.

p.175) 글을 대하는 그의 엄격함과 엄격함은 글을 다루는 모든 이에게 깊은 울림을 전할 수 있을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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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여전히 인문학 인간 - 남승현 에세이
남승현 지음 / 나무옆의자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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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기에 앞서 목차를 보며 내가 읽어본 책의 수를 세어 보았다. 이 책이 다루는 총 14권의 책 중 내가 읽어본 책은 고작 5권이었다. 일단 아쉬웠다. 뭔가.. 먼저 이 책에 나오는 고전들을 읽었어야 내가 이 책을 더 잘 씹어 삼킬 수 있지 않을까, 싶었기 때문이다. 어찌 되었든 내가 아직 읽지 않은 책들에 대한 통찰과 읽은 책들에 관한 리마인드가 되어줄 거란 기대로 이 책을 폈다.

일단 말하자면, 이 책은 고전들의 내용을 설명해 주는 책은 아니다. 고전들을 먼저 읽을 필요도 없었다. 한 챕터마다 하나의 고전을 골라 그 고전의 주제나 키워드, 한 문장을 중심으로 저자의 개인적인 경험을 녹인 에피소드를 풀어내며 삶의 지혜를 전수한다. 내가 생각했던 글의 흐름과는 달랐지만 그래서 오히려 더 좋았다.

이 책을 읽으며 인생을 살아가는 태도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공감과 사회적 책임을 버리지 않으며 챙기는 이기심, 세상을 이해하려는 지혜, 일상에서 찾는 행복, 우직하게 밀고 나가는 의지, 불안과 절망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태도, ‘개인주의가 팽배하고 모두가 각자도생 하는 시대’의 명랑함 등… 길지 않은 내용이지만 이 책에 나온 마음들만으로도 인생을 조금 더 풍부하고 재미있게 살아갈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다. 당연히 알고 있는 내용 아니냐, 묻는다면 반박할 수는 없겠다만 누구나 알고 있다고 실천할 수 있는 마음들은 아니지 않은가. 그 마음들이 이 책의 완전한 한 문장이 되어 내 마음에 박히는 느낌이 좋았다.

그리고 많은 문장들 사이에서도 유독 내 마음에 와서 콕 박힌 문장. “누군가 당신에게 너의 샘은 어디 있냐고 묻는다면 그 어떤 부끄럼도 없이 아직 찾지 못했다고 답하면 그만이다.” 어떤 질문이든 쉽게 답하지 못하고 말끝을 흐리기 일쑤였던 나는 취향이나 선호를 고민 없이 대답하는 사람들을 보며 남모를 부러움을 느끼곤 했다. 나는 왜 아직도 그 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중인 걸까, 싶은 때가 많았는데 이 한 문장으로 위로를 받은 느낌이었다. 인생은 어차피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임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었기 때문이다.

살면서 자주 펼쳐볼 책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럼에도 “소선은 대악과 닮아 있고, 대선은 비정과 닮아 있다”는 말은 진정한 선에 대해 다양한 질문을 던진다. 그리고 이러한 질문에 진지하게 고민하는 인간이 바로 인문학 인간이다. 항상 딜레마에 부딪히고 책임감을 시험받지만 그 속에서 자신의 선택을 떳떳하게 증명해 내는 사람, 그런 사람이야말로 선한 인간이라고 할 수 있다. (p.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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샴페인과 일루미네이션 현대문학 핀 시리즈 장르 9
허진희 지음 / 현대문학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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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니는 보하를 처음 본 순간 느낀다. 절대 친해질 수 없으리라고. 그러나 구니는 보하의 공주님 같은 빨간 애나멜 구두를 동경하며, 보하는 구니의 초연함을 동경하며 둘은 학창시절 떼어낼 수 없는 사이가 된다. 서로가 본인이 갖지 못한 걸 가졌단 이유로 둘은 친해졌고 그로 인해 멀어지기도 했다. 겉으로는 친한 관계였어도 둘은 서로의 어둠과 바닥을 털어놓지 않았고, 속내를 감춘 채 이어가는 관계는 금방 터져버리는 샴페인의 기포 같은 것이었다. 결국 구니는 보하를 잃었고, 보하가 남긴 감정들은 작별 인사를 받지 못한 채 구니의 주변에 부유한다.

나의 미성숙함과 어리석음으로 흘려보내야 했던 관계들, 흘려보내지 않기 위해 억지로 붙잡고 집착하던 나의 초라한 모습을 생각하며 읽었다. 없던 일처럼 덮어둘 수도 있겠지만 책의 마지막 구니의 모습처럼 그 때의 감정들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의 실수들과 잘못들을 인정하면 나는 한층 더 성숙해지리란 걸 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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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모든 일이 일어난 미래
염승숙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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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승숙의 단편 6개가 담긴 이 소설집은 코로나 시국을 배경으로 ’대책 없는 낙관, 무방비한 희망‘조차 가질 수 없는 상황에 처한 인물들의 감정을 서서히 따라가며 왜 결국 미래에 그 모든 일이 일어날 수 밖에 없는지 우리에게 알려준다. 책에서 작가는 ‘인간은 미래를 살 수 없어서 미래를 알 수 없다’고 말한다. 그래도 무정해지고 싶지 않다고 말하는 인물들이 곳곳에 심겨있는, 끝끝내 다정함을 잃지 않는 작가의 마음이란 무엇일까.

코로나가 장기화되며 사회에 존재하는 차별은 더 도드라졌다고 해설은 말한다. 첫 번째 편의 제목인 ‘Free the whale, 차별을 멈춰라’는 구호가 책을 읽는 내내 머릿속에서 반복하여 떠오르는 까닭도 각 편에서 존재하는 성별, 나이, 인종 등에 대한 여러 차별이 우리 일상 곳곳에 만연해있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이야 그 시절이 다 흘러갔다 생각하지만, 다시 언제 예전과 같은 감염병의 시대가 도래할 진 알 수 없고, 그때가 되면 차별의 대상은 우리가 될 지도 모르는 일이다. 우리는 미래를 알 수 없고, 미래를 살 수 없기에. 그래서 오히려 이 책을 덮고 나면 자신의 상처도, 타인의 상처도 방관하지 말고 외면하지 말라는 작가의 다정한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 ・ 。゚프리 더 웨일 * ・ 。゚
일과 육아 모두 다 잡기 어려운 싱글맘의 이야기. 진입할 수 없는 고래의 무리 속에서 느끼는 무력감.

* ・ 。゚믿음의 도약 * ・ 。゚
영양제를 먹으면 더 건강해질 거란 믿음, 내 집 마련의 꿈만 이루면 남 눈치 볼 것 없이 편히 살 수 있을 거란 믿음은 아내의 영양제에 대한 집착으로 나타나지만 부부는 ‘장누수증후군’ 진단을 받는다. 부부의 믿음은 과연 보답받을 수 있을까. 현실은 부부가 원하는 대로 쉽게 굴러가지 않는다.

* ・ 。゚구옥의 평화 * ・ 。゚
같은 아파트에서 유일한 버팀목이었던 유자(은자)의 인종차별적인 모습을 눈 감고 모른 채 했던 구옥은 본인이 버린 고무대야로 인해 시작된 사건을 알게 된다. 모든 걸 외면한 채 얻는 평화는 진짜 평화가 아님을.

* ・ 。゚진영의 논리 * ・ 。゚
제대로 사랑받지 못했던 진영의 어린 날과 현재. 헤어진 연인에게 임신 사실을 알리려 갔던 국밥집에서의 일이 동영상으로 유포되고 진영의 신상명세가 까발려 진다. 하지만 진영이 이를 해명할 기회는 없다. 진영은 그제야 자신의 상처를 직시하게 된다. 무거운 짐을 들고도 자신이 들어올 때까지 문을 잡아주었던 택배 기사의 선의와 자신이 문을 잡아줄 때 들었던 길을 막지 말라던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 속 논리란 무엇일까?

* ・ 。゚북극성 찾기 * ・ 。゚
같은 건물로 이사 온 학창 시절 친구 유라. 그리고 떠오르는 죽은 이정. ’한때 격렬했으나 손쉽게 단절되어버린 관계‘는 다시 붙여질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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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하려는 말은 독고독락
낸시 풀다 지음, 백초윤 그림, 정소연 옮김 / 사계절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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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날마다 나를 환대하지 않는 세상에 맞추어 가는 법을 배운다”
내가 SF를 좋아하는 것은 내가 알지 못했던, 상상하지 못하는 새로운 세계가 아름다운 문학의 언어로 표현되기 때문이다. 낸시 풀다의 『내가 하려는 말은』은 자폐와 알츠하이머 치매를 소재로, 한 인간이 느끼는 감정과 그 감정을 대하는 방식이 아름다운 문장으로 쓰여진 두 소설로 이루어져 있다.

༊*·˚ 「움직임」 .͙·☽
‘시간적 자폐’를 갖고 있는 주인공 한나는 시간에게 잡아먹히는 기분이 들 때마다 토슈즈를 신고 시간의 지배를 받지 않고 소멸할 수밖에 없는 춤을 춘다. 한나의 부모님은 시냅스 이식을 통해 한나의 자폐를 치료하려 하지만, 한나는 이 결정에 대해 고민한다. 한나가 본인이 처한 상황을, 마음을, 시간을, 가족을 대하는 일련의 과정들이 아름다운 언어로 표현됨과 동시에 한나는 어떤 결정을 내리게 될까. 영원히 그 시간의 세계에 남을까, 보통 사람들의 세계로 발을 딛게 될까.

༊*·˚ 「다시, 기억」 .͙·☽
알츠하이머 치매를 치료받은 엘리엇은 자신이 기억하지 못하는 공간, 낯선 사람 속에서 깨어난다. 그가 치매를 앓던 동안 사라진 기억들은 복구될 수 없었던 듯 보인다. 그의 아내와 자녀, 손주들은 엘리엇을 번갈아 찾아와 그들의 추억을 끊임없이 얘기하지만 엘리엇에게 그 모든 이야기들은 존재조차 하지 않았던 이야기로 느껴질 뿐이다.

낸시 풀다의 이 세계 속에선 자폐, 치매 두 질병 모두 ‘치료 가능한’ 질병이다. 두 질병 모두 보통 사람과는 다른 언어의 세계 속에 놓여있다는게 특징일텐데 작가는 이러한 특성을 그녀만의 언어로 새롭게 풀어낸다. ‘부모님은 내 시간의 척도에 맞추어 말하는 법을 모른다. 그들의 대화는 초 단위, 때로는 분 단위다. ··· 내가 생각을 정리해 완벽한 답을 찾는 데는 며칠, 때로는 몇 주가 걸린다(p.30)’, ‘내 주변의 모든 것들이 자라나거나 무너지고 있다. 이에 비하면 단어들은 납작하고 무의미하다(p.40)’, ‘거대한 시간의 흐름을 알지 못한 채, 정신없이 내달리는 문장들에 갇히고 싶지 않다(p.42)’, ‘자신이 하는 말 중 너의 기억이라는 미끄럽고 험준한 바위에 자리 잡는 단어가 몇 없음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 또한 분명하다. 이름들과 일화들이 너에게 친숙한 무엇과도 연결되지 못하고 빠르게 잊히며 스쳐 지나간다.(p.57)’.

그녀의 소설에선 두 사람 모두 자신의 정체성을 정의하는 데 있어서 새로운 선택이라는 결정 앞에 놓여있고 결국 둘은 같은 선택을 내린다. 본인의 의지를 잃지 않으면서도 세상에 맞추어 살아가고자 하는. 밑줄을 안 그을 수 없는!! 아름다운 문장들로 표현되는 두 사람의 결정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붉어지고 감동의 파도가 밀려드는 것은 어쩔 수가 없다. 짧은 소설이지만 이렇게 큰 울림을 주다니 놀랍다. 너무 좋다🩵🤍🩶 다른 독고독락 시리즈들까지 너무 궁금해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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